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앞 집회 금지' 경찰, 권한 없는 대통령 경호처에 'SOS' 요청

2022년 10월 06일 16시 25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 집회·시위 가능 여부를 두고 시민단체 등과 소송 중인 경찰이 집행정지 가처분 소송에서 패소한 직후 아무런 법률 해석 권한이 없는 대통령 경호처에 법 해석을 의뢰하는 등 '지원 요청'을 했던 사실이 뉴스타파 취재 결과 확인됐다. 대통령 경호처는 경찰의 협조 요청을 받은 지 불과 2시간 만에 의견서 형식의 회신을 보냈다. 경찰과 대통령 경호처가 이 문제를 두고 사전에 조율한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 뉴스타파는 경찰과 대통령 경호처가 주고받은 공문을 더불어민주당 천준호 의원실을 통해 입수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동안 윤석열 대통령실은 대통령실 앞 집회·시위 허용 문제와 관련해 "전혀 관여한 바 없다"는 취지로 주장해 왔다. 

시민단체에 패소한 경찰, 곧바로 대통령 경호처에 'SOS'

윤석열 정부 출범 직전인 지난 5월 초, 경찰과 시민단체인 '성소수자 차별 반대 무지개행동'(이하 무지개행동)은 용산 대통령실 앞 집회·시위 가능 여부를 두고 집행정지 가처분 소송을 벌였다. 무지개행동의 집회 신청을 경찰이 금지하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경찰은 '대통령 관저 경계 지점으로부터 100m 이내에는 옥외 집회와 시위를 열 수 없다'고 정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11조 3호를 근거로 들었다. 관저는 주거지·자택의 의미지만, 대통령 집무실 역시 관저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5월 10일, 서울행정법원은 무지개행동의 손을 들어줬다. '대통령 집무실은 관저의 개념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집회·시위가 가능하다'는 판단이었다. 이로써 경찰이 막았던 용산 대통령실 앞 집회가 처음으로 허용됐다. 이 판결 이후 여러 시민단체들이 제기한 집행정지 가처분 소송에서 경찰은 연이어 패소했고, 대통령실 앞 집회·시위는 모두 허용됐다. 이제 경찰이 대통령실 앞 집회를 원천 금지할 수 있는 방법은 집행정지 가처분 사건 이후 이어질 '본안 소송'에서 승소하는 것뿐이었다.
경찰은 지난 5월 10일 시민단체와 '대통령실 앞 집회·시위 금지' 가처분 소송에서 패소하자 대통령 경호처에 지원을 요청했다. 
법원 판결 다음날인 5월 11일, 경찰은 대통령 경호처에 'SOS'를 요청한다. 뉴스타파가 더불어민주당 천준호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경찰청 내부 문건에 따르면, 경찰은 대통령 경호처장에게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11조 관련 의견 회신 협조 요청'이란 제목의 공문을 보냈다. 내용은 "집시법 11조상 대통령 관저 개념 해석에 관한 귀 기관의 의견 회신을 요청하니 협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였다. 
협조 공문을 받은 대통령 경호처는 의견서(기사 하단 문서 전문 참조)를 작성해 경찰청에 보냈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대통령 경호처의 의견서 내용은 한마디로 "경호에 차질이 생길 수 있으니 대통령실 앞에서 집회·시위를 열게 하는 것은 곤란하다"였다. 이 의견서는 경찰에 의해 법원에 제출됐고, 이후 시민단체와의 소송에 쓰였다. 아래는 대통령 경호처가 경찰에 보낸 의견서 내용 중 일부.  
한순간의 경호의 실패가 경호 대상자에게 돌이킬 수 없는 위해를 초래할 수 있으며, 만일 경호 대상자의 이동을 방해하는 돌출 행위는 신체적 위험을 초래할 수 있고...(중략)... 대통령 집무실은 대통령이 상주하는 공간으로, 만일 대통령과 장소적으로 매우 근접한 곳에서 집회 시위가 이뤄지거나 대통령의 이동로를 봉쇄하는 집회 시위가 발생하면 경호 업무 수행에도 상당한 지장이 초래될 것으로 사료됩니다. 

용산 대통령실 집회·시위 관련 대통령경호처 의견서 (2022.5.11)

권한 없는 대통령 경호처에 법률 해석 요청... "대통령실 눈치 본 것" 

앞서 설명한 것처럼, 경찰은 대통령 경호처에 "집시법 11조상 대통령 관저 개념 해석에 관한 의견"을 요청했다. 하지만 대통령 경호처는 법률을 해석할 수 있는 아무런 법적 권한이 없는 조직이다. 특히 대통령 경호법처럼 경호처와 직접 관련이 있는 법률도 아닌 집시법의 조문 해석을 요구한 것이어서 문제가 더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무지개행동 소송을 대리하는 박한희 변호사는 "대통령과 관련된 일이니 관련 기관의 의견을 들을 순 있겠으나 집시법을 해석할 권한과 권위도 없는 대통령 경호처에 법 조문 해석까지 요청한다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또 "그동안 경찰은 대통령실 앞 집회를 금지하면서 '대통령 집무실도 관저'라는 유권해석을 법제처도 통하지 않고 마음대로 주장했다. 이에 항의하니 '자기들도 유권해석을 할 수 있는 기관이다'라고 주장했었다. 그렇다면 끝까지 그 해석에 대한 책임을 져야지 막상 집행정지에서 패소하니 대통령 경호처로 간 거다. 결국 대통령실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의미로 보인다"고 했다. 

의견서 요청에서 답변까지 2시간... 경호처·경찰 '사전 조율' 있었나?

그런데 대통령 경호처에 법률 해석을 요청한 경찰의 비상식적인 조치가 사실은 경호처와 경찰 간 사전 조율의 결과임을 보여주는 정황이 추가로 포착됐다. 천준호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경찰청-대통령 경호처 공문 수발신 내역'에 따르면, 경찰은 대통령 경호처에 지난 5월 11일 오후 1시 30분 의견서 협조 요청 공문을 보냈다. 대통령 경호처의 회신은 같은 날 오후 3시 35분에 왔다. 경찰청의 협조 요청부터 경호처의 공문 접수·보고·의견서 작성·결재·회신까지 2시간 5분밖에 걸리지 않은 것이다. 사전 조율이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뉴스타파가 접촉한 복수의 변호사들은 "법원 제출을 목적으로 한 대통령 경호처의 의견서가 2시간 만에 작성되기는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총 2장 분량인 대통령 경호처 의견서에는 법원 판례 1개, 헌법재판소 결정 사례 1개, 청와대 근처에서 일부 시민이 난동을 부렸던 사례 2개가 포함돼 있는데, 이런 사례를 찾는 데만 해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통령실 앞 집회·시위 금지 소송을 두고 경호처와 경찰의 '밀실 협의' 혹은 '사전 조율'이 있었던 것으로 의심되는 정황이다. 그동안 대통령실은 경찰의 대통령실 앞 집회·시위 금지 조치, 소송과 관련해 '전혀 관여한 바 없다'는 식으로 대응해 왔다. 
천준호 의원은 "경찰과 대통령 경호처 간 사전 조율 없이 대통령실 앞 집회·시위에 관한 경호처 의견서가 회신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경찰청이 집행정지에서 패소하자 본 재판에서 이기기 위해 경호처와 일련의 과정을 신속하게 진행한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나아가 헌법상 국민의 기본권인 집회의 자유와 관련한 법 해석을 대통령 경호처에 요구하는 것은 그 자체로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대통령 경호처가 경찰청에 보낸 의견서 전문> 
제작진
취재홍주환
디자인정동우
출판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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