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스트' 박수환 문자④ '1등 신문' 조선일보의 기사거래

2019년 02월 01일 23시 23분

뉴스타파가 입수한 박수환 문자 파일에는 수십개 언론사 기자들이 박수환 대표와 주고받은 부적절한 문자가 수없이 등장한다. 그런데 유독 눈에 띄는 언론사가 있다. 조선일보다.

송희영 전 주필을 포함해 모두 8명의 조선일보 기자와 박수환 뉴스컴 대표 사이의 문자에서 기사 거래 흔적이 발견됐다. 확인결과, 대부분 부장급 이상 간부고 송 전 주필 외엔 모두 현직에 있다. 이들은 박수환 대표가 자신의 고객사와 관련된 민원을 청탁하면, 다양한 지면을 통해 박 대표의 청탁을 들어준 것으로 나온다.

▲ 송희영 전 조선일보 주필(왼쪽)과 박수환 전 뉴스컴 대표

#1. 기업청탁을 ‘독자의견’으로 위장

2014년 4월 11일자 조선일보 ‘기고’ 면에는 ‘한국형 전투기, 빨리 날 수 있게 해야’라는 제목의 기고문이 실렸다. 정부가 추진하는 한국형 전투기 사업을 “서둘러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표면상 기고자는 양 모 전 국방대학 교수. 그런데 이 기고의 배후에는 GE, 즉 제너럴일렉트릭사가 있었다는 사실이 박수환 문자에서 확인됐다.

기고문 게재 5일 전,  GE의 조모 전무는 박수환에게 문자로 기고자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보냈다. 박수환은 이를 그대로 조선일보 송희영 전 주필에게 전달했다. 이어 GE측과 박수환은 아래와 같은 문자를 나눴다.

당시 GE는 한국형 전투기의 엔진 공급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GE는 당시 문자에서 정부가 한국형전투기의 엔진 갯수를 결정하기 전에 조선일보에 관련 기고문이 나가길 바랐다.

2013년과 2015년, 조선일보에 실린 한국형 전투기에 관한 또 다른 칼럼들도 같은 방식으로 게재된 정황이 ‘박수환 문자’에서 확인됐다.  

▲2015년(위)과 2013년 조선일보에 실린 한국형 전투기 사업 관련 칼럼. 이 칼럼도 GE측의 요청으로 박수환 대표가 조선일보 기자들에게 부탁해 지면에 개제된 것으로 확인됐다.

박수환 대표의 부탁으로 이 칼럼들을 지면에 실어준 사람은 조선경제아이 대표를 지낸 김영수 디지틀조선일보 대표와 조선닷컴 프리미엄뉴스 부장을 지낸 조선일보 윤영신 논설위원이었다. ‘박수환 문자’에 따르면, 이 두 사람은 평소 박수환에게 골프접대를 받는 등 친분을 유지하고 있었다.  

조선일보 독자기고는 독자투고를 담당하는 부서에서 독립적으로 게재여부를 결정한다. 그런데 김영수 대표는 자신의 담당도 아닌 독자 기고문 게재 청탁을 받은 후 박수환에게 “부탁을 빨리 못 들어줘서 죄송하다”고 말했다.

 

윤영신 위원은 외부 칼럼을 집필자 본인이 아닌 박수환 대표가 줄여서 보냈다고 하는데도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이런 사정을 기고문을 쓴 당사자는 모르고 있었다. 2013년 조선일보의 청탁을 받고, 해당 기고문을 써 보냈다는 한 교수는 조선일보에 실린  자신의 글을 보고 “황당했다”고 말했다.

솔직히 GE나 이런 데서 뭘 했는지 그런 건 잘 모르겠고, 조선일보에서 청탁을 해서 저는 나름대로 논리적으로 (글을) 써서 보냈는데, 엉뚱하게 글을 잘라가지고 내보냈더라고요. 그래서 조선일보 항의를 했습니다. ‘왜 니 마음대로 글을 자르냐’고, 그런데 별다른 대답은 없었습니다. 기고문이 나간 뒤 저한테 전화가 왔어요. ‘원고료 10만 원을 보내겠다’고요. 저는 안 받겠다고 했습니다. 10만원을 어디에 기부를 하든지, 뭘 사먹든지 맘대로 하라고 말하고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어쩐지 신문사에서 내용을 조정했다고 하기에는 글을 너무 잘라서 내용이 조악한 수준이었습니다.

2013년 조선일보 독자칼럼 기고자

뉴스타파는 이 기고문의 게재와 관련된 입장을 묻기 위해 GE측에 이메일을 보내고 전화를 걸었다. GE측은 이런 답변을 보내왔다.

