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썼는데 정보는 없다, 있다는 걸 입증해 봐라’...문재인·박근혜 때와 달라진 윤석열 대통령실의 소송 대처법

2024년 02월 19일 10시 00분

이번 행정소송에서 윤석열 대통령비서실은 ‘완패’했다. 정보공개 행정소송에서 재판부가 흔하게 덧붙이는 ‘비공개 단서’ 하나 없이, 원고가 요구하는 ‘자료 일체’를 공개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관련 기사 : 법원 “윤석열 대통령 횟집 만찬 비용 공개” 판결)
1심 판결에 따라, 윤석열 대통령비서실은 ‘2023년 4월 6일 대통령과 장관, 국회의원 등이 부산의 한 횟집에서 한 회식의 회식 비용 액수 및 지출 주체, 지출 원천(대통령비서실의 예산으로 지출한 것인지)’을 전부 공개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부산 해운대 횟집에서 회식을 한 지 10개월, 소송을 낸 지 9개월 만에 나온 결과다. 
원고는 하승수 변호사(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 뉴스타파 전문위원), 피고는 윤석열 대통령비서실, 재판은 서울행정법원 행정2부(신명희 부장판사)가 맡았다.  
서울행정법원 
지난 8일 나온 ‘해운대 횟집 회식비’ 공개 행정소송 1심 재판은, 여느 재판과 달리 변론이 두 번만에 끝났고 선고도 빠른 편이었다. 최고 권력기관인 대통령비서실이라도 국민 세금으로 쓴 예산 내역은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상식을 재확인한 판결이었다.
하승수 변호사는 “대통령비서실은 정보가 공개되는 것이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미 모든 국민이 알게 된 회식인데, 그 회식비가 공개된다고 해서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친다는 것은 상식에 반하는 주장”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비서실, ‘해운대 횟집 회식비’ 소송에서 새로운 재판 대응 방식 보여줘

지극히 상식적인 판결인 만큼, 이번 판결이 갖는 의미를 반복해 따지고 분석하는 건 불필요하다. 앞으로 받아낼 ‘해운대 횟집 회식비’ 자료의 공적 가치를 거듭해 강조하는 것도 쓸데없다. 그보다는 이번 재판 과정에서 윤석열 대통령비서실이 보여준 비상식적 태도, 과거와 다른 재판 대응 방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번 재판에서 보여준 윤석열 대통령비서실의 대응 방식과 태도는, 이전 문재인·박근혜 정부 때와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또 뉴스타파와 시민단체들이 현재  2심 재판 중인 다른 정보공개 행정소송(대통령비서실 특수활동비, 수의계약 내역, 직원 명단 등)과도 사뭇 달랐다.   
문재인·박근혜 정부 때는 물론이고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대통령비서실이 쓴 예산 내역의 공개를 요구하는 행정소송은 여러 번 있었다. 그때마다 대통령비서실은 ‘정보는 대체로 존재하고 보관하고 있으나(일부 자료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 국방·안보 등의 이유로 공개할 수 없다’고 앵무새처럼 떠들었다. 그런데 ‘해운대 횟집 회식비’ 정보공개소송을 대하는 윤석열 대통령비서실의 방식은 달랐다. ‘회식비 정보가 없어서 공개할 수 없으니, 소송 자체를 각하해 달라’는 주장이었다.  

‘정보는 대체로 있지만 공개 못 한다’ VS ‘회식비 정보가 없어 공개 못 한다’

‘공개를 요구한 정보는 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공개할 수 없다’는 변론과 ‘공개를 요구한 정보 그 자체가 없는데, 어떻게 공개할 수 있느냐’는 변론의 간극은 천양지차다. 전자의 경우 공개/비공개를 놓고 법적 공방을 펼칠 여지가 있다. 하지만 후자처럼 아예 관련 정보가 없다는 ‘부존재’ 주장을 펼치면, 정보의 공개를 요구하는 측은 난감해진다. 재판을 계속 진행하기 위해서는 관련 정보가 존재한다는 ‘사실’ 혹은 ‘개연성’을 원고가 입증해야 하는데, 이 작업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번 재판에서 윤석열 대통령비서실은 문제가 된 ‘해운대 횟집 회식비’ 지출 관련 정보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재판부는 ‘대통령이 주재한 회식인데, 왜 회식비 지출 관련 정보가 없는지’ 해명을 요구했다. 그러자 대통령비서실 측은 재판부조차 어리둥절하게 하는 변론을 펼쳤다.(아래 그림 참조) 
2023년 10월 12일 첫 변론 진행 중 나온 재판장, 피고, 원고의 발언 발췌 
재판부의 해명 요구에, 윤석열 대통령비서실은 해운대 횟집 회식비를 대통령비서실의 업무추진비 또는 특수활동비로 집행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둘 중 어떤 예산으로 썼는지는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다. 나아가 원고(하승수 변호사)가 요구하는 회식비 지출 자료는 “‘정보공개법상 정보’의 형태로 생산하거나 보관·관리하지 않아 이를 공개하기 위해서는 관련 자료를 새롭게 가공·생성하여야 하므로 (해운대 만찬 회식비)정보는 피고(대통령비서실)가 보유·관리하는 정보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정리하면, ‘해운대 횟집 회식비는 대통령비서실 예산으로 지출했는데, 회식비를 업무추진비로 썼는지 특수활동비로 썼는지는 알려줄 수 없다. 또 관련 지출 정보도 생산·보관·관리하지 않는다. 따라서 정보를 줄래야 줄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궤변에 가까운 변론이다. (관련 기사 보기 : (‘윤석열 횟집 만찬’ 소송...‘거짓말인가, 얻어먹고 다녔나’)

