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대통령실 앞 집회' 막는 경찰의 '이례적' 행태

2022년 08월 16일 12시 00분

대한민국 헌법은 '집회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국민의 기본권으로 정하고 있다. 하지만 경찰은 윤석열 대통령 취임 전후 시민들이 낸 '대통령실 100m 이내 집회·시위'를 모두 금지하며 논란을 일으켰다. 시민단체들은 경찰을 상대로 집회금지처분 취소 소송과 집행정지(행정기관이 내린 처분의 효력을 본안 소송이 끝날 때까지 중단하는 것)를 제기했고, 현재 여러 건 진행 중이다.    
최근 뉴스타파는 경찰이 시민들과 벌이고 있는 '대통령실 앞 집회금지처분 취소소송 및 집행정지 사건' 소송 자료를 입수해 보도했다. 이를 통해 경찰이 어떤 논리를 내세워 헌법적 권리인 집회의 자유를 막아서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경찰의 주장은 대략 3가지 정도였다.   
1) 대통령 집무실은 집회·시위에 관한 법률(이하 집시법)상 집회금지구역인 '대통령 관저'에 해당한다. 2) 시민들이 대통령실 안으로 소주병·야구공 등을 투척하고, 월담을 시도하는 등 위해를 가할 수 있다. 3) 집회 소음으로 대통령실에 대한 업무 방해가 발생할 수 있다.  
모두 법 조항을 멋대로 늘리고 비틀어 해석하거나, 추정에 추정을 더한 억지 논리다. 집시법에는 '대통령 관저 주변 100m 이내에서는 집회나 시위를 할 수 없다'고 돼 있을 뿐, 대통령 집무실 주변에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거나 대통령 집무실도 관저로 봐야 한다는 따위의 규정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경찰은 '시민들이 대통령실을 향해 집단적인 위해를 가할 수 있다'는 주장을 반복하면서도 이를 뒷받침할 근거는 하나도 내놓지 못했다. 
경찰은 시민들이 자유롭게 대통령실 앞에서 집회·시위를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온갖 비논리적 주장을 펼치고 있다. 

경찰 소송비의 '내막'을 취재하다 

더 큰 문제는 경찰이 이렇게 시민들과 소송을 벌이면서 막대한 세금까지 낭비하고 있다는 데 있다. 지난 5월 시민단체인 참여연대와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이하 평통사)이 제기한 소송 2건에 대응하기 위해 서울경찰청이 법무법인 '광장'을 소송 대리인으로 선임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서울경찰청은 두 건의 소송을 진행하면서 착수금과 성공보수로 각각 1500만 원씩 모두 6천만 원을 변호사비로 책정했다.  
서울경찰청은 "대통령실 앞 집회금지 소송의 변호사비가 어떤 기준으로 책정된 것인지"를 묻는 뉴스타파의 질의에 "일반적인 변호사비 수준"이라고 답했다. 과연 그럴까. 취재진은 서울경찰청의 주장이 사실인지 한번 따져보기로 했다.  
이를 위해 지난 5년간 전국 경찰청과 18개 지방경찰청이 집행한 변호사비 내역을 전수 조사했다. 모두 시민들이 경찰을 상대로 제기한 집회금지처분 취소 소송처럼 경찰이 피고로서 수행한 소송이었다. 자료 수집에는 더불어민주당 천준호 의원실의 도움을 받았다.  
확인된 사건은 모두 245건이었다. 과거사 관련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141건으로 가장 많았고, 경찰의 위법한 사건 처리 여부를 다투는 소송(39개)과 집회·시위 관련 소송(22건)이 뒤를 이었다. 집회·시위 관련 소송은 서울경찰청(20건)과 경남경찰청(2건)이 진행한 것이었다. 
경찰이 피고로 수행한 소송 245건의 변호사비를 확인한 결과, 서울경찰청의 이번 대통령실 집회·시위 금지 소송 대응은 확실히 이례적이었다. 일단 소송 착수금과 성공보수 규모가 이전과 확연히 달랐다. 비슷한 성격의 집회·시위 관련 소송과 비교했을 때 변호사비는 최고 수준이었다. 집회·시위 관련 소송에서 착수금과 성공보수가 1000만 원이 넘는 경우는 대통령실 관련 사건 이전에는 단 한 건도 없었다. 비슷한 사건에서 경찰이 쓴 최고 소송비는 600만 원에 불과했다.
전체 245개 사건과 비교했을 때도 이번 대통령실 관련 소송이 착수금과 성공보수가 가장 많은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이 지난 5년간 진행한 245개 소송 중 이번 대통령실 집회금지처분 취소 소송이 착수금이 가장 높았다.
'광장' 같은 대형 법무법인을 경찰이 소송 대리인으로 선임한 것도 이례적인 일이었다. 지난 5년간 경찰이 수행한 245건 중 157건(64.1%)은 정부법무공단이 맡았다. 나머지 사건도 대부분 변호사 수가 50명 이하인 중소형 로펌이나 개인 법률사무소가 선임됐다. 경찰이 각종 사건을 수행하면서 대형 로펌을 선임한 것은 이전에는 볼 수 없던 현상이었다.  
취재진은 이런 이례적인 소송 의뢰가 어떻게 이뤄졌는지 알기 위해 다각도로 취재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연락이 닿은 법무법인 광장 소속 A변호사에게서 꽤나 구체적인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A변호사는 "서울경찰청의 '절박한 요청'이 있었다"고 말했다.
서울경찰청에서 직접 법무법인 광장에 연락을 해 왔습니다. '광장에서 당장 사건을 맡아줄 수 있겠느냐'면서 '(경찰 내부) 규정으로 쓸 수 있는 변호사비가 1500만 원인데, 그 돈을 다 모아줄테니 사건을 꼭 맡아달라'고 요청했습니다.

