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한동훈의 이중언어

2023년 04월 24일 16시 00분

헌법, 법률, 시행령 사이의 벽은 넘어설 수 없다. 국회의 법률이 국민의 헌법을 위반하면 무효이고, 정부의 시행령이 국회의 법률을 벗어나도 무효이다. 국회가 헌법을 무시하거나 정부가 국회를 넘어서는 순간, 국가라는 계약은 파기된다. 이 나라 독재자들은 국가 계약을 파기해왔다. 법 기술자들이 사이비 국회를 발명해 군인들에게 바쳤다.
박정희에게는 국가재건최고회의가 있었다. 쿠데타 직후인 1961년 5월 공포한 국가재건최고회의령으로 국가재건비상조치법을 제정해 스스로 국가재건최고회의의 근거를 만들었다. 국가재건비상조치법 제9조는 “헌법에 규정된 국회의 권한은 국가재건최고회의가 이를 행한다”이다. 이 사이비 국회는 1963년 12월까지 법률안 1015건을 통과시켰다.
전두환에게는 국가보위입법회의가 있었다. 박정희와 똑같이 시행령으로 헌법을 무력화했다. 대통령령인 국가보위입법회의설치령으로 1980년 10월 국가보위입법회의를 만들었다. 국가보위입법회의가 스스로 만든 국가보위입법회의법 제2조는 “입법회의는 헌법과 법률에 정한 국회의 권한을 행사한다”이다. 이 사이비 국회는 1981년 4월까지 각종 악법 189건을 만들어냈다.
이들 독재자의 시행령 지배 기술은 일제 검찰에서 왔다.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의 일본인 검사들은 피의자 소환권을 불법적으로 만들어냈다. 일본 본토 다이쇼 형사소송법에서 출석 의무를 발생시키는 소환은 판사만 가능했다. 하지만 식민지 조선의 검사들은 조선형사령에서 소환권이 유추된다고 주장하고 행사했다. 이 조선형사령이 바로 조선총독의 시행령이다.
한동훈 법무부장관은 형사소송법에도 없는 소환이 일반적인 수사방식이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수사받은 일에 관해서는 형사소송법대로 출석했다고 표현한다.
국회가 만든 현행 형사소송법 어디에도 검사의 피의자 소환권이 없다. 그런데도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소환이 일반적인 수사방식이라고 국회에서 발언한다. 그가 식민지 조선의 검사들처럼 소환권이 있다고 믿거나, 아니면 형사소송법을 잘 모르는 게 아닐까 싶었다. 시행령으로 국회의 법률을 뒤집고 있는 점을 생각하면 전자일 가능성이 있을 것도 같았다.
의문은 생각보다 쉽게 풀렸다. 지난 2월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 질의에 답변하는 것을 들으면서 깨달았다. 한동훈 장관은 말했다. “의원님 뭐 잘못 알고 계신데요. 저는 출석해서 조사 받았습니다.” 별다른 이유가 없었다. 자신은 형사소송법대로 출석하고, 다른 사람은 소환하는 것이었다. 소쉬르가 말하는 자의(恣意)였다.
이 나라를 시행령으로 지배한 권력자들 모두 구국의 신념으로 그런 것이다. 무능하고 썩어빠진 국회에 나라를 맡길 수 없어서,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이들이 원한 것은 자의성(恣意性)이다. 일관성에서 벗어나 손쉽게 시행령으로 조작(操作)하려 했다. 요즘 생각해보면 검찰의 기소편의주의와도 닮았다.
민주주의는 나쁜 입법자를 선거로 바꾸는 제도이다. 그렇게 하지 않고 국회 앞에 탱크를 세우는 것, 비리 국회의원을 두들겨 패고 털어서 기소하는 것, 무엇보다 시행령으로 바로잡는 것을 역사는 독재라고 한다.
제작진
취재이범준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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