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유치원들의 협박

2019년 03월 08일 21시 50분

3월 신학기를 앞두고 사립유치원들의 폐원 신청이 잇따르면서 학부모들의 불편도 커지고 있다. 국회 국정감사에서 비리유치원 실태가 폭로된 지난해 10월 말부터 올해 2월 말까지 넉 달 동안 교육당국에 폐원을 신청한 사립유치원은 전국적으로 170곳이다. 이 가운데  2월 말 현재, 28개 사립유치원이 폐원 인가를 받았다.

비리유치원 실태 폭로 이후, 넉 달 동안 전국 170개 사립유치원 폐원 신청

사립유치원들은 원장의 건강상의 이유나 시설 노후화 등을 내세워 폐원을 신청하고 있다. 하지만 폐원 속내는 다르다. 유아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에 대한 반발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올해 3월부터 정원 200명 이상의 사립유치원에도 국가회계시스템인 에듀파인 도입이 의무화되고, 폐원을 하려면 학부모 2/3 이상의 동의를 받도록 유아교육법 시행령이 개정됐다. 공교육 기관으로서 사립유치원의 회계처리의 투명성을 높이자는 취지이지만, 사립유치원들은 폐원 신청을 통해 제도 도입을 반대하고 있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은)는 유아교육법 시행령과 에듀파인 도입은 ‘사립유치원이 죽이기’이고 사유재산 침해라고 주장한다.

명목상으론 건강이 안 좋아 폐원신청, 속내는 유치원 시행령 개정 때문

정원 120명 규모의 경기도 파주 해마루유치원 학부모들은 지난 1월 말부터 2월 초순까지 유치원이 폐원할 거라는 소문에 시달려야 했다. 지난 1월 28일 해마루유치원 원장은 파주교육지원청에 폐원인가 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증빙자료 미비 등으로 반려됐다. 학부모 동의서도 재원생의 타유치원 재배치 계획서도 없었기 때문이다. 유치원 원장은 목격자들 제작진과의 통화에서 “‘건강이 안 좋아 쉬고 싶어 유치원을 폐원하려 했다”고 답했다.

▲파주시의 한 아파트에 걸린 현수막

그러나 폐원 속내는 다르다. 학부모 권주희 씨는 유치원 원장으로부터 직접 “3월부터 시행되는 유아교육법 시행령 때문에 앞으로는 폐원을 할 수가 없으니 지금 폐원하려 한다"는 답변을 들었다. 또 “에듀파인 도입 때문에 폐원한다”는 답변을 들은 학부모도 있었다. 실제 지난 2월 10일에 원장이 학부모들에게 보낸 사과문에서 “너무나 가혹한 유치원 시행령이 떨어지고 3월 전에 폐원하지 않으면 폐원할 기회도 없다고 하여 본의 아니게 폐원 결정을 하였습니다"라고 털어놨다.

폐원신청을 거부당하자 해마루유치원 원장은 다시 운영하기로 마음을 바꿨다. 학부모들에게는 정상 운영을  약속했다. 그러나 너무나 쉽게 폐원을 추진하는 원장의 행태에 신뢰를 잃어버린 학부모들은 다른 유치원과 어린이집으로 아이들을 보냈다. 현재 해마루유치원에는 단 5명의 원생들과 원장, 그리고 1명의 교사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원장이 에듀파인 도입을 두려워했지만, 해마루유치원의 경우 정원이 120명으로, 올해 에듀파인 도입 대상이 아니었다. 결국 학부모 동의도 없이 섣부른 폐원 신청으로 아이들의 피해만 키운 셈이다.

황당한 진급신청서에 모욕당한 학부모... 원장은 정신병원 입원 중

▲울산 연세유치원

울산 연세유치원의 학부모들은 지난해 11월 황당한 진급신청서를 받았다. 올해부터는 더이상 등하원 차량도 운행하지 않고 급식도 없다. 방과후 수업도 일체없다는 내용이었다. 사실상 유치원 운영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 꼼수폐원 의혹마저 제기된다.

