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만한 대한민국 소비자] 3. 삼성전자 '갤럭시 게이트' 한국에선 여유만만

2022년 09월 21일 14시 00분

21세기 기업은 국경을 뛰어넘어 세계에서 돈을 벌어 들이지만, 소비자는 자신이 사는 나라의 법률과 법원을 넘지 못합니다. 그런데 한국의 사법제도는 삼성, 애플, 폭스바겐, 옥시 같은 글로벌 기업에 유난히 유리합니다. 이들 회사가 휴대전화의 성능을 속이고 엉터리 살균제를 만들어도 한국 소비자는 좀처럼 배상받기 어렵습니다. 다른 나라 소비자는 한국의 수천 배 넘는 배상을 받습니다. 한국에는 없는 집단소송(Class Action)제도가 있어서입니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 기업은 더욱 부도덕해지고, 소비자는 더욱 불리해집니다. 글로벌 기업 시대, 한국의 소비자 권리를 5회에 걸쳐 살펴봅니다. 한국에서 집단소송이란 표현이 종종 쓰이지만 사실은 원고가 많은 ‘대규모 소송’을 가리킬 뿐입니다. 이런 오해를 피하기 위해 이번 시리즈에서는 집단소송 대신 불가피하게 ‘클래스 액션’이란 미국식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편집자 주>
한국 사법제도에 '클래스 액션'이 없어 벌어지는 상징적인 사례로 전문가들은 최근 벌어진 삼성전자 ‘갤럭시 성능 조작 사건’을 든다. 이 사건은 세계적으로 크게 문제가 되고 미국 등에서 클래스 액션이 시작됐지만, 한국에서는 상대적으로 조용히 넘어가고 있다. 사법 분야 전문가들은 “한국에 클래스 액션이나 비슷한 제도가 있었다면, 삼성전자가 한국 소비자들에게 이런 태도를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삼성전자는 어떤 일을 벌였을까.
지난 2월 10일 삼성전자가 갤럭시 S22 울트라 신제품 공개 홍보를 시작했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폰의 발열 문제를 새로운 하드웨어 설계와 소프트웨어 최적화로 해결했다고 했다. 유튜브에 공개한 홍보 영상에서 “스마트폰이 엄청나게 강력해졌다. 기술이 강력할수록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며, 에너지는 일반적으로 열로 변환된다”고 했다. 그래서 “갤럭시 S22의 뛰어난 성능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온도를 조절할 수 있도록 연구했다”고 했다.
그리고 이 발열을 첨단 기술로 잡았다고 했다. “(갤럭시의 새로운 기술 혁신은) 열을 열원에서 멀리 이동시키고 분산시켜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는 것”이라며 복잡한 단어들을 나열했다. ‘열 분산에 최적화된 신소재, 열전달 향상 물질 팀(TIM), 나노 섬유, 강력한 열 분산기, 열 분산 극대화, 이중 결합 스테인리스 스틸, 그라파이트 시트’ 등이다. 여기에 열을 제어하는 소프트웨어를 결합했다고 했다. 이 소프트웨어가 “각 작동을 최적화하여 발열을 제어한다”고 했다.
삼성전자는 갤럭시 S22 신제품 공개 홍보 영상을 유튜브에 지난 2월 공개했다. 이 영상에서 삼성전자는 스마트폰의 발열 문제를 새로운 하드웨어 설계와 소프트웨어 최적화로 해결했다고 했다. (출처:삼성전자 유튜브 영상 캡처)

