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시대 역행하는 거대 양당의 '집시법 개정안'

2023년 01월 26일 17시 05분

집회·시위의 자유는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기본권 중 하나다. 허가가 아닌 신고만으로 집회·시위가 법적 보호를 받는 이유다. 우리 법원과 헌법재판소의 판결도 집회·시위의 자유를 확대하고 집회 금지 제한 조항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왔다. 하지만 이런 시대적 흐름을 역행하는 일이 지난해 국회에서 벌어졌다.  

집시법의 시대적 흐름은 '자유의 확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하 집시법) 11조(옥외집회와 시위의 금지 장소)는 '각급 법원과 국회, 대통령 관저, 총리 공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 외교관 등 주요 기관으로부터 반경 100m 이내를 절대적 집회 금지 구역으로 설정한다'고 정하고 있다. 때문에 이 조항은 "집회 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않는다"는 우리 헌법 21조에 위배된다는 비판을 오랫동안 받아왔다. 
2018년 헌재는 결국 이 법에 제동을 건다. 집시법 11조 1호 중 '국회와 각급 법원, 국무총리 공관 주변 100m 이내 집회·시위를 금지'한 규정이 위헌(헌법불합치)이라고 결정한 것이다. 해당 법 조항이 평화로운 집회·시위마저도 일률적이고 절대적으로 금지해 우리 헌법상 정당화될 수 없다는 이유였다. 아래는 2018년 헌재 결정문 내용 중 일부.  
심판대상조항(집시법 11조 1호)은 입법 목적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도의 범위를 넘어 규제가 불필요하거나 또는 예외적으로 허용 가능한 옥외집회⋅시위까지도 일률적⋅전면적으로 금지하고 있으므로, 침해의 최소성 원칙에 위배된다...(중략)... 입법자로서는 심판대상조항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집회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 가능성이 완화될 수 있도록, 법관의 독립과 구체적 사건의 재판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없는 옥외집회⋅시위는 허용될 수 있도록 그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

헌법재판소 결정문 (2018헌바137, 2018.7.26)
헌재 결정에 따라, 국회는 2020년 해당 장소에서 집회·시위를 '예외적 허용'하는 방향으로 집시법을 개정했다. 원칙적으로는 금지지만 '해당 기관의 활동을 방해할 우려가 없는 경우', '대규모 집회 또는 시위로 확산될 우려가 없는 경우' 등에는 집회·시위를 열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이 개정안에 대해선 평가가 엇갈렸다. "집시법이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하는 쪽으로 진일보했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금지 원칙을 고수하면서 단서 조항에 해당할 때만 허용하는 방식은 문제가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게 제기됐다. 

거대 양당이 각각 발의한 '집회 금지법'

지난해 국회에 2개의 집시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5월 민주당에서 낸 개정안(정청래 의원 대표발의, 일명 '정청래 안')과 4월 국민의힘에서 낸 개정안(구자근 의원 대표발의, 일명 '구자근 안')이다. '정청래 안'의 핵심은 '절대적 집회 금지 구역 안에 전직 대통령 사저를 넣자'는 것이었다. 전직 대통령, 정확히 문재인 전 대통령의 경남 양산 사저 인근에서 벌어지는 보수단체의 각종 시위를 막기 위한 법안이었다.   
'구자근 안'의 핵심은 '대통령 집무실을 절대적 집회 금지 구역에 넣자'는 것이었다. 법안이 발의된 지난해 4월은 취임을 앞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청와대를 나와 용산에 집무실을 두고, 관저와 집무실을 분리하겠다"고 공언한 직후였다. 윤 대통령 취임 후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대통령 집무실 주변 시위를 막겠다는 목적이 뻔히 보이는 법안이었다. 대통령 집무실 주변 집회·시위를 막을 법조항이 딱히 없다는 게 법안 발의의 명분이 됐다. 
집시법 11조에는 '대통령 관저 100m 이내에서는 집회·시위를 할 수 없다'고 나와 있다. 반면 대통령 집무실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다. 해방 이후 오랫동안 대통령 집무실과 대통령 관저가 사실상 한 공간(청와대)에 있었기 때문에 굳이 관저와 집무실을 분리해 법안을 만들지 않았던 것이다. '구자근 안'은 대통령 집무실과 대통령 관저가 나뉜 초유의 상황을 감안한 맞춤형 법안이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이해관계가 작동한 2개의 법안이 거의 동시에 발의되자,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곧바로 비판과 항의가 나오기 시작했다. 정치적 목적으로 시민들의 권리를 제약하려 한다는 비판이었다.   
지난해 4~5월 국회에서 발의된 2개의 집시법 개정안. 각각 전직 대통령 사저와 대통령 집무실을 절대적 집회 금지 구역에 추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워낙 반발도 세고 위헌성도 다분하다 보니, 처음 법안이 발의됐을 때만 해도 '정청래 안'과 '구자근 안'이 통과되리라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헌재는 이미 2018년에 집시법 11조 1호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게다가 '대통령 관저 반경 100m 내 집회·시위를 절대적 금지'한 집시법 11조 3호에 대해서도 헌법소원 심리가 진행 중이었다. 2018년에 그랬던 것처럼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많았다. 국회가 '위헌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법률'을 발의하는 이상한 상황이 된 것이다.  
하지만 두 거대 양당은 이렇게 위헌성이 다분한 법안을 철회하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따져 '거래'에 나섰다.  

