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된 '재탕'?…미 싱크탱크 CSIS와 '북한 뉴스'

2021년 09월 02일 15시 05분

2021년 7월 27일, 한국전쟁 정전협정일 68주년이 지났다. 한국전쟁의 포성은 멎었으나 전쟁은 아직 공식적으로 끝나지 않았고, 남북한 평화 프로세스는 여전히 교착 상태다. 상호 신뢰 회복이 중요하지만 한국언론의 무분별한 북한 보도는 종종 대화의 걸림돌이 됐다. 걸핏하면 북한 최고지도자를 ‘죽였다가 살렸고’, 고위 인사 처형설과 같은 대형 오보를 내놨다. 핵 관련 소식, 북한 내부 동향 뉴스에서도 ‘묻지 마’식 보도행태를 끝없이 이어가고 있다. 북한 관련 뉴스는 과연 누가 만들고,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 것일까. 뉴스타파는 국내 22개 언론사의 북한 관련 기사 1년치, 8만여 건을 전수 분석해 북한 뉴스 ‘소스’를 추적하는 <북한 뉴스 해부 - 누가 북한 뉴스를 만드는가> 프로젝트를 시작한다-편집자 주

“북한 영변 핵시설 일부 가동 정황”

“평산 우라늄 시설 가동”

이런 식의 북한 핵·무기 시설 동향 기사는 출처가 주로 미국 싱크탱크다. 그 중에서도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Center for Strategic and International Studies)는 특히 자주 등장하는 싱크탱크다. CSIS는 주기적으로 북한의 무기 개발 동향을 담은 보고서를 펴낸다. 그리고 한국 언론사들은 이를 받아 기사를 쓴다.

그러나 CSIS 보고서 내용에 의문이 제기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지난 2018년 11월, CSIS는 북한의 미신고 미사일 기지 13곳을 찾아냈다며 그 중 하나로 ‘삭간몰 기지’를 언급했다. 뉴욕타임스는 CSIS 보고서를 바탕으로 북한이 속임수를 쓰고 있다는 기사를 냈다. 김의겸 당시 청와대 대변인은 이 보고서에 대해 “이미 한미 정보당국이 파악하고 있는 내용”이라고 언급했고,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 대통령 역시 “새로울 것이 없는 내용”이라며 논란을 진화했다.

CSIS는 국내 매체가 가장 많이 인용하는 미국 싱크탱크다. CSIS의 보고서 인용 기사 뿐 아니라 CSIS 소속 인물들의 발언도 상당수 기사화 한다. 뉴스타파는 ‘북한 뉴스 해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CSIS를 검증했다.

美 정부·방산·석유업체 기부금

CSIS는 “세계의 중요한 문제를 다루는 비당파, 비영리 정책 연구 조직”을 표방하는 미국의 유명 싱크탱크다. 기후 변화, 사이버안전과 기술, 안보, 경제, 에너지, 건강, 인권 등의 주제를 두루 다루고 있다. 한반도 이슈를 특정해서 다루는 ‘코리아 체어(Korea Chair)’라는 이름의 조직도 운영한다.

조지 부시 행정부에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담당 보좌관 등을 지낸 빅터 차라는 인물이 코리아 체어의 좌장 격인 ‘한국 석좌’를 맡고 있다. 빅터 차는 현재 조선일보에 미국과 한반도 이슈 등을 다루는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중앙일보의 연례 심포지엄에도 참석하고 있다.

▲ 국내 북한 관련 뉴스의 미국 싱크탱크 인용 빈도. 1위는 전략국제문제연구소, 2위는 미 국익연구소, 3위는 미들버리 국제연구소, 4위는 헤리티지 재단, 5위는 랜드연구소, 6위는 브루킹스 연구소, 7위는 민주주의 수호재단, 8위는 영국 국제젼략문제연구소, 9위는 애틀랜틱 카운슬, 10위는 우드로윌슨센터로 조사됐다.

뉴스타파는 한국언론사가 생산한 북한 관련 뉴스에서 미국 싱크탱크가 얼마나 인용됐는가를 조사했다. 그 결과, CSIS가 1위로 집계됐다. 2020년 4월부터 2021년 3월까지 국내 22개 매체의 북한 관련 기사를 전수조사해 기사의 출처를 확인한 결과다. CSIS가 인용된 기사는 모두 287건이다.

