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 민방 '대주주 보도' 추적② 뉴스 가치: 모기업에 유리한가

2021년 04월 07일 10시 00분

한국 현대사에서 언론은 언제나 개혁을 요구받았습니다. 최근에는 거짓과 혐오로 분열을 부추기고, 공익이 아닌 사익을 앞세우는 탁류의 극한을 보여줍니다. 지난 1월 한 달 동안 언론인을 꿈꾸는 4명의 청년이 뉴스타파함께센터에서 <탐사저널리즘 겨울연수>를 함께 했습니다.

예비 언론인들이 과제로 선정한 탐사 주제는 언론입니다. 무심코 흘러가는 지역 민영방송 뉴스 뒤에 숨은 ‘회장님’의 실체를 추적했습니다. 데이터 저널리즘과 취재 기법으로 벼려낸 청년들의 결과물을 공개합니다. <지역 민방 ‘대주주 보도’ 추적 : 新족벌의 발견> 시리즈를 세 편으로 나눠 연재합니다.

회장님, 우리동네 뉴스의 지배자

② 뉴스 가치: 모기업에 유리한가

③ 방통위 사무실에 잠든 '대주주 보도' 보고서  

2018년 10월 18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대회의실. 

G1강원방송 책임자들이 앉았다. G1의 보도가 심의에 올랐다. 모기업 건설사의 분양 소식을 전하면서 아파트 이름을 노출하는 등 ‘사주를 위한 홍보 뉴스’를 방송했다. G1의 1대주주 건설사 ‘회장님’과 G1 대표이사의 모습도 함께 내보냈다. 

● 박상수 위원= 이것이 1대 주주, 또 대표이사 이것이 동정인데, 동정에 관한 것을 기사를 어떻게 다뤄야 할 것인가 그런 것을 사전에 염두에 안 뒀습니까?

○ 김형기 G1 보도국장= 분양기사 정도의 생각으로 접근했었고, 내용까지는 제가 구체적으로 확인을 못 했던 측면을 말씀드린 것입니다. 그래서 행사나 취재 여부에 대해서 전혀 몰랐던 것은 아니고요. 조금 더 면밀한 검토와 수위 조절, 그 다음에 이것에 대해 적합성, 이런 부분에 대한 판단을 제가 조금 소홀히 한 부분에 대해서 말씀 드린 것입니다.

● 박상수 위원= 알면서도 이것이 단신 기사를 방송한 것 같은데요. 거기 공정방송위원회도 있고 심의실도 있는데, 강원민방으로 봐서는 VIP들이 참석한 그런 행사인데, 그것을 사전에 모르고 안 챙겼다는 것은 저는 납득이 안 갑니다. 그 다음에 여기 위원회가 적용한 조항이 세 가지인데, 다 인정하시는 것이지요?

○ 허정구 G1 정책심의팀장= 광고효과가 좀 지나쳤던 부분에 대해서는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 박상수 위원= 그리고 방송이 사유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알고 계시겠지요?

○ 허정구 G1 정책심의팀장= 예.

방심위는 “공공 자산인 전파를 사적으로 이용하고 저널리즘을 훼손해 위반의 정도가 매우 중하다”고 지적했다. 일부 위원들은 관계자 징계와 과징금 부과를 요구했다. 그러나 제재는 '경고 조치'에 그쳤다. “향후 유사한 사안이 발생할 경우 더 강한 제재를 한다”는 단서가 달렸다.

G1은 방심위의 결정을 수용했다. “최대 주주가 분양하는 아파트에 대한 부적절한 광고 효과를 주었다는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그리고 아래와 같은 후속 조치를 약속했다.

향후 재발 방지를 위해 대주주의 이해관계에 관련 되는 내용은 제작과 보도에서 원천 배제하고 '방송클린위원회'를 설치하여 주요 방송 이해관계자에 대한 사항에 대해, 사전 심의하며 광고효과 등 심의규정에 위반될 수 있는 내용에 대해 자체심의를 강화하겠다.

2018년 23차 방심위 전체회의 지상파방송 부문 의결서, 피심인(G1)의 주장

G1은 약속을 지켰을까. <뉴스타파 탐사저널리즘 2021 겨울 연수생 취재팀>의 조사 결과, G1은 방심위의 조치 이후에도 대주주 관련 보도를 계속 내보냈다. 이런 현상은 G1에만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연수생 취재팀은 1편 <회장님, 우리동네 뉴스의 지배자> 보도(2021.4.5)에 이어 지역 민영방송의 대주주인 모기업 관련 보도 실태를 점검했다. 