재판부, ‘업추비든 특활비든 횟집 만찬 지출증빙서류는 대통령실에 존재한다’고 판단

재판부는 대통령비서실의 주장을 명쾌하게 탄핵했다. 재판부는 먼저, 관련 회식 비용을 “대통령비서실의 예산을 활용하여 집행하였다고 자인하고 있는 점”을 판단의 출발선으로 삼았다. 
그리고 먼저 ‘업무추진비로 회식비를 집행한 경우’를 따졌다. 국고금관리법 등에 따르면, “업무추진비의 집행은 해외 출장 경비가 아닌 이상 정부구매카드를 사용하거나 계좌이체 방법으로 집행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므로, (횟집 만찬) 비용이 업무추진비로 집행되었다면, 그 집행 액수는 카드결제영수증 또는 금융거래내역의 형태로 지출증빙서류가 보관·관리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재판부는 ‘특수활동비로 회식비를 지출했을 가능성’도 살폈다. 재판부는 “특수활동비로 집행된 경우라면, 특수활동비의 성격상 다른 경비에 비하여 그 집행 및 지출내역 관리가 완화되어 있기는 하나, 그 집행과 관련하여 지출계산서 또는 관서운영경비 출납계산서가 존재하고, 그 지출증빙자료로 영수증 또는 관계 공무원의 영수증서 등이 보관·관리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봤다.
이 두 가지 경우를 종합한 재판부는 “만찬에 소요된 경비를 대통령실 예산으로 집행한 이상, 그것이 업무추진비 또는 특수활동비 중 어떤 명목으로 집행되었는지를 불문하고 그에 관한 관서운영경비 출납계산서, 지출증빙서류 등이 존재할 것으로 보인다”고 결론 내렸다. 
이어 재판부는 “(만찬 비용의) 액수 및 지출주체·(지출)원인 등 원고(하승수 변호사)가 공개를 구하는 정보는 그 문서 등에 기록된 내용으로 충분히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피고(대통령비서실)가 (정보를) 보유·관리하고 있을 상당한 개연성이 증명되었다”고 판단했다. 이런 식으로 윤석열 대통령실이 주장한 해운대 횟집 만찬 회식비의 ‘정보 부존재’ 변론은 기각됐다.
공개해야 할 예산 정보의 ‘부존재’ 주장은, 지난해 4월 뉴스타파와 시민단체의 승소로 끝난 검찰 특수활동비 공개 행정소송에서도 나왔었다. 재판 당시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은 ‘특수활동비를 쓰기는 했는데, 집행과 관련한 정보는 없다. 없는 정보를 어떻게 공개하냐’는 취지의 황당한 변론을 펼쳤다.
하지만 이 같은 ‘특활비 정보의 부존재’ 주장은 이후 ‘뻔뻔한 거짓말’로 드러났다. 대법원 확정판결 이후, 뉴스타파와 시민단체가 검찰로부터 받아낸 특수활동비 자료는 수만 장에 달했다. (검찰 특활비 자료 특별 페이지 들어가기)
<검찰의 금고를 열다> 시즌2 페이지(https://pages.newstapa.org/2023/09_prosecution/) 갈무리. 정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거짓 변론을 했던 검찰이 소송 패소 후 공개한 특수활동비 지출증빙자료 수만 장을 이 특별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재판부, ‘만찬 종료 후 공개되는 지출증빙서류는 국익을 해칠 우려 있다고 인정 안 해’

