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알권리 무시...대통령기록관의 직무유기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한 지 15년이 지났다. 지난 2월 25일, 그가 퇴임 당시 보호 대상 기록물로 지정한 대통령지정기록물이 해제됐다. 해제된 기록은 보호기간 15년의 노무현 대통령 대통령지정기록물이고, 모두 8만 4천여 건이다.
대통령지정기록물 제도는 대통령기록물의 생산을 독려하고, 누락없는 이관을 위해 도입했다. 대통령이 지정한 기록물에 대해서 최장 15년(개인프라이버시 침해 우려의 기록은 30년) 동안 보호할 테니 적극적으로 생산하고, 생산한 기록을 소실케 하지 말고, 누락 없이 이관하도록 한 기록관리 제도이다.
대통령지정기록물 제도는 일정한 기간 동안 알 권리를 제한한다. 그러나 누락 없는 생산과 이관을 목적으로 한다는 측면에서 오히려 알 권리를 실현하는 강력한 도구이기도 하다. 알 권리는 기록정보가 없다면 실현될 수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지정기록물 해제는 유예된 알 권리를 실현하는 큰 이벤트이다. 그래서 학계와 관련 단체, 그리고 정치권 일부에서 기대와 설렘, 우려와 불안 등 여러 감정을 갖고 해제를 기다리고 지켜봤다.
그러나 최근 대통령기록관의 발표는 기다리고 지켜봤던 모든 이들을 허탈하게 했다. 해제된 대통령지정기록물의 수량만 발표했을 뿐 유보된 알 권리 실현을 위한 어떤 조치도 없었다. 오히려 지난 15년 동안 대통령기록관의 대통령지정기록물 관리 방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대통령기록관. (출처: 연합뉴스)
대통령지정기록물은 비공개기록과 비밀기록 중에서 지정하는 것이므로 그것을 해제한다고 해서 바로 공개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도 15년 동안 알 권리를 제한했다면 그것의 실현을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할 필요가 있다. 보호기간 종료에 임박하여 미리 공개 여부를 분류하여 해제와 동시에 일부 기록에 대해서는 공개하는 것이 가장 적극적인 조치라면, 최소한 목록이라도 제시하여 대통령지정기록물의 대강을 짐작하게 해야 한다. 그러나 대통령기록관은 그 최소한의 일을 하지 않았다.
이번 발표에서 대통령기록관은 “대통령기록관 직원도 관장의 승인을 얻어 상태검사, 정수점검 등 최소한의 업무 수행만 가능하다”라고 강조했다. 대통령기록물법령에는 상태검사와 정수점검 뿐만 아니라 ‘전자적 관리’에 대해서도 규정해 놓고 있다. 그런데 그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있다. 전자적 관리의 핵심은 목록의 전자적 관리이다. 목록이 없다면 상태검사와 정수점검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어떤 기록이 어떤 상태인지, 그것이 몇 건인지 확인하지도 않고 무엇을 한단 말인가?
그런데 대통령기록관은 대통령지정기록물의 목록 존재 여부도 밝히지 않았다. 2020년 3월의 시행령 개정으로 전자적 관리가 규정됐으니, 적어도 그 시점 이후에는 목록의 전자적 작성과 관리가 수행됐어야 한다. 그러나 대통령기록관리 대통령지정기록물의 목록을 작성했다는 것을 들은 바 없다. 지난해 11월과 지난 1월 대통령기록관리전문위원회는 대통령지정기록물 해제에 임박하여 비실명화(비공개 사항을 가리는 조치)한 것이라도 목록을 작성하고 공개해야 한다고 제안했고, 대통령기록관은 그렇게 하기로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발표에서 그와 관련한 어떠한 설명도 하지 않고 있다.
대통령기록관리 목록마저 공개하지 않는 것은 기록정보 접근의 불균형을 가져온다는 점에서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대통령지정기록물이 해제되면 그동안 유보된 알 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 우선 목록을 제때 공평하게 공개하고 누구나 접근하도록 해야 한다. 만약 대통령실 등 정부만 목록과 비공개, 비밀 등 모든 기록물에 접근·열람하고 다른 접근을 봉쇄한다면 공평하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대통령실만 기록에 접근하여 민감한 사안을 들춰내고, 정치적 이슈로 삼을 것이라는 우려를 불식해야 한다. 우선 목록 공개로 대통령기록물에 대한 공평한 접근을 보장해야 한다.
대통령기록관은 대통령지정기록물의 수량마저 제대로 밝히지 않고 있다. 해제되는 노무현 대통령지정기록물이 8만 4천여 건이라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없다. 8만 4천여 건 중에서 문서류, 시청각류, 박물류는 몇 건(점)이며, 문서류 중에 종이기록은 몇 건이고, 전자기록은 몇 건인지, 또 비공개기록은 몇 건이며, 비밀기록은 몇 건인지 등 최소한의 정보는 밝혔어야 했다. 그러나 대통령기록관은 8만 4천여 건이라는 것 말고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고 있다.
8만 4천여 건이라는 것도 문제다. 대통령기록관은 애초에 15년이 경과해 해제되는 노무현 대통령의 대통령지정기록물은 약 15만 4천여 건이라고 말해왔다. 그런데 이번에 발표한 수량은 8만 4천여 건이다. 7만여 건의 차이가 있다. 적지 않은 차이인데 이것에 대해 아무런 설명이 없다. 추산과 실제 기록물 수량의 차이라고 하기에는 그 격차가 너무 크다.
대통령기록관은 이번 발표에서 정수점검 등 최소한의 업무수행만 가능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추산과 실제 수량 사이의 큰 차이는 그 최소한의 업무수행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정수점검은 “기록물의 수량을 주기적으로 점검하는 행위”를 말한다. 7만 건의 수량 차이라면 정수점검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이관 당시의 수량이 실제 수량과 다를 수 있다. 이관 당시에 세부 건 목록이 작성되지 않을 경우도 있었을 것이고, 전자기록의 경우에는 무엇을 한 건으로 할 것인지 논의가 필요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그 일을 15년이나 미루고 방치할 것은 아니다. 대통령기록관은 대통령지정기록물에 접근할 수 없었기 때문에 수량을 확인할 수 없었다고 주장한다고 한다. 그래서 하나의 묶음(기록철)에 몇 건이라고 추정하고 수량 관리를 했다고 말한다. 대통령기록관의 이 주장이 일을 제대로 했다는 항변이 될 수 없다.
대통령기록물법령에서 대통령기록관장의 지시에 의해 대통령지정기록관리 업무를 수행하도록 한 것은 최소한의 관리 업무를 수행하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대통령기록관은 법령을 내세워 임무를 회피하고, 사실상 직무유기를 했다. 사실 법령에서도 상태검사, 정수점검, 전자적 관리 등을 하도록 했기 때문에 임무를 제대로 수행했으면 보존 기록물 수량도 파악하지 못하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국가 기록관리기관의 모든 기능과 역할은 시민이 기록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대통령기록관은 이 임무에 충실하지 않았다. 시민에게 대통령기록물의 관리를 위임받았으면 그 임무에 충실해야 한다. 대통령기록관은 이번 대통령지정기록물 해제를 앞두고 본연의 역할을 내팽개치고 보신주의로 일관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런 의심을 불식하려면 시급히 목록을 공개하고 공개재분류를 시행해야 한다.
대통령지정기록물의 부실한 관리는 알 권리를 침해하는 심각한 사안이다. 이제라도 적극적인 접근·열람 조치를 시행해야 한다.
제작진
디자인이도현
웹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