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체부, 동아일보·채널A에 4억대 '노동개혁' 광고 기사 추진

2023년 04월 06일 10시 00분

노동 시간을 한 주 최장 52시간에서 69시간까지 늘릴 수 있도록 설계한 윤석열 정부 1호 노동개혁 정책(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이 과로를 조장한다는 반발에 전면 재검토 수순을 밟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가 정책을 홍보하는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가 수억 원의 세금을 들여 동아일보와 채널A에 사실상 폐기될 가능성이 높은 기존의 노동개혁안을 홍보하는 기획 기사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뉴스타파 취재결과 확인됐다. 
심지어 문체부가 진행하는 기획 기사 계획안에는 노동개혁안이 “국민 신뢰를 받고 있다”는 여론과 정반대되는 내용이 포함됐다. 국민 의견을 들어 근로시간 개편안을 재검토하겠다는 정부 입장에 진정성이 있는지 의심된다.
민주노총 청년 활동가들이 지난 3월 15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에서 열린 근로시간 기록·관리 우수 사업장 노사 간담회에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을을 향해 주 최대 69시간 근무가 가능한 근로시간 개편안 폐기를 촉구하며 기습시위를 하고 있다.
뉴스타파는 정보공개포털사이트를 통해 최근 ‘문체부 여론과’가 진행하고 있는 정책광고 내역을 확인했다. 이 부서에서 지난 3월에 추진한 정책광고 중에는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노동개혁’ 정책 광고가 포함돼 있다. ‘문체부 여론과’는 국가 주요 시책 광고를 담당하는 부서로, 정책 광고를 하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문제는 노동개혁 정책 광고를 추진한 시점과 광고 내용이다.
정보공개포털사이트

 "과로 조장" 논란 부른 윤석열 정부 노동개혁 1호 법안

고용노동부는 지난 3월 6일, 근로시간 제도를 개편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이는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개혁의 1호 법안이다. 법안의 핵심은 한 주 최대 52시간(법정 근로 40시간, 연장 근로 12시간)으로 정해져 있는 근무 시간 상한선을 월, 분기, 반기, 연 단위로 확대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한 주 최장 69시간(1일 11시간 30분, 주 6일 근무 기준)까지 근무할 수 있다. 근로시간 개편안을 두고 '과로를 조장하는 주 69시간제'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3월 6일 발표한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을 두고 과로를 조장하는 ‘주 69시간제’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그러자 고용노동부는 특정 주에 몰아서 일하면 이후에는 몰아서 쉴 수 있다며 위와 같은 근무표를 제시했다. 하지만 근무표에 법정 휴일까지 휴가로 표시돼 있어 다시 한 번 직장인들의 비판을 받았다.
지난 3월 14일, 근로시간 개편안에 대한 반발 여론이 높아지자 대선 후보 시절부터 근무 유연화를 강조했던 윤석열 대통령은 직접 법안 재검토를 지시했다. 이후에도 윤 대통령은 두 차례에 걸쳐 “주 60시간 이상 근무는 건강 보호 차원에서 무리”라며 법안 수정을 요구했다.
결국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3월 2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많은 부족함이 있었고, 송구하다. (현재)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법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고용노동부는 뒤늦게 각종 간담회를 열고 현장 노동자 의견 청취에 나서고 있다.

문체부, 윤석열 대통령 ‘재검토’ 지시 다음날 ‘노동개혁’ 홍보 기사 추진 

문체부는 윤 대통령이 법안 재검토를 지시한 다음날인 3월 15일, ‘노동개혁 정책광고 추진 계획(안)’이라는 문건을 생산했다. 
이 계획안(아래 사진 참조)에 따르면, 문체부는 “노동개혁 정책에 대한 국민의 이해도를 높이고 정책 추진에 대한 지지 확보”를 위해 총 8억 원의 광고비를 집행한다. 방송과 신문에 협찬하는 형태로 정책광고를 추진한다고 돼 있다.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 1호 법안이 뒤늦게 국민 의견 수렴 절차를 밟는 등 재검토에 들어갔는데, 문체부는 재검토 작업이 마무리되기도 전에 광고 계획부터 세운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 국민소통실 여론과가 3월 15일 작성한 <노동개혁 정책광고 추진계획(안)>
문체부 계획안에는 구체적인 광고비 집행 계획도 기재돼 있다. 전체 노동개혁 광고비 8억 원 중 4억 원은 정부가 만든 홍보 영상을 방송사에 송출하는 데 사용하고, 4억 원은 방송 프로그램 제작과 신문사 기획기사 협찬비로 집행한다는 것이다. 문체부는 4억 원 중 3억 원은 ‘채널 A’에, 1억 원은 채널A의 모회사인 ‘동아일보’에 협찬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채널A 3억 원, 동아일보에 1억 원 ‘노동개혁’ 홍보 기사 협찬

문체부가 채널 A에 집행하는 협찬금 3억 원은 3회 분량의 특집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쓰인다. 프로그램 이름은 ‘잡담회’, 가제는 ‘미래세대를 위한 노동개혁’이다. 오는 5월 방영 예정이다. 
방송 내용도 구체적으로 정해져 있다.(아래 사진 참조) 1회에선 노동의 전반적인 역사를 다루고, 2회에선 한국의 노동시장 현실을 짚는다. 마지막 3회에서 해외 각국의 근로시간과 임금체계를 비교하면서 결과적으로 현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개혁을 홍보하는 내용이다.
문화체육관광부 국민소통실 여론과가 3월 15일 작성한 <노동개혁 정책광고 추진계획(안)>에 담긴 3억 원 짜리 채널 A 노동개혁 홍보 프로그램  내용.

