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를 넘는 '2차 가해'... 대책도 의지도 없는 정부

2023년 01월 03일 17시 00분

'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와 유가족들을 향한 2차 가해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지만 정부는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다. 의지도 없어 보인다. "정부가 나서 2차 가해를 막아 달라"는 희생자 유가족들의 요구에도 정부는 묵묵부답이다.  

매뉴얼에 있는 '2차 피해' 방지 의무 외면한 중대본

뉴스타파는 더불어민주당 천준호 의원실을 통해 행정안전부(이하 행안부)의 '기능별 재난대응 활동 계획' 매뉴얼을 입수했다. 매뉴얼에는 재난의 종류에 따라 어떻게 상황 관리를 해야 하는지, 각 기관과 부처는 무슨 역할을 해야 하는지 담겨 있다.
매뉴얼에는 재난 수습 과정의 핵심 업무 중 하나로 'SNS 등에서 퍼지는 유언비어에 대한 모니터링'이 적시돼 있다. '중앙사고수습본부가 2차 피해를 막기 위한 정보 배포를 해야 한다'고도 돼 있다. 중앙사고수습본부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산하의 재난 대응 기구다. 이태원 참사처럼 중앙사고수습본부가 따로 설치되지 않은 경우 중대본이 역할을 대신하도록 되어 있다. 
이런 매뉴얼에 따라 사회적 재난인 '코로나19'가 심각하던 2021년 중대본은 가짜뉴스에 대응하는 보도자료를 여럿 배포했고, 중대본부장인 국무총리가 나서 가짜뉴스에 대한 엄정 대응 방침을 내놓기도 했다. 
행정안전부의 '기능별 재난대응 활동계획' 매뉴얼. 재난 대응 기구가 '2차 피해 방지를 위한 정보를 배포해야 한다'고 적혀 있다. 
그러나 같은 사회적 재난인 이태원 참사에 대처하는 중대본의 모습은 이전과 달랐다. 참사 직후인 10월 31일, 국무총리가 중대본 회의에서 혐오 발언과 자극적 영상 유포 자제를 요청한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한 일이 없다. 2차 가해 문제를 다룬 대책도 세우지 않았다. 재난 대응 매뉴얼이 유명무실해진 것이다.  

중대본, 인권위 '2차 피해 방지' 협조 요청도 무시

심지어 중대본은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의 '2차 피해 문제 대응' 요청도 묵살한 것으로 드러났다.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인권위의 '10.29.(이태원) 참사 희생자 등에 대한 혐오 표현 대응 계획(안)'에 따르면, 인권위는 혐오 표현 피해자에 대한 대응 마련을 촉구하기 위해 중대본에 '참사 피해자 및 관계자 관련 2차 피해 관리 여부 및 관련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또 "재난 대응 과정의 투명한 공개와 정확한 정보 전달로 혐오 표현이 생산·유통되지 않도록 노력해 줄 것"을 요청했다. 지난 11월 7일 인권위는 중대본부장인 국무총리가 있는 국무조정실과 중대본 차장인 행안부 장관 측에 각각 협조요청 공문을 보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작성한 '10.29.(이태원) 참사 희생자 등에 대한 혐오 표현 대응 계획(안)' 중 일부. '중대본에 혐오 표현 피해자에 대한 대응 마련을 촉구했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국무조정실은 인권위 요청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행안부의 답변은 부실했다. 인권위 관계자는 "행안부가 전화로 답했다. 2차 피해 관련 자료는 따로 없고, 중대본 일일상황보고서에 있는 내용으로 자료 제출을 대신한다는 내용이었다"고 말했다. 
뉴스타파는 중대본이 이태원 참사 직후인 지난해 10월 30일부터 작성한 100여 개의 일일상황보고서를 모두 살펴봤다. 하지만 일일상황보고서에는 2차 피해 관련 내용이 거의 없었다. 중대본 차원에서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어떤 문제를 논의했다거나 어떤 대책을 추진했는지에 대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었다. 경찰이 이태원 참사와 관련된 악의적 게시물을 얼마나 적발했는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삭제 요청을 한 게시물은 몇 개인지를 확인한 정도였다. 경찰에 따르면, 이태원 참사 이후 지난 두 달 간 경찰이 적발한 2차 가해 행위는 전국적으로 36건이었다. 
인권위 관계자는 "재난 계획을 세울 때 2차 피해 문제를 빼놓지 말고, 나아가 2차 피해 해결의 콘트롤타워로서 역할을 해 달라는 취지로 중대본에 협조를 요청했다. 하지만 중대본은 2차 피해 문제를 주요 사안으로 보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이태원 참사 대응 TF' 소속인 오민애 변호사는 "정부가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큰 책임 주체이고, 진상규명의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는 상황이다보니 2차 피해 문제에 대한 입장을 적극적으로 밝히는 걸 꺼리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온·오프라인에서 전방위적으로 벌어지는 '2차 가해'

