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자금 4조 원 쏟아부을 때, 대우조선 직원은 8천만 원 뒷돈 수수

2022년 10월 13일 10시 00분

공적자금 12조 원이 들어간 대우조선해양이 재벌기업 한화에 단돈 2조 원에 팔리게 됐다. 20여 년 만에 국책은행인 산업은행 품을 떠나 새 주인을 찾게 된 것이다. 하지만 방만 경영, 부실 경영의 희생양이 된 노동자들, 특히 하청노동자들이 받아 온 고통은 여전히 남아 있다. 지난 10년간 폐업한 120개가 넘는 하청업체, 30% 이상 삭감된 하청 노동자 임금과 관련된 문제다. 뉴스타파는 2018년 시작된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자료, 대우조선해양 직원들이 관련된 각종 판결문을 입수해, 대우조선해양의 어제와 오늘을 조망하는 기획을 준비했다. 세계 1위 조선기업의 어둡고 참혹한 현실이다. <편집자 주>
① '임원이 멋대로 하도급 대금 삭감'...대우조선 대외비 문건 무더기 입수
② 공적자금 4조 원 쏟아부을 때, 대우조선 직원은 8천만 원 뒷돈 수수
대우조선해양(이하 대우조선) 직원들이 개인 판단에 따라 하도급 대금을 멋대로 부풀려 지급해 온 사실이 확인됐다. 또 수년간 여러 대우조선 직원이 하청업체로부터 최대 수천만 원에 달하는 뒷돈을 받아 형사 처벌된 것으로 드러났다. 뉴스타파는 2015년부터 최근까지 선고된 대우조선 관련 판결문 52건을 입수·분석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뉴스타파가 판결문을 통해 확인한 사건의 상당수는 대우조선 직원이나 하청업체 대표가 배임 등으로 수사와 재판을 받은 것들이다. 배임, 배임수재, 횡령 등으로 처벌된 사례만 7년간 20건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대우조선에서 하도급 업체 관리를 맡고 있던 부장급 직원이 부하직원에게 '특정 업체의 공정률을 조작해 하도급 대금을 부풀려 지급'하도록 지시한 사건, 대우조선 보안 담당 직원이 하도급 업체로부터 차량, 골프채, 그림 구매 등의 명목으로 8000만 원에 달하는 접대비를 받아 재판에 넘겨진 사건 등이 포함돼 있다. 
대우조선 직원들의 개인 범죄보다 더 눈에 띄는 점은 대우조선의 하청업체 관리·운영 방식이다. 대우조선이 아무런 기준이나 원칙 없이 하청업체에게 지급하는 대금을 결정했고, 그 과정에서 각종 비리가 발생해 왔다는 사실이 판결문을 통해 확인됐다. 
2019년 2월,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하도급 대금 후려치기 등의 혐의로 대우조선에 108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대우조선은 행정소송으로 맞섰다. "합리적 산정방식에 따라 수급사업자(하청업체)와 실질적 합의를 통해 하도급 대금을 결정했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뉴스타파가 입수한 여러 건의 판결문은 대우조선의 그간 주장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뉴스타파는 지난 12일 대우조선이 하도급 대금을 주먹구구식으로 집행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대우조선 대외비 문건을 다수 확보해 보도한 바 있다. 대우조선 특정 임원의 지시, 혹은 대우조선의 예산 사정에 따라 하도급 대금이 마구잡이로 결정됐다는 내용이었다. 
경남 거제에 있는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하청업체 공정률 조작해 하도급 대금 부풀려라”

