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 산불 구호물품 박스째 방치..."옷 처음 봤다"

2022년 05월 13일 10시 01분

지난 10일 경북 울진 소재 한 체육관. 산불 이후 각지에서 이재민들에게 보낸 의류 구호 물품들이 주인을 찾지 못하고 쌓여있다. 이재민들은 화재 이후 두 달 만에 이 물품들을 처음 봤다고 한다.
역대 최대 피해를 낳은 경북 울진 산불은 지난 3월 4일 시작됐다. 불은 같은 달 13일에야 최종 진화됐다. 뉴스타파는 5월 9일 산불 피해 복구 상황을 취재하기 위해 울진을 찾았다. 화재 이후 두 달가량 지난 시점이다. 불길에 삶의 터전을 잃은 이재민들은 대부분 원룸식 임시 컨테이너 숙소에 머물고 있었다. 
지난 10일, 몇몇 이재민이 울진의 한 체육관에 모였다. 이재민 피해 복구를 위해 단체를 꾸린 사람들이다. '구호 물품을 배분'하기 위해 울진군청에서 이들을 불렀다. 이재민에게 나눠주지 못한 물품들을 어떻게 배분할지를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체육관에 쌓여있는 물품은 주로 티셔츠, 점퍼, 패딩 등 의류와 가방, 신발 등이었다. 
산불이 시작된 3월 초는 쌀쌀할 때라 패딩과 코트 등 겨울옷도 구호 물품으로 많이 왔다. 하지만 이런 옷들은 이재민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체육관 안에 그대로 쌓여있었다. 이제 날이 더워져 계절에 맞는 옷이 한 벌이라도 더 필요한 이재민에게 이제 두꺼운 옷은 당장은 쓸모없게 됐다.  
 박스마다 쌓여있는 옷가지들. 전국 각지에서 이재민들을 위해 보낸 구호 물품들이다.
뜯지도 않고 쌓여있는 의류들. 주인을 찾아가지 못해 방치되어 있었다.
귀농 후 20년 동안 살던 집과 생계 수단을 모두 잃은 이재민 손미옥 씨는 산더미같이 쌓여있는 옷을 화재 이후 두 달 만인 이날 처음 봤다. 그동안 티셔츠 2개, 얇은 패딩 점퍼 1개, 그리고 속옷과 양말 등만 지원받았다고 했다. 나머지 옷은 사 입었다. 이재민들은 화재 당시 급하게 대피했기 때문에 당시 입고 있던 옷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울진 산불 피해 이재민인 장도영·손미옥 씨. 장도영 씨는 울진 산불피해 이재민 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런 구호 물품 의류들을 처음 봤단 말입니다. 이거를 빨리 처리를 해야될 거 아닙니까. 이거 구호품 들어온 물건들인데… 그래서 결국 군청에서 포장을 해 놓으시면 우리가 직접 배달하겠다 결론을 내고 왔습니다. 우리가 얘기하는 것도 구호품 들어온 내역서 다 밝혀라 이런 얘기입니다. 이렇게 쌓아놓기만 하면… 우리가 (이재민들한테) 돌리면 하루면 다 끝나요." 울진 산불 피해 이재민 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장도영 씨가 말했다. 
"이걸 이제 주면 어떻게 입겠어요?" 쌓여있는 겨울옷을 보며 또 다른 이재민 정태광 씨가 한탄했다. 
"물품들이 많이 들어와서 엄청나게 쌓여있다는 얘기는 들어서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직접 본 건 처음이죠." 울진 산불 피해 세입자 단체 총무를 맡고 있는 김옥수 씨가 말했다. 
울진으로 옷을 보낸 기업 중 하나인 이랜드 그룹 측은 구호 물품이 아직 이재민들에게 전달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이랜드그룹 관계자는 "옷을 보낸 것은 3월 중순이다. 뭔가 현장에서 배분이 늦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는 했는데 아직도 이재민들에게 옷이 도착하지 않은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손미옥 씨가 11일 발견한 창고에 쌓여있는 생수들. 이재민들은 최근에는 생수를 각자 사서 마시고 있었다고 한다.
다음날인 11일, 이재민들은 창고에 가득 쌓여있는 생필품 구호 물품들도 확인했다. 수천 통의 생수가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 
"(최근에는) 물이 없어서 이재민들이 다 물을 사 먹었어요. 그런데 이걸 이렇게 다 쌓아놓고…" 손 씨는 기가 막히다고 말했다. 
다른 산불 피해자 장규동 씨 역시 생수를 사 먹는다고 했다. 산불로 평생 일궈온 사업장을 한순간에 잃어버린 장 씨는 취재진에게 생수를 건네며 "물도 다 사 먹는다"고 말했었다. 산불 초반에 쌀과 컵라면 정도 온 것이 군청에서 지급한 구호 물품의 전부라고 했다. 정작 이재민들에게 돌아가야 할 생수는 이렇게 켜켜이 쌓여있었다. 
이재민 구호 물품으로 들어온 김치 냉장고 여러 대. 이재민들은 이 김치 냉장고가 구호 물품으로 들어온 것을 몰랐다고 한다. 
김치냉장고 같은 구호 물품도 왔지만 이재민들은 이런 물건이 있는지 조차를 몰랐다. 이재민 김옥수 씨는 "우리는 김치냉장고 있는 것도 몰랐다. 그런 게 있으면 얘기를 해야지. 여기(임시 숙소) 들어와서 산 지가 얼마야. 사람들은 김치냉장고를 살 거 아니냐"고 말했다. 
"(김치냉장고 같은 게) 있는지도 몰랐죠. 창고에 가서 보니 기가 차더라니까." 이재민 손미옥 씨가 말했다. 
울진 산불 피해 이재민인 육한태 씨. 울진군청에서 지원받은 티셔츠와 지인에게 얻어 입은 바지를 입고 현장 작업화인 신발을 신고 있다. 좋은 선글라스를 지인에게 얻었다며 웃었다. 
울진군청 복지정책과 측은 뉴스타파와 전화 통화에서 "임시주택이나 다른 급한 것들을 먼저 처리하느라고 구호 물품 배분이 늦어졌다. 복지정책과 15명이 근무하는데 인력이 부족해 당장 급한 것, 먹는 것들 이런 걸 위주로 보내드렸다. 이제 (이재민들) 임시주택이 정리돼 이제부터 보내드리기 시작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구호 물품들은 우리 군 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마찬가지인데, 몇 달을 간다"며 "어떤 데는 (배부하는 데) 6개월까지 갔다"고 주장했다.
제작진
영상 취재이상찬
편집정지성
디자인이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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