'위헌 소지 집시법 개정안' 거래한 여야... 국회법도 위반했다

통상 국회가 발의한 법안은 속성에 따라 상임위에 배정된 뒤 토론 과정을 거친다. 꼭 필요한 법안인지, 위법·위헌성은 없는지 등을 따져묻는 과정이다. 하지만 대통령 집무실과 전직 대통령 사저를 지키자는 2개의 집시법 개정안에 대해 여야 국회의원들은 별다른 토론을 하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23일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이하 행안위) 2차 법안심사 2소위 회의록에 따르면, 민주당과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은 '정청래 안'과 '구자근 안' 모두에 대해 전혀 이견을 제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국민의힘 김웅 의원이 전직 대통령 사저를 집회금지 구역에 추가하는 '정청래 안'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발언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한 민주당 소속 보좌진은 "여야가 사전 협의를 끝내놓고 회의에 들어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정청래 안'에, 민주당은 '구자근 안'에 반대하지 않기로 미리 입을 맞췄다는 얘기였다.
여기에 더해 행안위 법안소위에서 여야는 아예 '정청래 안'과 '구자근 안'을 합쳤다. 집시법 11조의 절대적 집회 금지 구역에 '전직 대통령 사저'와 '대통령 집무실'이 모두 추가되는 '종합 안'을 탄생시킨 것이다. 이 안은 곧바로 행안위 전체 회의에 상정됐다. 당시 행안위 소위에 늦게 참석한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은 "집시법의 개선 흐름에 따르면 있을 수 없는 법안이지만, 아무도 반대한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놀라웠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1일 국회 행안위 전체회의에서 용혜인 의원은 아래와 같이 '종합 안'의 위헌성을 지적했다. 
헌법은 '집회․결사의 자유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명백히 규정하고 있습니다. 군사독재를 시민의 손으로 끝내고 민주주의를 달성했다고 자부하는 국가에서 집시법 11조는 악법입니다. 제가 집시법 11조 폐지안을 발의했던 이유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올라온 집시법 개정안은 아예 예외적 허용 규정도 두지 않고 대통령 집무실과 전직 대통령 사저 100m 이내 집회․시위를 원천 금지하는 절대적 금지 방식으로 올라와 있습니다. 이 법에 따른 처분을 받은 국민이 헌법소원을 제기하면 패소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확신합니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 / 2022.12.1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천준호 의원도 반대 의견을 냈다. 천 의원은 "대통령 집무실을 절대적 집회 금지 공간에 포함시킨 이 개정안은 위헌 논란에 휩싸일 가능성이 상당히 크고 결과적으로 위헌 결정을 얻을 가능성도 있어 보입니다. 사회적인 논란을 가져올 수 있는 이 법안을 그대로 통과시키기보다는 수정해 의결해주시든지 아니면 소위에서 다시 논의할 수 있도록 해 주실 것을 요청드립니다"라고 발언했다. 이채익 행안위원장(국민의힘)이 법안 의결에 대해 "이의 없으십니까?"라고 묻자 용혜인 의원은 곧바로 "이의 있습니다, 위원장님. 표결해주십시오"라고 말했다. 천준호 의원도 "반대합니다"라고 말했다.
국회법 112조에는 '의장은 안건에 대해 이의가 있는지 물어 이의가 없다고 인정할 때는 가결됐음을 선포할 수 있다. 다만, 이의가 있을 때에는 표결해야 한다'고 돼 있다. 표결을 하면, 법안 의결에 찬성·반대한 의원들의 이름은 국회 회의록에 남는다.
하지만 이채익 행안위원장은 용혜인, 천준호 의원이 반대 의견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별도의 추가 토론 없이 법안을 밀어붙였다. "여야 간 합의가 이미 끝났다"는 이유였다. 이채익 위원장은 표결을 개시하지 않고 "(여야) 간사 간 협의를 마친 법률이지 않습니까?"라고 말했고, 여야 간사(국민의힘 이만희 의원, 더불어민주당 김교흥 의원)에게만 의견을 물었다. 김교흥 의원은 "그냥 하세요", 이만희 의원은 "그냥 집행하십시오"라고 말했다. 이채익 위원장은 "사전에 여야 간사 간 합의된 법안이기 때문에..."라며 의결을 강행했다. 명백히 국회법 112조를 위반한 처사였다. 용혜인 의원은 국회법 위반이라고 항의했지만, 거대 여야 의원들은 침묵했다. 
법안은 행안위 의결을 거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로 올라갔고, 현재 계류 중이다. 법사위가 법안의 체계자구 심사를 마치면, 국회 본회의로 상정된다. 용혜인 의원은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여야 간사 간 합의로 표결을 생략하는 관행이 국회법의 강행 규정에 앞설 순 없다. 이렇게 명백한 위법적 의사 진행을 한 이유는 위헌성이 농후해 떳떳하지 못한 법안의 처리에서 개별 위원들의 찬반 의사가 외부에 공개되는 것을 꺼렸기 때문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지난해 12월 전직 대통령 사저, 대통령 집무실 주변 집회를 절대적으로 금지하는 법률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현재 법사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헌법재판소, '대통령 관저 주변 집회 절대적 금지도 위헌'... 법안 위헌성 '재확인'

