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지출보고서 대국민공개, 처벌 강화"...이번엔 지킬까

2020년 10월 23일 08시 10분

정부가 제약·의료기기업계의 ‘의료인 대상 경제적 이익 제공 지출보고서’(이하 지출보고서)를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공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지출보고서 작성 의무 위반 시 처벌 수위도 강화할 계획이다. 보건복지부의 불법 리베이트 차단 의지가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2018년 시행된 이른바 ‘K-선샤인액트’(약사법 제47조의2, 의료기기법 제13조의2)에 따라 제약·의료기기 업체는 의료인들에게 물질적 지원을 할 경우 그 지출내역을 보고서로 작성하고, 근거 자료와 함께 5년간 보관해야 한다. 의료계 불법 리베이트와 유착을 사전 예방하려는 목적이다. 업체가 제공하는 의료인 해외학술대회 참가 여비, 제품설명회 식사비 등이 보고 대상이다. 그러나 법 시행 3년간, 정부가 업체의 지출보고서 작성 여부를 감독할 의무가 취약한 데다 처벌 규정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았다.
뉴스타파도 최근 국내 제약사 종근당, 글로벌 의료기기 업체 한국애보트의 2018년도 지출보고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이들 업체가 제품설명회를 활용해 의료인들에게 고가의 식사를 접대하는 등 로비성 영업 활동을 해온 실태를 확인했다. 현행법에 어긋나게 지출내역을 기록한 사례도 두 회사 지출보고서에서 모두 발견됐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9일 ‘지출보고서 작성 제도 개선방안’ 자료를 작성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고영인 의원실에 제출했다. ‘처벌 강화’와 ‘정보공개’에 방점이 찍힌다.
▲보건복지부 ‘지출보고서 작성 제도 개선방안’(출처: 더불어민주당 고영인 의원실)

처벌 강화: 200만원 이하 벌금 → 1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 벌금

이 개선방안 자료에 따르면 복지부는 우선 지출보고서 작성·보관 의무 위반 처벌 규정을 대폭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현행법상 제약·의료기기 업체가 지출보고서를 작성하지 않거나, 증빙자료를 보관하지 않으면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된다. 보고서를 거짓으로 작성하거나 복지부의 보고서 제출 요청에 응하지 않아도 처벌 수위는 같다. 이에 대해 복지부는 “지출보고서 작성·관리를 위해 소요되는 비용 대비 규정 위반에 따른 제제가 미미하여 현장에서 제도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고 분석했다.
복지부는 이에 따라 현행 200만원 이하 벌금 규정을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형’으로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이를 위해 약사법·의료기기법 개정안을 작성한 상태이며 입법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다만 복지부가 이 같은 처벌 강화책을 구상한 게 처음은 아니다. 1년 전, 국회 국정감사장으로 돌아가보자.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 리베이트 금지 3법에서 법률 초안에 있었던 의료인의 객관적 확인번호, 면허번호가 생략되면서 경제적 이익 지출보고서 작성의 실질적인 효과를 얻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또 지출보고서가 미보관 또는 거짓 작성, 자료 미제출 시 2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는 처벌조항의 내용도 효과적이지 않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습니다. 이에 장관님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시는지?
○박능후 보건복지부장관: 지금 법령이 개정이 되었습니다. 법령 개정을 하면서 직역단체의 의견들을 수렴해서 의료인들의 면허번호 대신에 의료인 정보를 지출보고서 서식에 추가를 시켰고요. 그리고 200만 원 이하 벌금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변경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더 그걸 강화시켰습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장관: … 제가 앞서 말씀드렸던 현행 200만원 이하 벌금을 1년 이하의 징역이나 또 1000만원 이하 벌금으로 하겠다는 것도 저희들이 만든 법안 내용이 아직 통과는 안 됐습니다. 그런데 그걸 포함을 해서 대행사까지도 지출보고서 의무작성자로 하도록 하겠습니다.

