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홍라희 모자 40억 기부금 추적기

2021년 10월 14일 16시 35분

뉴스타파 이건희 성매매 보도 터진 날 쏟아진 삼성 미담 기사들

2016년 7월 21일 밤 뉴스타파는 ‘삼성 이건희 성매매 의혹.. 그룹 차원 개입?’이란 제목의 이건희 성매매 의혹 영상을 보도했다.
그날 아침 수십 개 신문에 일제히 삼성 이재용·홍라희 모자의 훈훈한 선행 기사가 실렸다. 삼성 모자의 미담 기사는 위 그림처럼 매일경제 1면과 조선일보 25면, 동아일보 32면, 서울신문 20면, 한국일보 29면, 내일신문 14면에 실렸다. 이밖에 같은 날 중앙일보 24면, 문화일보 29면, 세계일보 28면, 한국경제 37면, 서울경제 30면, 머니투데이 14면, 헤럴드경제 25면에도 같은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 인터넷 매체까지 포함하면 수십 개 언론이 같은 날 동시에 보도했다.

법무부 산하 협회에 ‘기부했다’는 기사 봇물

미담 기사의 내용은 한결 같았다. 이재용 부회장과 어머니 홍라희 씨가 소년원 출원자 등 소외계층 여성 청소년을 위한 직업교육시설 건립에 사재 40억 원을 법무부 산하 재단법인 한국소년보호협회에 기부했다는 것이다. 기사는 모두 ‘기부할 예정’이 아니라, ‘기부했다’로 단정지었다. 소년보호협회는 보호소년 등의 처우에 관한 법(보호소년법) 51조에 따라 1998년 설립된 법무부 산하 기관으로 소년원에서 나온 청소년들의 사회 정착과 직업교육을 지원한다.
협회는 2014년 12월부터 경기도 화성시에 청소년창업비전센터를 지어 소년원 출신이나 보호관찰을 받는 학교 밖 청소년에게 1년간 숙식과 직업교육을 제공해왔는데, 당시 남녀 분리 수용해야 한다는 소년원법에 따라 여성 청소년용 별도의 시설 건립을 검토 중이었다. 이 사실을 접한 이재용 모자가 사재를 기부해 여성 청소년을 위한 센터를 빠르면 2017년 여름께 개소한다고 했다. 이들 기사는 법무부 발로 보도됐고, 몇몇 기사엔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 관계자’ 발언도 실렸다.
그러나 예상보다 늦은 2020년 1월 경기도 안산에 문을 연 협회 산하 여성 청소년창업비전센터 개관에는 삼성 모자의 기부금 40억 원이 사용되지 않았다.
협회는 보호소년법에 따라 법무부 장관이 협회 이사장을 임명하고, 법무부 소속 공무원 1명이 당연직 이사로 들어가고, 나머지 이사들도 장관의 승인을 받아 취임 한다. 법무부는 협회의 사업계획과 사업실적, 예·결산 등 회계를 지휘·감독한다.

소년보호협회 기부금 내역 어디에도 40억 행방 묘연

뉴스타파는 2014~2020년 소년보호협회 기부금 수입을 확인했다. 협회는 2016~2020년까지 연 평균 8억 5천여 만 원을 기부 받았는데, 2016년 7월 삼성 모자가 냈다는 기부금 40억 원은 어디에도 없었다. 여성 청소년창업비전센터 건립을 추진하면서 연 8억 원 안팎의 기부를 받던 협회로서는 40억 원은 큰 돈이었다. 당시 협회에 근무했다가 최근 퇴사한 직원들은 “협회가 그 돈으로 수도권에 여성 청소년창업비전센터 개관을 모색하다가 흐지부지 됐다”고 했다.
2020년 초 문을 연 여성 청소년을 위한 소년보호협회 안산 청소년창업비전센터. 4층 건물의 3~4층만 사용 중이다. ⓒ 이정호
2020년 문을 연 여성 청소년을 위한 경기도 안산 청소년창업비전센터는 삼성 모자의 기부금이 아닌, 전액을 기획재정부가 운영하는 복권기금 28억 원으로 4층 건물을 매입해 1~2층은 임대 주고, 3~4층만 사용하고 있다. 2014년 12월이 문을 연 남성용 화성 청소년창업비전센터는 대학 캠퍼스 수준의 넓은 운동장에게 교육관 등을 갖추고 숙박도 가능한 반면 여성 청소년이 이용하는 안산 센터는 도심 상가 건물 2개 층만 활용해 숙박 시설 없이 직업교육만 가능하다. 
2014년 말 문을 연 남자 청소년을 위한 소년보호협회 화성 청소년창업비전센터 전경. 기숙 시설과 교육관, 운동장 등을 갖추고 있다. ⓒ 소년보호협회 홈페이지

