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 처벌법... “그 법엔 내 가족 없습니다”

2021년 01월 15일 16시 16분

지난 1월 8일, 중대재해 처벌법(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 법은 안전 관리 의무를 소홀히 해 산업재해, 시민재해를 야기한 책임자에 대해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더 이상 안전 관리 시스템 미비로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목숨을 잃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취지다. 2017년 4월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처음 이 법을 발의한 이후 4년 만이다.
오랜 숙원을 풀었지만 노동계의 표정은 밝지 못하다. 기대 속에 탄생한 법이지만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노동계가 요구했던 법 원안에는 실제 산업재해, 시민재해 사망자, 그리고 그들의 유가족들이 겪어야 했던 부조리와 애환이 녹아 있다. 하지만 돌아온 건 누더기가 된 법이다. 재계와 정부의 입김 속에 애초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이었던 약칭에서는 슬며시 '기업'이 빠졌다. 이른바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으로 불리는 2018년 산업안전보건법 전면 개정 과정을 되풀이했다는 한탄이 나온다.
▲ 노동계와 산재 사망 유가족들은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국회 앞에서 단식 농성을 진행했다
제자리걸음 중이던 이 법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것은 산업재해 사망자의 유가족들이었다. 영하 20도까지 떨어지는 엄동설한의 날씨 속에 한 달이 다 되도록 곡기를 끊었다. 고인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해달라고, 제대로 된 법을 만들어 달라고 국회의 옥색 지붕을 바라보며 수천 번 언 땅에 머리를 박았다.
뉴스타파는 이 법의 국회 통과를 앞두고 단식 투쟁 중이던 유가족을 만났다. 노동 현장의 죽음과 남겨진 자들의 막막함을 딛고 법 속에 담으려 했던 이들의 외침이 무엇이었는지 들었다.

"죽음을 당연하게 여기는 우리가 싫었어요"

2014년 1월, 고 김동준 군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마이스터고 재학생으로 CJ제일제당 진천공장에서 현장실습을 하고 있었다. 열흘 뒤면 졸업과 정규직 전환을 앞두고 있었다. 삶을 사랑하고 낙관적으로 미래를 그리던 아이였다고 한다. 여의도 국회 앞 농성 천막에서 어머니 강석경 씨는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아이의 사진을 어루만졌다.
▲ 2014년 현장실습 중 직장 내 괴롭힘으로 자살한 고 김동준 군의 어머니 강석경 씨. 
처음 아이의 죽음을 접했을 때 강 씨는 허물어졌다. 아이의 죽음은 부모 탓이라고, 속으로만 고통을 삼켰다. 하지만 하나 둘 드러나는 죽음의 이유가 그런 강 씨를 일으켜 세웠다. 
아이에게 현장 실습은 지옥이었다. 끊임없이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17살 아이는 쉴 틈 없이 움직였다. 다른 생산라인보다 출하량이 많아야 한다는 선배들의 눈총이 있었다. 컨베이어 벨트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 아이에게 폭언과 폭행이 쏟아졌다. 아이는 선생과 회사에 사실을 알리고 출구를 찾았다. 하지만 구원의 손길은 너무 더디게 찾아왔다.
회사는 아이의 죽음이 불행한 가정사 때문이라며 죽음을 덮으려 했다. 공장을 보겠다는 유가족의 길을 막았다. 아이의 장례식장에는 단 한명의 동료도 찾아오지 않았다. 유가족과 만나면 불이익이 있을 거라는 얘기가 돌았다고 한다. 컨베이어 벨트는 단 하루의 추모도 없이 계속 돌아갔다.
부모의 잘못 만이 아니었다고, 바람에 들썩이는 천막에서 강 씨는 힘주어 말했다. 대기업이 돈을 많이 버는 것은 컨베이어 벨트가 쉬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을 줄 세우고 경쟁시키기 때문에 컨베이어 벨트는 서지 않는다. 두 명이 할 일이라도 사람이 없으니 한 명이 해야 한다. 그러다 누군가 낙오해도 돌아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것이 당연하다고 말한다. 그게 싫어서 강 씨는 길 위로 나섰다.
아이의 죽음, 그리고 엄마의 싸움은 변화를 가져왔다. 언론을 통해 동준이의 죽음이 알려지자 공장장이 찾아와 고개를 숙였고 가해자들은 처벌받았다. 마이스터고 현장실습에 대한 감독이 강화됐고, 직장 내 괴롭힘이 사회적 의제로 떠올랐다. 동준이의 일은 현장실습생의 첫 산재 인정 사례로 남았다. 
노동계가 청원했던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원안에는 동준이의 죽음이 곳곳에 녹아있다. 직접적인 폭행 가해자는 처벌 받았지만, 정작 가혹한 노동환경을 만든 진짜 가해자들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다. 원안에는 조직문화 관리를 못해 중대 재해를 야기한 경영책임자에게 책임을 무겁게 묻도록 되어 있었다. 그간 산재로 인정되기 어려웠던 직장 내 괴롭힘을 경영자의 위험관리의무 가운데 하나로 포함시켰다. 
그러나 지난 8일 국회를 통과한 수정안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 같은 조직 문화 관리를 경영자의 위험 관리 의무 중 하나로 명시한 부분이 삭제됐다.

