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국100년 특별기획] 이재용과 김무성의 재산축적, 시작이 같았다

2019년 06월 03일 08시 00분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3.1 혁명 100년, 임시정부 수립 100년을 맞아 <民國 100년 특별기획, 누가 이 나라를 지배하는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뉴스타파는 이 특별기획을 통해 지난 한 세기 동안 대한민국을 지배해 온 세력들을 각 분야 별로 분석하고, 특권과 반칙, 차별없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기 위한 통찰을 99% 시민 여러분과 함께 찾아가고자 합니다.
뉴스타파는 이 기획의 일환으로 앞으로 2회에 걸쳐 한 유력 정치인의 30년 정치인생, 특히 그의 인맥과 혼맥을 토대로 한 재산형성과정을 보도합니다. 이를 통해 ‘자본과 권력이 어울린 민국 100년의 그늘진 한국현대사’를 조명해 보려고 합니다. 주인공은 김무성 현 자유한국당 의원입니다.

1. 자본과 권력의 이중주..김무성 케이스 1
2. 자본과 권력의 이중주..김무성 케이스 2. “김무성과 이재용의 재산 축적, 시작이 같았다”
-편집자주

김무성 자유한국당 의원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치인과 기업인으로 각자의 삶을 살아온 두 사람 사이엔 공통점이 있다. 삼성그룹의 핵심계열사인 에스원 주식을 선대에서 물려받아 재산을 불렸다는 사실이다. 이재용은 부친에게 상속받은 돈으로 에스원 주식을 사들여 그룹승계의 종잣돈을 만들었다. 김무성은 장인에게 받은 에스원 주식을 기반으로 130억 원이 넘는 재산을 축적했다. 에스원은 한마디로 이재용의 삼성그룹 상속과 김무성 재산축적의 시작점이었다. 뉴스타파는 두 사람의  닮은꼴 재산형성 과정을 ‘자본과 권력의 이중주, 김무성 케이스’의 두번째 기사에 담는다.

뉴스타파는 지난달 27일 보도한 ‘김무성 케이스’ 1부에서 김무성 의원이 친일파인 부친에게 물려받은 가족기업의 주식을 팔아 1994년 당시 21억 원이 넘는 시세차익을 얻었고, 고위직 공무원이면서 동시에 가족기업의 임원으로 활동하며 공무원법을 위반했으며, 가족기업 매각 당시 김 의원의 친누나가 매수자 측의 핵심임원이었다는 사실 등을 보도한 바 있다.

1990년 대 초중반, 김무성 의원의 재산은 급격히 증가했다. 청와대 민정비서관이던 1993년 17억여 원이던 재산이 3년 만에 100억 원 가까운 수준으로 늘어났다. 특히 1995년에서 96년 상반기 사이에만 전년 대비 3배 가량 증가했다. 김 의원의 부인이 가지고 있던 삼성그룹 계열사 한국안전시스템(현 삼성에스원, 이하 에스원) 주식 때문이었다. 액면가 5000원인 에스원 주식이 상장되면서 주당 30만 원이 됐고, 이로 인해 63억 5000여만 원의 장부상 시세차익이 발생한 것이다.

김 의원은 1996년 7월 신고한 재산내역에 이렇게 적었다.  

배우자의 부친으로부터 상속받은 한국안전시스템의 주식이 상장됨으로 인하여 액면가에서 상장시가로 신고됨으로써 가격상승이 있음.

김무성 의원 재산신고 내역(1996년 7월)

김무성 의원 부부는 이후 10년간 여러번에 걸쳐 에스원 주식 수만주를 거래하고, 유무상 증자와 액면분할에 참여하며 재산을 불렸다. 그리고 2004년에서 2005년 사이 에스원 주식 30만 주 가량을 액면가(500원)의 거의 100배 가까운 가격에 전량 매도했다.

김무성, 1994년과 1995년 재산신고 때 누락… ‘단순 착오’ 해명

김무성 의원이 장인에게 받은 에스원 주식을 처음 신고한 건 1993년이었다. 부인 최양옥 씨 명의로 이 회사 주식 8975주(총 발행량의 2.24%)를 보유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1994년, 상장을 앞두고 있던 에스원은 3번의 유무상 증자를 실시했다. 김 의원 부인은 증자에 모두 참여해 주식수를 2만 1000여주로 늘렸다. 하지만 김 의원은 1994년과 1995년 재산신고 당시 증가한 주식 수와 그 이유를 신고하지 않았다. 재산변동사항을 신고하도록 하고 있는 공직자윤리법을 어긴 것이다.

등록의무자는 매년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사이에 발생한 재산상의 변동사항을 다음 해 1월중 등록기관에 신고하여야 한다.

공직자윤리법 제6조(변동사항신고)

뉴스타파는 김무성 의원 측에 질의서를 보내 재산신고 누락 이유 등을 물었다. 김 의원은 서면답변을 통해 ‘재산신고 누락’을 시인했다. 다만 ‘단순 착오일 뿐 고의는 아니었다’라고 해명했다.