결국 행안부의 재난 대응 매뉴얼도, 인권위의 요청도 따르지 않았던 중대본은 2차 가해를 사실상 방관만 하다 지난해 12월 2일 해체됐다. 유가족과 희생자들을 향한 혐오와 조롱은 시간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온라인상의 댓글과 영상을 통한 2차 가해를 넘어, 이제는 극우단체가 직접 나서 이태원에 설치된 희생자 분향소 근처에 추모 방해 선전물까지 내걸고 있다. '신자유연대'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분향소 바로 옆으로 매일 집회 신고를 내고, 2차 가해 집회를 열고 있다. 유가족과 분향소 봉사자들을 상대로 욕설, 막말, 혐오 발언을 내뱉는다. 희생자들의 영정 사진에 욕설과 희롱을 하기도 한다. '신자유연대'의 2차 가해는 지난해 12월 14일 분향소 설치 이후 지금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극우단체 '신자유연대'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 분향소 인근에 '추모 방해 선전물'을 내걸었다.  
'신자유연대' 관계자가 이태원 참사 희생자 분향소를 지나는 추모객과 봉사자, 유가족들을 촬영하고 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분향소 바로 옆에서 집회를 열고 있는 '신자유연대'(오른쪽). 경찰이 울타리를 치고 '신자유연대'의 집회를 관리하고 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이주영 씨의 아버지이자 '이태원 참사 유가족 협의회' 부대표인 이정민 씨는 "가장 심각한 것은 분향소 옆에 있는 '신자유연대'다. 유가족들을 비방하고 희롱하고 조롱한다. 이건 2차 가해를 넘어서 인권 유린이다. 지난해 12월 30일 경에는 유가족 협의회 대표 얼굴을 붙인 현수막을 내걸고 비방했다. 선을 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20일, 유가족들은 여당인 국민의힘과 면담에서 2차 가해의 심각성을 호소하기도 했다. 참사 희생자 고 이지한 씨 아버지이자 유가족 협의회 대표인 이종철 씨는 당시 면담에서 "지한이 엄마한테 막말을 해서 지한이 엄마가 기절했습니다"라고 말했다. 

2차 가해 방치하는 정부·여당의 '조직적 무책임'

