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 마약방] ② '전세계 박왕열', 전국에 마약 팔아 매달 100억 수익?

2020년 09월 28일 15시 50분

뉴스타파는 ‘텔레그램 마약왕’으로 불리는 마약판매상 ‘전세계’ 박왕열의 실체를 밝힌데 이어 그의 마약 유통망이 전국에 퍼져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전세계’의 심부름꾼, 중간판매책으로 활동하다 유죄 선고를 받은 공범들의 판결문과 경찰 수사자료 등을 통해서다.

전세계는 텔레그램을 통한 마약 유통망에 마약을 대주는 공급책, 일명 ‘상선’이다. 전세계는 최근까지 한국으로 마약을 밀반입, 전국으로 유통하며 매달 최대 100억 원이 넘는 수익을 올리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전세계’ 마약, ‘던지기 수법’으로 전국 유통

2020년 2월 11일, 전세계의 심부름꾼으로 활동했던 마약범 J가 서울 을지로에 나타났다. J는 을지로에서 전세계가 보낸 필로폰 약 5.98g과 엑스터시 11정, 신종 마약류인 LSD가 흡착된 종이 15장 등 마약을 수거했다. 이후 강남역 부근으로 이동한 J는 전세계의 지시를 받은 H로부터 합성대마 약 9.8g을 건네받았다.

마약을 손에 넣은 J는 곧바로 부산으로 향했다. 이른바 ‘던지기’ 작업을 하기 위해서였다. ‘던지기’란 마약 구매자가 홍보글을 보고 돈을 판매자에게 보내면, 판매자가 특정 장소에 마약을 숨겨놓고 찾아가게 하는 비대면 마약 거래 수법이다.

J는 부산역 바로 근처 공중전화박스 아래, 골목의 소화전 하단, 학원 건물의 우편함, 건물 간판 사이 등에 마약을 숨겼다. 아래는 J가 부산 지역에 마약을 숨긴 장소다.


J는 2월 11일 저녁 7시부터 밤 11시까지 약 4시간 동안 32곳에 마약을 ‘던지기’했다. 필로폰 약 18.61g, 시가로 1000만 원에 달하는 양이었다.

다음날인 2월 12일, J는 이번엔 대구로 향했다. 대구에서 J는 3시간 동안 25곳에 필로폰과 합성대마를 숨겼다. 마약을 은닉한 장소는 모두 전세계에게 사진으로 보고했다.


전세계의 또 다른 중간판매책 Y는 경상도 지역에 마약을 뿌렸다. Y는 울산의 한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전세계가 보낸 필로폰 91.63g을 받았다. 필로폰 1g의 소매가는 대략 60만 원. 91.63g은 약 5500만 원에 달하는 분량이다.

Y는 경상북도를 돌며 주택가 곳곳에 마약을 숨겨놓고 구매자들이 찾아가게 했다. 울산 11곳, 대구 6곳, 포항 13곳 등이었다.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Y는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았지만, 2심에서 징역 2년을 받았다. 아래는 Y에 대한 1심 판결문 중 일부 내용.

● 피고인은 전세계와 공모하여 그로부터 합계 100g이 넘는 수량의 필로폰을 수수하고, 필로폰을 포항, 울산, 대구지역에 관리했다. 필로폰의 관리, 제공, 매매 범행은 치밀하고 계획적으로 이루어졌다.
- ‘전세계’ 공범 마약범 Y 1심 판결문

뉴스타파는 ‘전세계’ 공범들의 판결문과 경찰 수사자료 등을 토대로 그가 국내에 뿌린 마약의 유통 루트를 재구성했다. 전세계가 동남아시아에서 보낸 마약은 국제 택배, 인편 등을 통해 인천공항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퀵서비스나 고속버스 수화물 등을 이용, 서울과 경기도, 충청도, 경상도 지역에 있는 중간판매책들에게 전달됐다.

이후 중간판매책들은 서울과 대구, 울산, 포항, 김해, 양산, 부산, 대전, 논산, 소원, 의정부 등에 마약을 뿌려 구매자들에게 찾아가게 했다. 아래는 전세계 마약의 유통 루트를 재구성한 지도.