CSIS가 북한 혹은 한반도 이슈로 국내 매체에 인용된 역사는 길다. 1991년, 윌리엄 테일러 당시 CSIS 부소장이 “김일성의 생존여부와 관계없이 한반도가 향후 5년 이내에 통일될 것”이라고 발언한 내용이 기사화 됐다. 1992년에는 “향후 2년간 북한이 무력으로 남침할 가능성이 약 20%(윌리엄 테일러 전 CSIS 부소장)”라는 내용이 보도되기도 했다.

2020년도 기준으로 CSIS는 미국 연방 정부에서 650만 달러, 한화로 약 70억 원의 기부금을 받았다. CSIS가 한 해 동안 받은 전체 기부금은 한화로 300억 원 가량이다. 그러나 정확히 어느 기관으로부터, 얼마의 자금을 받았는지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다만 CSIS는 자사 홈페이지나 자체적으로 내는 보고서 등에서 고액 기부자 명단을 공개하고 있다. 가장 적게는 5,000 달러~34,999 달러(한화 기준 약 500만 원~ 4000만 원), 가장 많게는 50만 달러(한화로 약 6억원) 이상까지가 ▲재단 ▲기업 ▲정부 ▲개인 기부금 별로 공개돼 있다. CSIS에 가장 많은 기부금을 내는 기업으로는 ‘뱅크 오브 아메리카’, ‘셰브론(석유회사)’, ‘PAE LLC(아르헨티나 석유회사)’, ‘노드럽(군수업체)’ 등이 있다. 가장 많은 기부금을 내는 외국 정부는 ‘일본’, ‘대만’, ‘아랍 에미리트’, ‘미국’ 등 4개국이다.

뉴스타파는 이들 기관의 정확한 기부금 액수 등을 파악하기 위해 CSIS 측에 질의서를 보냈지만 CSIS는 답변하지 않았다.

정상회담 직전에 나온 의문의 보고서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정상회담을 4일 앞둔 지난 2018년 4월 23일, CSIS는 <영변 기밀 해제 파트 1 : 최초의 핵 연구용 초기 작업>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펴냈다. 이 보고서는 CSIS 코리아 체어에서 운영하는 웹사이트 ‘비욘드 패러렐(Beyond Parallel)’에 실렸다.

보고서 주요 내용은 ▲흔히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이 1980년대 후반부터 시작됐다고 알려져 있지만 1963년과 1964년에 북한은 이미 핵 시설 건설을 시작했고 ▲핵 시설 개발은 소련과 북한의 과학기술협력으로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초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북한은 1964년 중반 소련으로부터 첫 원자로인 ‘개량형 IRT 2000 연구용 원자로’를 받았다는 내용 등이다.

CSIS는 미국에서 기밀 해제된 정찰 프로그램의 1950~1960년대 위성 사진을 분석한 결과 위와 같은 내용이 확인된다고 밝혔다.

▲ 2018년 4월 23일에 나온 CSIS의 보고서 사진

그러나 이는 그다지 새로울 게 없는 내용이다. 일단 북한이 1950년 말에서 1960년대 무렵 핵 개발에 관심을 갖고 소련의 협조를 받았던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고, 한국의 보고서나 언론 기사를 통해서도 확인이 된다. 사실 북한의 1950년대와 1960년대 핵 개발 시도는 본격적인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198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인 핵무기 개발이 시작됐다는 것은 명확한데, 그 앞선 시기부터 핵무기 개발이 시작됐다고 주장하기엔 증거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뉴스타파와 인터뷰에서 “1950년대부터 북한의 핵개발 역사는 이미 고위급 탈북자들을 통해서도 여러 차례 확인이 됐고, 어느 정도 수준인지도 상당 부분 증언이 나온 바 있다”며 “CSIS의 보고서 내용은 이미 있었던 사실을 위성 사진을 통해 교차 확인했다는 정도에서 의미가 있다. 내용상 새로운 건 없다”고 지적했다.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도 “1950년대에 이미 북한이 핵 시설을 만들었다는 것, 당시에 소련에서 인력이 오가고 1960년대에 소련으로부터 실험용 원자로를 받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내용”이라며 “그러나 그것이 정말 핵무기를 만드는 시작점이었는지, 아니면 에너지원이었는지는 현재로서는 누구도 알 수가 없다. 이 보고서 역시 새로운 사실이라고 이야기 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한반도 상황 주요 국면에 나온 CSIS의 보고서