‘답정너’ 식 기획기사…정부 정책에 국민이 신뢰를 보내고 있다?

동아일보에는 오는 4~5월, 총 5회에 걸쳐 기획기사를 연재한다.(아래 사진 참조) 비용은 1억 원. 기사 세부 구성안도 이미 정해져 있다. 해외 각국의 노동시장 개혁안을 소개하면서, 우리나라의 근로시간 제도 개혁이 시급하다고 강조하는 내용이다. 또 윤석열 정부가 노동시장 개혁의 핵심 대상으로 삼는 노동조합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내용도 연재기사 마지막회에 담긴다.  
문화체육관광부 국민소통실 여론과가 3월 15일 작성한 <노동개혁 정책광고 추진계획(안)>에는 4월과 5월 사이 동아일보에 1억원을 들여 노동개혁을 홍보하는 기획기사를 연재한다는 계획이 담겨 있다. 
이렇게 언론사의 보도 지면이 정부 정책의 홍보 도구로 이용된다는 점도 문제지만, 더 황당한 대목은 문체부와 동아일보가 계획한 기획 기사 구성안의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는 점이다. 
현재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 유연화 정책은 국민 반발에 부딪혀 재검토 논의까지 되고 있다. 그런데 문체부가 기획하고 있는 연재기사 1회 구성안에는 황당하게도 ‘고용 유연화 추진 정부에 신뢰 보낸 국민’이라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 이 구성안대로 기획기사가 나간다면, 독자는 실제 여론과 상반되는 정보를 얻게 되는 것이다.   
단순 광고 형태가 아닌 정부가 돈을 주고 방송사의 프로그램이나 신문 기사를 협찬하는 '유사광고'는 원칙적으로는 금지돼 있다. 정부광고법(정부기관 및 공공법인 등의 광고시행에 관한 법률) 제9조에 따르면, 정부기관 등은 정부광고 형태 이외에 홍보매체나 방송시간을 실질적으로 구매하는 어떤 홍보형태도 할 수 없다.
다만 같은 법에 ‘해당 홍보매체에 협찬받은 사실을 고지하거나 방송법에 따른 협찬고지를 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는 단서가 있다. 이 단서 조항을 근거로 정부는 여전히 기사형 광고에 국민 세금을 쓰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법 위반이 아니라고 해서 정부와 언론사가 손잡고 설익은 정부 정책까지 기사 형태로 홍보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지 의문이 제기된다.  

문체부 “동아일보에서 먼저 기획기사 제안, 내용은 수정 가능”

뉴스타파는 해당 문건을 작성한 문체부 여론과에 “기사형 광고를 추진한 이유는 무엇인지, 기사 구성안에 있는 내용은 어떤 근거로 작성된 것인지, 근로시간 개편안을 재검토하는 와중에 정책광고를 추진한 이유는 무엇인지, 광고비 협찬 매체로 채널A와 동아일보를 선정한 이유는 무엇인지” 등을 물었다. 
문체부 여론과 관계자는 “노동개혁 정책광고 추진계획안’의 작성 시점은 3월 15일이지만, 실제 정책 광고는 그 이전부터 추진해 오고 있었다. 동아일보에서 먼저 기사 형태의 정책 광고를 제안했으며, 현재 계획안에 있는 기사 구성안도 동아일보 측에서 보내준 것이다. 매체 성격과 영향력 등을 검토한 결과 정부 정책을 가장 잘 소개해 줄 언론이라는 판단이 들어 광고를 진행하게 됐다"고 답했다.
노동개혁 법안이 재검토 중임에도 기사형 광고를 예정대로 진행할 것인지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예정대로 진행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문체부 관계자는 “다만 기사 내용은 지금의 구성안 대로 확정한 게 아니고, 앞으로 변경사항을 감안해 고용노동부, 동아일보와 함께 협의하면서 진행할 것이다. 기사를 게재할 때 협찬 고지도 반드시 할 것"이라고 말했다. 

돈 받고 정부 정책 홍보하는 언론사…동아일보, 답변 거부

동아일보는 윤석열 정부 노동개혁안이 발표된 초반에는 우호적 입장이었다. 지난 3월 6일 고용노동부가 근로시간을 개편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자 다음날 <주 52시간제 유연화… 노동자 ‘일할 선택권’ 늘리는 길>이라는 사설을 통해 노동 유연화 정책을 지지하는 입장을 내놨다. 
하지만 최근 논조가 바뀌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재검토를 지시한 이후, 동아일보는 윤 정부의 노동개혁 정책을 비판하는 기사와 사설, 시론을 연달아 내보내고 있다. 
지난 22일에는 <‘週 근로시간’ 2주 새 5차례나 오락가락… 어찌 하자는 건지>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노동개혁 1호 법안부터 혼선을 빚는 정부 태도를 비판했다. 23일에는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가 쓴 <혼란의 근로시간 개편, 원점에서 다시 살펴볼 때>라는 제목의 시론을 내보내기도 했다. 
뉴스타파는 동아일보 측에 공식 질의서를 보내 입장을 물었다. “광고비를 받고 정부 입맛에 맞게 기획기사를 연재하는 것이 적절한지, 정부가 근로시간 개편안을 재검토하고 있는데, 어떤 방향으로 노동개혁 홍보기사를 작성할 예정인지” 등을 질의했다. 동아일보는 답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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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이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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