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만든 어용 노조, 법원 “설립 무효” 판결

2021년 08월 31일 11시 16분

뉴스타파가 보도한 삼성 에버랜드 노조 와해 사건과 관련해, 이른바 ‘어용 노조’의 설립 자체가 무효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지난 8월 26일, 수원지방법원 안양지원 제2민사부(주심 김순열 판사)는 민주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이 에버랜드 노동조합을 상대로 낸 노동조합 설립무효 확인 소송에서 “에버랜드 노조 설립은 무효”라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강경훈 전 삼성전자 부사장 등 삼성 임직원들이 노조 와해 혐의로 지난 2020년 2심에서도 유죄 선고를 받은 지 9개월 만이다. 어용 노조를 통해 ‘진짜 노조’를 와해시키는 삼성의 노조 파괴 공작이, 형사재판에 이어 민사재판에서도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에버랜드 노동조합(어용 노조)의 설립 과정을 이야기하는 조장희 민주노총 금속노조 삼성지회 부지회장. 

“에버랜드 노조, 여전히 삼성 측 개입 못 벗어나”

삼성 에버랜드 노조 와해 사건은 지난 2013년 국정감사 당시 심상정 의원을 통해 S그룹 노사전략, 일명 ‘S그룹 문건’이 공개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노조 파괴 공작이 담긴 이 문건에는 ‘어용 노조를 회사가 만들었다’는 내용도 있었다. 하지만 검찰과 고용노동부는 “출처를 확인할 수 없다”며 무혐의로 결론 냈다. 그러나 2018년 4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다스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 중 우연히 삼성의 노조 탄압과 관련된 문건이 추가로 발견됐고, 검찰은 6년 전 무혐의로 결론낸 사건에 대한 재수사를 시작했다. 
그 결과 어용노조를 활용한 진짜 노조 와해 공작에 가담한 삼성 임직원 13명이 2심까지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삼성은 검찰 수사와 재판 결과를 인정하지 않는듯한 행태를 보여왔다. 어용 노조인 ‘에버랜드 노조’ 1·2대 위원장이 노조 와해 혐의로 기소돼 있던 2019년 2월에도 삼성은 교섭 상대로 어용 노조를 지목한 것이다. 그러자 같은 해 3월 금속노조 삼성지회는 “삼성이 지난 8년간 자행된 노조 파괴 공작을 지속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며 안양지원에 이 사건 소송을 냈고, 이번에 2년 5개월 만에 판결이 난 것이다.
재판부는 “에버랜드 노조가 사용자의 개입에서 벗어나 스스로 자주성과 독립성을 갖춘 노동조합으로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부족하다”며  “에버랜드 노조는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에 의해 설립된 것으로, 노조법이 규정한 실질적 요건을 갖추지 못해 설립이 무효라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1) 사측의 개입으로 노조 위원장이 된 김모 씨가 여전히 위원장직을 유지하고 있는 사실 2) 에버랜드 노조가 사측에 대립하는 노조활동을 한 적이 없는 사실 3) 단체협약이 노사협의회 합의안이나 취업 규칙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4) 노조원 수에 별다른 변동이 없다는 사실 등을 판단의 근거로 들었다. 
이 사건을 대리한 박다혜 금속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삼성의 ‘무노조 경영’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는 방증”이라며 “어용 노조인 에버랜드 노조가 스스로 해산하거나 삼성이 이 노조를 인정하지 않았다면, 이 판결은 아예 있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20년 5월 6일, 무노조 경영 폐기를 선언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판결 따라 어용노조 해체 등 후속 조치 이행해야"

금속노조 삼성지회는 법원 판결 다음 날인 8월 26일 성명을 통해 삼성과 고용노동부, 용인시청 등에 에버랜드 노조의 해체 등 판결에 따른 후속 조치를 이행하라고 밝혔다. 뉴스타파는 8월 30일 삼성과 고용노동부, 용인시청에 이번 판결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삼성물산 리조트부문 관계자는 “회사는 재판의 당사자가 아니”라며 “판결문이 공개되면 살펴볼 계획”이라고 했다. 고용노동부는 에버랜드 노조의 설립 신고를 받은 “용인시의 관할”이라고 선을 그었고, 용인시는 “판결이 확정되거나 항소가 제기되는 등 상황을 보고 (대응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금속노조는 이번 소송 외에도 삼성 에버랜드 노조 와해 사건과 관련해 여러 건의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2020년 4월에는 정부와 삼성물산 등을 상대로 10억 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 또 삼성물산을 상대로는 어용노조인 에버랜드 노조 대신  2011년 노조 설립 이후 단체교섭권을 갖지 못한 진짜 노조인 금속노조 삼성지회와 단체교섭을 하라는 취지의 소송도 제기했다.
앞서 뉴스타파는 8월 18일과 19일 두 차례에 걸쳐 삼성 에버랜드 노조 와해 사건을 보도했다. 노조 파괴 범죄를 저지른 삼성 임직원들이 유죄 판결을 받고도 현재 삼성그룹과 그 협력사에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관련 기사 : <SPC 노조 파괴 ① 삼성과 파리바게뜨의 ‘데칼코마니’> <SPC 노조 파괴 ② ‘S그룹’ 노조 파괴자는 사장으로...달라진 게 없다>)
제작진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