KNN, 모기업 보도 건수 1위...KBC, JTV 뒤이어

최근 5년 동안 각 지역 민방에서 대주주 관련 법인(모기업)의 명칭이 언급된 보도의 양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지역 KBS, MBC 보도 건수도 함께 집계해 비교했다.

▲ 출처: 뉴스타파 연수생 취재팀, 각 민영방송사·KBS·MBC 홈페이지

대주주 법인(모기업) 보도를 많이 한 민방은 KNN 부산방송이다. 총 131건이다. KBC(광주) 71건, JTV(전주) 45건, G1(강원) 43건, CJB(청주) 12건, TJB(대전) 11건, TBC(대구) 8건,  UBC(울산) 7건 등으로 나타났다. 보도 내용은  모기업의 사회 공헌, 주주총회, 사업 실적, CI, 수주 소식 등이다.

그런데 모기업 보도와 관련해 보도 건수만 따질 경우, 문제의 핵심을 놓칠 수 있다. 모기업에 불리한 비판 보도를 했는지 여부도 살펴야 한다. 보도의 성격 즉 긍정, 부정인지 여부도 따져야 한다. 해당 민방에서 모기업 비판 보도가 다른 방송사보다 적다면, 이 또한 문제가 된다. 

G1강원방송, 방심위 제재 이후 SG건설 계열사 보도 집중 

G1 강원방송을 살펴보자. 앞서 밝힌대로, G1은 2018년 모기업 홍보 보도로 방심위의 제재를 받았다. 이후 G1 보도에선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대주주인 SG건설과 관련한 G1의 보도는 2016년 8건, 2017년 15건, 2018년 8건으로 확인됐다. 제재를 받은 이후인 2019년에는 5건, 2020년은 7건을 보도했다. 양으로 보면 조금 줄었다. 모기업 보도를 자제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G1은 ‘꼼수’를 부렸다.

G1은 2019년 이후 대주주인 모기업 SG건설의 보도를 줄이되 SG건설의 계열사인 SG인터내셔널, SG프라자의 보도 비중을 늘리기 시작했다. SG프라자는 원주에 기반을 둔 유통기업으로 조창진 G1·SG건설 회장의 아들이 대표를 맡고 있다. 무역 업체인 SG인터내셔널은 SG마트의 계열사이다. 역시 조창진 회장의 아들이 대표로 있다.

결국 G1은 조 회장 일가가 지배하고 있는 계열사 전체를 집중 보도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꾼 것이다. 2019년 4월 14일자 <횡성군, 대만에 소고기시장 개척단 파견>, 2019년 9월 24일자 <횡성 계란 홍콩 수출 지역 양계 농가 소득 증진> 등의 보도가 대표적이다. 

모두 조 회장의 아들이 대표로 있는 SG인터내셔널의 사업을 긍정적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해당 보도가 대주주 기업의 계열사의 소식을 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시청자들은 제대로 알지 못한다. 

▲ G1은 방심위 제재 이후에도 SG건설과 그 계열사 소식을 지속적으로 보도해왔다. (출처: G1)

넥센타이어 홍보실이 된 KNN부산방송

KNN의 지배 주주는 넥센 그룹이다. 지난 5년 동안 확인된 KNN 대주주 기업 보도는 모두 131건이다. 조사 대상 8개 지역민방 가운데 1등이다. 2등을 기록한 KBC(71건)의 두 배 가까운 수치다. 부산과 경남지역 시청자들에게 넥센타이어의 실적, 신년 하례식, 신규 계약, CI 발표 등 다양한 보도가 전해진다. KNN이 넥센의 ‘사내 방송’ 역할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 넥센타이어 맨시티 FC와 함께하는 국내 TV 광고 개시, 2016년 1월 6일

· 넥센타이어, 포르쉐 차량에 타이어 공급, 2016년 9월 8일

· 넥센그룹 신년하례식 열려, 2020년 1월 4일

· 넥센타이어, 새 비전·브랜드 슬로건 선포, 2021년 1월 5일

- KNN의 모기업 보도 사례

같은 기간, KNN은 넥센타이어의 경쟁사이자 국내 1, 2위 업체인 한국타이어, 금호타이어 소식에는 인색했다. KNN 홈페이지 뉴스 목록에서 금호타이어와 한국타이어를 검색한 결과, 두 기업과 직접 관련된 보도는 1건도 확인되지 않았다.