등하원 차량과 급식제공도 없다는 진급신청서 학부모들에게 보내  

특히 진급신청서 말미에는 “학부모 부담금 없이 (공짜)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국공립 유치원에 지원하시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당당한 혜택을 누리시기 바랍니다"라는 조롱조의 문장도 있었다. 학부모들은 황당함 속에서 모욕감을 느꼈다. 갑작스런 폐원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보는 학부모들의 전화에 유치원 측은 “원장님이 정신병원에 입원 중이라 답변할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2018년 11월 6일 학부모들에게 전달된 울산 연세유치원의 1차 진급신청서

울산 연세유치원 원장은 연세유치원과 연세2유치원 두 곳을 설립 운영해왔다.  연세유치원에서는 원장을 겸하고 있고, 연세2유치원에서는 고용 원장을 두고 운영을 하고 있다. 그런데 2017년 울산교육청의 감사에서 연세2유치원의 회계비리가 적발됐다. 설립자 개인 보험료를 유치원 운영비로 납부하고 법적으로 금지된 시설사용료를 적립했고, 직원들의 수당을 부정 지급하는 등 비리가 드러난 것이다. 2천 6백여 만 원을 환수 조치당했다.

공공성 강화를 위한 정책 정책, “비리유치원 퇴출을 밀어붙이는 행위”

연세유치원 원장은 작년 11월 학부모들에게 보낸 진급신청서에서 ‘회계투명성을 강조하는 정부의 유치원 공공성 강화 정책은 “비리유치원 퇴출을 밀어붙이는” 행위이며 사립유치원 수를 줄이는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이러한 “정부의 방침에 맞서지 못하고 굴복하여" 2019년 2월 28일부로 유치원을 폐원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또 연세유치원은 한유총이 배포한 정부 정책 비판 만화를 아이들을 통해 각 가정에 보내기도 했다. 유치원 공공성 강화를 위한 정부 정책에 노골적으로 반감을 표시한 것이다.

학부모들은 연세유치원 측에 여러 차례 정상화를 촉구했다. 원장이 장기 입원 중이어서 원장의 남편이 대리인으로 학부모와의 대화에 나섰다. 원장의 남편은 “유치원을 운영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 폐원을 하고 싶으나 학부모들이 폐원을 하지 말라고 요구하니, 특별활동과 같은 다양한 교육서비스 없이 누리과정과 체육활동만으로 운영하겠다"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유치원 측의 무성의와 배짱 대응에 지친 학부모들은 2월이 되자 아이들을 다른 유치원으로 보내야 했다. 현재 울산 연세유치원의 신입 원아 모집인원은 0명이다. 진급 의사를 밝힌 2명은 환불 조치를 받았다. 한때 정원 200명 규모의 대형 유치원이자 좋은 교육 프로그램으로 소문났던 울산 연세유치원은 하루아침에 교사와 원생이 없는 유령 유치원이 되었다.

학부모들 “먹튀 폐원” 막기 위해, 교육청에 감사 청구

학부모들은 이를 ‘꼼수 폐원’으로 본다. 또 ‘먹튀 폐원’이 아닐까 의심하고 있다. 학부모 대표를 지낸 이정희 씨는 연간 50만 원을 납부했던 특별활동비가 적절하게 쓰였는지에 대한 철저한 감사를 관할 교육청에 요청했다. 울산광역시 교육청은 연세유치원에 대한 감사에 들어갔다. 시민단체 ‘정치하는 엄마들'의 장하나 활동가는 비리유치원들의 ‘먹튀 폐원'을 방지하기 위해서 폐원인가 심사를 할 때, 종합감사와 세무조사를 실시해서 회계 부정 여부를 철저히 밝히고, 부정 집행한 정부 지원금과 교육비에 대해서는 정부와 학부모에게 환급하도록 제도화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건강 문제, 건물 노후화” 이유로 일방 폐원에 맞선 학부모와 교사들

경기도 하남시 예원유치원은 아이들에게 ‘물죽’을 제공했다는 지난해 언론 보도로 인해 급식비리의 대명사처럼 불려왔던 곳이다. 급식비리 뿐 아니라 방과후과정 지원금 부당수령 등 여러 건의 비리와 부정이 드러났다. 특히 설립자 자신은 사무직원과 차량 운전사로 등록했고, 자격이 없는데도 설립자 아내는 교사, 며느리는 조리사와 행정업무를 맡겼다. 설립자 일가가 유치원을 장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감사 이후 관할 교육청으로부터 경고 조치와 함께  4천 4백여 만 원의 환수 조치를 받았다.

