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삼성의 위험한 공장④ 이전된 위험

2023년 03월 22일 18시 10분

삼성전자의 해외 협력사에서 삼성이 금지한 유해화학물질을 지속적으로 사용해온 사실이 뉴스타파 취재를 통해 드러났다. 삼성은 2016년 국내 협력사에서 발생한 유해 물질 관련 사고 이후 자신의 공장뿐만 아니라 국내외 협력사의 유해 물질 관리에 나서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와 같은 다국적 제조 기업들이 유해 물질 취급 공정을 국내에서 해외로, 본사에서 협력사로 외주화하면서 사회적 책임을 피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노동자 실명 사고 낳았던 '메탄올', 베트남 협력사에선 최근까지 사용

뉴스타파는 삼성전자 베트남 공장에서 발생한 유해 물질 무단 방출과 조직적 은폐 사실을 보도했다. 베트남 박닌시에 위치한 삼성전자 공장의 경우, 공장이 가동된 2009년 이래 짧게는 2년에서 길게는 7년까지 대기 오염과 폐수 방출 문제가 지속됐던 것으로 파악됐다. 배경에는 문제를 알고도 묵인했던 조직적 은폐가 있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관련기사 : [주간 뉴스타파] 40년 삼성맨의 분노 "삼성, 베트남 공장 유해물질 방출 은폐'
2023년 2월 현재 취재진이 베트남 현장을 취재했을 때, 해당 문제는 거의 사라진 상태였다. 삼성전자 베트남 공장에서 근무한 바 있는 제보자는 2017~2018년 유해 물질을 배출하던 공장 내 도장, 인쇄 공정 등이 사라지면서 오염물질 무단 방출 문제도 자연히 자취를 감췄다고 설명했다.
△ 베트남 박닌시 인근에 위치한 삼성전자 베트남 협력사 공장의 내부 모습. 전직 삼성전자 환경안전관리자는 배기설비 부실로 인해 내부의 오염 물질이 높은 농도로 유지되고 있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삼성전자 자신의 공장에서 문제의 공정들이 사라졌을 뿐 같은 작업이 베트남 현지 협력사를 통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취재진이 입수한 관련 자료와 협력사 관리 업무를 맡았던 제보자의 증언, 그리고 현장 취재 등을 종합하면, 베트남 현지 협력사들로 옮겨간 이들 공정의 유해 물질 관리는 오히려 이전보다 더 부실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취재진은 2016~2021년 사이 작성된 협력사 환경안전평가 자료를 입수해 전문가들과 분석했다. 분석 결과, 일부 협력사에서 삼성이 사용을 금지하고 있는 유해 물질이 암암리에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16년 삼성전자 국내 협력사에서 일하던 노동자 6명을 실명에 이르게 만들었던 물질인 메탄올은 국내 사건 이후에도 일부 베트남 협력사에서 계속 사용된 것으로 드러났다. 메탄올 실명 사건 당시 정부는 3,000여 개 국내 공장의 유해 물질 사용 실태 점검에 나섰고, 사회적 파장이 일어나자 삼성은 자신의 공장뿐만 아니라 국내외 협력사의 유해 물질 사용을 관리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취재진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메탄올 실명 사건 이후에도 삼성전자 74개 베트남 협력사에서 메탄올이 계속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 중 14개 협력사는 국내 사건과 동일한 세척 용도로 메탄올을 사용했다. 전문가들은 메탄올을 세척 용도로 사용할 경우, 메탄올 성분이 기화되어 인체에 쉽게 흡수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삼성의 전사적인 관리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베트남 협력사의 문제는 좀처럼 해결되지 않았다. 2017년 작성된 또 다른 현황 자료에는 여전히 25개 업체가 메탄올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이 같은 협력사의 메탄올 사용 관행은 불과 2년 전 작성된 자료에도 등장한다.  2021년 말 작성된 호치민시 소재 협력사 현황 자료에는 여전히 일부 협력사에서 메탄올을 세척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일본어로 쓰인 '깜깜이' 유해 물질 안전자료

