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충기문자 6부] 특혜 논란 신라호텔 증축에도 장충기 개입...이부진, "덕분에 통과"

2018년 05월 05일 21시 41분

삼성 이건희 회장의 장녀인 호텔신라 이부진 사장이 집요하게 추진했던 서울 남산 자락 한옥호텔 건립에도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사장이 개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장충기 문자에서 호텔신라의 한옥호텔이 허가되는 과정에서 삼성이 그룹 차원의 로비를 한 정황이 발견됐다.

이부진, “자체 역량으로 어려웠던 일, 덕분에 잘 통과돼” 장충기에 문자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지난 2011년부터 추진해 온 서울 장충동 한옥호텔 건립안은 ‘재벌특혜’ 라는 비판 속에서도 지난 2016년 3월 2일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호텔신라는 오는 2022년까지 현재의 지상 2층, 지하 3층 규모의 한옥호텔을 신축하고, 기존 면세점을 지상 2층, 지하 4층 규모로 확장할 예정이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장충기 문자에서는 한옥호텔 허가 과정에 삼성이 그룹차원의 로비를 벌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호텔신라 이부진 사장이 한옥호텔 건립안이 통과된 바로 다음 날인 2016년 3월 3일, 장충기 사장에 보낸 문자 내용이 그것이다.

“호텔신라 자체 역량으로는 어려웠던 일”에 장충기가 도움을 줘서 통과됐다는 문자의 내용. 장충기는 삼성 미래전략실 소속으로 삼성그룹의 대관업무, 즉 대외 로비를 총괄했던 사람이다. 장충기는 당시 호텔신라 한옥호텔 건에 어떤 도움을 줬던 것일까?

자연경관지구 남산 자락에 한옥호텔 허가되기까지 ‘의혹 투성이’

호텔신라의 한옥호텔 건축 계획이 처음 추진됐던 건 2011년이다. 그때부터 서울시 심의를 통과한 2016년까지 한옥호텔 건립이 허가되기까지 각종 의혹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가장 먼저 서울시 도시계획 조례가 개정되는 과정에서 특혜 논란이 일었다.

당초 남산 자락에 위치한 한옥호텔 부지는 1983년부터 자연경관지구로 지정돼 개발이 엄격하게 제한된 곳이었다. 새로운 숙박시설은 지을 수 없고 기존 숙박시설도 일부 수리만 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10년과 2011년,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통과하면 호텔 신축과 증축이 가능하도록 서울시 도시계획조례가 개정됐다.

당시 한나라당 시의원이 다수당이던 7대 서울시의회는 임기 마지막날인 2010년 6월 30일, “자연경관지구 내 너비 25m 이상 도로변에 위치하는 지역에 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받아 ‘관광숙박시설’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한다”는 개정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이 조례의 혜택이 적용되는 곳은 신라호텔 등 일부 고급호텔 뿐이라 특혜 의혹이 불거졌다.

당시 민주당 서울시당은 “재벌특혜”라며 비판했다. 이후 민주당이 다수당을 차지한 시의회에선 자연경관지구 내 숙박시설을 지을 수 있게 허용한 조항을 ‘삭제’하는 조례안이 발의됐다. 그러나 이 조례안은 공방 끝에 무기명 투표를 통해 끝내 부결됐다. 대신 기존의 조례에서 ‘숙박시설’을 ‘한국전통호텔’로 제한하는 수정안이 통과됐다. 당초 한나라당이 통과시킨 조례안을 삭제하자고 주장했던 민주당 시의원들이 한옥호텔의 경우엔 증축할 수 있도록 입장을 바꾸자 한 민주당 시의원은 단식농성까지 벌였다. 당시 단식농성을 벌였던 김연선 전 시의원은 “여전히 한옥호텔 통과 과정을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연경관지구는 숙박시설도 못 짓고 용도상 그리고 건폐율(30%)도 더 못 늘립니다. 그게 그때 당시에 법이에요. 그런데 그런 원래의 취지를 반하게끔 신라호텔만 해당하도록 딱 찍어서 그 구역만 서울시 조례가 개정됐습니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건 민주당 서울시당에서 호텔 증축은 우리 당의 정체성과 맞지 않고, 재벌 특혜라고 보도자료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의원들이 밀어 붙였다는 거예요.

김연선 / 전 서울시의원(더불어민주당)

자연경관지구에 한옥호텔은 지을 수 있도록 조례가 개정되자마자 호텔신라는 2011년 7월 “현재 30% 이하인 건폐율을 40%로, 높이 제한을 12m(3층)에서 16m(4층)로 각각 완화해 달라”는 호텔과 면세점 증축 계획을 서울 중구청에 제출했다. 중구청은 이 계획안을 검토해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에 심의를 요청했고, 서울시는 네 차례 반려와 보류 끝에 건폐율을 당초 30%에서 36.16%로 완화하는 증축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면세점 늘리려는 꼼수” 비판에도 도시계획위 심의 통과

▲장충체육관과 한양도성 성곽 사이 호텔신라의 증축 호텔 부설 주차장 공사가 진행 중이다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통과 과정도 석연찮은 부분이 많다. 한옥호텔 증축안은  무늬는 전통호텔이지만, 속내는 호텔신라의 면세점 확장을 위한 ‘꼼수’라는 비판이 많았다. 현재 신라호텔에서 호텔과 면세점 비율은 47.6% 대 52.4%, 그러나 호텔이 증축되면 42.1% 대 57.9%의 비율이 된다. 전통호텔을 짓겠다고 해서 규제를 완화해 줬는데 오히려 호텔 비율은 줄고 면세점 비율이 늘어나게 된 것이다. 면세점의  전체 규모도 지금보다 40%가량 대폭 늘어난다. 이 때문에 당시 도시계획위에선 면세점 규모에 대한 비판이 많았다.

