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취임식, 문 앞의 외딴 섬

2022년 05월 12일 20시 00분

윤석열 대통령은 국회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자유를 수차 강조했다. 하지만 취임식 현장 바로 문 밖의 사정은 달랐다. 어떤 이들은 취임식 행사 때문에 농성장이 강제 철거될 위기에 놓였다. 또 어떤 이들은 대통령 집무실 이전으로 인해 매년 치뤄온 집회가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 이들은 대통령이 말하는 자유, 그중에도 표현의 자유가 그저 말에 그치는 것이 아닌지 우려한다. 윤 대통령이 꿈꾸는 ‘새로운 국민의 나라’에서 자신 또한 한 명의 국민이 맞는지 되묻는다. 

“차별의 현실 지우려 하나?”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을 일주일 앞둔 5월 3일,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국회 정문 앞에 설치된 차별금지법 농성장을 등지고 섰다. 농성 천막 안에는 한달 가까이 곡기를 끊고있는 이종걸과 미류, 두 인권 활동가가 있다. 
2022년 5월 3일, 국회 앞 농성장에 붙은 구청의 계고장.
인근 천막에는 자진 철거를 요구하는 구청의 계고장이 붙었다. 차별금지법 단식 농성장 역시 국회사무처로부터 철거 요청을 받았다. 대통령경호법에 따라 취임식 당일 해당 지역이 경호 구역으로 지정됐고, 이 때문에 집회와 시위가 한시적으로 금지된다는 이유였다. 활동가들은 떠나지 않겠다고 말했다. 국회에 차별금지법 제정안이 아직 계류 중인 상황에서 뜻을 이루기 전엔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관련 기사 : “누구도 죽지 않길”…차별금지법을 외치는 이유)
국민의 소리를 듣지는 않고 국회 앞에서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는 자리를 대통령 취임식이란 이유로 (농성장을) 철거해야 한다는 것은 결국 차별의 현실을 지우고자 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이종걸 /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사무국장 (단식 23일차)
취임식 전날인 지난 9일까지도 차별금지법 농성장에는 강제 철거가 개시될 수 있다는 말이 돌았다. 대통령경호처는 5월 6일 뉴스타파와의 통화에서 “경호구역이 설정되면 강제 철거를 제안할 수 있다”라며 “여러 상황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활동가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농성이 왜 대통령 경호에 위협이 되는지 납득할 수 없었다. 
긴장이 고조되자 대통령경호처와 국회사무처, 영등포경찰서 관계자들이 농성장을 찾았다. 차별금지법을 대표 발의한 권인숙 민주당 의원도 참석했다. 언론을 통해 강제 철거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 이후였다. 면담 후 국회사무처 관계자는 강제 철거는 없을 것이라고 뉴스타파에 말했다. 대신 취임식 당일 단식자를 비롯한 최소 인원만 남는 것으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대통령 취임식 전날인 2022년 5월 9일 밤, 국회 차별금지법 농성장 앞 모습.
이날 밤, 백여 명의 시민들이 국회 앞 농성장으로 모였다. 약속대로 강제 철거는 진행되지 않았다. 취임식 당일, 차별금지법 농성장은 대통령 취임식을 찾은 수많은 인파에 둘러 싸인 채 ‘외딴 섬’처럼 남았다.
이종걸, 미류 인권 활동가는 5월 12일 기준으로 32일 째 단식 중이다.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막힌 소수자들의 행진

성소수자 인권단체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은 지난 4월 19일, 윤석열 대통령의 집무실로 사용될 용산 국방부 청사 인근에 집회 신고를 했다. 용산역 광장에서 LS용산타워, 삼각지역과 녹사평역을 지나 이태원 광장까지 2.5 킬로미터 구간을 행진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 행사는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을 맞아 해마다 진행돼온 것이다.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은 1990년 5월 17일 동성애가 국제질병분류에서 제외된 날을 기념해 지정됐다. 
2019년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을 맞아 진행된 야간 행진. (출처 :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이에 대해 용산경찰서는 행진 금지를 통보했다. 용산역 광장과 이태원 광장에서의 집회는 허가하지만, 국방부 앞 차로인 이태원로 일부 구간은 행진을 불허했다. 대통령 집무실을 경계로 100 미터 안에 속한다는 이유였다. '대통령 관저 경계 지점으로부터 100 미터 이내의 장소에서는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해서는 안 된다'라는 집시법 제11조 제3호가 근거였다. 
주최 측은 경찰의 결정에 반발했다. 애당초 윤 대통령은 용산 집무실 이전의 명분을 국민과의 소통이라고 밝혔었다. 홍보 영상을 통해 미국 백악관처럼 시민들이 자유롭게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이제 와서 대통령의 경호 때문에 안 된다는 경찰의 말을 인권단체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집무실로 쓰이게 된 국방부 청사.
우리가 먼저 대통령을 찾아가기 전에, 대통령이 사회적 약자들을 먼저 찾아가서 어떤 혐오와 차별을 겪고 있는지 확인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행진 불허라는 게, 상징적으로 소통을 얘기했지만 사실은 불통의 정부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소성욱 /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활동가
무지개행동과 30개 시민인권단체,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는 용산경찰서의 집회 금지통고 처분의 집행정지와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경찰이 근거로 제시한 집시법 조항이 대통령 집무실이 아닌 관저에만 해당된다며 법을 과도하게 해석해 집회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 대리인단의 박한희 변호사는 “관저는 사는 곳이고 집무실은 업무를 보는 곳으로, 이 두 개는 사전적으로나 법의 해석으로도 분리된다”라며 “행진하는 것조차 못하게 하는 것은 집무실 앞에서는 시민들의 어떤 정치 행위를 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취임식 다음 날인 지난 11일, 서울행정법원은 주최 측의 손을 들어줬다. 경찰이 말한 ‘100 미터 이내 집회 제한’은 대통령 관저 기준으로, 용산 집무실은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다만 법원은 해당 구간을 1회에 한해 1시간 30분 안에 신속하게 통과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윤 대통령의 취임 후 첫 주말, 수백 명의 시민들이 예정대로 그의 집무실 앞을 지날 예정이다. 

2만 4천 개의 국민 초대석, 그들의 자리는 없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자유, 인권, 공정, 연대의 가치”를 강조했다. 
저는 자유, 인권, 공정, 연대의 가치를 기반으로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 국제사회에서 책임을 다하고 존경받는 나라를 위대한 국민 여러분과 함께 반드시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5월 10일 취임사 중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
이날 취임식에는 2만 4천 명 규모의 국민 초청석이 마련됐다. 20명의 국민 대표도 있었다. 하지만 뉴스타파가 만난 자유와 인권, 공정, 연대의 가치를 외치는 소수자들은 취임식에서 어떤 자리도 배정받지 못했다. 윤 대통령이 말하는 '국민'에 이들은 없는 걸까.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얘기했던 대통령의 공간에 직접 가서, 사실 성소수자도 대한민국의 국민이고 이런 것들을 더 크게 외칠 필요가 있다고 생각을 했고요. 치운다고 치워지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저항은 강해질 거고요.

소성욱 /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활동가
제작진
영상 취재최형석 김기철 신영철
편집정애주
CG정동우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