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정치자금 분석: 의원은 서울에 있는데, 업무용 차량은 지방에서 '홀로 주유'

2023년 06월 22일 14시 00분

뉴스타파는 경향신문, 오마이뉴스와 함께 2022년 국회의원의 정치자금 수입지출 보고서를 입수해 분석했다. 지난해 국회의원들이 모금한 후원금 총액은 585억 7,900여 만 원, 지출금액은 437억 5,029만 원이다. 
지출된 총 정치자금 437억 5천여만 원을 분야별로 보면,  문자발송 등 홍보비 112억 원(26%), 사무실 보증금과 유지비 108억 원(25%), 차량 주유 등 교통비 58억 원(13%), 당비 등 후원금 납부가 48억 원(11%) 순이었다.
▲ 2022년 국회의원 정치자금 지출내역

분석① 의원은 서울에 있는데, 업무용 차량은 지방에서 '홀로 주유'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소관 상임위에 참석하고, 본회의 표결에 참여하고 있는 시간대 의원실 차량은 지역구에 있는 주유소에서 기름넣고 주유비를 정치자금으로 썼다면 이를 정당한 의정활동의 지출로 볼 수 있을까?
현행 중앙선관위가 정해놓은 국회의원 수입지출 회계 기준으로는 의원이 동승하지 않아도 의정활동으로 볼 여지가 있다면 차량 주유비 지출은 문제될 게 없다. 
문제는 ‘의원 없이 지역구에서 홀로 돌아다니며’ 정치자금으로 기름값을 사용하는 행위가 ‘사적 경비’ 지출인지 ‘정상적인 의정활동’ 지출인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선관위의 정치자금 지출 기준을 보면, ‘업무용 차량은 사적 용도, 영리목적으로 사용 불가’라고만 돼 있을 뿐,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은 따로 없다. 실제로 선관위가 일일이 심사하거나 따지지 않는 실정이다.         
최근 국민의힘을 탈당한 황보승희 무소속 의원(부산 중구-영도구)의 경우를 보자. 황보 의원의 정치자금 지출내역을 보면 의정활동 시각과 주유 시각이 겹치는 경우가 많았다. 
2022년 10월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에서 문화체육관광부 국정감사가 열렸다. 오후 3시 47분쯤, 황보 의원은 국감장에서 출석한 박보균 문체부 장관에게 질의했다. 이 장면은 당시 국회 홈페이지 영상회의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불과 2시간 37분 전인 오후 1시 10분쯤, 400km 떨어진 부산에서 황보 의원의 업무용차량이 주유했고, 이를 정치자금으로 지출한 기록이 황보 의원 수입지출 내역에 남아 있다. 물리적으로 황보 의원이 주유한 차량에 타고 있다가 서울 국감장에 도착할 수 없는 거리와 시간이다. 황보 의원이 국정감사에 참여하는 사이, 누군가 업무용차량에 기름을 넣은 것으로 봐야 한다.  

황보승희 의원 서울에 있을 때, 부산  지역구 주유 기록 13건 확인  

21대 국회가 개원한 2020년 7월 이후로 조사기간을 넓혀봤더니, 황보 의원이 서울(국회)에 있었던 시각 앞뒤(4시간 이내)로 그의 지역구가 있는 부산광역시에서 주유한 기록은 모두 13건이 확인됐다.
▲ 황보승희 의원 차량유류비 지출 시간과 국회 일정 비교
누가 황보 의원 대신 차를 타고 주유했을까. 현재 부산 지역 사업가 A씨가 황보 의원의 의정활동 차량을 타고 다녔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황보 의원은 “본 의원 없이 A씨가 관용차를 탄 적이 없다”고 본인의 페이스북을 통해 반박했다.  
뉴스타파는 황보 의원에게 “서울에서 의정활동을 하는 동안 부산에서 차를 타거나 주유한 사람이 누구인지” 질의했지만, 구체적인 답을 듣지 못했다. 황보 의원실 관계자는 “모든 의혹은 당무조사와 경찰 수사에서 충분히 소명하겠다”고 답했다. 한편 선관위 관계자는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을 위해 지역 보좌진 등이 차량을 쓸 수 있기 때문에, 지역 주유 내역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조사를 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권명호 의원(울산 동구)은 차량 렌트와 주유비, 유지비 등에 연간 6,144만 원을 지출해 가장 액수가 많았다. 권 의원은 팰리세이드와 제네시스 등 대형차 2대를 보유하고 있다. 
박형수 국민의힘 의원(경북 영주영양봉화울진)은 주유비로만 따졌을 때, 지난해 2,348만 원을 썼다. 국회사무처에서 매달 110만 원씩 지급하는 유류비(연간 1,320만 원)를 포함하면 지난해 총 3,668만 원을 기름값으로 지출한 셈이다. 이에 대해 박형수 의원실은 “전국에서 가장 넓은 선거구 중 하나이고,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자동차 연비가 6km/L밖에 안 된다”고 해명했다. 