▲ 출처: KNN 뉴스 보도

JTV전주방송, ‘지역 산업 활성화’와 ‘모기업 홍보’ 사이 

JTV전주방송은 연수생 취재팀이 보낸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지상파의 대표자 선임 때 독립적인 의사결정이 보장되면서, 대주주의 입김은 사라졌습니다. 더구나 JTV 대표이사는 보도의 큰 틀을 기자 출신인 방송본부장과 보도국장, 그리고 취재팀장에게 맡기고 있습니다. 따라서 기자들은 대주주 일진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연수팀 질의서에 대한 JTV 측 서면답변

실제 JTV전주방송은 최대 지배주주 일진그룹의 주주총회, 사회공헌 소식을 직접 다루지 않았다. 그렇다고 JTV가 대주주 기업 관련 보도를 전혀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보도 방식이 다른 곳과 조금 다를 뿐이다.

취재팀은 JTV 보도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한 기업을 주목했다. ‘일진복합소재’이다. 차량용 CNG연료·수소연료 탱크 제조업체로 JTV 최대주주 일진그룹의 계열사인 일진다이아몬드의 종속기업이다.

지난 5년간 ‘일진복합소재’가 JTV에서 명시적으로 언급된 보도는 확인된 것만 31건이다. 같은 기간 KBS전주총국에서는 JTV 보도의 절반에 못 미치는 12번 등장했다. 전주MBC에선 일진복합소재를 언급한 보도를 확인하지 못했다. 

무게도 수입산 강철 연료탱크 보다 500kg이나 가벼워, 한 달 평균 5% 이상의 연료를 아낄 수 있는 친환경 제품입니다.

[허석봉 / 일진복합 기술개발팀장]"경유보다 천연가스가 훨씬 더 친환경적인 에너지입니다. 더군다나 이렇게 탄소섬유를 이용한 복합용기를 사용하면 기존의 천연가스 버스 보다 더 가볍기 때문에 매연도 더 적게 나옵니다."

이 업체의 탄소섬유 연료탱크는 이미 현대자동차의 일부 SUV 차량에 장착해 성능과 경쟁력을 입증했습니다.지난해 9월에는 전라북도와 전북창조경제혁신센터, 효성 등 9개 기관과 함께 시범사업으로 탄소섬유 CNG 연료탱크를 장착한 시내버스 10대를 전주와 익산, 군산에 보급해 큰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

미세먼지 발생과 폭발 위험을 줄이고 수입 대체 효과까지 거둘 수 있어 지역경제, 나아가 국내 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예상되는 국산 탄소섬유 CNG 연료탱크의 보급을 늘리기 위한 대책이 필요해 보입니다.

2016년 6월 20일, JTV, 〈버스 연료탱크 모두 외국산?〉 보도

2016년 6월 JTV는 일진복합소재가 생산하는 탄소섬유 연료탱크의 우수성을 집중 보도했다. 위의 있는 내용의 보도인데, 무려 5번 내보냈다. 당시 JTV는 “이 업체의 탄소섬유 연료탱크는 이미 현대자동차의 일부 SUV 차량에 장착해 성능과 경쟁력을 입증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기자가 언급한 “이 업체”가 실은 방송사 대주주의 관계사라는 것은 말하지 않았다. 시청자로선 JTV와는 관련이 없는 ‘우수 기업의 소식’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2020년 1월 17일, JTV의 <수소차 충전소 확대 수소산업 활기> 보도를 보자. 당시 이호승 청와대 경제수석이 전북 완주산업단지와 현대자동차 전주공장 등을 방문해 업계 현황을 살폈다. JTV와 KBS전주, 전주MBC 등 3개 방송 모두 관련 소식을 다뤘다. 그러나 방송사 3곳 중 JTV만 대주주 관계사인 ‘일진복합소재’를 언급했다. 

아래는 당시 세 방송사의 리포트 제목과 방송 멘트를 발췌한 것이다.