그런데 얼마 뒤, 국회 행안위가 통과시킨 집시법 개정안의 위헌성이 확인되는 일이 벌어졌다. 지난해 12월 26일 헌재가 대통령 관저 반경 100m 이내 집회를 절대 금지한 현행 집시법 3호 규정이 위헌이라고 결정한 것이다(2018헌바48). 국회와 법원, 국무총리 공관을 넘어 이제는 대통령 관저까지 집회·시위의 자유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2018년 결정에 이어 2022년 결정까지 4년이나 시간이 지났고, 그 사이 재판관 9명 중 7명이 교체됐지만 '집회·시위에 대한 절대 금지는 위헌'이라는 헌재의 판단은 바뀌지 않은 것이다. 아래는 헌재 판결문 중 일부.   
구체적인 위험 상황이 발생하였는지를 고려하지 않고 막연히 폭력 불법적이거나 돌발적인 상황이 발생할 위험이 있다는 가정만을 근거로 해 대통령 관저 인근이라는 특정한 장소에서 열리는 모든 집회를 금지하는 것은 헌법적으로 정당화되기 어렵다...(중략)... 집회의 자유는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필수적 구성요소이고 집회의 장소를 선택할 자유는 집회의 자유의 핵심적 보장 내용 중 하나라는 점을 고려하면 국가는 다소간의 행정적인 불편함 등은 감내해야 한다.  