한반도 상황의 주요 국면에 ‘새롭지 않은 내용’의 보고서가 나온 건 이때 뿐만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2018년 11월의 ‘미신고 시설 : 삭간몰 기지’ 보고서, 2019년 1월의 ‘미신고 시설 : 신오리 기지’ 보고서, 2019년 2월의 ‘미신고 시설 : 상남리 기지’ 보고서 등이 남북 혹은 북미간 정상회담 혹은 실무 협상을 앞두고 나온 보고서들이다. 그러나 삭간몰과 신오리, 상남리 시설 역시 기존에 한국 언론에 등장했던 기지들이다.

뉴스타파가 CSIS의 ‘비욘드 패러렐’에 게재된 북한의 군사·핵무기 관련 보고서와 남북·북미간 회담 등의 시기를 아래와 같이 비교해 봤다. 기간은 남북·북미 협상이 숨가쁘게 진행됐던 2018년과 2019년으로 한정했다.

▲ 한반도 상황 주요 국면과 CSIS의 보고서 발표 시점, 보고서 요약 내용. 모바일에서는 글씨가 작아 잘 안 보일 수 있습니다. 웹사이트에서 보시면 크게 보입니다.

2019년 1월, CSIS가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신오리 기지’ 관련 보고서를 발표하자 당시 다른 싱크탱크인 디펜스 프라이오리티스의 연구원이었던 대니얼 드페트리스는 “별 것 아닌 것으로 야단법석”이라는 내용의 기고문을 북한 전문 매체 ‘38노스’에 게재했다. 해당 글에서 저자는 “CSIS가 말하는 ‘미공개’는 뉴스 가치가 훨씬 낮다”며 “북한이 특정 미사일 운용 기지를 국제 사회에 선언하지 않았다고 해서 미국이나 한국 정보 기관이 해당 시설 혹은 내부 사정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라고 적었다.

뉴스타파는 보고서를 쓴 CSIS 측 저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왜 새로운 내용이 아닌 보고서를 반복해서 내는지 등을 물었다. 영변 기밀해제 관련 시리즈 보고서를 쓰고 있는 조셉 버뮤데즈는 CSIS 미디어 담당자를 통해 “지금은 질문을 받거나 인터뷰를 할 수 없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미신고 기지’ 보고서의 공동 저자이자 CSIS의 한국 석좌인 빅터 차는 “해당 기지들을 ‘미신고 시설’이라고 한 이유는 북한이 그 기지들이 존재한다고 신고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라며 “우리는 북한에 대한 오해를 만들어내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는 남북 철도 연결의 이점에 대한 보고서도 썼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모두가 우리의 연구를 좋아할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한 가지의 정치적 입장을 취할 것으로 기대돼선 안 된다. 그건 데이터가 말해주는 게 아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홍민 북한연구실장은 “CSIS는 북한에 대해서는 굉장히 강경한 입장을 갖고 있다”며 “중요한 정책적 전환점이 도래할 가능성이 높을 때, 이런 내용을 정보가 불분명한 상태에서 공개해 이슈화 시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김동엽 교수는 “(이런 일이 반복되다보면) 남북관계가 어그러질 수 있다”며 “남북관계를 저해할 수 있고 국민적 불안감 등 안보적 비용이 증가하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뉴스타파는 ‘북한 뉴스 해부’ 프로젝트로 수집한 기사 데이터베이스(2020년 4월~2021년 3월)에서 CSIS가 인용된 기사 287건을 공개한다. 기사 제목을 클릭하면 기사 원문을 볼 수 있다. CSIS의 어떤 인물이, 혹은 어떤 보고서가 국내 언론사가 보도한 기사에서 인용됐는지를 아래 데이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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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진
데이터최윤원 김지연
데이터 입력황다예 이준엽 김이향 이종현
촬영최형석
편집박서영
CG정동우
디자인이도현
웹출판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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