▲ 2020년 1월 17일 전주지역 지상파 방송 3사 리포트 비교

전북 지역은  탄소-수소산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고 있어 지역 언론에 관련 소식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다만 JTV의 경우, 관련 보도를 하면서 직접 이해관계가 있는 모기업 계열사의 이름을 지칭하고 있다는 점이다. 모기업의 이익으로 연결되는 정부 지원을 촉구하는 메시지까지 담았다.

JTV 측은 “지역경제 차원에서 탄소섬유가 가치가 있다고 판단해 보도했을 뿐”이라며 “JTV는 최근 5년 동안 일진복합소재를 31번 보도했지만, 같은 기간 전국의 언론은 무려 1천 건에 가까운 일진복합소재 탄소섬유 보도를 쏟아냈다”는 해명을 내놨다.

불리한 보도는 감춰라...대주주 기업 수사 외면한 KBC

KBC광주방송도 지배주주인 호반건설(그룹) 관련, 아파트 분양·입주 등의 소식을 보도했다. 방송에서 호반건설의 시공능력 평가를 부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민방과 달리, 대주주 보도는 비교적 적었다.

2016년부터 2021년 1월까지 광주, 전남지역 3개 방송에서 '호반건설(그룹)’을 언급한 보도는 총 212건이다. KBS광주총국이 110건(52%), KBC 71건(33%), 광주MBC 31건(15%) 순이다. KBS가 월등히 많다. 수치만 보면, 문제될 게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KBC가 대주주의 입김에서 자유로운 건 아니다. 검찰의 수사와 연동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19년 광주지검은 이용섭 광주시장의 동생과 호반건설 사이의 유착 의혹을 수사했다.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면서 언론은 일제히 보도했다. KBS광주는 호반건설을 언급한 보도 110건 중 63건을 민간공원 특례사업 추진 과정에서 불거진 호반건설의 특혜 의혹을 다루는 데 할애했다.

그러나 KBC는 미지근했다. 검찰이 수사를 확대하자, KBC는 보도 행위를 멈췄다. 모기업 호반건설이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고, 사주인 김상열 회장이 검찰에 소환됐지만, KBC는 보도하지 않았다. 침묵을 택한 것이다. 방송의 공적 역할을 저버린 행위다.

연수생 취재팀은 ‘광주 민간공원 특례사업 특혜 의혹’ 수사와 관련해 광주, 전남 지역 방송 3사가 보도한 저녁뉴스 헤드라인 등을 종합해 분석했다. 조사 기간은 광주지검 특수부에 사건을 재배당하고 압수수색이 이뤄진 2019년 9월 5일부터 검찰이 수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날인 2020년 1월 9일까지다.  

해당 기간, KBC의 관련 보도는 8건에 그쳤다. 반면 KBS광주는 38건, 광주MBC는 21건을 보도했다. 특히 광주MBC는 9건을 톱뉴스로 집중 보도했다.

그러나 KBC는 광주시 행정부시장의 구속영장 청구, 호반건설에 대한 압수수색 등을 보도하지 않았다. 광주시장의 동생과 호반건설 간의 유착에 대한 검찰의 수사 발표도 다루지 않았다. 저널리즘의 포기 행위에 다름없다.

검찰이 수사 결과를 발표한 2020년 1월 8일, 광주MBC는 <민간공원 특혜의혹 수사 종결..초라한 결과>를 톱뉴스로,  KBS광주는 <집중① 9달 수사, 민간공원 비리 의혹 실체는?>, <집중② 친동생 고위 간부 기소... 이 시장, 정치적 타격 불가피>라는 제하의 리포트를 보도한 양상과는 대조적이다.

▲ 출처: KBC, 2020.1.9 보도

KBC의 침묵은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 다음날인 2020년 1월 9일 깨졌다. 이때부터 KBC는 ‘호반건설의 대변인’을 자처하기 시작했다. 이날 KBC는 검찰의 수사 결과를 반박하는 호반건설의 입장을 담은 단신을 썼다. 기사 제목은 <호반건설 "광주시 사업 과정서 어떤 이익 제공, 특혜도 없었다.">이다.

이렇게 KBC가 대주주 호반건설을 적극 대변해야 할 속사정은 따로 있었다. KBC도 모기업과 함께 비리에 관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단서는 검찰의 보도자료에서 찾을 수 있다.

