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작가의 280만원 짜리 책쓰기 비법서, 들여다보니 표절 범벅

2016년 10월 27일 11시 32분

뉴스타파 탐사저널리즘 연수생은 지난 8월 김태광 작가의 표절 문제를 보도한 이후 후속 취재를 이어왔다. 이번엔 김 씨가 자신이 운영하는 책 쓰기 학원에서 다량의 표절이 포함된 사례 모음집을 책쓰기 비법서라며 고가에 판매해 온 사실이 드러났다. 김 씨의 수업을 들은 수강생들이 책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해당 책을 그대로 표절한 사실도 확인됐다.

▲김태광 작가가 운영하는 한책협 카페의 메인 사진. 출처: 한책협 네이버 공식카페

김태광 작가는 지난 20년 동안 시, 소설, 자기계발 등 다양한 분야에서 200여 권의 책을 집필했다. 김 씨는 다수의 책을 집필한 경력을 바탕으로 관공서나 기업의 요청을 받아 책쓰기 강연 활동을 해 왔다. 김 씨가 대표로 있는 책쓰기 학원 ‘한국 책쓰기 성공학 코칭협회’(이하 한책협)에서는 누구나 3개월 안에 책 한 권을 쓸 수 있다고 한다. 한책협의 ‘7주 책쓰기 과정’은 950만 원이라는 고가의 수업료에도 불구하고 5년 동안 600여 명의 수강생을 모았을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일화 모아 놓은 사례집. 책 한 권에 280만원

문제가 된 책은 김 씨가 쓴 『키워드 성공 사례집』과 『인물 성공 사례집』 두 권이다. 주제나 인물에 따라 나뉜 수백 개의 일화로 구성된 두 책은 그 가격만 각각 280만 원, 210만 원이다. 2015년 직장인 평균 월급인 264만 원에 맞먹는 금액이다.

▲사진 및 게시물 출처: 한책협 네이버 공식 카페

김 씨는 ‘다양한 콘텐츠, 사례가 있다면 책쓰기는 재료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만큼 쉬워진다.’, ‘나에게 저작권이 있으니 마음껏 사례를 가져다 써도 된다.’며 한책협 수강생만을 대상으로 두 사례집을 홍보해왔다. 사례집 구매자를 대상으로 원고 검토와 출판의 기회를 준다며 이벤트로 사례집 구매를 독려하기도 했다.

2015년 6월 13일에 게시된 ‘사례집의 판매 부수가 100권을 돌파했다’는 카페 홍보 글과 사례집을 구매한 수강생 후기를 바탕으로 판매 부수를 추정했을 때 두 사례집의 판매 수익은 3억 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두 권의 책에서 표절 의심 사례 무더기로 나와

두 권의 사례집을 입수해 분석해보았더니 표절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지난 기사에서 조사했던 방식과 같은 방식으로 사례집에 실린 일화 626개를 검토한 결과 최소 168개의 표절이 발견됐다. 해당 일화들은 모두 출처를 밝히지 않고 사용됐다. 확인한 원저작자 중 김 씨의 인용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해당 내용의 출처는 시중에 출판된 책(35건), 신문이나 잡지의 기사문(93건), 그 외 인터넷 게시물(웹 연재 칼럼, 교회 설교문을 포함하여 40건) 등 각양각색이었다. 문장을 거의 그대로 복사해 넣은 경우부터 세세한 사실 관계를 살짝 바꾸어 놓은 경우까지 그 방법도 다양했다. 이 중 몇 가지 표절 방식을 정리해 봤다.

1.원 저자의 경험을 자기 경험처럼 제시

월간 『혁신리더』 228호의 한 칼럼에 등장한 30대 중반 여성의 상담 사례를 마치 본인이 상담해 준 것처럼 바꿔 썼다. 이 과정에서 ‘30대 중반 여성’은 ‘30대 초반 여성’으로, ‘3년 후 사직’은 ‘2년 후 사직’으로 각색됐다.

2.창작물 저작권 침해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2권의 내용을 무단 인용하거나 다수의 문장을 그대로 가져왔다.

3.두 기사의 내용을 짜깁기

서울경제와 조선닷컴의 코코 샤넬에 관한 기사 두 편을 합쳐 한 편의 예화를 구성했다.

4.사실 관계 왜곡

김 씨는 천주교 주보에 실린 칼럼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청년 시절 일화를 가져오며 전반부에 내용을 추가했다. 그 과정에서 도스토예프스키가 ‘부와 명예를 누렸다’고 서술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도스토예프스키는 평생을 가난과 도박 빚에 시달렸다. 말년에야 안정적인 삶을 누릴 수 있었지만 부유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사례집, 수강생 책에서 실제로 사용된 정황 확인돼