분석② 정치자금 최고 지출액은 ‘문자 발송’ 

2022년 정치자금을 가장 많이 쓴 국회의원은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전북 완주진안무주장수)이다. 총 7억 8,497만 원을 지출해 21대 국회의원 평균 지출액인 1억 4,158만원보다 5.5배 가량 많았다.
안 의원은 ‘문자발송’에 3억 6,119만원을 썼다. 그가 주로 이용한 업체의 요금제를 살펴보니, 짧은 문자(SMS) 1건에 7.5원, 긴 문자(LMS) 1건에 25원이었다. 이 기준으로 문자발송비 3억 6,119만 원을 따졌을 때 1,444만~4,815만 건의 문자를 보낼 수 있다. 산술적으로 보면 대한민국 유권자 전체가 안 의원의 문자를 받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2022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안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전라북도 도지사 경선에 참여했다. 문자는 도지사 경선이 이뤄지던 3월 말~5월 초에 집중 지출됐다. 2022년 기준, 전북 유권자 수는 153만명이다. 장문으로 계산해도 전북 유권자 전체에게 9번 이상 문자를 보낼 수 있는 금액이다. 
안 의원실 관계자는 “문자는 전북 도민들에게 보냈고, 법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정치자금을 썼다”고 말했다. 문자발송비는 안 후보자의 자산 계정에서 대부분 지출했고, 후원회 기부금 계정에서도 일부 썼다. 
현행 정치자금법상 후원금 모금은 연간 3억 원으로 제한돼 있지만, 정치자금 지출액 한도는 따로 없다. 다만 선거비용에는 한도가 있는데, 안 의원처럼 당내 경선에 참여하는 경우는 한도가 없다.    
2022년 정치자금을 가장 적게 쓴 국회의원은 정필모 더불어민주당 의원(비례)이다. 정 의원은 더불어민주당에 낸 직책당비와 의원모임인 ‘더좋은미래’ 회비를 합쳐 총 1,000만원을 정치자금으로 지출했다. 지난해 정 의원이 거둔 후원금은 1,948만원이었다.  

분석③ 김영란법은 사문화됐나?

국회의원들이 2022년 식대로 지출한 돈은 20억 1,280만원으로 전체 정치자금의 4.6%에 달한다. 국회 구내식당을 제외하면, 의원들은 주로 서울 여의도 소재 식당을 자주 찾았다. 방문 횟수를 기준으로 가장 많은 1~5위는 가시리, 화담, 남도마루, 싱카이&키사라, 차이나플레인 등 일식집, 중식집이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자주 방문한 ‘싱카이’는 여의도 LG 트윈타워에 있는 중식당이다. 탕수육 한 접시에 4만 6,000원, 1인당 런치 코스가 9만 8,000원~13만 8,000원에 달한다. 
권은희 국민의힘 의원(비례)의 경우 2022년 6월 10일 ‘호남지역정서 진단과 분석’을 위해 5명과 함께 방문해 정치자금으로 55만원을 지출했다. 권 의원까지 6명이라고 해도 1인당 9만원 이상 지출한 셈이다. 
청탁금지법(김영란법) 위반을 의심할 만한 사례도 발견됐다. 정동만 국민의힘 의원(부산 기장군)은 2022년 7월 7일 ‘정치현안 및 입법관련 기자간담회’를 위해 기자 등 6인과 양대창구이 전문점인 연타발 여의도점에서 식사했다. 
여기서 47만 2,000원을 지출했는데, 정 의원까지 7명이라고 해도 1인당 6만원 이상 지출한 셈이다. 언론인도 청탁금지법 적용 대상이고, 1인당 3만원이 넘는 식사를 제공받아서는 안 된다. 
정 의원실 관계자는 “당시 기자 간담회에서 지출한 금액이라 문제가 안 된다”고 주장했다. 정 의원은 2022년 정치자금 중 식대로만 4,285만 원을 사용했다.
▲ 2022년 국회의원 정치자금 수입·지출 보고서

경향신문X뉴스타파X오마이뉴스, 전체 국회의원 수입·지출 내역 공개 

경향신문, 뉴스타파, 오마이뉴스는 선관위가 판독이 불가능한 PDF 파일로 공개한 1만 9,890쪽 분량의 국회의원 정치자금 수입·지출 보고서를 엑셀 파일로 변환하고 검증했다. 3개월이 걸렸다. 
뉴스타파는 시민의 알권리를 위해 전체 국회의원들의 2022년도 정치자금 수입지출 보고서 원본과 변환 자료를 뉴스타파 데이터포털(https://data.newstapa.org)에 공개한다. 
제작진
취재박중석, 최윤원, 변지민
디자인이도현
웹출판허현재
공동취재경향신문,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