2018년 11월 9일, KBC 직원이 당시 정종제 광주시 행정부시장과 면담했다는 내용이 검찰 보도자료에  언급된다. 이로부터 나흘 뒤, 11월 13일 호반건설은 사업권을 따내기 위해 광주시에 조치를 취했다. 11월~12월 사이, 광주시 행정부시장은 감사위원회 직원들에게 금호산업에 대한 특정 감사를 착수하도록 했고, 호반건설에 유리한 감사 결과를 이끌어냈다는 것이 검찰 수사로 드러난 것이다. 

▲ 출처: 2020.1.8, 광주지검 보도자료 ‘광주 민간공원 특례 사업 사건 수사 결과’

결국, KBC는 대주주 호반건설과 함께 민간공원 사업 특혜 의혹에 연루된 당사자로 지목된 것이다.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9조(공정성) 제4항은 ‘사업자 또는 종사자가 직접적인 이해당사자가 되는 사안에 대하여 일방의 주장을 전달함으로써 시청자를 오도하여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KBC의 보도는 공정성 조항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 그러나 당시 방심위는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취재팀은 당시 관련 보도를 제대로 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모기업을 대변하는 보도 행위가 정당한지 KBC에 물었다. KBC는 “KBC 직원이 관계됐다는 소문이 있어서 적극적인 보도가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다"고 답했다. 공정성 조항 위배 여부에 대해선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대주주 두진건설 아파트 은밀하게 홍보한 청주방송

CJB는 2020년 2월 5일과 6일, 이틀간 <최고가 넘고 인기매물 품귀> 제목으로 보도했다. 대주주인 두진건설이 지은 아파트 단지를 보여주며 “품귀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인기 단지 매물”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CJB는 이 보도에서 해당 아파트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홈페이지에 게시한 기사 하단에는 별도로 해시태그를 달아 아파트 이름을 노출했다. 

CJB 측은 ‘광고 효과’를 노린 것 아니냐는 취재팀의 질문에 “두진 하트리움은 서청주 지역의 부동산 가격을 견인하는 대표적인 곳”이라며 “이미 분양과 입주가 완료된 아파트의 가치를 부각할 이유가 없다”고 답했다.

▲ 두진건설의 아파트가 CJB 보도 영상에 소개되고 있다. (출처: CJB 홈페이지)

▲ CJB 홈페이지에 게시된 아파트 품귀현상 보도에 ‘#두진하트리움’이라는 해시태그가 달려 있다. (출처: CJB 홈페이지)

CJB의 경우, 다른 민방과 달리 대주주(두진건설)가 직접 언급한 보도 자체는 그리 많지 않다. CJB 홈페이지에서 ‘두진’이 언급된 보도 건수는 모두 13건이다. 두진의 사회공헌 활동 7건, 공사 실적 4건, 매년 5월 봄김장 행사 보도 2건이다. 

이번에도 수치만 보고 평가를 내려선 곤란하다. 대주주 기업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고도, 대주주의 이익을 반영하는 보도 행위를 얼마든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19년 ‘구룡공원’ 보도 사례가 여기에 해당한다.  

두진건설의 민간공원 개발 정당화에 활용된 청주방송

충북 청주시 성화동에 있는 ‘구룡공원’은 청주시민에게 의미가 남다르다. 하루 평균 5,000여 명의 시민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또 인근 구룡산은 두꺼비 서식지로 알려져 있는 대표적인 생태지역이다.

2019년 3월부터 구룡공원의 개발이 논의된다. 청주시는 민간 자본을 투입하는 ‘민간공원 특례사업’ 방식으로 개발을 추진했다. 이 사업에 두진건설이 뛰어들었다. 석 달 후인 그해 6월, CJB의 대주주인 두진건설이 사업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그러자 청주 시민, 환경단체가 개발을 반대하고 나섰다. 개발과 보전의 입장이 팽팽하게 맞섰다.

CJB는 이를 어떻게 보도했을까. 개발을 논의하는 ‘민관협의체’가 꾸려진 2019년 3월부터 구룡 공원 개발이 가시화된 2019년 5월 27일까지 CJB는 시민, 환경단체를 비판하고 구룡공원 개발의 필요성을 부각하는 보도를 이어갔다.

아래는 KBS청주와 MBC충북의 보도와 CJB 보도를 비교한 것이다.  

▲ 청주 민간공원 특례사업 갈등 관련 CJB, MBC, KBS 보도 비교

2019년 3월 11일, ‘민관협의체’ 마지막 회의가 열렸다. 그러나 구룡공원을 포함한 공원 두 곳의 개발에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CJB와 KBS청주는 이날 소식을 전하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다르다.