"꼬리자르기와 솜방망이 처벌, 또 누군가 죽을 수 있어요"

2019년 4월 고 김태규 씨는 공사 현장 엘리베이터 추락해 사망했다. 엘리베이터에는 당연히 있어야 할 안전바와 추락방지 시설이 없었다. 그날은 누나 김도현 씨가 카페의 임대 계약을 체결한 날이었다. 태규 씨는 누나의 카페에서 함께 일할 예정이었다.
그는 일용직 노동자였다. 군 전역 후 자기 밥벌이는 자신이 하겠다며 새벽같이 현장에 나갔다. 똘똘하고 손재주가 좋아 찾는 곳이 많았다. 췌장암으로 아버지를 여의고 난 뒤 누나는 그런 동생에게 많이 의지했다. 
동생의 죽음에 대해 회사가 내놓는 말은 하나부터 열까지 믿기 어려웠다. 엘리베이터 위에서 휴대전화를 만지다 추락했다고 설명했지만 정작 휴대전화에는 기스조차 없었다. 동생을 살리기 위해 사용했다는 심장 제세동기는 현장에서 찾을 수 없었다. 조사가 끝나지 않았는데 사고 현장인 엘리베이터는 멋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CCTV 속 현장 책임자는 사고 직후에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채 걷고 있었다. 그는 태연하게 동생을 '아들같이 여겼다'고 말했다. 
▲ 2019년 건설 현장 엘리베이터에서 추락사한 고 김태규 씨의 누나 김도현 씨(가장 우측) 
도현 씨에겐 동생의 죽음을 슬퍼할 여유가 없었다. 믿기 힘든 회사를 상대로 하나 하나 따져 묻고 책임자를 찾았다. 하지만 공사 현장의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오히려 동생의 죽음 때문에 공사가 지연된다는 핀잔만 돌아왔다. 가족들이 증거를 모아 내밀자 침묵하던 경찰이 움직였다. 현장 책임자 두 명이 기소되고 결국 실형을 받았다. 엘리베이터 업체와 하청업체는 500만 원 남짓한 벌금을 받았다. 
하지만 죽음을 불러온 공사 현장은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문 닫을 시간도 없이 하청을 몰아세운 발주처 A사는 수사선상조차 오르지 않았다. 그것은 똑같은 죽음이 언제든 생길 수 있다는 의미였다. 
안전을 책임질 수 있는 진짜 책임자가 변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도현 씨가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길 위로 나선 이유다.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원안은 복잡한 하도급 관계에 있더라도 원청 경영책임자가 중대재해에 대한 관리 의무를 함께 지도록 명시했다. 또 기업 책임자의 위법 사실을 규명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한 '인과관계의 추정' 조항을 두었다. 안전관리 의무를 위반해 발생한 중대재해가 빈발하거나 증거 은폐, 조사 방해를 저지른 기업의 경우, 사고의 인과 관계가 완벽히 입증되지 않더라도 경영책임자에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지난 8일 국회를 통과한 수정안에서는'인과 관계의 추정' 조항 역시 삭제됐다.  이와 함께 관리 감독 의무를 소홀히 한 공무원을 처벌할 수 있도록 한 '공무원 처벌' 조항도 삭제됐다.