신고 건수가 적은 이른바 ‘암수범죄’인 마약 범죄는 인지가 어렵다. 특히나 비대면 거래가 주를 이루며 인지수사는 더욱 힘들어졌다. 이로 인해 경찰이 직접 텔레그램 마약방에 잠입해 마약상으로부터 마약을 사는 척하며 검거하는 ‘함정수사’나 ‘첩보수사’가 대다수다. 판결문과 수사자료에 나온 범죄 사실이 실제보다 작을 가능성이 큰 이유다. 취재진이 접촉한 전현직 마약상, 텔레그램 마약방 ‘자경단’은 전세계 측이 유통한 마약의 양과 마약을 뿌린 지역이 수사기관 적발 규모보다 훨씬 클 것으로 추정한다.

“절반은 챙긴다”...마약 유통으로 매달 100억대 수익?

그럼 전세계가 마약 유통으로 벌어들이는 돈은 어느 정도일까.

뉴스타파는 수감중인 마약범 J를 면회해 ‘전세계’ 박왕열이 한 달에 유통하는 필로폰이 약 60kg이라는 증언을 확보한 바 있다. J는 과거 필리핀에서 박왕열과 함께 외국인수용소에 있었으며, 박왕열과 통화를 여러 번 하기도 한 인물이다. 아래 내용은 구속 수감돼 있는 마약범 J와 취재진이 나눈 대화내용.

○ (마약범 J) 왕열이가 여기저기 이렇게 그 무슨 국제택배 해가지고 나름대로 거래처들이 많이 있어요. 도매상부터 시작해가지고. 그럼 이제 이렇게 가끔 대화를 하다 보면 보통 한 달에 한 달 쓰는 물량이 한 60㎏ 정도는 되는 것 같아요.
● (기자) 그게 보통 1g에 몇십 만 원 하잖아요?
○ (마약범 J) 1g에 내가 알기로는 40~50만 원정도 하죠. 엄청난 금액이죠.
- ‘전세계 박왕열’ 공범 J와 대화내용 (서울구치소, 2020.7.27.)

마약범 J의 증언대로라면, 전세계가 한 달에 유통하는 마약(60kg)은 대략 300억 원 규모다. 최근 코로나19 등의 여파로 마약 공급량이 감소하며 필로폰 기준 1g의 가격은 70만 원까지 오른 상태다.


취재진은 전현직 마약판매상들을 찾아 전세계가 유통하는 마약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물었다.

한 전직 마약판매상은 “직접 현장에서 마약을 던지고 오는 심부름꾼들은 그리 큰돈을 벌지 못한다. 반면 마약을 공급하는 가장 윗급의 상선은 엄청난 돈을 만진다. 마약 도매가격과 소매가격의 격차는 천지 차이”라고 말했다.

한 마약판매상은 “필로폰 1g을 15만 원 정도에 사면, 구매자에게 한 60~70만 원에 팔았다. 45만 원이 남는 거다. 여기서 배송과 포장 등에 들어가는 비용을 빼도 판매가의 절반은 챙길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마약상들도 마약 판매의 수익률은 적어도 50%라고 밝혔다.

마약상들의 설명을 토대로 계산해 본다면, 전세계가 매달 300억 원 규모의 마약을 유통하며 얻는 수익은 최소 100억~150억 원대로 추정할 수 있다. 텔레그램 마약방에서 자경단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 제보자는 “텔레그램에서 만난 마약상들은 모두 전세계를 칭송했다”고 말했다.

“대부를 넘어서 이제 진짜 모르면 딜러 취급도 안 한다. 이런 소리가 있어요. 그러니까 전세계를 아는지 물어보고 먼저, 이제 ‘안다’ 그러면 믿고 사는 사람도 있고. 전세계를 ‘모른다’ 그러면 그냥 ‘쟤는 사기꾼이다’ 이렇게 그냥. 그 정도로 큰손이죠.”
- 제보자 (텔레그램 마약방 자경단)

▲ ‘전세계’가 운영하는 텔레그램 마약방에 올라온 사진. ‘전세계’는 텔레그램에서 마약으로 벌어들인 자신의 부를 과시해 왔다.