KBS청주는 ‘개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는 소식을 전하며 청주시 관계자와 시민단체의 인터뷰를 함께 실었다. 반면 CJB는 KBS청주와 같이 시 관계자 인터뷰를 인용하면서도 민간공원 개발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발언만 발췌했다. 또 공원 보존을 요구하는 시민단체에 ‘대승적인’ 결단을 촉구하는 뉘앙스를 담았다.  

▲ 청주 민간공원 특례사업 갈등 관련 CJB, MBC, KBS 보도 비교

이후 청주시는 구룡공원 일부를 자체 매입해 생태 보존 방침을 밝힌다. 2019년 3월 18일, 한범덕 청주시장은 예산이 허락하는 만큼 구룡공원을 매입할 것을 지시한다. 이에 대해 CJB는 시장의 발언을 “폭탄발언”이라고 규정했다. 또 구룡공원 부지만 공공 매입하면 “형평성 논란이 불가피”하다며 민간개발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다음달 4월 9일, CJB는 “민간개발사업자에게 개발면적 축소나 위치 변경을 제안해도 될 일인 것”이라며 민간개발 추진의 필요성을 재차 호소했다.

반면, KBS청주는 청주시의 구룡공원 매입·보존 방침과 정책적 한계를 건조하게 보도했다. MBC충북은 생태환경 보존을 위한 공원부지 매입에 투자할 청주시 예산이 다른 지자체와 비교해 너무 적다고 지적하는 보도까지 내놨다.

▲ 청주 민간공원 특례사업 갈등 관련 CJB, MBC, KBS 보도 비교

2019년 6월, 논란 끝에 두진건설 측이 구룡공원 1구역 민간개발 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이번엔 사유지 보상가를 둘러싼 논란이 제기됐다. 시민단체는 청주시가 책정한 보상가액이 공지시가로 책정한 보상액보다 턱없이 높게 부풀려졌다고 주장했다.

이번에도 CJB의 보도는 다른 방송 2곳과 달랐다. 지역KBS와 MBC는 쟁점 당사자인 청주시와 시민단체의 주장을 함께 반영했다. 그러나 CJB는 시민단체의 주장을 다루지 않았다.

대주주 보도에 침묵하는 내부 감시기구

민방의 ‘대주주 보도’는 방송의 공정성을 훼손하고 사유화 문제로 이어진다. 이를 감시할 제도적 장치는 없을까. 방송사 내부에 그런 역할을 맡은 곳이 있다. ‘시청자 위원회’다. 

방송법에 따라 시청자 위원회는 편성, 방송프로그램을 감시하고 시정요구도 할 수 있다. 모든 방송사는 반드시 시청자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 매월 정기회의를 열어 시청자의 권익을 대변하고 방송을 감시한다. 최대 주주에 의한 방송 사유화 문제도 감시 대상이다. 

지역 민방이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시청자위원회 회의록 5년치를 내려받아 검토했다. 그런데 자사 대주주 관련 보도를 지적한 사례는 한 건도 없었다.

예컨대, 강원 민방 G1은 2018년 모기업의 홍보 보도로 방심위로부터 ‘경고’조치를 받았지만, 해당 보도에 대한 G1 시청자위원회의 지적은 전혀 없었다. TJB와 KBC를 제외한 7개 지역 민방 역시, 자사 시청자위원회가 대주주 관련 보도를 지적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시청자위원회가 대주주에겐 한없이 무기력하다. 정부당국과 감독기관이 적극 나서야 할 때다. 방송사업 재허가 및 각종 규제 권한을 가지고 있는 ‘대통령 직속 중앙행정기관’으로 눈을 돌려보자. 방송통신위원회이다. 

연수생 취재팀은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방통위 사무실에 잠들어 있는 ‘대주주 보도 관련 보고서’를 손에 넣었다. 이 문건의 실체를 <지역 민방 ‘대주주 보도’ 추적> 3편에서 처음으로 공개한다. 이와 함께 언론 전문가들과 함께 민방 사유화를 막기 위한 대안을 모색한다.

제작진
취재박인규 이자인 장한서 황다예 (뉴스타파 연수생)
취재 도움홍우람
데이터 도움최윤원
연수 진행장광연
데스크박중석
디자인이도현
웹출판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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