"죽음에 차별을 만들려 하나?"

지난해 5월, 고 김재순 씨는 광주광역시 한 생활폐기물처리장에서 파쇄기 끼임 사고를 당해 사망했다. 파쇄기에 낀 이물질을 제거하려다 균형을 잃고 기계 속에 빨려 들어갔다. 현장엔 그를 지지해 줄 안전 난간도, 그를 지켜봐 줄 동료도 없었다. 
아버지 김선양 씨는 아들의 죽음이 믿기지 않았다. 20년 전 자신 또한 파쇄기에 팔을 잃을 뻔 했다. 산재도 유산이라고 되물림되는 거냐고, 그는 쓰게 말했다. 
▲ 2020년 생활폐기물 처리시설 파쇄기 끼임 사고로 사망한 고 김재순 씨의 아버지 김선양 씨. 
아들이 세상을 떠나고 찾은 작업 현장은 터무니 없이 열악했다. 회사는 아들이 '시키지 않은 일을 하다 사고를 당했다'고 말했다. 평소 폐기물을 처리한 후 물을 뿌리거나 마당을 쓰는 일이 아들의 주업무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CCTV 영상에는 안전 설비 하나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시설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폐기물과 씨름하고 있는 아들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업체 대표는 시종 돈 얘기를 꺼냈다. 자신은 영세업체 사업자일 뿐이라며 합의를 종용했다. 목숨을 잃게 만들고도 빠져나갈 궁리만 하는 대표를 용서할 수 없었다. 영세사업자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죽음에 차별을 만드는 정치권의 행태에 김씨도 길 위에 나섰다.
우리나라 산재 사망사고는 10건 중 8건이 50인 미만 사업장에 집중돼 있다.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원안은 사업장 규모와 상관없이 공포 6개월 후부터 전면 적용하도록 돼있다. 하루 6명 꼴로 산업재해 사망자가 발생하는 우리 산업 현장의 열악한 실태를 하루라도 빨리 바꿔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지난 8일 국회를 통과한 수정안에서는  50인 미만 사업장에 이 법을 적용하는 게 4년이나 유예됐다. 5인 미만 사업장은 아예 적용에서 제외됐다.

"돈 때문에 노동자 희생하지 않도록...방향을 제시한 이정표"

국회 논의 과정을 거치며  수정된 내용은 이 뿐만이 아니다.  당초 '대표 및 이사'로 못박아 두었던 경영 책임자 정의 부분은 안전 보건 담당자라는 표현으로 완화됐고, 처벌의 수위도 낮아져 당초 처벌의 하한을 두었던 부분이 상한 규정으로 변경됐다.  
▲ 국회 통과된 중대재해 처리법은 예외 조항이 추가되는 등 원안에 비해 후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유가족들은 "중대재해처벌법에는 내 가족의 이름이 없다"고 절규했다. 이번에 통과된 법으로는 고 김동준 씨처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이난 자살에 대해 기업에 책임을 물을 수 없고, 고 김태규 씨처럼 하청업체 소속의 노동자가 숨졌을 때 원청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을 수 없으며, 고 김재순 씨처럼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다 숨졌을 때 사업주를 처벌하는 건 4년 뒤에야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유가족들은 원안에 담겼던 간절한 바람들이 다시 살아날 수 있도록 정치권이 법 개정에 나서 줄 것을 호소했다.  
다만 새롭게 통과된 법에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운동본부 법률팀장을 지낸 손익찬 변호사는 이 법을 이정표에 비유했다. 유가족들의 뜻대로 법이 제정되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제정의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이 법이 이정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시작에 불과한 거죠. 위험을 만드는 사람에게 제대로 찾아서 책임을 지우는 방향, 그리고 어떤 경영 판단에 있어 사람의 생명을 희생시키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겠다고 설정 한 것이죠. 법의 내용이 후퇴하면서 너무 불가능하게 됐다 닫아놓으면 오히려 나중에 투쟁하며 열어갈 수 있는 장이 좁아지는 측면이 있습니다. 이번 법 제정에 빠진 내용들도 기존 산업안전보건법과 상호 보완하며 실무적으로는 싸워나갈 부분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손익찬 / 변호사,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운동본부 법률팀장
제작진
촬영정형민
편집정지성
CG정동우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