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역에 울려 퍼진 김복동의 외침 “일본 정부는 사죄하라”

2023년 03월 31일 18시 50분

여러분은 김복동 할머니를 기억하고 있나요?

지난 1월 21일, 일본 도쿄 나카노에 위치한 한 상영관에서 2019년 뉴스타파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 ‘김복동’ 상영회가 열렸습니다. 영화 ‘김복동’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자 인권운동가였던 김복동 할머니가 일본 정부의 사죄를 받기 위해 싸웠던 27년 간의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이날 열린 도쿄 상영회에만 500여 명의 관객이 참석해 김복동 할머니의 생전 모습을 만났습니다.  
지난 1월 21일, 도쿄 나카노에 위치한 한 극장에서 열린 영화 ‘김복동' 상영회.
이번 일본 전국 상영회를 기획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전국행동’의 양징자 공동대표는 “김복동 할머니의 생전 모습 뿐만 아니라, 함께 활동해온 많은 이들의 순수하고 열정적인 모습을 일본 시민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마음으로 ‘김복동' 상영회를 기획하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영화 ‘김복동’ 전국 상영회는 1월 21일 도쿄를 시작으로 1월 28일 오사카, 고베, 1월 29일 시가현, 2월 4일 히로시마, 2월 25일 교토, 3월 25일 가와사키에서 상영회가 열렸고, 5월 27일에는 삿포로에서 상영회가 열릴 예정입니다. 지난 1월 도쿄 상영회 이후에는 전국 각지에서 상영 요청이 이어지고 있어, 앞으로 더 늘어날 예정입니다.  

일본사회의 역사부정과 왜곡에 대항하는 ‘김복동'의 목소리

지난 2021년 1월 8일 서울지방법원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피해배상 소송에서 "일본 정부의 불법행위가 인정되고, 피해자들은 상상하기 힘든 극심한 정신적·육체적 고통에 시달린 것으로 보인다"며 “일본 정부가 피해자들에게 1억 원 씩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소를 제기한 지 7년여 만에 우리 법원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우리 피해자들의 피해를 인정해준 것입니다. 
그런데 해당 판결이 나온 후인 2021년 2월 15일, 일본 시가현의회에는 결의안이 하나 통과됩니다. 결의안의 이름은 <일본정부에 대한 피해배상 청구소송에 관한 한국 서울중앙지방법원의 판결을 비난하는 결의>. 결의안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소송에 대한 한국 법원의 판결을 비난하고, 일본 정부의 자산이 침해되는 상황에 단호한 조치를 촉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2021년 2월 15일, 일본 시가현의회가 서울지방법원의 '일본 정부가 피해자들에게 1억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비난하는 결의안을 가결하고 있다. 
이에 시가현의 시민들은 의회를 방문해, 해당 결의안이 통과된 데 대해 항의합니다. 당시 항의를 주도했던 가와 가오루 씨는 “해당 결의안이 제대로 된 토론 조차 없이 졸속으로 진행됐고, 피해자에 대한 가해자의 사과나 반성은 없이 일본의 국익적 측면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문제였다”고 주장했습니다. 시가현의회의 결의안을 계기로 시가현 시민들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기억 계승하는 모임>을 만들게 됩니다. 2022년 8월에는 영화 ‘김복동' 상영회를 열어, 피해자의 목소리를 듣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일본 사회의 인식 변화는 쉽게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전쟁의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분위기로 인해 일본 내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언급하는 것조차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고 합니다. 시가현의 한 대학에서 인간학을 가르치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기억 계승하는 모임'의 가와 가오루 씨는 모두 열다섯 차례의 수업 중 단 하루,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수업하겠다는 내용을 강의계획서에 포함했다가, 대학 당국에 의해 폐강될 위기를 맞기도 했습니다. 결국 합의 끝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라는 단어가 포함된 강의 제목을 '전시 성폭력'으로 바꾸고 나서야, 강의가 개설될 수 있었습니다. 가오루 씨에 따르면, 대학 측에서는 특히 ‘일본군'이 강의 제목으로 들어가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고 합니다. 
가와 가오루 교수가 대학에 제출한 강의계획서. 강의명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전시 성폭력>으로 바꿨다. 
일본 사회의 이런 분위기에 대해 도시샤대학의 이타가키 류타 교수는 “일본 사회에서는 과거사 문제가 90년대에 거의 다 해결이 됐고, 한국이 일본을 공격하기 위해 말을 하고 있는 것뿐이란 인식이 팽배해 있다"고 설명합니다. 또한 “일본에는 현재 ‘피해자의 시기'라는 것이 생겨나고 있다”며 “다 해결된 문제인데도 불구하고, 일본이 여전히 공격받고 있는 피해자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역사 부정에 당당히 맞서 싸웠던 ‘김복동'

