[변화] 국가보훈처, '기부금 비리' 입장 내놔 "제도 개선으로 보완"

2021년 11월 09일 17시 03분

국가기관이 공기업·공공기관을 상대로 기부금을 강요하고 특정 민간재단과 유착해 특혜를 제공했다는 뉴스타파의 기부금 비리 보도와 관련해, 국가보훈처가 첫 공식 자료를 내고 잘못을 인정했다. 보훈처는 '기부금을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도록 제도적 개선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뉴스타파는 보훈처가 2013∼2017년 사이 전국 지방보훈청장 명의의 기부 협조 공문을 보내는 수법으로 공기업으로부터 20여억 원의 기부금을 강제 모집하고, 보훈처 전관 단체인 ‘함께하는나라사랑’ (이하 나라사랑 재단)에 기부금을 몰아준 사실을 보도한 바 있다.

■ 뉴스타파 보도 이후 보훈처 잘못 인정, “제도적 개선방안 강구” 

먼저 보훈처는 공기업 등에 기부 협조 공문을 보냄으로써 기부금을 강요한 사실을 인정했다. 보훈처는 지난달 28일, 대한민국 정책브리핑을 통해 “과거, 지방보훈청 등 일선 보훈 관서에서 공기업 등에 공문을 발송한 것은 사실”이라며 기부 협조 공문의 존재를 인정했다. 보도 이전까지 보훈처는 공문의 존재와 보낸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았다.
뉴스타파와 송재호 의원실(더불어민주당, 제주시갑)이 공동 입수한 공기업에 발송된 보훈처 명의의 기부 협조 공문에는 기부 액수뿐 아니라 기부처가 나라사랑재단으로 명시돼 있는 등 노골적으로 기부를 강요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같은 보훈처의 기부 강요 행위는 기부금품법 위반에 해당할 소지가 있다. 국가기관은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에 따라 기부 금품을 직접 모집할 수 없다. 이에 대해 보훈처는 “기부 의사를 밝힌 민간의 기부금 영수 처리 및 집행을 위한 행정 절차로써 필요한 사항이었다”고 해명했다.
보훈처는 나라사랑재단과 2011년 업무협약을 맺고 기부금을 몰아준 사실에 대해서도 “재단을 무분별하게 활용해 온 측면이 있어 적절치 못한 측면이 있었다고 판단된다”며 일부 잘못을 인정했다. 보훈처는 “국가기관이 우회적으로 기부금 모금을 주도했다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는 사항”이었다고 해명했다.
다만 보훈처는 “국가유공자 복지 증진 등을 위한 기부금 영수증 처리였다”고 주장했다. 나라사랑재단과 특혜성 업무 협약을 맺은 배경도 “민간의 기부 요청 시 원활한 기부금 영수 처리 등 편의를 제공한다는 명목이었다”고 해명했다.

■ 보훈처, 「보훈기금법」개정안 적극 동의

이와 함께 보훈처는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보훈기금법’ 개정안에 적극 동의한다고 밝혔다.  보훈처는 “그간 지정 기부가 불가능하여 발생했던 문제점을 획기적으로 보완하겠다”고 강조했다.
현행 보훈기금법은 보훈처를 통해서만 보훈 대상자를 지원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어 특혜와 유착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앞으론 보훈처가 보훈 기부 활동에 간여할 수 없도록 명문화하고, 민간의 자율적인 기부를 보장하는 게 발의한 개정안의 주요 내용이다. 지난 5월 송재호 의원이 대표 발의했다. 
실제 2011년 보훈처가 나라사랑재단과 맺은 업무협약을 보면, 보훈처로 모집된 기부금은 나라사랑재단에 일괄 몰아주도록 했다. 위탁받은 기부금의 영수 처리는 나라사랑재단이 맡고, 대가로 나라사랑재단은 기부금 중 일정 금액을 수수료로 챙겼다. 이렇듯 보훈처가 특정 재단에 기부금을 몰아주고 수수료까지 지급해 특혜 의혹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앞으론 보훈처가 보훈 기부 활동에 직접 간여할 수 없도록 관련 법 개정 등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 철저한 진상 규명 요구에 “세심하게 살펴보겠다”고 원론적인 답변만 내놔

하지만 이 같은 보훈처의 전향적인 조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은 남아 있다. 기부금품법 위반 소지를 알고 있던 보훈처가 지난 2011년 ‘특정 재단’과 특혜성 업무 협약을 주도한 이유가 무엇인지 전혀 규명되지 않았다. 
또한, 나라사랑재단과의 유착과 비리에 따른 책임자 처벌도 없다. 나라사랑재단은 보훈처 출신 전관 공무원들이 주도해 설립한 단체다. 재단 이사장인 유병혁 씨는 횡령 등 범죄 의혹이 불거지자, 해외로 도피한 상태다. 10년이 넘게 비리가  계속됐지만, 박승춘 처장을 비롯해 형사 처벌을 받은 보훈처 공직자는 단 한 명도 없다.

■ 보훈처, 전관 단체 감싸기 의혹에서 벗어나야 

더구나 재단 이사장 유병혁 씨가 업무 협약 기간 기부금으로 각종 불법 행위를 저지르는 동안, 재단 주무 부처인 보훈처는 아무런 관리·감독을 하지 않았다. 보훈처가 전관 단체인 나라사랑재단을 감쌌다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 
이에 대해 보훈처는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며 구체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철저한 진상 규명 요구에 대해 보훈처는 “사업 전반에 대해 세심하게 살펴보도록 하겠다”, “더는 유사한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내놓고 있다. 비리 청산에 보훈처가 의지가 있는지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신상필벌은 공직 사회에서 제1의 원칙이다.
제작진
취재강현석
디자인이도현
웹출판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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