-2019년 10월 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보건복지부 국정감사
이처럼 복지부는 똑같은 처벌 강화 방안을 지난해에도 약속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도 지키지 못했다. 이번에 다시 한 번 입법 추진 의지를 시험받게 된 셈이다.

지출보고서 정보공개: 제약·의료기기협회에 의무제출, 공개 추진

복지부는 지출보고서 상세 내용을 국민들에게 공개하는 방안도 추진할 계획이다. 
K-선샤인액트의 지출보고서 작성 의무는 제약·의료기기업계와 의료계의 경제적 이해 관계를 투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제도다. 원조격인 제도를 먼저 시행한 해외에서는 업계에서 작성한 지출보고서를 대중에게 공개하는 나라가 대부분이다. 복지부는 개선방안 자료에서 “업체의 지출보고서에 대한 책임감·신뢰성 제고를 위하여 작성된 지출보고서의 대국민 공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미국은 유사제도 시행 중”이라는 조사 결과도 덧붙였다.
▲미국 정부 산하 메디케어 앤드 메디케이드 센터는 제약·의료기기업계와 의료인들 사이에 오간 경제적 이익 내역을 온라인 데이터베이스로 공개하고 있다. (출처: 오픈페이먼트데이터 사이트, openpaymentsdata.cms.gov)
미국은 연방정부 산하에 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를 만들어 지출보고서를 공개한다. 이 같은 정보공개의 목적을 “대중에게 더 투명한 의료 시스템을 제공하기 위해서(The purpose of the program is to provide the public with a more transparent healthcare system)”라고 밝히고 있다. 누구나 검색하면, 의료인과 업체들 사이에 오간 돈의 흐름을 열람할 수 있다. 모두 실명으로 공개된다. 일본은 제약공업협회, 의료기기산업연합회 등의 ‘기업활동과 의료기관 등의 관계 투명성 가이드라인’ 규정을 따른다. 이에 따라 개별 제약사, 의료기기 업체가 자사 홈페이지에 지출보고서를 게시하고 있다. 다만 지출보고서 공개 시기와 양식이 표준적이지 않고, 규정 위반 시 벌칙조항이 없다는 한계가 있다.
▲일본제약공업협회 홈페이지에 회원 제약사들의 2019년도 지출보고서 공개 목록이 정리돼 있다. (출처: http://www.jpma.or.jp/tomeisei) 
복지부는 사실상 ‘일본형 공개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확인된다. 일본처럼 지출보고서 공개, 감독 의무를 업계 자율에 맡기는 방식이다. 개선방안 자료에 따르면 복지부는 제약·의료기기 사업자들이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의료기기산업협회 등 유관 협회에 지출보고서를 매년 제출하고, 각 협회는 홈페이지 등을 통해 지출보고서를 공개하게 하는 방안을 설계했다. 또 협회가 제출받은 지출보고서를 자체 분석·점검하게 하는 방안도 구상 중이다. 협회 자체 ‘지출보고서 오류 신고센터’를 운영하는 아이디어도 나와 있다.
그러나 그동안 K-선샤인액트 감시 권한을 업계 자율에 맡기는 방식은 득보다 실이 많았다. 대표적으로 복지부가 운영한 ‘지출보고서 모니터링 자문단’이다. 뉴스타파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확인한 자문단 위원 명단에 따르면 자문단은 제약·의료기기업체 및 협회 임원 등 업계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인물 위주로 구성됐다. 2018년 위촉된 위원 13명 가운데 9명(제약 4, 의료기기 4, 영업대행사 1)이 업계 인사들이다. 감시를 받아야 할 사람들에게 감시 권한을 준 셈이다.
이렇게 구성된 모니터링 자문단의 역할은 홍보포스터 배부, 지출보고서 작성 여부 설문조사에 그쳤다. 자문단의 2019년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설문조사 대상인 전체 업체 6835곳 가운데 응답률은 제약업계 73.8%(464곳), 의료기기업계 24.1%(1498곳)에 그쳤다. 이 가운데 지출보고서 작성 의무가 있는데도 작성하지 않은 업체가 제약업계 12.4%(작성예정 3.1%, 미작성 9.3%)로 나타났다. 의료기기업계의 경우 무려 절반에 가까운 45.1%(작성예정 28.6%, 미작성 16.5%)의 업체가 지출보고서를 작성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문제는 이러한 설문조사가 2018년도 지출보고서 작성 법정시한인 2019년 3월을 훌쩍 지난, 같은해 하반기에 튀어나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직후에도 복지부는 방관하고 낙관했다.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 그런데 2018년 1월부터 작성이 의무화된 경제적 이익 지출보고서를 복지부가 1건도 제출받은 적이 없다고 합니다. 제도 정착 초기에 지출보고서 제출 요구를 통해서 복지부의 정책 의지를 보여 줄 필요가 있는데 이렇게 1건도 제출받지 못했다고 하네요. 복지부의 의지 부족이 아닌지 묻고 싶고요. 장관님, 그 이유가 무엇인지 얘기해주시기 바랍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장관: 그게 지금 위원님 말씀대로 18년부터 시행이 돼서 작성을 하기 시작했는데 18년도 자료가 올 3월까지 작성하도록 돼 있습니다. 아마 지금쯤은 대부분 작성됐으리라 생각이 되는데 저희들이 실질적으로 얼마만큼 경제적 이익 지출보고서가 작성됐는지 다시 한번 확인을 해 보겠습니다.
●인재근 의원: 지금은 제출됐을까요?
○박능후 보건복지부장관: 대부분 다 작성되었을 걸로 생각이 됩니다.