법무부 “2017년 상반기에 수령을 보류했다”

이재용 모자의 40억 기부금 행방을 묻는 질문에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 관계자는 “법무부가 2017년 상반기에 (삼성 모자의) 40억 기부금 수령을 접수 보류했고, 이후 이 기부금은 협회나 법무부로 들어온 적이 없다”고 했다. 기부 의사를 밝혔을 뿐인데, 수십 개 언론이 “기부했다”고 앞서 나간 셈이다. 이후 기부 여부와 여성 청소년창업비전센터 설립 예산을 챙겨 쓴 언론은 없었다.
기부 기사가 나간 2016년 7월 21일은 뉴스타파가 이건희 성매매 의혹을 보도한 날이기도 하지만, 앞서 2016년 5월 30일 서울고등법원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관련 주가를 재산정한 결정문에서 “합병 과정에 총수 일가 이익을 위해 의도적으로 삼성물산 주가 하락을 유도했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삼성 승계 구도에 다시 걸림돌이 생겼다. 민주당 제윤경 의원실은 합병 과정에 국민연금이 581억 원의 손실을 입었다고 발표했다. 시민단체 ‘내가만드는복지국가’는 2016년 6월 두 회사 합병에 찬성한 국민연금공단을 검찰에 고발하려고 공동고발인 모집에 들어갔다.
법무부는 삼성 모자가 기부 의사를 밝힌 걸 ‘기부했다’고 앞서 간 법무부 발 기사에 문제 제기하지 않았고, 6개월 넘게 기부금을 받지 않다가 ‘2017년 상반기’에 돌연 기부금 수령을 보류했다. ‘2017년 상반기’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대통령 선거전이 한창이던 2017년 2월 17일 이재용 부회장은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삼성 창업 79년 만에 총수로는 첫 구속됐다.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 관계자는 “법무부가 2017년 상반기에 40억 기부금을 수령 보류한 구체적인 상황은 잘 모르겠지만, 법 집행의 공정성이나 정치적 관계 등을 고려했던 것 같다”고 했다. 특검의 국정농단 수사 끝에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까지 된 마당에 40억 원을 받기는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기부금 40억원 ‘위드 조이’로 갔다?

