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부당해고’ 소송 1심만 3년 5개월째...법원의 수상한 선고 연기

2024년 01월 30일 10시 00분

- 2020년 시작된 쿠팡 물류센터 부당해고 소송
- 1심만 1200일 넘어...세 번째 판결 선고 연기 
- 쿠팡 노동자 측 "법원이 쿠팡 눈치 보나" 비판
쿠팡의 '코로나19' 대응을 비판했다가 해고된 물류센터 노동자들의 '해고 무효 확인' 소송이 1심만 3년 넘게 지연되고 있다. 법원은 두 차례 판결 선고를 미루면서 3년 5개월간 시간을 끌었다. 법원은 지난 1월 25일 세 번째 판결 선고를 하루 앞두고 또다시 선고기일을 무기한 연기했다. 쿠팡 노동자와 변호사들은 "법원이 거대 기업 쿠팡의 눈치를 보느라 시간을 끄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

쿠팡 노동자 ‘부당해고’ 소송...1심만 3년 5개월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의 '해고 무효 확인' 청구 소송은 2020년 9월 시작됐다. 쿠팡 부천 신선물류센터에서 계약직 노동자로 일했던 강민정 씨와 고건 씨가 2020년 7월, 이유도 모른 채 계약 갱신을 거절당한 뒤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쿠팡의 물류 계열사인 '쿠팡풀필먼트서비스'를 상대로 복직과 해고 기간 임금 등을 요구했다.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가 쿠팡을 상대로 제기한 첫 부당해고 소송이었다. 쿠팡은 국내 최대 규모 법률사무소인 '김앤장'을 선임해 대응했다. 
그런데 2020년 9월에 접수된 사건이 소 제기 3년이 넘었는데도 1심 판결이 나지 않고 있다. 민사소송법 제199조(종국판결 선고기간)는 '판결은 소가 제기된 날부터 5월 이내에 선고한다. 다만, 항소심 및 상고심에서는 기록을 받은 날부터 5월 이내에 선고한다'고 돼 있다.
법원에 접수된 사건의 양에 따라 법이 정한 판결 기간을 넘길 수는 있다. 그렇지만 쿠팡 사건처럼 길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대법원 '2022 사법연감'에 따르면, 민사합의부가 1심 재판을 처리하는데 걸린 기간은 평균 1년 2개월(420.1일)이다. 대법원 판결까지는 약 3년(1095일)이 걸렸다. 쿠팡 노동자 사건은 1심 평균 판결 기간을 3배 가량 넘겼다. 
자료 출처 : 대법원 '나의 사건검색' 서비스

미루고 또 미루고...법원의 세 번째 판결 선고 연기

쿠팡 노동자들의 재판은 매번 지연됐고, 판결 선고는 지금까지 세 차례나 미뤄졌다. 2020년 9월 서울동부지법에 접수된 이 사건은 1년 뒤인 2021년 10월에야 첫 변론이 시작됐다. 세 차례 변론 끝에 2022년 6월 첫 번째 판결 선고기일이 잡혔다.  
그런데 쿠팡 측에서 변론 재개를 요청하면서 다시 재판이 시작됐다. 이후 두 차례 변론이 더 진행됐고, 2023년 5월 종료됐다. 두 번째 판결 선고기일은 6개월 뒤인 2023년 11월 9일로 잡혔다. 변론 종결 1~2개월 안으로 선고기일이 잡히는 보통의 경우에 비해 늦어졌다. 
'늑장 선고' 비판을 받던 재판부는 두 번째 판결 선고 이틀 전, 선고기일을 다시 올해 1월 25일로 변경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판결은 여기서 또 미뤄졌다. 지난 1월 24일, 법원은 세 번째 판결 선고를 하루 앞두고 갑자기 선고기일을 또다시 변경한다고 통보했다. 이번에는 선고기일을 언제로 연기하는지 날짜도 못 박지 않았다. 법원이 보낸 '기일 변경 명령서'에는 선고기일을 '추후 지정'한다고 적혀 있다.
서울동부지법이 지난 1월 24일 쿠팡 노동자 측에 보낸 '기일변경명령' 문서. 이날은 세 번째 판결 선고 하루 전이었다. 
쿠팡 노동자 측 조영신 변호사(법무법인 원곡)는 "재판 진행 과정에서 양측이 공방을 벌이다 시간이 길어질 수는 있다. 하지만 재판부가 선고기일만을 여러 번 미루면서 시간을 끄는 경우는 굉장히 이례적이다. 부당해고 사건은 이미 법리적으로 판단이 많이 나 있어 이렇게 시간 끌 사건이 아니다. 현재 재판부가 판결하기 싫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공공운수노조 법률원의 정병민 변호사도 "재판부가 이미 작년 5월에 변론이 끝난 소송의 선고기일을 미루고 또 미루는 걸 보면서 '판결 선고에 압박감을 갖고 있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판결 결과와 상관없이 재판 과정 자체가 비정상적인데, 이런 재판을 당사자들이 과연 납득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3년 넘게 결론 못 낸 민사 재판...어떤 사건이기에?