이렇게 일본 사회의 무관심이 계속되자, 김복동 할머니는 스스로 피해자이자 증거로서 사람들 앞에 나서야만 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라는 개념도, 피해자의 존재 여부도 몰랐던 일본 시민들은 김복동 할머니의 증언을 통해 비로소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사카의 전 시장이었던 극우 정치인 하시모토 도루 씨가 기자회견을 통해 “위안부에 강제성은 없었다"고 발언을 하자, 김복동 할머니는 직접 오사카 시청으로 가서 면담을 요청하고, “강제로 끌려간 ‘증거’가 여기에 왔다"고 따져 묻기도 했습니다. 
2012년, 오사카 시청에 항의방문한 김복동 할머니 (영화 '김복동' 중)
‘일본군 위안부 문제 간사이네트워크’의 방청자 대표는 1월 28일 오카사, 고베 상영회를 준비하면서 “당시 오사카 시청으로 달려가 하시모토 시장에게 따져 묻던, 김복동 할머니의 당당한 모습, 성폭력과 전쟁 없는 평화의 세상을 남기고자 했던 김복동 할머니의 모습을 오사카와 고베 시민들에게 꼭 소개하고 싶었다"며 영화 ‘김복동' 상영회를 준비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여성에 대한 성폭력에 대한 강력한 투쟁가 ‘김복동' 

도쿄에서 성착취, 성폭력 피해 여성들을 위한 시민단체 ‘콜라보'를 운영하고 있는 니토 유메노 씨 역시, 김복동 할머니와의 두차례 만남이 피해 여성들을 위한 활동의 근간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특히, 2017년 9월 일본의 시민단체인 ‘희망씨앗기금'이 마련한 행사를 통해 김복동 할머니를 직접 만났던, 니토 유메노 씨는 당시 김복동 할머니가 ‘이랏샤이마세'(어서 오세요)라는 일본어로 자신들에게 인사한 이유를 깨닫게 되면서 무거운 역사의 책임감과 함께 할머니들의 아픔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2017년 9월, ‘희망씨앗기금'의 평화의우리집 방문 당시 김복동 할머니를 만난 니토 유메노 씨. (줄무늬 의상 착용 여성)
수많은 혐오차별주의자들로부터 비난과 조롱, 협박에 시달리고 있지만, 니토 씨는 성폭력, 성착취 피해 여성들을 위한 자신들의 활동은 계속 될 거라고 말합니다. 니토 씨는 “일본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당한 피해를 없었던 일로 만드는 것"이라며, “피해를 없던 사실로 만들지 않고, 같은 피해를 당하는 사람이 늘지 않도록 일본 사회를 바꾸고 싶다"고 활동 목표를 설명했습니다. 또한 “김복동 할머니의 존재 자체가 자신의 활동의 든든한 후원자"라며 “이 싸움은 우리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며, 그런 면에서 할머니와 저는 닮은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혐오와 배제가 일상인 재일동포 사회를 위로한 ‘김복동' 