삼성전자의 베트남 협력사에서 암암리에 사용하는 금지 물질은 메탄올만이 아니다. 취재진이 입수한 자료를 검토한 전문가들은 베트남 소재 삼성의 협력사에서 사용되고 있는 디클로로메탄, 트리클로로에틸렌 등의 유해 물질들이 시급히 대체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적절한 보호구나 배기시설을 갖추지 못할 경우, 인체에 심각한 악영향을 줄 수 있는 물질들이다. 
앞서 삼성전자 베트남 공장에서 사용되면서 악취와 폐수 문제를 일으켰던 톨루엔과 시클로헥사논 등의 물질도 협력사에서 계속 사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모두 삼성이 본사와 협력사에서 사용을 금지하거나 제한하고 있다고 발표한 물질이다.
전문가들은 협력사의 작업 환경이 삼성 베트남 본사의 공장보다도 낙후되어 있다는 점을 특히 우려했다. 과거 베트남 현지에서 협력사 감독 업무를 맡았던 제보자는 다수의 협력사에서 필요한 보호장구를 노동자에게 제대로 지급하지 않거나 적정한 배기시설을 갖추지 않은 사실이 적발됐었다고 말했다. 국내 메탄올 실명 사건과 같은 사건이 다시 베트남에서 발생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화학물질의 물질안전보건자료(MSDS)도 적정하게 부착되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안내 자료가 붙어있더라도 한국어나 일본어로 작성되어 있어 사실상 무용지물인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 삼성전자 베트남 협력사 공장에서 찍힌 사진. 취급하는 화학물질 보관함에 부착된 물질안전보건자료가 일본어로 작성돼 있다.
이처럼 열악한 삼성전자 베트남 협력사들의 작업 환경은 취재진의 현장 취재 과정에서도 확인됐다. 일부 협력사의 공장은 주변에 다가서자 강한 화학 물질의 냄새가 났다. 공기 질 측정 장비를 작동해 보니 이내 미세먼지와 VOC(휘발성유기화합물) 관련 수치가 기준치를 넘겨 경고음이 울렸다. 취재진과 함께 협력사 공장을 둘러본 제보자는 그을린 창틀과 내부에 가득한 연기 등을 볼 때 여전히 배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상태에서 내부 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협력회사 관리 '만점'? 위험 공정의 외주화 감추나

이러한 협력사들의 유해 물질 취급 실태 이면에는 삼성의 관리 부실 책임이 있다. 삼성은 매년 발간하는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통해 친환경 제품 개발과 청정 생산을 위해 공급망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고 강조한다. 
2022년 지속가능보고서에서는 협력사들의 유해 물질 관리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이 보고서에서 삼성전자가 제3자 검증을 통해 자신에게 부여한 '협력회사 근로환경 관리 점수'는 노동인권 95점, 보건안전 97점, 환경 98점, 윤리 99점 등이다.
협력회사는 원재료 업체로부터 제공받은 데이터와 함께 유해 물질 정보가 사실임을 증명하는 제품환경보증서 등을 삼성전자에 제출하고, 삼성전자는 서류를 검증하기 위해 협력회사의 제조 현장을 방문하여 정밀하게 평가합니다. (중략) 협력회사가 안전한 작업 조건을 충족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현장조사를 실시하고, 규제 물질의 취급절차와 통제 시스템의 개선 방안에 대한 컨설팅을 제공하며, 국소배기장치, 화학물질 저장시설, 화학물질 누출 방지 설비 등의 개선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2022년 삼성전자 지속가능경영보고서
제보자는 이러한 보고서 내용은 현실과 거리가 멀다고 말한다. 기본적으로 삼성전자 협력회사의 유해 물질 관리는 내부 전산망을 통해 이뤄진다. 문제는 이 전산망에 대한 자료 입력은 개별 협력사 자율에 맡겨진다는 것이다. 협력사 측에서 비용 절감 등을 노리고 전산 입력 내용과 다른 화학 제품을 구입한다고 해도 삼성으로서는 확인할 수 없는 실정이다. 표면적으로는 완벽에 가까운 관리 점수가 나오지만, 현실은 부실투성이일 수밖에 없는 구조적 원인이다. 
△ 2022년 삼성전자 지속가능경영보고서 중. 제3자 검증을 통해 부여한 삼성전자의 협력회사 근로환경 관리 점수는 만점에 가깝다.
본사 직원의 현장 감독을 통해 다시 한번 전산 내용을 점검한다고 하지만 이 또한 한계가 분명하다. 베트남 현지의 협력사 관리 업무를 맡았던 제보자는 수백 개가 넘는 협력사를 관리하기에 현지 인력과 자원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협력사의 유해 물질 취급 위반 사실을 발견한다고 해도 협력사가 개선에 나서도록 강제할 권한이 없다 보니 사실상 현장 점검은 형식에 그치는 때도 많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이른바 '관리의 삼성' 이미지로 인해 맹점이 생기고 있는 것 아닌지 우려한다. 과거 국내에서 발생하던 공장의 환경안전 문제를 해외 공장으로, 외부 협력업체로 떠넘기고 있지만 기업 이미지 홍보로 인해 이러한 지점들이 잘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삼성이 위험 공정을 외주화하는 구태에 따를 것이 아니라 책임감 있는 해결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측은 “전 세계 사업장에서 환경안전 관련 법규와 규정을 철저히 준수하고 있다"라며 “규정 미준수 등이 발생한 경우 즉각 개선 조치를 취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제작진
취재김새봄, 오대양
촬영이상찬
편집윤석민
CG정동우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