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집

2014년 03월 19일 18시 45분

지금으로부터 24년 전인 1990년, 단칸방에서 쫓겨나게 된 네 식구가 처지를 비관하여 동반자살을 선택하는 충격적인 일이 벌어진다. 가장이 남긴 유서에는 “폭등하는 부동산 가격에 내 집 마련의 꿈은 고사하고 매년 오른 집세도 충당할 수 없는 서민의 비애를 자식들에게는 느끼게 하고 싶지 않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언뜻 지나치게 비관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당시 전세 값 상승률을 살펴보면 서민들이 느꼈을 고통이 상상을 초월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한 내용을 한겨레 신문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국민은행 통계에 따르면 1990년 서울 전세 값 상승률은 23.7%에 달했고 그 전해에는 29.6%에 이르렀다. 그러니까 80년대에서 90년대로 이어지는 길목에서 전세 값이 무려 60% 넘게 날아오른 것이다. 88년 서울올림픽과 이후 새도시 건설에 이르기까지 전국을 휘몰아친 부동산 열풍과 인플레이션의 파도가 쓰나미로 화하여 서민들의 터전을 덮친 결과였다.
이건 엄마 아빠의 잘못이 아니야-한겨레,2013.9.15.

24년이 지난 지금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주택 가격은 계속 치솟았고,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부를 향해 또 누군가는 죽음의 문턱을 향해 걸어간 발자취가 같은 신문의 다른 지면에 반복적으로 실려 왔다. 신문의 발행일만 다를 뿐 너무나 비슷한 투자 성공담과 너무나 비슷한 유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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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일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반복되어지는 근본적인 이유는 주택을 거주가 아닌 ‘투자’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각에 있다. 집이 투자의 대상이 되는 순간 ‘이익’을 남겨야 하고, 이익을 남기려면 집값은 계속 상승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집’을 투자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본연의 의미인 ‘거주’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물론 하우스 푸어 문제를 포함하여 주택 가격이 급락할 경우 발생하는 경제적 충격에 대해 현실적으로 고려해야 하지만, 그러한 핑계로 근본적인 시각을 바꾸지 않으면 악순환의 고리는 결코 끊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현 정권이 내어 놓은 3번의 부동산 대책은 ‘주택 매매 활성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시각의 변화는 고사하고, 오히려 집을 투자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을 더욱 강화하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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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더 우려스러운 건, 매매 활성화를 위해 겨냥하고 있는 대상이 돈이 없어 집을 구입하기 어려운 이들이라는 점이다. 세금을 줄여주고, 저금리에 돈을 빌려주고…결국 빚을 내서 집을 사라는 것인데, 그렇지 않아도 빚내서 집을 샀던 하우스 푸어들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매우 우려스럽지 않을 수 없다.

나아가 ‘집이 없어 고통스럽다’는 사람들에게 ‘집이 없으면 집을 사라’고 말하는 식의 태도는 윤리적으로도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마리 앙투아네트를 연상케 하는 이런 식의 태도는 고통을 받는 이들의 심정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서 나아가 의도와 상관없이 모욕감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세 값이 너무 올랐다고? 그렇다면 차라리 집을 살 기회다!’라는 식의 궤변을 늘어놓는 일부 언론의 태도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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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출간한 조세희 선생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엔 집을 잃게 된 이들이 느끼는 고통과, 그 고통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의 간극에 대한 주인공의 독백이 등장한다. ‘집이 없으면 집을 사라’는 식의 말을 하기 전에 한 번쯤 이 대목을 읽어 보길 권한다.

천국에 사는 사람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단 하루도 천국을
생각해보지 않은 날이 없다.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 같았다.

우리는 그 전쟁에서 날마다 지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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