삼성전자, “게임 성능 떨어뜨리는 것은 타협 대상이 아니다” 홍보

하지만 삼성전자가 발열을 줄이기 위해 게임의 성능을 저하하는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의혹이 일부에서 제기됐다. 그렇지만 공개 홍보 1주일 뒤 삼성전자는 게임 성능을 떨어뜨리는 것은 타협 대상이 아니라고 확언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2월 18일 SBS 인터뷰에서 “게임 같은 경우는 정말 스마트폰의 기능, 성능을 다 끌어내서 사용하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다소 타이트하게 관리되고 있는 게 아니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면서 “조금이라도 타협점을 찾진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정보통신 유튜버들이 삼성전자 발표가 허위라고 반박하기 시작했다. 갤럭시에는 게임이 실행될 때 기능들을 관리한다는 애플리케이션 GOS(Game Optimizing Service)가 있는데, 알고 보니 이 GOS가 스마트폰 성능을 떨어뜨린다는 것이었다. 이들이 실험한 결과 GOS가 없는 상태에서는 그래픽처리장치(GPU) 가동률(로드율)이 38%, 성능(클록)이 818MHz였지만, GOS가 걸리면 GPU 가동률이 16%, 성능도 350MHz로 기능이 3분의 1 수준으로 낮아졌다.
무엇보다 GOS는 열을 제어하는 소프트웨어라고 보기가 어렵다고 한국과 외국의 유튜버들이 지적했다. GOS가 스마트폰 온도와 무관하게 게임과 동시에 작동하며, 따라서 스마트폰 냉각기를 달고 게임을 돌려도 작동했다. 결국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온도를 낮춘 게 아니라, 스마트폰 기능을 낮춘 셈이라고 했다. 이렇게 아무런 고지 없이 스마트폰 성능을 70% 줄였다면 사양을 속인 것이라고 했다. 심지어 게임이 아닌 일반 애플리케이션을 구동해도 GOS가 작동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삼성전자는 잘못은 시인하지 않는 해명을 거듭해서 냈다. 가령 두 번째 공지에서는 “고성능의 게임 환경을 사용하고자 하는 고객의 니즈를 일부 간과한 부분이 있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소비자들은 “50만원 짜리 보급형이 아닌 150만원 짜리 최고급형을 사는 이유는 고성능 환경을 사용하기 위해서다. 삼성전자 공지는 마치 ‘고품질 음향 지원’이라고 광고한 엉터리 헤드셋을 팔아놓고 ‘음악을 잘 듣고 싶은 고객의 니즈를 간과했다’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결국 노태문 삼성전자 사장이 사과했지만, 이번에는 대상이 소비자가 아니라 삼성전자 임직원이었다. 미국 등에서 있을 '클래스 액션'에 대비한 것이라는 추측이 나왔다.
예상대로 미국에서 GOS 게이트 문제로 클래스 액션이 지난 3월 뉴저지주에서 제기됐다. 게임이 아닌 다른 일반 프로그램에서도 GOS가 작동한다며, 스마트폰 사양을 사실상 속인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스마트폰 속도, 성능, 배터리 수명을 오해하도록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면서 “삼성의 허위 표시로 인해 소비자들은 갤럭시의 실제 성능보다 훨씬 빠르고 강력하다고 믿게 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피해보상, 징벌적 배상 등을 요구했다.
삼성전자 갤럭시 소비자들을 대리하는 변호사는 클래스 액션이 전문인 크리스토퍼 시거 등이다. 시거 변호사는 2016년 폭스바겐 디젤 게이트 클래스 액션에서도 원고 대리인을 맡았다. 이 사건에서 폭스바겐은 미국 소비자들에게 140억 달러(18조 8900억원, 1달러 1350원 기준)를 물어준 바 있다. 소송을 제기한 원고는 지난 7월 일단 소를 취하하고, 며칠 뒤 다른 로펌과 함께 같은 내용의 소송을 다시 제기했다. 새롭게 합류한 변호사들도 메르세데스-벤츠를 상대로 한 클래스 액션을 대리하는 등 이 분야 전문가들이다.
반면 클래스 액션이 없는 한국에서는 피해자들이 지난 3월 일반 민사소송에 나섰지만, 승소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벌써 나오고 있다. 클래스 액션에 쓰이는 증거개시 제도가 없어 삼성 측의 불법행위를 입증하기 어려우리라는 것이다. 강지연 법무법인 한누리 변호사는 “이 사건 관련한 증거 대부분은 삼성전자가 가지고 있을 텐데, 재판에서는 자신들에게 유리한 증거들을 주로 제출할 것”이라며 “일반적인 절차로는 소비자가 삼성전자의 불법행위를 증명하기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갤럭시 S22는 최대 120Hz 화면 주사율을 지원하기 때문에 부드러운 화면 전환이 가능해야 하지만, GOS가 활성화되면 화면 넘기기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정보통신 유튜버들이 실증해 보였다. (출처:ITSub 유튜브 영상 캡처)

삼성전자, 재판에선 “소비자들은 게임 성능이 조절될 수 있는 사실 충분히 알아”

이 사건 재판에서 삼성전자는 표시광고법을 위반했다는 원고들의 주장을 반박하는 서면을 지난 7월 서울중앙지법에 제출했다. 이 서면에서 삼성전자는 “프로세서의 최대 클록 속도에 따른 성능을 언제나 아무런 제한 없이 누릴 수 있다고 광고한 적이 없다”면서 “삼성전자는 게임을 플레이할 경우 '성능을 게임에 최적화한다'고 광고했고 이로써 소비자들은 게임 앱을 실행할 경우 성능을 게임에 최적화하기 위해 성능이 조절될 수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 수 있다”고 했다.
이 재판에서는 삼성전자 측이 현재 진행 중인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결과를 보고 재판을 계속해달라고 요청했고, 소비자 측도 반대하지 않아 재판은 일단 중단된 상태다. 사법 분야 전문가들은 “소비자 측으로서도 증거 확보가 쉽지 않은 처지에서 공정거래위원회가 뭐라도 찾아내기를 바라는 심정일 것”이라면서 “결국 국가기관인 공정거래위원회의 의지와 능력에 이번 사건의 결과가 달린 셈”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 지난 4월 YMCA 게임소비자센터는 GOS 문제를 포함하지 않은 삼성전자 광고가 표시광고법 위반이라며 갤럭시 S22 시리즈 광고 등에 대한 임시중지명령을 공정위에 신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설령 공정위가 삼성전자의 불법행위를 밝혀낸다고 해도, 한국에서 삼성전자가 입을 타격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사법 분야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들은 “한국 법원이 집단적 피해에 대한 배상액을 적게 인정하기 때문에 여기에 공정위 과징금을 더한다고 해도, 삼성전자가 치를 비용은 외국과는 비교하기 어려운 적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강지연 변호사는 “많지도 않은 과징금도 모두 국고로 들어가고, 소비자들은 피해를 제대로 배상받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작진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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