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라이트 교과서’, 일본 우익에게 기회를 주다

2013년 09월 27일 07시 15분

교학사 교과서는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는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이 포함돼 있으며, 친일파를 옹호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일본은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교과서 논란’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일본 현지에 가 직접 들어봤다.

일본, 무관심 속 은근히 반색 

일본 언론은 한국의 교과서 문제에 관심이 없었다. 주요 언론 가운데는 우익 성향 산케이가 유일하게 ‘교학사 교과서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포함하고 있으며, 일본 교과서 문제에 개입했던 한국이 반성해야한다’는 내용의 칼럼을 실었을 뿐이다.

하지만 인터넷은 분위기가 다르다. 각종 인터넷 게시판이나 기사 댓글에는 한국의 ‘교학사 교과서’를 반기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http://military38.com/archives/32020398.html,

http://www.j-cast.com/2013/09/05183091.html?p=all 등의 사이트에는 <모처럼 한국이 올바른 역사인식을 하고 있는데 응원은 못할망정 왜 비판을 하냐>, <한국에서도 드디어 어느 정도 제대로 된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했구나.>, <군수 노동과 종군위안부를 같은 차원에서 다루고 있는 점은 흥미롭네요.>와 같은 내용의 글이 수십 건 씩 올라와 있다. 대부분 ‘늦었지만 일본의 식민지배로 한국이 근대화를 이뤘다는 점을 한국 스스로 인정해 다행이다’라는 반응이다.

말을 아낀 ‘새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일제의 침략 전쟁을 미화했다는 비판을 받았던 일본 후소샤 교과서를 만든 ‘새역모’ (새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에 인터뷰 약속을 하고 찾아갔다. 하지만 새역모는 하루만 에 입장을 바꿔 인터뷰에 응하지 않겠다고 했다. 새역모의 회장 스기하라 세이시로는 자신의 발언이 한일 관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며 인터뷰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교학사 교과서를 만든 한국의 뉴라이트 인사들과 교류가 있었느냐는 질문에는 “말할 수 없다”며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일본 ‘교과서 네트워크21’, “일 우익, 교학사 교과서 악용할 것” 

일본에서 교과서 역사 왜곡에 대해 오랫동안 비판 운동을 벌여온 교과서 네트워크의 타와라 요시후미 대표는 일본과 한국의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이른바 ‘역사 전쟁’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경로를 밟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의 새역모 등은 아베 정권, 자민당 내 교과서 의원연맹 등과 밀접하게 연계돼 있는데, 한국도 뉴라이트 세력도 박근혜 정권, 새누리당의 우파 의원들과 손을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타와라 대표는 또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있는 일본의 우익이 이번 한국의 교과서 파동을 악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타와라 대표는 기자에게 “지금까지 한국의 시민운동이나 연구자들이 일본의 새역모나 그 계열의 교과서를 비판해 왔는데, (새역모는 이제) 한국에도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선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본 지식인, “명확한 과거사 청산 없이는 미래도 없다”

일본의 전후보상 문제 연구에 평생을 바친 우쓰미 아이코 오사카대학 아시아태평양연구소 교수는 논란이 되고 있는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해 ‘위험한 생각’이라고 말했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일제 식민지배 기간 동안 한국이 경제적, 사회적으로 발전해 근대화를 이룩했다는 주장이다. 우쓰미 교수는 “식민지 지배를 하는 쪽은 자기들에게 필요한 개발을 하는데, 그냥 ‘ 도로를 만들었다, 댐을 만들었다’는 사실만 이야기하는 것은 식민지 지배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쓰미 교수는 또 일본의 후소샤, 한국의 교학사와 같은 교과서에 대해서 “과거 청산이 ‘애매’하게 됐기 때문에 ‘애매한 교과서’가 나오는 것”이라며 “명확한 과거 청산 없이는 정상적인 한일관계는 힘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앵커멘트>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가 친일과 독재를 미화했다는 비판에 대해 동아일보가 마녀 사냥이다, 교과서는 자율적인 선택에 맡겨야 한다고 옹호하고 나섰습니다.

일본의 우익 신문 산케이는 교학사 교과서를 기다렸다는 듯이 한국이 일본 교과서에 개입하고 비판했던 일에 대해 한국은 반성해야 한다는 칼럼을 실었습니다.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려는 일본 우익들에게 교학사 역사 교과서는 좋은 기회가 된 셈입니다.

우리의 역사 교과서 파문에 대해 일본인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김경래 기자가 교학사 교과서에 대한 일본 각계의 반응을 들어봤습니다.

젊은 직장인들이 많은 도쿄 신바시 거리.

여기서 만난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한국의 교과서 파동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다고 말합니다.

"한국에서 새로운 역사 교과서가 나왔는데 그런 뉴스 보셨나요?"

"아직 못 봤어요."

당연한 일입니다.

일본 주요 언론 가운데 한국 교과서 문제를 보도한 곳은 우익 성향 산케이 신문 말고는 없습니다.

하지만 보도를 접한 일부 일본인들은 반가운 속내를 드러냈습니다.

일제의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내용이 한국 교과서에 들어갔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한국은) 일본이 침략했다고 해왔죠. (교과서에) 반대하지 않으니까 기쁘다고까지는 하기 어렵지만 좋은 거 아니겠어요?"