올해 2월, 대우조선 선박운영혁신부장으로 근무하던 강모 씨가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대우조선에서 같이 일했던 사람이 대표를 맡고 있던 하청업체 A사에 1억 4000만 원 가량의 부당이익을 챙겨준 혐의(배임, 배임수재)였다.
강 씨는 대우조선을 퇴직하고 A사로 이직할 예정이었다. 그러니까 조만간 자신이 다닐 예정인 회사에 부당이익을 챙겨준 것이다. 강 씨는 부하 직원에게 “A사의 공정률을 조작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드러났다. 공정률은 ‘공정 진도율’의 줄임말로 공사가 얼마나 진행했는지를 나타내는 수치다. 
사건 당시 강 씨는 대우조선에서 사외 협력사 기성관리, 예산 수립 및 집행 등의 업무를 책임지는 선박운영혁신부장을 맡고 있었다. A사는 2005년 12월부터 2018년 10월까지 대우조선과 장비 포장 등과 관련된 하청계약을 맺고 있었다. 
이 사건에서 주목할 점은, 강 씨와 같은 하청업체 관리 직원이 별다른 수고 없이 특정 하청업체에 하도급 대금을 추가 지급할 수 있을 정도로 대우조선의 하도급 대금 방식이 제멋대로였다는 사실이다. 강 씨가 부하직원에게 “A사의 공정률을 조작하라”고 지시하고, 부하 직원이 지시대로 하도급 금액을 부풀리는 과정을 막을 장치가 대우조선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런 사실은 대우조선이 공정위와 과징금 취소 소송을 벌이면서 주장했던 것과 배치된다는 점에서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대우조선이 공정위와의 재판과정에서 줄곧 “하도급 대금은 합리적 산정방식에 따라 결정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아래는 대우조선이 법원에 제출한 준비서면 내용 중 일부.
수급사업자와의 충분한 정보교환 및 상호이해를 바탕으로 합리적인 산정기준에 의거하여 하도급대금을 결정, 지급했습니다. (중략) 원고(대우조선) 수정추가공사에 관하여 수급사업자(하청업체)가 수행한 객관적인 공사량을 정해진 산정기준에 따라 평가한 후 얼마에 해당하는지 검토하고, 수급사업자의 추가적인 요청을 반영하여 최종적으로 지급되는 대금을 조정했습니다. 

- 2019년 12월 10일 대우조선이 공정위에 제출한 서면 내용 
지난 6월 23일부터 7월 22일까지 대우조선해양 거제 옥포조선소 제1독(dock)에서 철창 속에 스스로 몸을 가둔 채 임금 인상 파업을 벌인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조선하청 부지회장. (출처 : 연합뉴스)

 “하도급 선정 도와준 뒤 골프채 등 8천만 원 뒷돈”

대우조선 보안과장 정모 씨가 대우조선 하청업체 B사로부터 억대에 가까운 뒷돈을 받아 챙긴 사실이 드러난 것은 B사 전직 대표들에 대한 재판에서였다. 
2021년 6월 부산고등법원은 B사 전직 대표 두 명에 대해 업무상횡령 등 혐의를 적용해 징역 1년과 징역 2년을 각각 선고했는데, 재판과정에서 정 씨가 B사의 대우조선 하청업체 선정을 도와준 대가로 2014년 7월부터 2016년 3월까지 8000만 원에 달하는 뇌물을 받은 사실이 새롭게 드러났다. B사는 조선기자재를 만드는 제조업체로 2011년 12월 설립돼 2014년 8월까지 대우조선 하청업체였다.   
B사가 대우조선 하청업체로 선정되는 데 있어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은 정 씨였다. B사 전 대표 중 한 명은 경찰조사에서 “정 씨 덕분에 대우조선 하청업체로 들어오는 은혜를 입었으니 보답은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돈을 주기로 했다”고 진술했다. 
경찰 수사 결과 정 씨는 B사가 대우조선 하청업체로 선정되기 전부터 B사 대표들로부터 뒷돈을 받았다. 하청업체 선정이 확정되기 한 달 전인 2014년 7월 현금 550만 원을 받았고, 선정 직후엔 감사비 조로 1000만 원을 추가로 받아 챙겼다. 
이후로도 정 씨는 다양한 명목으로 B사 대표로부터 돈을 뜯어냈다. 그림 구매 대가로 다섯 번에 걸쳐 2250만 원을 받았고, 골프채와 자동차 구입 비용이 필요하다며 250만 원과 2500만 원을 받아냈다. 마사지 비용이나 골프 이용료 등도 받았는데, 이렇게 정 씨가 챙긴 돈은 2016년 3월까지 1년 반 동안 8000만 원에 달했다.
문제는 이 사건 역시 B사 대표들이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수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지기 전까지는 대우조선이 전혀 알지 못했다는 데 있다. B사 대표들이 재판받지 않았다면, 영원히 묻힐 일이었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대주주로 있으면서 사실상 공공기관의 위치에 있던 대우조선이 내부 비리를 막고 근절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전혀 갖고 있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게다가 정 씨가 뒷돈을 받은 2016년은 대우조선이 정부로부터 수조 원의 공적자금을 지원 받고 있을 때였다. 정부는 분식회계와 조선업 불황으로 좌초 직전에 놓인 대우조선을 구하기 위해 2015년 10월 4조 2000억 원을 투입한 것을 포함해 지금까지 대략 12조 원이 넘는 공적자금을 쏟아부었다. 
그 대가로 정부는 대우조선에 구조조정과 정리해고, 임금 삭감과 같은 강도 높은 자구책을 요구했다. 하지만 대우조선은 하청업체에 지급해야 할 대금을 쥐어짜고, 하청 노동자의 임금을 30%가량 줄이는 식으로 대응했다. 제 살을 깎는 자구책 마련에는 소홀했다. 개인 비리에 불과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정 씨의 ‘뒷돈 수수’ 문제가 더 커 보이는 이유다. 
뉴스타파는 대우조선에 연락해 “하청업체에서 뒷돈을 받아 사법처리된 정 씨가 현재 대우조선에 근무하고 있는지”, “대우조선이 회사에 손해를 끼친 데 대한 책임(배임수재)을 물었는지” 등을 물었다. 대우조선 측은 질문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다만, 취재를 통해 현재 정 씨가 대우조선을 떠난 상태이며, 대우조선이 정 씨에게 법적인 책임을 묻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6월 시작됐던 대우조선 하청노조 파업 영상. 대우조선 사측이 파업 방해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음을 보여준다.  