두 사례집이 실제로 수강생 사이에서 사용됐는지 확인해 봤다. 한책협 카페 메인에서 대표 작가로 홍보되고 있는 작가 9명을 대상으로 각각 한 권씩 총 9권의 책을 조사했다. 그 결과, 9권 중 4권에서 사례집이 사용된 정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중 1권에서 표절로 파악된 일화가 사용됐다. 앞서 확인된 사실관계 왜곡까지 그대로 남아 있다는 점에서 사례집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 『인물 성공 사례집』을 인용해서 책을 쓴 수강생. 사례집과 마찬가지로 원출처에 관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저작권 전문가 ‘표절을 넘어 저작권 침해까지 해당’

발견한 100여 개의 표절 의심 텍스트에 관해서 저작권 전문가인 세명대학교 김기태 교수에게 자문을 구했다.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해당 텍스트의 저자를 밝히지 않고 원문과 비교한 자료를 보내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 결과 해당 텍스트가 명백한 표절이며, 저작권 침해까지 해당한다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사실적 부분(표절)이나 창작성이 인정되는 부분(저작권 침해) 모두 문장을 가져다 쓰면서 교묘하게 주어 같은 것만 바꾸고 있어서 원본을 보고 쓴 게 확실하고, 거의 모든 부분을 타 저작물에서 동일하게 가져다 썼다는 점에서 실질적으로도 유사합니다.

수강생들이 표절인지 모르고 사례집을 사용한 경우도 저작권 침해에 해당한다. 김 교수는 이에 대해 저작권 침해는 행위자를 처벌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수강생들이 김 씨가 "나에게 사례집의 저작권이 있으니 마음껏 사례를 가져다 써도 된다."고 말한 사실을 입증한다면 나중에 구상권(타인의 불법행위 때문에 발생한 손해배상 의무를 이행하는 사람이 이후에 가해자 본인에게 변제를 청구하는 것)을 행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사례집 은폐 의혹. 고소 문자 보내고, 책 환불 과정에서 사례집만 빼돌려

김태광 씨는 지난 9월 3일 취재진이 후속보도로 사례집을 구하고 있다는 사실이 전해지자 명예훼손, 업무방해죄로 고소하겠다는 문자를 취재진에게 보내왔다. 그리고 얼마 후 한책협의 수강생 B 씨는 책 환불 과정에서 황당한 일을 겪었다.

▲ 김 씨가 보낸 문자메시지(왼쪽)와 B씨가 보낸 내용 증명(오른쪽)

책쓰기 과정의 수강생이었던 B 씨는 한책협에서 출판 계약을 맺고 6백만 원 상당의 책 세트인 ‘100권 플랜’을 구매했다. 얼마 후 김태광 씨의 표절 기사를 본 B 씨는 9월 9일 김 씨에게 출판 계약과 ‘100권 플랜’에 대한 환불을 요구했고 김 씨는 이에 동의했다. B 씨에 따르면 『키워드 성공 사례집』이 포함된 책 100권을 김 씨에게 택배로 보냈으나 김 씨가 돌연 환불 의사를 철회하며 책을 돌려보냈다고 한다. 반송된 책을 확인해보니 그 중 『키워드 성공 사례집』 한 권만 빠져 있었다고 B 씨는 말했다. 김 씨가 『키워드 성공 사례집』을 은폐하려 한 게 아닌지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B 씨는 이에 대한 내용증명을 법무법인을 거쳐 한책협 측에 보냈지만, 지금까지 어떠한 답변도 받지 못했고, 현재 민·형사 소송을 준비 중이다.

1차 기사에 대한 비공개 해명문, 연락에는 묵묵부답

▲1차 보도에 대한 김태광 작가의 해명글. 출처: 한책협 네이버 공식 카페

지난 9월, 김 씨는 1차 보도에 대한 해명문을 회원들만 볼 수 있도록 한책협 카페에 비공개로 올렸다. 입수한 해명문에서 김 씨는 1차 보도와 관련해 저작권 전문가에게 자문했으나 표절이 아니라는 확답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또 이를 근거로 뉴스타파와 연수생에게 법적 대응에 들어갈 것이라 주장했지만, 그 후로 지금까지 뉴스타파 측에 어떠한 법적 대응이나 공식적인 해명을 하지 않고 있다.

▲ 카페 게시글에 올라온 김태광 작가의 말. 출처: 한책협 네이버 공식 카페

김태광 작가는 ‘책을 써야 성공한다’는 모토로 단기간에 책 쓰는 법을 가르쳐 왔다. 이 과정에서 표절로 이루어진 사례집을 판매함으로써 상당한 이익을 얻었을 뿐 아니라 사실상 수강생들까지 저작권법을 침해하게 했다. 이번 표절 사건이 김 씨의 작가 윤리 문제에 그치지 않는 이유다. 김 씨의 개인적 해명과 함께 한책협 차원의 해명이 필요하다.

취재진은 책쓰기 비법서에 담긴 표절에 대한 입장을 듣기 위해 김태광 작가와 한책협 측에 수차례 전화 통화를 시도하고 열 건이 넘는 이메일, 문자메시지를 보냈지만 답을 들을 수 없었다. 김 씨는 한책협 직원을 통해 법적 조치에 나서겠다는 문자메시지만을 남긴 채 어떠한 연락에도 응하지 않고 있다.

취재 : 변우리, 이두레, 이홍재, 최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