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 '사인간 대출' 증가...자녀에게 주택자금 대여도

2022년 04월 06일 17시 44분

주택 가격 급등과 대출 규제가 겹치면서 서민의 내 집 마련은 실현하기 힘든 꿈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와는 전혀 다른 세상도 있다. 뉴스타파가 3월 31일 공개된 고위공직자 재산신고 내역 가운데 대출 현황 등을 살펴본 결과 일부 고위공직자 자녀는 '사인간 대출' 등으로 부모의 도움을 받아 상대적으로 쉽게 주택을 매입하거나 전세자금을 충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위공직자 평균 재산 19억 원, 건물 12억 원, 채무 4억 3천만 원

이번에 공개된 고위공직자 2,492명의 재산 평균 액수는 19억 2천 390만 원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공개된 2,404명의 평균 재산 17억 2천 832만 원보다 2억 원 가량 늘어났다.
올해 공직자 재산이 크게 늘어난 데는 부동산 가격 상승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고위공직자들이 신고한 보유 건물 자산의 평가액은 평균 12억 359만 원으로, 2021년 10억 7천 398만 원보다 약 1억 3천만 원 늘어났다.
고위공직자 가운데 본인과 배우자 명의로 채무를 보유한 사람은 모두 2,053명이었다. 이들의 평균 채무액수는 4억 3천 58만 원이다. 채무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은행 등 금융기관 채무였다. 금융기관 채무를 보유한 고위공직자는 1,763명이었고, 평균 채무액수는 3억 1천 998만 원이다.
고위공직자 341명은 본인이나 배우자 명의의 '사인간 채무'도 신고했다. 평균액수는 1억 6천 170만 원. 금융기관이 아닌 개인에게 돈을 빌리는 사인간 채무는 전체 채무에서 비중이 높지는 않았지만, 2020년 311명, 2021년 308명에서 2022년 341명으로 늘어나는 추세를 보였다.

고위공직자 596명 사인간 채권 2억 3천 644만 원 보유

고위공직자들은 개인에게 돈을 빌리는 경우보다 돈을 빌려주는 경우가 더 많았다. 사인간 채무를 보유한 공직자가 341명인 반면, 사인간 채권을 보유한 공직자는 596명이다. 이들이 보유한 사인간 채권은 평균 2억 3천 644만 원이다.
고위공직자의 자녀가 부모에게서 돈을 빌려 주택을 구입한 사례도 있다. 공직자는 자녀에게 빌려준 돈을 '사인간 채권'으로 신고했다. 국민의힘 김상훈 의원(대구 서구)의 장남은 경기도 안양시에 있는 59.74 제곱미터 규모의 초원대림아파트를 실거래가 7억 9천만 원에 매입했다. 국회공보에 따르면 김 의원 장남은 이 아파트를 사기 위해 금융기관에서 3억 6천만 원의 대출을 받고, 아버지인 김 의원에게 2억 원을 더 빌렸다. 김 의원은 사인간 채권 이유를 '장남에게 금전대차'라고 신고했다.
▲ 국회공보에 게재된 김상훈 의원 가족의 사인간 채무 관계
사인간 대출을 통해 공직자 자녀가 전세자금을 충당하는 사례도 여럿 나왔다. 행정안전부 전해철 장관은 장남에게 9천만 원, 장녀에게 1억 원을 각각 빌려줬다. 전 장관은 재산 신고자료에서 이 사인간 대출이 전세보증금 대여 목적으로 사용됐다고 밝혔다. 장남의 서울 성북구 다세대주택 전세보증금은 1억 6천만 원, 장녀의 서울 용산구 아파트 전세보증금은 5억 원이다.
더불어민주당 박완주 의원의 장남은 아버지인 박 의원에게 사인간 대출 2억 원을 받아 공시가 2억 8천만 원짜리 세종시 고운동 소재 74 제곱미터 규모의 아파트 전세를 구했다. 박완주 의원은 본인의 사인간 채권 증가 원인을 '부자간 전세보증금 2억 지원'이라고 신고했다.
안수일 울산시의회 의원의 장남은 안 의원에게 사인간 대출 4억 4천만 원을 받아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소재에 74.76 제곱미터 규모 아파트 전세를 구했다. 전세보증금은 5억 4천만 원이었다. 안 의원의 장남은 전세보증금 마련을 위해 금융채무 2천만 원을 추가로 받기도 했다. 안수일 의원은 뉴스타파와의 통화에서 장남이 지난 12월 결혼을 했는데 은행 대출에 문제가 생겨 어쩔 수 없이 전세보증금을 대여해 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지난 9월 전세 계약을 한 이후 장남에게 법정 금리를 적용해 매달 이자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자녀와 사인간 대출 공직자들, 재산공개 자료 한계로 정확한 규모 알기 어려워 

사인간 채권을 보유한 고위공직자 596명은 과연 누구에게 어떤 목적으로 거액의 돈을 빌려준 걸까. 현재 공직자 재산 공개 방식의 한계로 인해 이 질문에 정확하게 대답하기는 어렵다. 본인 또는 배우자 명의 사인간 채권 753건 중 돈을 빌려준 상대를 명시한 경우는 33건밖에 없었다.
부모가 자녀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은 불법은 아니다. 그러나 정부 정책으로 대출 규제를 시행 중인 상황에서 고위공직자들의 자녀들이 부모의 도움을 받아 집을 사거나 전세를 구하는 모습은 대출 규제의 영향을 받는 국민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번 공개에서 고위공직자들이 재산을 밝히는 것을 거부한 '고지거부' 자녀들은 모두 727명으로 드러났다. 고위공직자 부모와 사인간 대출 관계를 맺은 자녀들에 대해서는 '고지거부'를 할 수 없도록 하는 등의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
제작진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