▲2018년 하남 예원유치원의 지도점검 및 감사 결과 내용

이러한 비리는 고용 원장으로 2018년 2월 부임한 임미화 원장의 내부고발로 드러났다. 임미화 원장은 부임 2달 후인 지난해 4월 예원유치원의 내부 비리를 교육청에 고발했고 학부모들과 함께 개혁 작업을 진행했다. 그러자 설립자는 2018년 9월 일방적으로 유치원 폐원을 선언했다. 학부모들에게 전달한 폐원 명목은 설립자 자신의 건강 문제와 건물 노후화로 인한 누수 문제였다.

원장과 교사들이 유치원을 잘 운영하고 있는 시점에 유치원 운영에 관여하지 않는 설립자 본인의 건강 문제가 폐원 이유가 될 수 있다고 받아들이는 학부모들은 없었다. 누수 역시 수업이나 활동을 못할 정도로 심각한 것도 아니었다. 경기도광주하남교육지원청에서도 예원유치원 설립자의 폐원신청을 두 차례 반려했다. 유치원 설립자는 지난해 12월 신입 원아모집 설명회를 앞두고 돌연 유치원을 폐쇄해 폐원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설립자의 폐원 선언 이후, 예원유치원의 학부모들은 무단 폐원을 막기 위해 청와대와 교육당국에 청원과 민원을 냈다. 그리고 예원유치원을 새롭게 이어갈 수 있도록 자구책 마련에도 나섰다. 당시 교육부는 ‘부모 협동형 유치원'을 설립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안을 마련 중이었다. 학부모들이 협동조합을 결성하면 지자체에서 적당한 건물을 빌려주고 공공형 유치원으로 운영하도록 지원한다는 내용이었다.  

예원유치원의 학부모와 교사들은 한 줄기 빛을 만난 것 같았다. 교육청과 하남시를 상대로 ‘부모협동형 유치원'을 위한 공간을 임대해 주기를 요청했다. 그러나 교육청은 하남시가 제공하라고 했고 하남시는 적절한 공간이 없다고 밝혔다. 학부모들은 하남시 관내의 모든 공공건물과 토지에 대한 정보를 분석했다. 유치원 설립 인가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곳은 찾기 어려웠다. 부모협동 유치원으로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함께 가고자 했던 꿈은 물거품이 됐다.

▲하남 예원유치원의 임미화 원장과 도유진 학부모 대표가 지난 2월 20일 마지막 수료식에서 눈물의 포옹을 하고 있다.

이후 부모들은 아이들만이라도 같이 다닐 수 있도록 인근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에 집단 편입을 요청했다. 교육청은 그런 특혜를 줄 수 없다고 했다. 집단 편입이 된다 해도, 차량 운행을 지원하기 어렵다는 통보를 받았다. 해가 바뀌고 올해 1월이 되어 하남교육지원청은 예원유치원 인근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에 학급을 증설해서 예원유치원 아이들을 받기로 했다. 등·하원 차량 운행과 돌봄시간 연장, 방학기간 1주 운영 등 사립유치원 수준의 운영 방안을 학부모들에게 약속했다.

2월 20일 눈물의 수료식을 끝으로 예원유치원은 문을 닫았고 학부모들은 기대 반 우려 반 속에 병설유치원으로의 첫 등원을 기다렸다. 그런데 개학 나흘 전인 2월 28일에 학교 측으로 하원 차량을 제공할 수 없다는 연락이 왔다. 직장생활을 하는 도유진 씨는 하원 차량이 제공되지 않는 유치원에 아이를 보낼 수 없다. 도 씨를 포함한 여러 엄마들은 병설유치원행을 포기하고 아이를 보낼 곳을 새롭게 알아봐야 했다. 결국 함께 가고자 애썼던 예원유치원의 아이들과 교사들, 학부모들은 설립자의 무단 폐원을 막지 못했고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설립자의 무단 폐원 선언은 사립유치원의 협박장이다. 학부모들은 폐원을 막아보려 애쓰지만 역부족이다. 예원유치원의 학부모와 교사들처럼 함께 갈 수 있는 대안을 만들어보려는 노력도 실패로 끝났다. 2019년 유치원 교육현장의 모습이다.

우리 아이에서 끝이 났으면 좋겠어요. 더 이상 다른 친구들이 피해 보지 않고 여기에서 잘 법을 잘 개정해주셔서 이렇게 갑자기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 아이들이 볼 수 있는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게 그렇게 잘 지나가는 과도기가 될 수 있게.

울산 연세유치원 학부모 이정희 씨

취재작가 김지음
글 구성 김근라
연출 남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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