그럼 대체 어떤 사건이기에 3년 넘게 법원이 1심 결론도 못 내리는 걸까. 사건의 시작은 2020년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강민정, 고건 씨는 2020년 4월 쿠팡 부천 신선물류센터에 3개월 계약직으로 입사했다. 당시 쿠팡 물류센터는 계약직의 경우 3개월부터 시작해 9개월, 12개월, 무기계약으로 계약을 갱신하고 있었다. 
근무 평가에 큰 문제가 없으면 대부분 계약이 갱신됐다. 코로나19로 로켓배송 수요가 폭증하던 때라, 물류센터는 매일 일용직 노동자를 채용할 만큼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다. 2020년 쿠팡 부천 신선물류센터의 계약 갱신률은 90%가 넘었다.
근무 평가의 핵심은 '근태'였다. 지각, 조퇴, 결근 등을 거의 하지 않았던 두 사람은 당연히 계약이 갱신될 거라 믿었다. 3개월에서 9개월 계약직으로 갱신하는 근무평가 기준점은 '60점'. 강민정 씨는 88점, 고건 씨는 90점으로 기준점을 훨씬 넘겼다. 하지만 쿠팡은 2020년 7월, 이들에게 계약 종료를 통보했다. 계약 갱신 거절의 이유도 알려주지 않았다. 
특히 두 사람은 쿠팡으로부터 계약 종료를 통보 받을 당시, 산업재해로 치료를 받고 있었다. 근로기준법 제23조(해고 등의 제한)에 따르면, 산재 요양 중인 노동자는 해고할 수 없다. 노동자가 일하다 다친 경우, 회복할 때까지 실직의 위협을 받지 않도록 보호한다는 취지다. 
계약직 노동자라도 '갱신기대권'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해당 법 조항이 동일하게 적용된다. 갱신기대권은 '노동자와 회사 사이에 일정한 요건을 갖추면 재계약을 할 수 있다'는 신뢰관계가 형성된 경우, 계약이 갱신된 것으로 본다는 법리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갱신기대권이 인정되는 경우 사측이 합리적인 이유 없이 계약을 거부하면 '부당해고'가 된다. 
쿠팡 측은 재판과정에서 "이들에게 계약 갱신기대권이 인정되지 않으며, 만약 갱신기대권이 인정된다고 해도 근로계약을 종료할 합리적 사유가 있다"고 주장했다.  