하지만 정부는 중대본 해체 뒤에도 여전히 팔짱만 끼고 있다. 뉴스타파는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실을 통해 국무총리실과 행안부가 2차 가해 문제와 관련해 어떤 대책을 세우고, 어떤 문서를 생산했는지 물었다. 국무총리실은 지난해 12월 21일 보낸 답변서에서 "2차 가해 문제는 중대본에서 논의하고, 경찰청이 대응하고 있다"고 답했다. 지난해 12월 2일 해체된 중대본에 책임을 떠넘기는 황당한 답변이었다. 
행안부는 아무 일도 안 하고 있었다. 행안부는 답변서에서 "이태원 참사 피해자 및 유가족에 대한 2차 피해 관련 생산·접수·발송한 문건이 없다"고 답했다. 지난해 11월 30일 유가족들을 적극 지원하겠다며 '이태원 참사 행안부 지원단'(이하 이태원 지원단) 까지 만들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태원 지원단의 주요 기능 중 하나는 '유가족 요구사항 취합·검토 및 사후조치'다. 
행안부 '이태원 지원단' 관계자는 "2차 피해 문제는 우리가 직접적으로 할 수 있는 사항은 아니다. (경찰이나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 해당 부처에 관련 권한이 있다. 그런 곳에 협조 요청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행안부는 협조 요청을 한 근거는 제시하지 못했다. 
취재진은 여당인 국민의힘에도 연락했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20일 유가족 면담에서 "곧 이태원 분향소를 방문할 것이고, 분향소 옆에서 2차 가해 집회를 하는 극우단체인 신자유연대를 설득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국민의힘 이만희 의원(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여당 간사)은 "기회가 되는대로 분향소를 방문하도록 하겠다. (신자유연대가 집회 장소를 옮기도록) 설득해 보겠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현재(1월 3일)까지 이태원 분향소를 방문하지 않았고, 2차 가해 집회를 주도하는 '신자유연대'와도 접촉한 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민의힘 원내대표실 관계자는 "분향소 일정 관련해서는 따로 들은 게 없다"고 말했다. '신자유연대' 관계자도 "국민의힘으로부터 연락받은 적 없다"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에게 했던 국민의힘의 약속은 거짓말이 됐다.  
지난해 12월 20일 국민의힘은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과 면담을 진행하며 "분향소를 곧 방문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국민의힘은 오히려 2차 가해를 부추기고 있다. 지난해 12월 27일 진행된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과정에서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은 유가족들을 향해 "(민주당과) 같은 편이네, 같은 편이야"라고 말해 공분을 샀다. 유가족 협의회 부대표인 이정민 씨는 "국회의원이 편 가르기를 하고 있는 것이고, 자기를 지지하는 세력에게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저쪽(민주당) 편이니 공격하라'는 메시지를 던져 주는 것이다. 국민의힘이 머릿속으로 편가르기를 생각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뉴스타파는 대통령실에도 연락해 2차 피해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대통령실은 "경찰과 방송통신위원회가 답변할 일"이라고만 답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피해자들이 겪는 2차 피해 문제는 대통령실과 상관없는 일이라는 투였다.   
지난해 10월 30일 '이태원 사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 대통령실은 참사 당사자들이 겪고 있는 2차 피해 문제에 대해 답변을 회피했다. 
오민애 변호사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2차 가해 행위에 대해 입장을 내지 않는 것 자체가 그런 행위를 하는 사람들에게 '이걸 해도 괜찮다'는 시그널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상 2차 가해를 묵인하고 방조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유가족 협의회 부대표 이정민 씨는 "정부에 되묻지 않을 수가 없다"며 이런 말을 남겼다. 
얼마 전 이태원 참사 생존자인 어린 고등학생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유가 2차 가해 때문이거든요. 끊임 없는 댓글과 비방에 상처를 받아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겁니다. 이건 살인입니다. 어린 학생이 받았을 상처는 우리가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큰 고통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른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청소년이나 청년들한테 그런 모습이 안 나타나게끔 모범을 보여야 되지 않겠습니까? 정부는 이런 분열과 혼란을 막아야 하는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국민들이 분리되지 않게 계속 이야기하고, ‘2차 가해는 결코 국가와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해야죠. 지속적으로 국민들한테 홍보를 해줘야 되고, 하다못해 홍보 자료라도 만들어서 노력을 해야 될텐데.... 정부에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정민 / 이태원 참사 희생자 이주영 씨 아버지(유가족 협의회 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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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신영철 오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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