‘전세계’ 박왕열 행방 묘연…경찰 수사 오리무중

문제는 전국에 마약을 퍼뜨리며 막대한 돈을 벌고 있는 범죄자 ‘전세계’ 박왕열의 행방이 여전히 묘연하다는 점이다. 필리핀 경찰과 공조수사를 벌이고 있는 한국 경찰은 박왕열과 함께 필리핀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와 자수한 마약범 L의 증언도 확보한 상태다. 하지만 아직 박왕열의 은신처를 찾아내지는 못했다. 아래는 취재진이 경찰청 관계자가 나눈 대화 내용.

○ (경찰청 관계자) 저희가 이제 수집한 정보로는 아직까지 뭐 그렇다 할만한 그게 없습니다.
● (기자) 필리핀에서 박왕열이랑 같이 살던 사람(마약범 L)이 있었다면서요.
○ (경찰청 관계자) 네. 지금 그 사람, 그 사람한테 받은 것으로 지금 하고 있거든요.
● (기자) 그런데 뭐 민다나오에 있다는 말도 있던데. 뭐 밀림에 있다.
○ (경찰청 관계자) 그렇게 생각은 안 합니다. 왜냐하면 어디에 있든 간에 그렇게 살면 진짜 잡기가 어렵고. 누구든지 그런데 거기 너무 있기가 힘들기 때문에 그렇게 있을 확률이 높지는 않아요, 저희가 생각할 때는.

▲ ‘전세계’ 박왕열의 하수인이었다가 경찰에 자수한 한 마약범이 텔레그램에 올린 마약 홍보글.

“상선 안 잡으면 마약 유통 끊을 수 없다”

현재 ‘전세계’는 언론 취재와 보도가 시작되자 텔레그램 활동을 중단한 상태다. 하지만 전세계가 경찰 수사가 잠잠해질 때만을 기다리며 새로운 중간판매책들을 모집하고 있고, 다시 마약 판매를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텔레그램 마약방 자경단으로 활동 중인 제보자는 “전세계가 아직 검거되지 않은 중간판매책들도 버리고, 아예 물갈이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 마약판매상은 “어차피 텔레그램에서 전세계 계정으로 채팅을 하는 것도 전세계의 직원이다. 전세계는 뒤에서 마약을 공급하는 역할만 하고 있다. 계정을 바꿔서든 아니면 새로운 중간판매책들을 통해서든 곧 다시 나타날 것이다”라고 말했다.

마약 범죄 전문가들은 전세계가 잡히지 않고 있는 현 상황을 매우 우려했다. 전세계가 해외를 통해 텔레그램 마약 세계에 마약을 공급해주는 이른바 ‘상선’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텔레그램 마약방에서는 각종 마약이 홍보·판매되고 있다.

▲ 지금도 텔레그램 마약방에는 각종 마약을 홍보하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박진실 마약 전문 변호사는 “전세계는 해외에서 많은 양의 마약을 조달해서 국내에 뿌릴 정도로 급이 높다. 상선 중에도 뭐 최상위에 있다고 볼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사람이다”고 말했다.

“마약 범죄는 ‘공급이 곧 수요를 창출하는 시스템’이다. 마약은 술이나 담배처럼 일상에서 구입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수요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상선들은 각종 SNS에 활발히 광고를 올리며 소비자를 유혹해 마약에 중독시킨다. 또 마약을 살 돈이 없는 마약 투약자들에게 ‘내 판매책으로 들어오면 마약을 싸게 주겠다’고 말해 투약자를 판매자로까지 만든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은 해외에서 검거되지 않고, 돈만 회수해 간다. 이런 상선들이 잡히지 않는 한 우리 사회 곳곳으로 마약은 계속 공급되고, 유통될 수밖에 없다.”
- 박진실 마약 전문 변호사

제작진
취재홍주환
촬영정형민 신영철 최형석 오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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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