쿠팡, 코로나 19 방역조치 비판했다고 산재 요양 중 해고

쿠팡이 주장하는 해고의 '합리적 사유'는 소송 과정에서 밝혀졌다. 이들이 쿠팡에서 발생한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와 관련해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회사에 대한 악감정을 반복적으로 표출해 직원간 분란을 조장했다는 것이다.
'코로나 19 집단감염' 사태란 2020년 5월 24일 쿠팡 부천 신선물류센터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해 물류센터 직원과 가족 등 152명이 감염된 사건이다. 당시 강민정, 고건 씨는 '쿠팡발 코로나19 피해노동자 모임'을 만들고 활동하면서 쿠팡의 방역조치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강민정 씨가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 쿠팡 부천 신선물류센터의 방역조치를 비판한 내용. 회사가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사실을 숨기고, 근무를 강행시켰다고 지적했다. 정부 방역 지침에 따르면, 사업주는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당시 전 직원에게 즉시 이를 알려야 하지만, 당시 쿠팡은 계약직,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이를 바로 알리지 않았다.
쿠팡 노동자 측 조영신 변호사는 쿠팡의 주장에 대해 이렇게 반박했다. 
만약 진짜로 쿠팡 노동자들이 허위 사실을 유포하고, 부당하게 회사를 비난했다면, 쿠팡은 노동자들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등 대응했을 것이다. 노동자들의 발언은 자신들의 일터에서 발생한 코로나19 위험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정당하게 문제 제기한 것일 뿐이다. 그런 문제 제기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회사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노동자들은 사업장이 위험해도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그냥 일을 해야 한다'는 얘기와 같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비판한 내용은 결과적으로 허위사실도 아니었다.

조영신 / 변호사(전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 강민정·고건 씨 변호인)
쿠팡이 코로나19 방역조치를 소홀히 했다는 점은 노동청 수사결과를 통해 확인된 바 있다. 2022년 6월, 중부고용노동청 부천지청은 쿠팡이 집담감염이 예상되는데도 노동자 보호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며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쿠팡풀필먼트 등을 검찰에 넘겼다.  
2020년 5월 25일 쿠팡 부천 신선물류센터는 다수의 코로나19 확진자 발생으로 건물 전체 폐쇄를 결정하고도 이날 오후 출근 노동자들에게 바로 알리지 않았다. 사진은 이날 오후 7시경 오후조 노동자들이 정상 출근해 환기가 잘 되지 않는 휴게실에 모여 있는 모습.(출처 : 쿠팡발 코로나19 피해노동자 모임)

“쿠팡 눈치 보느라 판결 미뤄” 비판...동부지법 “특별히 할 말 없다”

결과적으로 이번 '해고 무효 확인' 소송의 쟁점은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에게 계약 갱신기대권이 인정되는지 △산재 요양 중인 노동자에게 계약 종료를 통보해도 되는지 △쿠팡의 코로나19 대응을 비판한 것이 재계약 거부의 합리적 사유가 되는지 여부다.
비슷한 이유로 계약 갱신이 거절된 쿠팡 노동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건이다. 하지만 언제 판결이 날지 기약할 수 없다. 2월은 법원 인사철이다. 재판부가 바뀌면 다시 사건 기록을 살피느라 판결 선고까지 긴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높다. 
조영신 변호사는 "헌법에는 모든 국민이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명시돼 있다. 헌법상 권리를 법원이 침해하고 있는 거다. 조희대 대법원장도 '신속하지 않은 재판으로 고통받는 국민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하지 않았나. 법원은 왜 판결을 미루는지 이유라도 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1심 판결까지 3년 5개월을 기다려 온 노동자들은 지쳐간다. 소송 당사자인 강민정 씨는 "1심 소송만 3년 넘게 걸리는데 대법원 판결까지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걸릴 지 가늠할 수도 없다. 그 때까지 건강하게 살아서 최종 판결을 볼 수 있을 지도 의문이다. 법원이 쿠팡과 김앤장 눈치를 보느라 판결을 미룬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뉴스타파는 서울동부지법에 연락해 세 번째 판결 선고기일을 연기한 이유, 법원이 쿠팡의 눈치를 보느라 판결을 미룬다는 비판에 대한 입장 등을 물었다. 동부지법 측은 "특별히 드릴 말씀이 없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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츨판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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