A변호사 / 법무법인 광장
한마디로 서울경찰청이 법무법인 광장을 선임하기 위해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다'의 줄임말)을 했다는 말이었다.   
실제로 국가소송법에 따라 경찰이 외부 변호사 선임 과정에서 쓸 수 있는 돈에는 제약이 있다. 예를 들어, 참여연대가 제기한 대통령실 집회금지처분 취소 소송에선 최대 800만 원만 변호사비로 쓸 수 있었다. 그런데도 경찰은 이 소송을 광장에 맡기며 변호사비로 1500만 원을 지불했다. 아마도 국가소송법의 변호사 보수 규정에 있는 '착수금이 적정하지 않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착수금의 50% 범위 내에서 착수금을 상향할 수 있다'(제3조 민사본안사건의 보수기준액) 같은 규정을 최대한 끌어 들여 변호사비를 늘린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이 대통령실 앞 집회와 시위를 막는데 얼마나 혈안이 되어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취재진은 경찰에 연락해 '법무법인 광장에 총 2개의 대통령실 관련 소송을 의뢰하며 착수금으로만 3000만 원을 지급한 근거가 무엇인지' 등을 물었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     

소송 목적은 '대통령실 앞 집회 금지' 판례 만들기? 

그렇다면 경찰이 이렇게 이례적인 돈을 써 가며 시민들과 소송을 하는 이유는 뭘까. 단순히 참여연대와 평통사 같은 시민단체가 신청한 수백 명 규모의 집회를 막기 위해서였을까? 뉴스타파가 입수한 경찰 내부 문건에 따르면, 경찰의 목적은 더 먼 곳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경찰청과 법무법인 광장이 작성한 사건위임계약서에는 이런 문장이 들어 있었다.
승소의 기준은 "대통령 집무실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11조 3호의 대통령 관저의 범위에 포함된다"는 취지의 결정이 있는 경우 승소로 봅니다. 

서울경찰청-법무법인 광장 사건위임계약서 중 성공보수 특약사항
경찰이 이번 소송에 이례적으로 공을 들인 목적이 '대통령 집무실도 관저와 마찬가지로 100m 이내 집회가 절대 금지라는 판례를 만들겠다'는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 판례가 만들어진다면, 경찰은 추후 대통령실 앞으로 신고될 다른 집회·시위까지도 원천 금지할 수 있는 명분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천준호 의원은 "경찰이 윤석열 대통령의 심기 경호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소송 대응 방침이 경찰의 독자적인 판단에 의해 나온 것인지도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문제 없다'는 서울경찰청... 재판에선 또 어떤 주장을 할까

앞서 소개한 것처럼,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소송에 이례적인 돈과 공을 들이고도 서울경찰청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만 내놓고 있다. "돈을 적게 썼는지 많이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변호사비 사용 규정을 어기진 않았으니 뭐가 문제냐"는 식이다. 서울 내 집회·시위 관련 문제를 총괄하는 부서인 서울경찰청 정보상황과장(총경)은 이렇게 말했다. 
정부법무공단의 법률 서비스가 저희가 원하는 만큼 잘 안되니까요, 뭐 아시지 않습니까. 이게 표현이 좀 그런데. 어쨌든 서비스로 A를 선택할지 B를 선택할지는 저희한테도 선택권은 있지 않습니까. 무조건 법무공단을 써야한다,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서울경찰청 정보상황과장(총경)
서울경찰청은 대통령실 100m 이내 집회금지 소송 대응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취재진은 서울경찰청 언론협력계에 공식 질의서를 보내 ▲왜 대통령실 집회금지 소송에 이례적인 변호사비를 책정한 것인지 ▲변호사비를 특별하게 증액해준 게 맞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등을 물었지만 답변은 받지 못했다.  
지난 6월 10일 취임한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은 집회·시위 문제를 유독 많이 챙겼다. 6월 11일부터 7월 31일까지 업무추진비 내역 24건(전임자 퇴임식 제외) 가운데 13건이 집회·시위와 관련된 것이었고, 이중 상당수는 용산 대통령실 근처에서 벌어진 집회로 인해 사용된 것이었다. 김 청장은 지난 6월 20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시위에 대해 "불법 행위는 지구 끝까지 찾아가서 사법처리 하겠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오는 18일 참여연대와 경찰이 벌이는 대통령실 앞 집회금지를 둘러싼 소송의 첫 재판이 열린다. 경찰이 또 어떤 논리로 시민들의 기본권을 막아설지 관심이 모인다.   
제작진
취재홍주환
디자인정동우
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