젊은 층이 많이 이용하는 인터넷 사이트의 분위기도 다르지 않습니다.

mil 88 <모처럼 한국이 올바른 역사인식을 하고 있는데 응원은 못할망정 왜 비판을 하냐>

jcast 14 <한국에서도 드디어 어느 정도 제대로 된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했구나.>

jcast 9 <군수 노동과 종군위안부를 같은 차원에서 다루고 있는 점은 흥미롭네요.>

은근히 교학사 교과서의 내용을 반기는 것이 드러납니다.

일본에서 만난 한 한국 전문기자는 일제 시대에 한국이 발전했다는 식의 논리가 한국 교과서에 실렸다는 사실을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오히려 일제시대 철도가 까리고 쌀 생산량이 늘었던 배경에는 일제의 수탈이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충고했습니다. 한국 사람인 저한테 말이죠. 뭔가 입장이 완전히 뒤바뀐 셈입니다.

일본인이 한국 기자에게 식민지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충고하는 묘한 풍경은 취재 내내 계속됐습니다.

일본의 전후보상 문제 연구에 평생을 바친 일본인 노학자를 만났습니다.

그는 식민지배가 한국의 근대화에 기여했다는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우쓰미 아이코/오사카대학 아시아태평양연구소 교수

"식민지 지배를 하는 쪽은 자기들에게 필요한 개발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식민지 주민을 위한 개발인가라는 시점에서 봐야 합니다. 그냥 일반적으로 “도로를 만들었다, 개발했다, 댐을 만들었다”라는 식으로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면죄부를 준다거나, 잘했다는 식으로 평가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학사 교과서의 전신이라 불리는 대안교과서를 집필한 한국 학자의 말과는 대조적인 관점입니다.

이영훈/한국현대사학회 발기인 (서울대)

"지배를 위해서 철도를 깔고 도로를 뚫고 항만을 건설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세계적인 차원에서 보면 근대문명의 일환이었고 그것은 우리 한국 민족도 마찬가지로 주체적으로 거기에 적응하고 거기에 훈련을 받으면서 근대 인간으로서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던 것이죠."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일본 후소샤나 교학사 같은 교과서가 나오고 있는 이유를 노학자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인터뷰/우쓰미 아이코/오사카대학 아시아태평양연구소 교수

"과거의 역사 사실을 찾아 그것을 청산한 다음에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여러 가지가 애매합니다. 일한 관계에서 가장 문제는 애매함입니다. 그래서 그런 교과서는 그 애매함 속에서 나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교과서 논란에 대해 일본의 대표적인 우익 교과서인 후소샤 교과서를 만든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새역모 즉,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에 약속을 하고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왠일인지 애초 약속과 달리 인터뷰를 거절했습니다.

녹취/스기하라 세이시로/새역모 회장

"죄송하지만 일한 간의 진정한 친선을 위해서는 사고를 내면 안됩니다."

질문: 인터뷰 하는 게 왜 사고인거죠?

"경우에 따라서는 (입장을 말하면) 어떤 사고가 될지 모르잖아요. 지금 한일 관계를 생각해 보세요."

교학사 교과서를 주도한 한국의 뉴라이트 인사들과 교류가 있었느냐에 대한 질문에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묘한 입장을 취했습니다.

녹취/스기하라 세이시로/새역모 회장

"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요."

일본과 한국의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이른바 ‘역사 전쟁’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경로를 밟고 있습니다.

후소샤 등 일본 교과서의 역사 왜곡에 대해 오랫동안 비판 운동을 벌여온 교과서 네트워크의 타와라 대표는 그 유사성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인터뷰/타와라 요시후미/어린이와교과서네트워크21 대표

"제가 아는 한 한국의 뉴라이트는 이명박 정권, 지금의 박근혜 정권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나라당의 우파 세력, 우파 의원들과도 손을 잡고 움직이고 있다고 저는 보고 있는데요. 일본의 경우도 ‘새역사를만드는모임’이든 ‘일본교육재생기구’든, 아베 정권과 매우 연관이 강합니다. 자민당 내의 교과서 의원연맹과 같은 그런 쪽과 연관돼서 교과서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있는 일본의 우익이 이번 한국의 교과서 파동을 악용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우려합니다."

인터뷰/타와라 요시후미/어린이와교과서네트워크21 대표

"지금까지 한국의 시민운동이나 연구자들이 일본의 ‘새역사를만드는모임’이나 그 계열의 교과서를 비판해 오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이제) 한국에도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선전할 겁니다."

한국의 뉴라이트도, 일본의 우익도, 기존의 역사교과서가 과거의 부정적인 면을 과장한 이른바 ‘자학사관’을 담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부정적인 것은 줄이고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것을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부끄러운 과거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면 올바른 미래를 그릴 수 없다는 것이 일본에서 만난 양심적 학자들의 공통된 결론이었습니다.

우쓰미 아이코

"(독일을 예로 들면) 왜 아우슈비츠가 생겼는지, 그 원인과 구체적으로 어떠했는가를 제대로 기록하고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왜 나치가 나왔는가 하는 것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면 언제까지나 같은 일이 반복됩니다."

타와라 요시후미

"한국에서 과거에 얽매이지 말라는 말은, 예를 들어 군사정권을 비판하는 것은 이제 그만해도 되지 않았느냐 하면서 마음대로 (교과서를) 만들라고 하면 또다시 군사정권이 부활할지도 모릅니다. 그들(뉴라이트)은 이런 부분을 애매하게 하고 있기 때문에 위험합니다."

뉴스타파 김경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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