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집사 아들, 자원외교에 깊숙이 개입

2015년 03월 12일 18시 47분

이명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의 아들 김형찬 씨가 MB 정부의 해외 자원개발 사업에 깊숙이 개입한 사실이 처음 확인됐다.

김 씨는 석유공사의 해외 M&A 자문을 맡은 메릴린치 실무팀에 이름을 올렸고, 그가 속한 메릴린치 서울지점은 석유공사가 1조7000억 원의 손실을 입은 캐나다 하베스트사 인수와 관련 80억 원 상당의 성공 보수를 청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동안 김형찬 씨가 하베스트 인수 과정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정부의 발표가 거짓으로 밝혀진 것이다.

뉴스타파는 새정치민주연합 홍영표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석유공사와 메릴린치간에 오간 문서에서 이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석유공사는 MB정부의 자원외교 정책에 따라 해외 M&A를 통해 몸집을 불린다는 계획을 세우고, 2009년 2월 해외 석유회사 인수를 위한 주 자문사 선정작업에 들어갔다. 당시 메릴린치는 110여 페이지의 제안서를 석유공사에 제출했고, 이 제안서를 통해 총괄 자문 계약을 따냈다.

제안서에는 프로젝트 팀에 대한 구체적인 소개가 나오는데 메릴린치 서울지점 기업금융부 구성원들도 비중있게 다뤄졌다. 산업통산자원부가 지난해 공식 보고서를 통해 캐나다 하베스트사 인수와 관련이 없다고 결론 내린 바로 그 기업금융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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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명단에는 피터 김(peter kim)이라는 이름이 또렷이 박혀 있다. 메릴린치는 피터 김을 기업인수 합병의 전문가로 소개했다. 그가 속한 핵심 실무팀이 석유공사의 해외 M&A와 관련해 사업의 모든 단계에서, 전적으로 전념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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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김은 김형찬, 바로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의 아들이다. 김백준 전 비서관은 지난 40년 동안 이 전 대통령의 곁에 있었던 최측근으로, BBK 소송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을 대리했고, 내곡동 사저 매입을 주도했다.

이 같은 그의 배경 때문인지 정부는 그동안 김형찬 씨가 석유공사의 하베스트사 인수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해 왔다. 수조 원의 국부를 탕진한 해외 자원개발 사업과 권력 실세와의 연관성을 차단하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하지만 김형찬 씨가 석유공사 해외 M&A 업무를 대행하는 핵심 실무팀에 들어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권력의 실세가 하베스트 투자 실패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정부의 발표가 거짓말로 드러났다.

김형찬 씨는 이명박 정부 초기인 2008년 한국투자공사가 미국 메릴린치에 20억 달러 투자를 결정한 직후 한국 메릴린치 서울 지점에 상무로 특채됐고, 이명박 정부 기간 동안 승승장구해 현재는 지점장에 올랐다.

이대순 투기자본감시센터 대표는 “이런 딜이 성사되기 위해서는 이 사람이 나름대로 영향력이 있다고 시장에서 받아들여야 한다.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배경이라든지, 인맥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굉장히 중요하다. 혈연관계만큼 확실하게 자기가 설득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게 뭐가 더 있겠는가. 특히 부자지간이라면 더하다”고 말했다.

김형찬 지점장은 ‘석유공사 해외 M&A와 관련해서 어떤 역할을 했나’는 뉴스타파 취재진의 질문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하베스트 인수와 관련해 어떤 근거로 성공보수를 받았나”는 질문에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회사 차원에서 일을 한 것”이라고 짧게 답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뉴스타파는 김형찬 씨가 성공보수를 받았다면, 어떤 이유에서 받았는지 추적하다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석유공사와 하베스트사간의 M&A가 성사된 뒤 메릴린치가 석유공사에 보낸 80억원 가량의 성공보수 청구서에는 미국 메릴린치가 아닌 서울지점의 직인이 찍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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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당초 석유공사와 자문계약을 맺은 상대는 메릴린치 서울지점이 아니라 미국팀이었다. 자문 계약서에 서명한 인물은 메릴린치 미국팀의 실무를 맡은 팀 삭스맨(tim saxman). 표면상의 계약 주체는 미국팀인데 성공보수를 요구한 것은 서울지점인 것.

이와 관련해 안성은 전 메릴린치증권 서울 지점장은 취재진에게 한 일화를 털어놨다. 그는 취재진에게 “한국(메릴린치 서울) 입장에서는 되게 황당했던 딜이었어요. 왜냐하면 딜이 깨졌는데 갑자기 나중에 며칠 있다가 딜이 (성사)됐다고 미국에서 연락이 왔더라고요. 그래서 왜 한국(메릴린치 서울지점)에서는 한국 딜인데 어떻게 한국에 연락을 안 하고. 딜을 할 수 있냐고 제가 미국팀에 화를 냈던 기억이 있어요. 미국팀한테 너네가 해서 공을 세우려고 한국을 따돌릴 수가 있냐? 이런 식의 항의를 했던 딜이에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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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공사의 하베스트 인수를 성사시킨 핵심적인 역할은 메릴린치 서울 지점이 했다는 추정이 가능한 대목이다. 안성은 전 지점장은 또 김형찬 씨가 석유공사와의 계약이 있기 전에는 주로 게임과 인터넷 사업 분야를 담당했다고 말했다.

메릴린치는 석유공사와의 계약을 추진하기 전까지는 게임과 인터넷을 전담했던 사람을 왜 해외자원개발 M&A의 핵심 실무팀에 넣었던 것일까? 이에 대해 안성은 전 지점장은 “김형찬 씨가 포함된 한국팀의 명단은 서울 지점에서 홍콩 아시아 본부로 보고된 것이고 김형찬 씨 등이 들어간 것은 ‘자랑’을 하기 위해서였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그러나 안성은 전 지점장은 이 자기 자랑이란 말이 이명박-김백준-김형찬으로 이어지는 인적 네트워크에 대한 과시를 의미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인하지 않았다. 다만 석유공사의 하베스트 인수는 뉴욕에 있는 메릴린치 본사가 아니라 메릴린치 서울지점의 공로였다는 점을 강조했다.

홍영표 의원은 “하베스트 인수에 있어서 메릴린치 서울지점이 사실상 중요한 역할을 했고, 거기에 김형찬 상무를 비롯한 사람들이 포함돼 있다는 것이 다시 한 번 밝혀졌다”며 “청문회에 이들을 증인으로 채택해 진실을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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