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교수 출신 장관 후보자 5명 중 4명 논문 중복 게재, 용역보고서 짜깁기 의혹

2013년 03월 01일 10시 46분

교수나 학자 출신 인사들이 고위 공직에 진출하는 빈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마찬가지다. 박근혜 정부 초대 장관 후보자 17명 가운데 학자와 교수 출신 인사는 모두 5명이다.

뉴스타파의 검증 결과, 이 가운데 4명의 후보자에게서 논문 중복게재와 정부 용역보고서 짜깁기 의혹이 확인됐다. 7,800만원의 돈을 받고 정부 용역보고서 연구를 책임진 장관 후보자는 자신이 담당한 분야의 일부분을 이미 본인이 이전에 작성한 또 다른 연구보고서에서 짜깁기해 제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4년의 시차를 두고 같은 내용의 논문을 각기 다른 학술지에 게재하면서도 정당한 인용이나 출처 표기를 하지 않은 장관 후보자도 있었다.

취재팀은 해명을 듣기 위해 해당 장관 후보자를 찾았지만 대부분 청문회에서 해명하겠다고 즉답을 피했다. 일부는 후보자를 괴롭히거나 귀찮게 하지 말아달라며 취재를 제지하기도 했다. 또 중복게재는 당시 관행이었다며 별 문제 없다는 반응도 보였다.

2000년대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연구 윤리가 엄격하게 적용되기 시작한 이후 논문 중복게재는 표절과 함께 대표적인 연구부정행위로 규정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이전에 쓴 글이라도 이를 다시 사용할 때는 인용과 출처를 밝혀야 하는 것은 학자의 기본 윤리라고 학계는 지적하고 있다.


<앵커 멘트>

관료나 법조 출신 못지않게 학자들이 공직에 진출하는 빈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습니다. 학자들을 기용하는 것은, 실무능력은 다소 떨어지더라도 원칙에 칭술하고 정직한 참신성을 기대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번 장관 후보자 가운데 학자 출신은 모두 5명입니다. 그런데 뉴스타파의 취재 결과, 무려 4명의 후보자에게 논문 중복게재 의혹 등이 나왔습니다.

논문 중복개재는 물론 수천만 원짜리 정부용역보고서를 짜깁기해서 제출한 의혹도 나왔습니다.

<박중석 기자>

국책 연구기관인 농촌 경제 연구원입니다.

이동필 농림축산부 장관 후보자는 지난 30년 동안 이 곳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하면서 여러 차례 정부 용역을 받아 연구보고서를 제출했습니다.

이 가운데 이 후보자가 2007년 당시 농림부로부터 용역비 7천 8백만원을 받고 수행한 연구보고섭니다. 연구 책임을 맡았습니다.

[농촌경제연구원 관계자]

“연구도 정말로 탁월하시죠.  한번 퍼포먼스(연구 성과)를 보면 알거에요.”

이 후보자는 이 보고서 전체 일곱 개 장 가운데, 2장과 4장 그리고 6장의 연구와 작성을 담당했습니다. 모두 37쪽 분량의 두 번째 장은 뉴스타파의 확인결과, 이미 2004년 이 후보자가 썼던 또 다른 연구보고서의 내용과 상당 부분 유사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먼저 2장의 서론 부분. 두 페이지 분량인데, 2004년 보고서의 중간 부분을 거의 대부분 옮겨놨습니다.

“재정 부담이 크게 증가하게 되었다”를 “재정 부담이 큰 폭으로 증가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새로운 접근방식을 찾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다”를 “새로운 접근방식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글의 끝 부분을 살짝 바꿔놓았을 뿐입니다.

또 “종합적 체계적으로 접근하다는 점에 특징이 있다”라는 문장에서 ‘특징’을 ‘차이’로 바꾸는 등 일부 단어를 조금 고쳤습니다.

[농촌경제연구원 관계자]

“저도 의아해요. 원장님(이동필 후보자)이 이렇게 쓰시지 않았을 텐데...”