당시 한옥호텔에 대해선 찬성했지만, 중앙에 옮겨가는 면세점이 규모가 너무 크다는 점에 대해서 반대를 좀 했습니다. 면세점은 아주 제한된 관광객들이 버스를 타고 단체로 와서 그냥 버스를 타고 출발하는 것이기 때문에 지역이나 공동체에 대해서는 아무 효과가 없고 그 기업 혹은 업주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것이거든요. 당시 통과된 안건 제목이 '신라호텔 부지 내 한국 전통호텔 건립안'으로 되어 있는데, 그런데 저는 '한국 전통호텔 건립안 및 면세점 확장건'이라고 안건을 바꿨어야 되지 않나라고 주장을 했었어요.

이경훈 / 국민대 건축학부 교수(전 서울시 도시계획위원)

결국 증축안은 2016년 1월 도시계획위에서 보류 판정을 받았고, 호텔신라는 교통계획 등을 보완했다며 수정안을 다시 제출했다. 하지만 논란의 핵심 중 하나였던 면세점 규모는 그대로 유지했다. 안건은 격론 끝에 소위원회를 거쳐 도시계획위원회 전체회의에 다시 올라갔고, 2016년 3월2일 결국 통과됐다. 당시 소위원회에 참여했던 한 위원은 “호텔신라가 면세점을 확장하려고 한옥호텔을 짓는다는 속내는 짐작이 갔지만, 현행법상 면세점을 지하에 개발하는 것은 용적률에 포함되지 않아 계속 보류시킬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경훈 교수는 “도시계획위원회에서는 과도한 지하개발을 제한할 필요가 있고, 실제로 제한한 적도 있다”고 반박했다.

또 다른 이상한 점은 당시 면세점 확장을 강하게 비판했던 위원은 아예 소위원회에 참여할  기회조차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도시계획위 소위원회는 30명의 도시계획위원 중 안건 심의에 참여했던 위원 5~9명으로 구성된다. 당시 안건 심의에도 참여하고 면세점 확장을 비판했던 이경훈 국민대 건축학부 교수는 “소수의 반대의견을 피력한 사람이라서 보통 소위원회에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인데 참여하라는 연락을 못 받아서 소위에 참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삼성 그룹에서 도시계획위 위원에 “잘 봐달라” 개별 접촉

여기에 익명을 요구한 당시 한 도시계획 위원은 심의 과정에서 삼성그룹 차원의 개별 접촉도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이 도시계획위원은 "구체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삼성 그룹에서 개별적으로 찾아와 전통호텔의 설계와 구체적인 계획안, 그 다음에 호텔신라가 얼마나 양보했는지 등에 대해서 따로 설명이 있었다”고 밝혔다. 또 다른 도시계획위원도 “이 사업과 관련된 사람이 찾아와서 잘 봐달라는 취지로 사전 설명을 하고 간 적이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삼성이 한옥호텔 증축건 통과를 위해 당시 도시계획위원들을 상대로 로비를 벌였을 가능성이 커 보이는 이유이다.

도시계획위원은 서울시 도시계획을 총괄하는 행정2부시장이 위원장을 맡고, 서울시 공무원과 서울시의원, 각계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다. 취재진은 당시 도시계획위원장이었던 이제원 행정2부시장에게 심의 과정에 대해 물었다. 이 전 부시장은 “당시 일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며 서울시로 답변을 돌렸다.

서울시는 면세점 규모가 줄지 않았는데도 심의를 통과시킨 것이 적절했는지에 대한 질문에  “삼성의 로비나 개별접촉은 없었다”며 “한옥호텔 건은 도계위와 관련 전문가의 논의가 상당기간 진행되는 과정에서 높이, 층수, 건폐율, 공공성 등을 고려해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으로 판단돼 결정된 사항”이라고 주장했다.

경쟁 치열했던 서울 시내 면세점 사업에도 장충기 개입

장충기가 호텔신라의 사업 확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것으로 보이는 문자는 또 있었다.

2015년 5월은 관세청이 15년 만에 허용한 서울시내 면세점 사업권을 두고 대기업들이 각축을 벌였던 시기다. 심사 기준을 두고 논란이 많았지만, 장충기가 이부진 사장에게 문자를 보낸 두달 뒤, 호텔 신라는 면세점 사업자로 최종 선정됐다. 장충기가 그룹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이부진에게 약속한 노력은 무엇이었을까?

뉴스타파는 장충기와 주고 받은 문자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지, 장충기로부터 어떤 도움을 받았는 지 등을 묻기 위해 이부진 사장을 찾아갔지만 만날 수 없었다. 대신 호텔신라 측은 “드릴 말씀이 없다”는 답변만 보내왔다.

취재 : 한상진 송원근 조현미 박경현 강민수 홍여진
데이터 : 최윤원
영상촬영 : 정형민 최형석 김남범 신영철 오준식
편집 : 윤석민
CG : 정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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