헌법재판소 결정문(2018헌바48, 2022.12.22)
이렇게 대통령 관저 주변 집회·시위 금지가 위헌이라는 결정이 나면서, 대통령 집무실과 전직 대통령 사저 주변 집회·시위 금지를 법제화하려 했던 거대 양당의 입장은 그야말로 머쓱해졌다. 대통령 관저 주변 시위까지 허용되는 마당에 대통령 집무실, 그리규 헌법기관도 아닌 전직 대통령 사저 인근 시위가 금지될 순 없기 때문이다. 국회 행안위가 밀어붙인 '종합 안'의 위헌성이 한층 또렷해지는 순간이었다. 

법원, '대통령 집무실 주변 집회 금지도 과도하다'... 집시법 개정안 폐기 가능성

이런 상황에서 지난 1월 12월 서울행정법원은 '대통령 집무실 주변에 대한 경찰의 집회금지 조치가 위법하다'고 판결했다.(서울행정법원 2022구합66385) 그동안 경찰은 대통령 집무실이 집시법 11조에서 집회 금지구역으로 정한 '대통령 관저의 개념에 포함된다'고 주장하며 대통령 집무실 반경 100m 이내 집회·시위를 원칙적으로 금지해왔다.
재판 과정에서 경찰은 대통령의 특수성을 언급하며 폭력적 집회·시위로부터 집무실을 보호할 필요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다른 집시법 조항으로도 공공안녕 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끼칠 것이 명확한 집회 등은 금지하거나 해산할 수 있다", "집무실 인근 집회가 허용된다 하더라도 대통령의 직무 수행은 충분히 보호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집회를 절대적으로 금지하지 말고, 그 내용과 성격을 따져 폭력성과 불법성이 짙은 집회만 걸러내야 한다는 뜻이었다. 국회에서 발의된 '정청래 안'과 '구자근 안', 그리고 '종합 안' 모두를 사실상 부정하는 판결이었다. 
경찰의 대통령 집무실 주변 집회금지 조치에 맞서 행정소송을 벌여온 김선휴 변호사는 "법원은 대통령이 국민의 의사에 귀 기울이며 소통에 임하는 것은 대통령이 집무실에서 수행해야 할 주요 업무이므로 집무실을 집회 금지 장소로 지정할 필요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도 판시했다. 전직 대통령 사저와 대통령 집무실 주변 집회를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행안위의 행태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국민의 기본권을 저버린 야합이다"고 말했다.
결국 헌재 결정과 법원 판결로 인해 거대 양당이 머리를 모아 만든 '종합 안'은 법사위에서 폐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 민주당 보좌진은 "법사위도 헌재 결정을 봤을 것이다. 집회금지 구역을 오히려 추가하는 법안을 그대로 본회의로 올리기엔 부담이 클 것이다"고 말했다. 법사위 소속인 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지난 2016년 집회·시위 금지 구역의 범위를 축소하자는 내용의 집시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었다. 
용산 대통령 집무실 인근에서 열린 집회·시위로 인해 설치된 경찰 울타리. 

입법권은 자유의 성숙한 확대를 위해 쓰여야 한다

국회의원의 본업은 법을 만드는 것이다. 직무상 국회의원을 지칭하는 영단어가 'Lawmaker(입법자)'인 이유다. 국회의원에게 면책·불체포 특권을 주고, 세금을 들여 각종 인적·재무적·사회적 지원을 주는 것도 법을 잘 만들게 하기 위해서다. 정치적 이해나 탄압, 돈에 휘둘리지 말고 사회에 보탬이 되는 법을 만들라고 국민이 부여한 특혜다. 국회의원의 자격은 그렇게 무겁고 엄중하다. 
국회 행안위에서 여야가 합의 혹은 거래로 통과시킨 '종합 안'은 그래서 무책임하다. 정청래 의원이 대표발의한 '민주당 안', 구자근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국민의힘 안' 역시 마찬가지다. 무분별한 집회·시위로 인해 여러 피해와 불편이 생기는 게 사실이라 해도, 우리 헌법에 명시된 중요 가치를 축소시킬 만큼의 문제였는지 돌아보고 따져봐야 한다. 그리고 시대를 역행하는 법안을 만들겠다고 눈에 불을 켜고 나섰던 국회의원들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어떤 경우라도, 국회의 입법권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확대하는 데만 쓰여야 한다. 
제작진
취재홍주환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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