-2019년 10월 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보건복지부 국정감사
이후 복지부는 실제로 업체들에게 지출보고서를 제출받아 점검했을까. 박능후 장관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뉴스타파가 복지부 공문수발신목록을 확인한 결과, 복지부는 지난해 10월 한국애보트, 종근당 등 제약사·의료기기업체 단 4곳에 지출보고서 제출 공문을 보냈다. 1년이 지난 현재까지 복지부가 실제로 지출보고서를 받아본 곳도 해당 업체 4곳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책 의지 없었던 복지부, 다시 시험대에 서다

복지부가 이번에 내놓은 지출보고서 작성, 공개 의무 강화 방안은 새로운 게 아니다. 지금까지 정책 강화를 추진할 감독당국으로서 의지가 없었을 뿐이다.
국회의 법 개정 의지도 필수적이다. 2016년 인재근 의원이 발의한 K-선샤인액트 초안에는 업체들이 지출보고서를 정부에 제출할 의무를 부과했다. 정부의 조사·고발 권한도 담겼다. 그러나 이러한 조항들은 상임위 법안 검토 과정에서 모두 삭제됐다.
국회 보건복지위 고영인 의원은 지출보고서를 의무적으로 공개하고 정부의 감시 기준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고 의원은 “국정감사를 하다보면 복지부가 선샤인액트 제도뿐만 아니라 여러 관리 감독 업무들을 ‘인력이 부족해서’, ‘부주의해서’ 못 했다고 변명하는 것이 그동안 많았다”며 “지출보고서 작성 의무가 실제로 안 지켜지는데 그 이후에 복지부가 실제로 한 행동이 없었다. 복지부의 감독 업무를 좀 더 강하게 제어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 생각”이라고 말했다.
고 의원은 또 “미국처럼 (지출보고서) 완전 공개로 가는 과정을 밟아야 한다”며 “누락이나 허위 보고에 대해서는 강한 징벌 조항이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타파는 현재의 K-선샤인액트가 복지부의 검토안대로 처벌 규정을 보다 강화하고, 지출보고서 정보공개 시스템까지 갖추는지 지켜볼 계획이다. 법 개정의 열쇠를 쥔 제21대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 의원들의 입법 의지도 계속 확인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