하지만 핵심논지와 내용은 대부분 같습니다. 도표 역시 일치하는 게 많습니다.

분석 결과, 두 번째 장의 40% 가량을 2004년 보고서에서 베껴온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결국 이동필 장관 후보자는 7,800만 원 짜리 정부 용역보고서를 제출하면서 이전에 자신이 발표했던 보고서의 내용을 일부 짜깁기해 제출한 것입니다.

이래도 되는 것일까? 취재팀은 이동필 장관 후보자에게 물었습니다. 그러나 이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해명하겠다며 답변을 회피했습니다.

[이동필 장관 후보자]

(정부 책임연구원으로서 7천8백원짜리 용역보고서 제출하셨는데 그거 베끼신 거 연구윤리 위반하신 거 아닌가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내가 있잖아요 그렇진 않고 내가 그 청문회 때 자세하게 설명을 드리도록 할게요.”

(책임연구원이셨는데 이전걸 베끼셨는데 그거 어떻게 되신건가요 한마디만 더 해주세요.)

“잠깐만. 그것이 7천 뭐 얼마 하는 것이 우리가 그 저 돈의 가치라는 것이 뭐에요. 우리가 그 부분에 대해서 아직 무슨 이야긴지를 잘 모르니까...”

이에 대해 농림축산부와 농촌경제연구원측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정부 정책 원론을 언급하는 보고서 부분은 중복이 될 수밖에 없고, 이전 연구 성과를 재정리했다 하더라도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나 같은 연구보고서에 다른 연구자가 작성한 글을 보면 (2008년 보고서의 3장 하단) 예전 자료를 다시 옮겨올 경우 이전 자료를 요약, 재정리한 것이라고 명확히 밝히고 있습니다.

반면 이동필 장관 후보자가 쓴 이 문제의 글에는 이전 보고서를 상당부분 그대로 옮겨왔으면서도 발췌했다거나 재정리했다는 언급은 전혀 없습니다.

2007년 당시 정부가 만든 정책 연구 용역과제 관리지침에는 사전에 연구 주제와 내용의 중복되는지 여부를 검토하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또 2008년 정부는 유사, 중복 용역 등 부적절한 연구에 대한 대대적인 점검을 실시하기도 했습니다.

이 같은 정부 방침에 위배된 게 아니냐고 물었지만, 이 후보자는 역시 답변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동필 장관 후보자]

“내가 쓴 게 아니지...”

(아니아니 그거 아니 2007년도꺼 본인이 직접 쓰셨는데 안 쓰셨습니까?)

“2007년꺼는 원전이고 원전”

(아니 정부용역계약서를 작성하시면서...)

“설명을 드렸잖아요.”

(아니 아니 그 청문회때만 하시겠다 그랬지 않습니까? 근데 왜 아니 지금 해명하시지 못하면 본인 그거 관련해서 왜 해명을 못 하시는건지...)

문제는 또 있습니다. 이번엔 논문 중복게재 의혹입니다.

이동필 장관 후보자가 1998년 각각 다른 학술지에 게재한 두 편의 논문, 하나는 한글로, 또 하나는 영어로 썼습니다. 두 논문 다 농촌관광의 개념과 발전전략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특히 4장은 상당부분 번역본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돕니다. 도표 역시 영어와 한글로 썼을 뿐, 같은 내용입니다. 결론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발견됩니다.

결국, 학술지 논문간 중복게재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동필 후보자측은 전혀 다른 내용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해명했습니다.