언론 기관에 의견을 개진하여 건전한 여론형성에 기여하기 위한 활동으로 GE내의 전문가그룹을 통해 기고자를 섭외해 기고문을 보낸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최종 게재여부는 언론사의 고유한 편집 권한으로, 박수환 씨가 어떤 과정을 거쳐 기고문이 게재되도록 했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기고문의 내용도 당사에 유리한 내용이 아닌 일반적인 내용이었습니다.

GE코리아

#2. 기자 칼럼에 은근슬쩍 끼워넣기

조선일보가 기자 기명칼럼 지면을 이용해 박수환 뉴스컴 대표를 도와준 정황도 ‘박수환 문자’에서 확인됐다.

2013년 9월, 조선일보에는 ‘크라운 베이커리와 군산 이성당의 차이점’이라는 칼럼이 실렸다. 김영수 당시 조선경제i 대표의 기명칼럼이었다.

▲2013년 9월 11일자 김영수 대표 조선일보 칼럼. 박수환 문자에 따르면, 이 칼럼이 게재되기 한달 전 SPC의 칼럼 청탁이 있었다.

칼럼의 내용은 언뜻 보면 지역에서 독자적으로 성장한 빵집을 치켜세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과적으로는 파리바게트를 언급하며 정부의 프렌차이즈 빵집 규제를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이 칼럼에서 언급된 파리바게트의 그룹사 SPC는 박수환이 대표를 맡고 있는 뉴스컴의 고객사였다.

칼럼이 나가기 한달 전, 박 대표와 뉴스컴의 한 직원은 아래와 같은 문자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20일 뒤, 박수환 대표는 김영수 대표를 만났다. 이후 박수환은 회사 메일을 이용해 김영수 대표에게 칼럼 원고를 보냈고, 3주 뒤 김영수 대표는 SPC에 유리한 칼럼을 조선일보 지면에 실은 것이다.

9개월 뒤에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박수환 대표가 칼럼 초안을 김영수 대표에게 보냈고, 김 대표는 해당 칼럼을 조선일보에 게재했다. 그리고 칼럼 게재 예상일을 박수환에게 문자로 알려줬다. 김 대표의 칼럼은 정확히 그 날 조선일보에 게재됐다.

당시 김 대표가 쓴 칼럼의 제목은 동반성장委에 박수 치는 맥도날드와 스타벅스’. “맥도날드와 스타벅스같은 외국계 기업 때문에 파리바게트와 같은 국내 기업이 피해를 입고 있기 때문에, 이들 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역시 뉴스컴의 고객사인 SPC에 유리한 칼럼이었다.  

2014년 7월 조선일보에 게재된 김영수 대표의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라는 제목의 김영수 대표 기명 칼럼도 마찬가지였다. “CJ 등 대기업 총수 구속으로 경제가 불황이니 대기업에 대한 규제를 풀어줘야 한다”는 내용이었는데, 이 칼럼의 배후에도 박수환과 CJ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정황이 ‘박수환 문자’에서 확인됐다.  

‘박수환 문자’에 따르면, 이 칼럼은 CJ측이 박수환 대표에게 요청해서 만들어졌다. 박수환의 부탁을 받은 김영수 대표는 칼럼의 발제상황, 인쇄 진행상황 등 조선일보 내부의 은밀한 사정까지 박수환에게 전달했다.  

취재진은 이 문자와 관련한 입장을 묻기 위해 CJ측에 연락했다. 하지만 당시 박수환과 이 칼럼과 관련된 문자를 주고받은 CJ의 고위관계자는 “박수환 대표는 당시 CJ 홍보를 맡고 있지도 않았으며 박 대표에게 무언가를 부탁한 적도 없다. 김영수 대표와는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여서 누구를 통해 부탁할 이유도 없었다. 실제로 기사를 부탁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며 문자내용을 부인했다.  

#3. 기사 빼주거나, 보류해주기

‘박수환 문자’에는 조선일보의 일부 간부가 박 대표가 운영하는 뉴스컴의 고객사에게 불리한 기사를 빼주거나, 보류시켜 준 정황도 등장한다.

아래는 2013년 10월 송희영 전 조선일보 주필과 박수환 대표가 주고 받은 문자.

송 전 주필이 대우조선해양 관련 기사를 빼도록 조선일보를 움직였고, 신문지면에서도 기사 크기를 축소하도록 했다는 것을 짐작케 하는 내용이다. 확인 결과, 실제로 이 문자가 오고 간 다음날 조선일보에는 문자내용과 똑같이 대우조선해양 관련 기사가 배치됐다.