권력기관이 알권리를 막는 전가의 보도는 ‘국가안전보장·국방·외교 등에 관한 사항으로 공개될 경우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대통령실, 검찰 등 모든 권력기관이 버릇처럼 써 왔다. 
이번 소송에서 윤석열 대통령비서실도 비슷하게 주장했다. 특히 대통령비서실은 회식비 정보에 “대통령 경호 인력에 관한 비용 등이 포함돼 있어 향후 대통령 경호 인력과 규모가 유출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해운대 횟집 만찬은 “이미 종료되었고”, “만찬 장소, 소요 시간, 참석자는 그 직후 다수의 언론을 통해 보도된 점을 비추어 보면, 국익을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에 해당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지난해 4월,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윤석열 대통령의 해운대 횟집 만찬 후 모습 
대통령비서실은 대통령이 가진 직무를 강조하며 비공개를 항변했지만, 재판부는 “대통령의 직무가 가지는 공적 성격 등을 고려하더라도 만찬 정보가 대통령의 국정 관련 업무 수행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정보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 예정이므로 공개할 수 없다’는 주장도 기각

윤석열 대통령비서실은 ‘해운대 횟집 회식비’ 정보가 “대통령기록물법 17조에 따라, 공개가 금지된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될 예정이므로 공개할 수 없다”고도 주장했다. 그런데 이 주장은, 뉴스타파와 시민단체가 2022년 8월부터 윤석열 대통령비서실을 상대로 진행중인 특수활동비 등 예산 집행 자료와 수의계약 내역 공개 소송에서도 똑같이 나왔었다.   
지난해 특수활동비 공개 행정소송 당시 대통령비서실은 재판부에 낸 준비서면에서 “대통령기록물에 대한 관리는 대통령기록물법에서 정한 바에 따르는데, 비공개로 분류된 대통령기록물은 공개할 수 없고 이후 대통령지정기록물로 ‘가(임시)지정’될 예정이어서 비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관련 기사 : 뉴스타파 vs 대통령실, 예산 공개 소송 시작)
이처럼 반복적으로 나오고 있는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될 예정이기에 공개할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해운대 횟집 회식비’ 공개 소송 1심 재판부는 ‘이유 없다’고 판단했다.
대통령기록물법에 따르면, 대통령지정기록물이 비공개 보호를 받는 시점은 대통령 임기가 끝난 다음 날부터다. 윤석열 대통령의 경우 임기가 2027년 5월 9일 끝나니 다음 날인 2027년 5월 10일부터 적용된다.  
윤석열 대통령비서실의 대통령지정기록물 보호 기간은 현직에 있을 때가 아닌 윤 대통령의 임기가 종료된 뒤인 2027년 5월 10일부터 시작된다. '추후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될 예정'이라는 이유로 임기 증 생산한 기록물이 비공개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 
‘해운대 횟집 회식비’ 공개 소송 재판부는 “장래에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될 예정이라는 점이 정보공개법상 비공개를 정당화할 수 없음은 관계 법령 문언상 명백하다”고 못 박았다. 

‘예산은 썼는데 정보는 없다, 정보가 있다는 것을 원고가 입증해 봐라’는 황당한 주장으로 행정소송 더욱 어려워져 

정보공개 청구와 이에 따른 행정소송은 ‘술래잡기’ 놀이와 같다. 정보를 감추고 숨기는 자와 이를 공개시키려는 자 사이에 벌어지는 ‘술래잡기’.
그런데 게임의 규칙은 감추는 쪽에 유리하게 기울어져 있다. 감추는 쪽이 ‘정보 부존재’를 주장하면, 정보공개 청구를 한 원고가 ‘정보의 존재’를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승수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검찰 특수활동비 정보공개소송에서도 검찰 측의 ‘정보 부존재’ 주장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는데, 이번 '해운대 횟집 회식비' 정보공개소송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두 소송 모두 ‘예산은 썼는데, 정보는 없다. 정보가 있다는 것을 원고가 입증해 봐라’는 황당하고 악의적인 주장을 한 사례였다. 이런 주장을 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법을 아는 자들이 할 수 있는 주장이다. 대통령비서실이 항소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끝까지 이 사안의 진실을 규명해 보려고 한다.

하승수 변호사(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 뉴스타파 전문위원)
2월 8일 선고된 ‘해운대 횟집 회식비’ 내역 공개 1심 판결에 대한 항소는 판결문이 송달된 날부터 2주 이내에 낼 수 있다. 항소 시한은 2월 29일까지다. 윤석열 대통령비서실은 항소할 것이라는 얘기를 일부 언론에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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