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취재방해,성추행하고도 ‘적반하장’...종교지도자는 성역인가?

2015년 10월 06일 12시 00분

10월 1일, <뉴스타파>는 전일저축은행 대주주 은인표 씨의 수상한 정관계 인맥과 로비 의혹을 보도했다.
수감중인 은 씨의 접견녹취록 90여 쪽이 단서가 됐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접견녹취록과 취재결과에 따르면, 은씨는 청와대 전 수석비서관, 국회의원, 감사원 감사위원, 조계종 고위직 승려 등 사회 고위층 인사들과 옥중에서까지 교류했다. 일부 인사는 사기,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 수감된 은 씨를 직접 면회했을 정도다.
은씨는 수감생활 중 언제라도 검찰청에 나가 자유롭게 전화도 하고 사람도 만날 수 있었으며, 10분 이내로 정해진 일반접견 시간도 내키는 대로 늘려 썼다. 특별한 사유없이 형집행정지와 병보석을 연거푸 받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이 모든 것이 은 씨의 막강한 인맥과 돈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은 씨에 대한 취재를 진행하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 중 하나는 은 씨가 주로 불교계의 일부 영향력 있는 인물을 통해 정관계에 인맥을 형성해 왔다는 점이었다. 수도권 한 유명 사찰 주지를 지낸 스님, 조계종 중앙종회 의원을 3번이나 지낸 스님 등과 가까웠다는 사실이 녹취록과 취재과정에서 확인됐다. 그러나 역시 불교계 인맥의 백미는 현 조계종 총무원장인 자승스님이었다. 자승 원장의 이름은 8개의 은 씨 접견녹취록에 무려 10번이나 오르내렸다. 정·관·불교계를 통틀어 가장 많은 횟수다. 자승 원장이 등장하는 녹취록 내용 중엔 이런 것들이 있었다.
(2009년 9월 16일)
은씨 측근 김OO : 그리고 자승스님 전화 오셨었어요.
은인표 : 응
김OO : 물어물어 저한테 전화를 하셨더라고요.
은인표 : 응, 응
김OO : 그래서 눈떠보니 이렇다고. 그래서 “스님, 회장님이 워낙 자존심이 강한 분이셔서 뭐라 그러실까봐 못가겠다고. 근데 어떻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그랬더니 “뭐든지 다 하신다고. 하여튼 알아갖고 오라”고 그러셨는데 왔다 가셨어요?
은인표 : 아, 스님은 계속 연락 와. 근데 스님은 오면 안 되지. 내가 못 오게 하지. 다음 달이 총무원장 되는 건데.
(2009년 12월 4일)
은씨 측근 임00 : 저도 거기까지만 들었어요.
은인표 : 그러니까 총무원장한테는 얘기를 했는가봐, “이거 인표가 부탁하는 거니까 꼭 이거 해줘야 한다”고 했는데, 그 뒤에 이게 어떻게 됐냐 이 말이야. 니가 갈 수 있어, 없어?
내가 총무원장하고도 직접 통화할 수 있고 그쪽에다 통화할 수 있단 말이야. 내가 상황이 급하다 생각하면 내가 검찰청 나가면 돼, 전화 하러 나가면 된단 말이야.”
녹취록을 보면 은 씨는 자신을 면회한 측근들을 통해 자승 원장에게 어떤 일을 부탁하는 등 옥중에서도 교류를 계속 한 것으로 나온다. 또한 자승 원장이 은 씨에게 “뭐든지 다 한다”는 의사를 전달했다고 대리인이 은 씨에게 말하는 장면도 있다. 물론 이 대화는 은 씨와 측근들의 대화에서 나온 말이기 때문에 실제로 그랬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수감생활 중인 은씨가 면회 온 측근들과 그저 실없는 소리를 늘어놨다고 보기는 어렵다. 사실 관계를 당사자들에게 확인해 볼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는 자료로 판단됐다. 은 씨가 자승 원장과 오래전부터 가깝게 지내왔다는 사실은 녹취록 외에도 여러 불교계 인사들을 통해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기사에는 담지 못했지만, 은씨가 유명 스님들과 술, 골프를 자주 즐겼다는 증언도 취재과정에서 다수 확보할 수 있었다.
당연하지만, <뉴스타파>는 취재과정에서 자승 원장측에 공식적으로 해명을 요청했다. 총무원장의 비서실격인 총무원 사서실과 홍보팀 모두에 취재 내용을 상세히 알리고 협조를 구했다. 그러나 홍보팀은 취재에 응할 의사가 없다는 뜻을 최종적으로 보내왔다.
"(자승) 원장스님을 직접 뵙기는 어려울 것 같다. 언론사와 직접 인터뷰를 한 적이 없다. (은씨의 접견녹취록 내용은) 문제가 되진 않는다고 생각한다."
- 조계종 홍보팀장, 9월 22일 저녁
공식적인 취재를 거부당한 상황에서 <뉴스타파>가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해명을 들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승 원장을 직접 만나는 방법뿐이었다. 9월 23일 오전 7시경, 기자는 자승 원장이 참석하는 ‘불교포럼’ 주최 행사장인 서울 중구 소재 엠버서더 호텔을 찾았다. 행사를 방해하지 않으면서 자승 원장을 만나기 위해 행사가 열리는 2층이 아닌 호텔 입구에서 자승 원장을 기다렸다.
그러나 취재진은 자승 원장에게 질문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 행사장에 미리 대기해 있던 승려들과 조계종 관계자들의 물리적인 저지 때문이었다. 기자가 자승 원장에게 다가가 대화를 시도하자 조계종 관계자들은 기자의 옷과 가방을 잡아채며 취재를 방해했다. 2명의 취재진은 10명 가까운 조계종 관계자들에 의해 사실상 고립됐다.