26년째 연세대 교수로 재직 중인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2007년 다른 두 명의 저자와 함께 쓴 영어논문입니다. 미국 학술지에 실린 이 논문은 미국과 일본 한국에서의 경제성과 지수를 비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논문은 4년 전 국내 등재 학술지인 국제통상연구에 후보자가 게재한 한글 논문과 거의 같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서론에서부터 공식 도출방법, 그리고 분석결과, 그리고 결론까지 같습니다. 또 일부 도표에서도 나라 순서가 바뀌었을 뿐, 그 내용은 2003년 논문을 그대로 옮겨왔습니다. 그래프 역시 한국논문을 한국을, 영어논문은 미국을 먼지 제시했을 뿐, 내용은 도일합니다. 사실상 번역논문에 불과하다는 지적까지 나올 정돕니다.

하지만 이전 논문을 인용했다거나 출처는 물론, 참고문헌도 표기하지 않았습니다.

언어만 달리 했을 뿐 내용이 거의 같은 논문 내용을 시차를 두고 중복 게재했다는 의혹이 제기됩니다.

서승환 후보자의 또 다른 논문, 한국에서의 인구 분산에 대한 소득효과라는 영어 논문입니다. 2005년 외국 학술지에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이 역시 2004년 국내 학술지에 발표한 한글 논문을 그대로 번역해 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인용이나 출처, 참고문헌 표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역시 부적절한 연구 행위라는 의혹이 제기됩니다.

취재팀은 해명을 듣기 위해, 서 후보자가 임시 사무실로 사용하는 수자원공사 수도권 본부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국토교통부 공무원들은 취재를 제지했습니다. 인사청문회 준비 등으로 바쁜 후보자를 귀찮게 하거나 괴롭히지 말라는 것입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

“이제 더 이상 장관 후보자님 괴롭히지 마시고...”

(후보자 괴롭힌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거듭 해명을 요구하자, 이번엔 후보자를 대신해 국토부 대변인이 나섰습니다. “중복 게재의 기준이 없던 당시에 이뤄진 관행으로 봐야 한다”는 후보자의 해명을 대신 전했습니다.

[최정호 국토해양부 대변인]

(규정이 있든 없든, 가이드라인이 있든 없든 출처와 인용을 밝히는 건 글쓰기의 기본 아닌가요?)

“관행으로 봐야 합니다. 가이드라인이 없었던 시절에 나온 것이기 때문에 그 당시 상황으로 가서 판단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서 후보자는 특히 중복 게재한 4건의 논문을 연구 실적으로 올려놓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해서도 서 후보자 측은 관행이라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최정호 국토해양부 대변인]

“그 당시에는 다 그렇게 번역해서 하는 것들이 일반적으로 통용이 되어 있고, 따라서 연구실적 또한 자연스럽게 실적으로 잡힌 것이죠.”

하지만 학계의 의견은 다릅니다. 적어도 2006년부터는 논문 중복게재를 연구 부정 행위로 규정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당시 김병준 교육 부총리와 이필상 고려대 총장이 논문 중복게재 의혹으로 자리에서 물러난 이후 대학들은 인용 출처 없는 중복게재를 연구 부정행위로 규정하는 연구윤리 지침을 잇따라 내놨습니다.

[김경일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어떠한 언어를 가지고 발표되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라고 봅니다. 단지 그 연구자의 아이디어나 독창성이나 지향 자체가 어떤 처음으로 소개되는 경우에 한글이든 영문이건 간에 이미 발표된 놈문을 마치 저널이라는 것 자체가 어떤 새로운 발견을 소개하는 장인데, 그걸 다른 걸 통해서 소개 한다는 것은 도덕적이고 학자적인 측면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라고 하는 겁니다.”

뉴스타파는 2월 18일, 호외 편을 통해, 류길재 통일부 장관과 방하남 고용노동부 후보자의 논문 중복게재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박근혜 정부 초대 장관 후보자 17명 가운데 학자나 교수 출신은 5명입니다. 이 가운데 무려 4명의 장관 후보자에게서 논문 이중게재 의혹과 정부 연구보고서 짜깁기 의혹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학자로서 전문성을 기반으로 고위 공직자 후보에 올랐습니다. 그 전문성을 판단하는 논문과 연구 성과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뉴스타파 박중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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