김무성 장인 최치환, 80년대까지 관료, 정치인, 기업인으로 승승장구

김무성 의원 부인에게 에스원 주식을 물려준, 김 의원의 장인은 관료, 정치인, 기업인으로 활동했던 고 최치환 전 국회의원이다.

1923년 경남 남해에서 출생한 최치환은 일제시대 만주군관학교를 졸업해 만주국 군인이 됐고, 해방 이후 경찰에 투신했다. 1949년 제주 4.3항쟁 당시 군경이 중심이 된 토벌대의 작전참모를 지낸 뒤, 곧바로 지리산지구 전투경찰대 총사령관을 맡아 소위 ‘좌익소탕’에도 앞장섰다.

34살의 나이에 지금의 서울지방경찰청장에 해당하는 서울시 경찰국장이 된 그는 이승만 정부의 첫 청와대 정보비서관, 공보실장(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지냈다.

박정희 정권 때는 여당인 민주공화당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정치를 시작했고, 남해에서만 5번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1965년에는 공화당 원내부총무도 지냈다. 41살이던 1964년 대한축구협회장에 올라 7년간 회장을 맡았으며, 1970년에는 대한민국 경우회 회장이 돼  4번 연임했다.

1971년 경향신문 사장이 된 최치환은 이후 삼성그룹으로 자리를 옮겨 에스원의 창립이사를 거쳐 대표를 지냈다. 전두환 정권 때인 1981년에는 삼성그룹 상임고문, 삼성반도체 사장이 됐다. 1987년 사망한 뒤 국립현충원에 안장됐다.

▲ 남해대교 인근 노량마을에 세워져 있는 ‘금암최치환 유적비’. 유적비의 뒷면에는 최치환의 약력과 함께 1973년 개통된 남해대교와 관련된 업적이 기록돼 있다. 오른쪽은 김무성 의원의 장인인 ‘금암 최치환’

최치환의 고향이자 정치적 기반이었던 경남 남해에는 최치환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물이 여러 개 세워져 있다. 남해대교와 가장 가까운 마을인 노량마을 초입에는 ‘금암최치환유적비’가 있고, 프로야구단과 축구단의 전지훈령장으로 유명한 남해스포츠파크에는 대한축구협회에서 기증한 최치환의 흉상이 서 있다. 남해문화원 마당에도 최치환의 공적을 기록한 기념물이 ‘우리 고장을 빛낸 사람들’이란 이름으로 설치돼 있다.

2015년, 최치환기념사업회는 ‘금암 최치환 생애와 사상’이라는 제목의 책을 발간했다. 발간사는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이 썼다. 김무성 의원도 “최치환 의원이 제 장인이십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실었다. 김 의원은 자신이 쓴 글에서 “나는 5번의 총선에서 돌아가신 장인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고 적었다.

김무성 의원은 최근 뉴스타파에 보낸 글에서 장인인 최치환을 이렇게 평가했다.  

최치환 선생은 건국 초기의 경찰공무원으로 나라를 지키는 최일선에서 직접 뛰셨던 분임.
건국 초 혼란기에 좌익 공산주의 세력이 무장봉기에 나선 것이 여순반란사건과 제주4.3사건이었는데, 당시 열악한 장비와 병력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명을 받아 무고한 민간인의 피해를 최대한 막으면서 경찰 본연의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해 내셨음.
또 북한군의 점령지였던 지리산 공비토벌 작전에서 무공을 세워 대한민국의 공산화를 막아냈으며, 그 공로로 경찰로서는 이례적으로 태극무공훈장을 수여받았음.

김무성 의원 답변서(2019년 5월 24일)

그런데 김무성 의원 부부가 장인인 최치환에게 받은, 김무성 의원의 재산축적에 발판이 됐던 회사 에스원은 공교롭게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재산형성, 그리고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의 출발점이었던 바로 그 기업이었다.

▲ 김무성 의원 부부는 장인인 최치환 전 의원에게 상속받은 에스원 주식으로 수십억 원을 벌었다. 이재용은 부친에게 증여받은 돈으로 에스원 주식을 사들인 뒤, 상장 직후 팔아 큰 돈을 벌었다. 이재용은 이 돈을 종잣돈으로 삼아 삼성그룹 경영권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김무성과 이재용, 에스원 상장차익으로 똑같이 초기재산 형성

이재용의 경영권 승계가 시작된 건 1995년이다. 당시 27살이었던 이재용은 부친인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에게 60억 원을 증여받았고, 그 돈으로 삼성그룹의 비상장계열사였던 에스원 주식 12만주(8.46%)와 삼성엔지니어링 주식 47만주를 사들였다. 이재용의 에스원 주식 매입가는 1만 5000원 수준이었다.