이 과정에서 <뉴스타파>의 여성 촬영기자는 조계종 총무원의 한 관계자로부터 성추행까지 당했다. 이 관계자는 물리력을 이용해 취재를 방해하는 과정에서 여성 촬영기자를 뒤에서 껴안고 가슴을 압박한 것이다. 불필요하고 부적절한 행동이었다. 사고 직후 피해자인 여성 촬영기자는 가해자인 조계종 관계자에게 정중히 사과를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행사가 끝난 뒤 기자는 자승 원장과의 인터뷰를 다시 시도했다. 그러나 자승 원장은 취재진을 따돌리고 급히 행사장을 떠났다. 기자는 자승 원장에게 가까이 갈 수도 없었다. 오히려 기자는 자승 원장을 따라가던 중 호텔 정문에 설치된 회전문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 처했다. 기자가 회전문에 진입하자 뒤따른 조계종 관계자가 회전문을 막아 세웠기 때문이다. 기자는 움직이지 않는 회전문 속에서 10~20초 가량 감금됐다. 자승 원장 일행이 준비된 차량을 이용해 호텔을 빠져나간 뒤에야 회전문은 다시 작동됐다. 이 과정에서 회전문에 갇힌 기자와 조계종 관계자들 사이엔 아무런 신체 접촉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조계종 관계자는 느닷없이 다리와 허리 등에 통증을 호소하며 취재진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어이없는 주장을 늘어놨다. 불교계 언론사 기자 등 여러 명이 당시 상황을 목격했다.
이틀 뒤인 9월 25일, 행사 주최자였던 ‘불교포럼’은 ‘뉴스타파의 취재윤리 위반 행위에 대해 깊은 유감’이란 제목의 입장문을 보도자료 형태로 배포했다. “과도하고 일방적인 취재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시하며 ‘뉴스타파’ 취재진이 일방적인 상해를 입히고도 적절한 조치나 사과 없이 자리를 피해 버린 것에 대해 범법행위로 규정한다”는 내용이었다. 내용 어디에도 어디에서 누가 어디를 다쳤다는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없었다. 특히 <뉴스타파>가 자승 원장에 대한 공식 취재 요청을 거부당한 상황, 사실은 현장에서 뉴스타파 취재진이 강제로 떠밀려 나가면서 성추행까지 당한 상황 등은 일체 외면했다. 불교포럼의 일방적 입장문 내용은 이날 여러 불교계 언론에 보도됐다.
같은 날 <뉴스타파>는 ‘조계종 직원의 뉴스타파 여기자 성추행에 대해 사과를 요구합니다’라는 제목의 항의서한을 조계종 총무원측에 보냈다. 성추행 문제에 대한 사과와 함께 사실과 다른 내용의 보도자료가 교계 언론을 통해 유포, 보도되는 상황에 대한 강한 유감의 뜻도 함께 담아 보냈다. 그러나 10월 1일 총무원은 홍보팀장 명의로 보낸 답변서에서 사과요구를 거부했다.
10월 5일, <뉴스타파>는 불교포럼 측에 입장문과 관련된 취재를 요청했다. 입장문이 배포된 경위, 다쳤다는 사람과 불교포럼의 관계 등을 물었다. 그러나 불교포럼의 간사인 박모 씨는 “다친 사람은 불교포럼 사무총장이다. 다른 질문에 대한 답은 알아보고 정리한 뒤 연락주겠다”고 한 뒤 연락을 해 오지 않았다.
은인표 씨와 자승 원장의 관계, 매개 역할을 한 은 씨 측근들과 관련된 의혹은 자승 원장 등 당사자들이 직접 해명해야 할 문제다. 당사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반론권 보장을 위해서도 취재는 꼭 필요했다. 조용히 묻고 답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한 건 조계종 측이다. 기자의 취재 내용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 채 물리력을 행사해 접근 자체를 차단한 행동은 어떤 이유로도 이해될 수 없다.
앞서 언급했듯, 이번 취재에서 뉴스타파가 주목한 건 수많은 사람들에게 경제적·정신적 손해를 안겨준 저축은행 대주주의 수상한 인맥, 사회지도층 인사와의 부적절한 거래 의혹이었다. 이것은 사법정의 실현이라는 공익적인 차원에서 뿐 아니라 수많은 피해자와 관계된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란 점에서 충분히 보도가치가 있었다고 판단한다.
취재할 수 있는 대상과 그렇지 않은 대상이 따로 있는 건 아니다. 종교지도자라는 이유로 언론에 다른 공직자보다 더 높은 취재 절차를 요구하고, 그것이 필요하다고 강변하는 논리에도 동의할 수 없다. 더 높은 위치에 있을수록 더 자유로운 취재를 허용하고 보장해 주는 것이 국민들의 알권리에 부응하고 언론자유라는 보편적 가치에 동의하는 지도자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공직자와 관련된 의혹이 있을 때 이에 대한 사실 관계 확인과 해명 요청은 너무나 당연한 언론의 책무이다. 전화를 하고, 이메일을 보내는 등 여러 절차를 거쳐 취재를 요청했으나 최종적으로 거부당한 뒤에 남아 있는 선택지는 당사자와의 직접 만남을 시도하거나 취재를 포기하는 것밖에 없다. 기자의 질문에 충실히 답변하고, 만약 잘못 알려진 내용이 있다면 바로잡아 설명하는 종교지도자의 모습을 생각했다면 지나친 기대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