재일동포 사회를 향한 일본 정부의 차별도 이제는 일상이 되었습니다. 2010년 일본 정부의 고교무상화 정책에서 재일조선학교가 배제된 이후, 2019년부터는 조선유치원도 일본의 무상보육 정책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일본 정부의 차별은 재일동포들에 대한 혐오범죄도 부추기고 있습니다. 지난 2021년 8월에는 재일조선인들이 모여살던 교토 외곽의 우토로 마을에, 일본인 20대 청년이 불을 질러 민가 여러 채가 불에 타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2월 25일 영화 ‘김복동' 상영회 후, 단상에서 발언중인 교토조선중고급학교 학생들
2월 25일 교토에서 열린 상영회에서는 교토조선중고급학교 재학생들이 단상에 올라 재일조선학교가 처한 현실을 관객들에게 설명하고, 연대를 호소했습니다. 학생들은 “고교 무상화 제도에서 배제된 지 10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이 문제를 진심으로 대하고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며, “이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쉽지 않겠지만, 절실한 투쟁의 목소리가 언젠가는 전해질 걸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김복동의 희망’이 뿌린 씨앗

2018년 김복동 할머니로부터 ‘김복동의 희망'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은 모두 4명이었습니다. 모두 교토조선중고급학교 재학생들이었던 이들은, 도쿄에서 열린 장학금 전달식에 참석해 직접 김복동 할머니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넉넉치 않은 형편, 고교무상화 배제로 인해 경제적 압박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던 학생들에게 당시 김복동 할머니가 내민 손길은, 다시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2018년 ‘김복동의 희망' 장학금을 받은 박형화 학생. 3년 전, 교토조선중고급학교를 졸업한 그는 현재 도쿄의 한 대학에서 교사가 되기 위해 공부중이다. 
당시 ‘김복동의 희망’ 장학금을 받은 박형화 학생과 어렵게 전화 통화를 할 수 있었습니다. 박형화 학생은 교토조선중고급학교를 졸업후, 현재 도쿄에 있는 한 대학에 진학해 교사가 될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다시 교토로 돌아가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하는 재일조선학교 아이들을 위해 교사가 될 계획이라고 했습니다. 박형화 학생은 “비록 짧은 만남이었지만, 지금도 종종 할머니의 손을 잡았던 때가 떠올라 가슴이 뜨거워지기도 한다”며, “‘조국이 있으니 열심히 공부하라'는 김복동 할머니의 말이 지금도 머리에 계속 남아 있고, 앞으로도 일본 사회에서도 민족성을 지키며 열심히 살아가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일본의 시민들보다 못한 윤석열 대통령의 역사 인식

이렇듯, 일본의 시민들마저, 영화 ‘김복동'을 통해 역사에 무관심했던 자신들의 과거를 반성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마음을 돌보지 못한 일본 정부를 비판합니다. 그런데도 윤석열 대통령은 피해자들의 상처는 전혀 돌보지 않은 채, 피해자가 오히려 가해자를 향해 손길을 내미는 상황을 만들고 있습니다. 특히 3.1절 기념사에서 “우리는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하고, 고통받았던 우리의 과거를 되돌아 봐야 한다”고 말하며, 100년 전 일제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듯한 발언을 서슴치 않고, 마치 피해자에게 잘못이 있는 듯 말했습니다. 거기에 더해 “일본은 이미 수십 차례에 걸쳐 우리에게 과거사 문제에 대해 반성과 사과를 표한 바 있습니다”며,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발언과 행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난 3.1절 기념식에서 발언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
김복동 할머니는 살아 생전, “일본 정부가 제대로 된 사과만 해준다면, 우리는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하며, “중요한 것은 돈이나 배상이 아닌 ‘진정한 사죄'다"라고 여러 차례 말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피해자들의 동의 없는 ‘2015 한일 위안부합의’를 맺어 피해자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혔습니다. 이제 또, 역사를 부정하는 발언과 행동으로 피해자들에게 좌절감을 안기고 있습니다. 여전히 우리나라에는 10명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생존해 있습니다. 이들이 30년 전부터 지금까지 바라고 있는 것은, ‘일본정부의 진정한 사죄'일 뿐입니다. 역사를 거스른 채 세울 수 있는 미래란 없음을, 윤석열 대통령과 우리 정부가 깨닫길 바랍니다. 
제작진
디자인이도현
CG정동우
출판허현재
촬영김기철
편집윤석민
연출송원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