이재용이 주식을 매입한 직후인 1996년 1월, 에스원은 증시에 상장됐다. 상장 당시 공모가는 1만 5000원. 하지만 에스원 주가는 상장과 함께 폭등했다. 상장 첫날부터 19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했다. 에스원 주가는 이후로도 꾸준히 올라 같은 해 7월에는 38만 원을 돌파했다.

주가가 폭등하자 이재용은 보유하던 에스원 주식을 팔아치웠다. 시세차익은 약 300억 원. 비슷한 시기 삼성엔지니어링에서 벌어들인 것까지 합하면, 이재용이 이 시기 거둔 시세차익은 모두 563억 원에 달했다. 이재용은 이 중 450억 원으로 삼성전자가 사상 처음 발행한 사모전환사채(CB)를 구입했다. 삼성그룹 3세인 이재용이 그룹의 핵심인 삼성전자 지분을 처음 손에 넣는 순간이었다.

이재용이 비상장기업 주식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천문학적인 시세차익을 챙긴 사실이 알려지자, 몇몇 언론은 이 문제를 지적하는 기사를 내기도 했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외아들 재용씨는 지난 1994년 10월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39억원을 증여받아 중앙개발과 최모씨로부터 에스원(전 한국안전시스템) 주식 12만 1880주를 23억 원에 매입했다. 이와 관련 삼성그룹은 5일 증여 당시에 16억 원을 증여세로 납부, 증여과정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재용씨가 23억 원에 매입한 에스원 주식 12만 1880주(총지분의 8.46%)는 주가가 급등, 4일 현재 모두 376억 원에 달해 재용씨는 353억 원의 평가익을 올렸다.

동아일보 (1996년 6월 6일)

겉으로는 아무 관계가 없어 보이는 김무성 의원과 이재용 부회장. 화려한 선대를 둔 이 두 2세가 에스원의 주식을 이용해 만들어낸, 빼다 박은 듯 닮아있는 재산축적 과정은 대한민국 지배계급이 어떻게 부와 권력을 대물림해 왔는지를 잘 보여준다.

“시작은 에스원”...25년 전 시작된 이재용의 삼성 승계

2015년 벌어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은 이건희 회장의 외아들 이재용이 삼성 경영권을 승계받는 마지막 관문이었다. 이 합병으로 이재용은 삼성그룹의 지주회사격인 삼성물산을 장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합병과정은 매끄럽지 않았다. 삼성은 합병을 성사시키는 과정에서 이재용이 대주주(23.24%)였던 제일모직의 가치를 의도적으로 부풀리고, 삼성전자 주식을 4%나 가지고 있던 삼성물산의 가치는 축소했다. 현재 검찰수사가 진행중인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도 제일모직 가치를 비상식적으로 부풀리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삼성그룹은 심지어 박근혜 청와대를 동원해 국민연금에까지 손을 댔다.

제일모직 사건이 있기 17년 전, 이재용은 삼성SDS가 발행한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저가에 매입했다.주 당 6만원 가까웠던 주식이 이재용에게만 7150원에 넘겨졌다. 비슷한 시기 이재용은 에버랜드 전환사채도 헐값에 매입했는데, 당시 매입가 7700원은 에버랜드 주식 평가금액의 10분의 1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이 두 사건으로 이건희와 이재용 부자는 고발됐고, 특검수사까지 받은 뒤 재판에 넘겨졌다. 하지만 별다른 처벌은 받지 않았다. 수혜자인 이재용은 무죄, 아버지인 이건희도 집행유예 5년에 그쳤다. ‘법 위의 삼성’이란 말이 나오게 된 바로 그 판결이었다.

“이재용, 에스원 동원 돈벌이로 증여세 191억 절감”

1995년, 이재용의 에스원 주식 매수는 삼성 경영권 승계를 위한 첫단추였다. 이재용은 비상장이던 에스원 주식을 매수, 상장 직후 팔아 300억 원 가량의 시세차익을 챙겼다. 하지만 세금은 거의 내지 않았다. 이재용이 낸 세금은 부친인 이건희에게 60억 원을 증여받으면서 냈던 증여세 16억 원이 전부였다.  

비상장계열사를 동원한 재산이전과 후계상속은 당시로서는 누구도 생각치 못했던 기상천외한 방법이었다. 이재용이 에스원과 삼성엔지니어링 주식을 팔아 시세차익을 보던 1996년 10월, 한겨레는 “이재용이 190억 원 가량의 세금을 절감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도하기도 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외아들 재용씨가 이 회장으로부터 현금을 받아 삼성엔지니어링, 에스원 등 삼성그룹의 비상장 주식을 사들이는 방법으로 절감한 증여세는 얼마나 될까...
윤종훈 회계사는 25일 참여민주사회시민연대가 주최한 ‘상속세법 개정방향에 관한 공청회’에서 191억 원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1996년 10월 26일 한겨레신문

취재: 한상진
촬영: 신영철
편집: 박서영 김은
데이터: 최윤원 김강민
CG: 정동우
디자인: 이도현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