조선일보가 “기사를 내려달라”는 박 대표의 부탁을 받고, 실제로 기사를 보류시키거나 빼준 정황도 ‘박수환 문자’에서 확인됐다.

조선일보가 박수환 뉴스컴 대표에게는 ‘강력한 영업도구’나 다름없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4. 조선일보 사설에도 박수환 그림자

2014년 9월, 추석을 앞두고 조선일보에는 ‘악플 마케팅으로 경쟁社 비방하면 회사 망할 만큼 혼내야’라는 제목의 사설이 실렸다. 각종 루머로 곤욕을 치루고 있던 오비맥주와 SPC그룹의 경쟁사를 겨냥한 글이었다. 오비맥주와 SPC그룹은 박수환이 대표로 있는 뉴스컴의 고객사였다.

이 사설이 나간 직후, 오비맥주의 변모 이사는 박수환 뉴스컴 대표에게 아래와 같은 내용의 문자를 보냈다.

2분 뒤, 이번엔 송희영 주필이 박수환 대표에게 문자를 보냈다.

한마디로, 사설 게재에 송 주필이 관여했음을 암시하는 내용이다.

취재진은 송 전 주필에게 연락해 문자내용을 제시하며, “뉴스컴의 고객사에게 도움이 되도록 기사를 빼주거나 사설을 써 준 적이 있는지”를 물었다. 그런데 송 주필은 “내 전화기를 다른 사람이 이용해 박수환 등과 문자를 주고 받은 것 같다”는 식의 황당한 핑계를 댔다.

  • 송희영 / 전 조선일보 주필 : 누가 내 전화를 이게 사무실에 두고 그러면 잘못 사용할 수도 있고 그럴 수도 있어요. 제가 그걸 뭐 누가 허리에 묶고 다니는 것도 아니잖아요?
  • 기자 : 다른 사람이 주필님의 핸드폰을 사용해 해당 문자를 보냈다는 건가요?
  • 송 주필 : 모르겠네요, 전혀. 하여튼 뭐 알아서 그냥 하세요. 저는 끊겠습니다.

취재진은 ‘박수환 문자’에서 송 전 주필 다음으로 박수환 대표의 다양한 청탁을 들어준 것으로 나와 있는 김영수 디지틀조선 대표에게도 문자 내용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김영수 대표는 이메일 답변서를 통해 아래와 같은 입장을 전해왔다.  

박수환 대표와는 20년 넘게 알아온 취재원 사이입니다. 골프에 대한 대가로 기사 청탁을 들어준 일은 없습니다. 기명 칼럼은 부탁받은 것과 상관없이 소신대로 쓴 것입니다. 박수환 대표의 요청을 받고 기사를 보류한 사례는, 처음 작성된 기사가 한쪽 입장만을 반영하고 있어 양측 입장을 모두 반영하도록 한 경우입니다. 저는 불법적이거나 비윤리적인 부탁이 아니면 되도록 들어 주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김영수 / 디지틀조선일보 대표

취재진은 박수환 뉴스컴 대표의 부탁을 받고 GE측이 요청한 칼럼을 독자투고란에 실어준 의심을 받고 있는 윤영신 논설위원에게도 연락해 입장을 물었다. 윤 위원은 “내가 박수환 대표로부터 기고문 게재 청탁을 받았는지는 오래 전 일이라 기억이 나진 않지만, 독자페이지 담당 부서에서 기고문의 콘텐츠를 판단하여 게재를 결정했을 것”이라며 “골프약속은 통상 몇개월 전에 잡는 것으로 이를 기고문 게재여부와 연결짓는 것은 억측”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취재과정에서 연락이 닿은 한 조선일보 기자는 익명을 전제로 이런 속마음을 털어놨다.  

송희영 전 주필이나 다른 간부가 박수환 대표 민원을 받고, 직접 기자들에게 취재지시를 내린 것은 사실입니다. 저도 그런 지시를 받았으니까요. 조선일보에는 그 지시를 따른 기자들도 있지만, 무시하고 취재하는 기자들도 많습니다. 박 대표는 조선일보라는 영향력을 이용해 기업을 상대로 영업을 한 건데, 여기에 언론이 함께 놀아났다는 건 기자로서 부끄러운 일입니다.

조선일보 현직 기자

취재 : 한상진, 홍여진, 강민수, 강현석
연출 : 신동윤, 박경현
촬영 : 최형석, 정형민, 신영철
편집 : 박서영, 정지성, 윤석민
데이터 : 김강민
CG : 정동우
디자인 : 이도현
음성대역 : 전숙경 남유경 윤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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