“증거 남기지 않기 위해 골프백에 현금 담아 줬다”

대우조선 직원들이 하청업체로부터 대가성 청탁을 받아왔다는 증언은 여러 대우조선 전 하청업체 대표들에게서 나왔다. 
대우조선 하청업체였던 C사 대표는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모두가 쉬쉬하긴 했지만 하청업체 대표들이 원청 직원들에게 몰래 현금을 전달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도급 대금에 대해 결정 권한이 컸던 생산부서에서 부적절하게 돈을 받아갔다”고 했다.
또 다른 대우조선 전 하청업체 D사 대표는 “하청업체 사장들이 모이면 '누구에게 얼마 줬다'는 얘기를 심심치 않게 나눴다.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골프백이나 배낭 등에 현금을 담아 전달하는 경우가 흔했다”고 말했다. “하도급 대금 결정에 권한이 큰 원청 직원들에게 잘 보여야 했기 때문에 직원 임금은 못 줘도 뒷돈은 줬다”고도 했다.
뉴스타파는 대우조선에 "직원의 배임수재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회사 차원에서 마련한 대책이 있는지", "배임수재로 형사처벌 받은 이력이 있는 대우조선 직원들이 대우조선 자회사에서 근무 중인지" 등을 물었다. 하지만 대우조선은 “뉴스타파의 질문에 답하지 않겠다”는 입장만 밝힌 뒤 모든 답변을 거부했다. 
지난달 26일 산업은행은 대우조선을 2조 원에 재벌기업인 한화에 매각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은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대우조선의 경우 산업은행이 대주주로 있는 체제 아래에서는 연구개발, 투자 확대를 포함한 근본적인 경쟁력 개선에 한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매각 시기 실기로 인해 더 큰 손해를 본 과거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과 협의하며 신속한 매각을 추진해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강 회장의 기자간담회 발언에도, 산업은행이 언론에 뿌린 보도자료 어디에도 수만 명에 달하는 대우조선 원하청 노동자들의 고용보장과 관련된 입장, 50일 넘는 파업을 벌였고 지금도 임금인상, 노조 활동 보장 등 문제로 대우조선과 갈등을 빚고 있는 하청노동자들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 얘기는 들어 있지 않았다.  
제작진
취재이명선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