취재 도중 40억 원이 2019년 말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설립 허가를 받은 ‘위드 조이(with JOY) 청소년행복재단’(이하 행복재단)에 있을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행복재단 임원 중엔 과거 소년보호협회 임원 등 운영에 관여했던 인사들이 있는데, 이들이 기부금을 보관했다가, 행복재단을 만들 때 가져갔다는 것이다. 행복재단도 소년보호협회처럼 위기 청소년 지원사업을 한다.
행복재단엔 골프장과 리조트, 호텔 등을 경영하는 에머슨퍼시픽그룹 이중명 회장이 이사장으로, 윤용범 사무총장, 박주봉 이사 등이 있다. 행복재단 이중명 이사장은 2014~2020년 3월까지 소년보호협회 이사장을, 윤용범 사무총장은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에서 34년 동안 소년보호 관련 업무를 담당하다가 2019년 6월 퇴직했다. 박주봉 이사도 소년보호협회 이사를 지냈다. 2016년 40억 기부 보도 때 소년보호협회 이사장이었던 이중명 회장(행복재단 이사장)은 “그 돈은 좋은 곳에 쓰려고 잘 보관돼 있다”고 했다. 그러나 행복재단 윤용범 사무총장은 “임원 개인이 그 돈의 행방을 아는 지는 모르지만, 그 돈은 우리 행복재단 공식 기부금 계좌엔 들어오지 않았다”고 했다. 
한 인터넷 언론은 지난해 10월 28일 ‘단독/ 이재용 부회장이 아들 동갑 소년범과 친구된 사연’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2017년 2월 17일 구속된 이재용 부회장이 비슷한 때 소년원에 수감된 당시 18살 청소년과 검찰조사 받으러 가는 호송버스에서 자주 만나 친구가 됐다고 소개하면서 “이 부회장이 ‘워드 조이’라는 청소년행복재단을 설립했다”고 했다. 이 매체는 이 부회장과 홍라희 씨, 이종왕 전 삼성 법무실장 등이 기금을 출연했다고 보도했다. 이수형 전 삼성전자 부사장이 행복재단 상임이사로 재직 중인 것외 삼성과 직접 관련은 없다.

왜 소년보호협회에 기부한다고 했을까.

여러 언론이 2016년 삼성 모자가 40억 원을 협회에 기부했고, 그 돈으로 지어질 건물의 용도까지 확정해 보도했다. 그러나 삼성 모자가 소년보호협회에 40억 원을 기부할 의사를 보였뿐, 협회에 기부하지 않았다. 삼성의 한 홍보 담당 임원은 “오너의 개인적 기부를 일일이 다 확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여러 언론은 2016년 제대로 확인도 않고 법무부 발로 일제히 삼성 오너 두 사람의 홍보기사를 썼다.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이 소년보호협회를 관리감독한다. 법무부는 8월 6일 공석이었던 범죄예방정책국장에 윤웅장 범죄예방기확과장을 임명했다. 범죄예방정책국장은 법무부 가석방심사위원회에 당연직 위원으로 들어간다. 사흘 뒤 8월 9일 열린 법무부 가석방심사위원회에 신임 윤 국장도 들어갔고, 거기서 이재용 부회장의 가석방을 결정했다. 법무부가 40억 기부를 마다한 건 불행 중 다행이다. 삼성 이재용 부회장이 5년 전 법무부 범죄예방국이 관리감독하는 소년보호협회에 기부하겠다고 한 게 선견지명처럼 읽힌다.
그럼, 삼성 모자가 2016년에 기부했다는 40억 원은 어디로 갔을까. 기부한 게 사실이긴 할까.

협회 갈등 이사장 1년4개월 만에 교체

소년보호협회는 1998년 12월 법무부 1호 산하기관으로 설립돼 전국에 8개 자립생활관과 화성과 안산에 남녀 청소년창업비전센터(예스센터)와 6개 창업보육기업(상상카페)을 운영하고 있다. 그동안 협회 이사장은 검사장을 지낸 변호사나 기업가 출신이 맡다가, 2020년 3월 처음으로 위기청소년 전문가인 김기남 이사장을 공모를 통해 뽑았다. 김 이사장의 담임교사제 폐지와 시간강사제 도입 등 협회 운영을 둘러싼 갈등으로 지난해 말 노조가 결성되고, 계약 해지와 직제 없는 직책을 만들어 인사하는 등 파행이 잇따랐다. 김 이사장은 임기 2년을 채우지 못하고 1년 4개월 만에 사직 했다. 김 이사장이 재직한 1년여 동안 70여 명의 직원 가운데 26명이 사직 했다. 이에 소년보호협회 최지윤 사무국장은 “김 이사장 오기 전인 2018년에도 33명이 퇴사하는 등 낮은 처우 때문에 이직률이 높았다”고 했다.
제작진
디자인이도현
웹출판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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