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측, '대리인단 사퇴' 카드 꺼내나

2017년 01월 25일 20시 52분

대규모 사실조회와 증인신청, 그리고 자료 제출 지연 등으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을 의도적으로 지연시키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 온 대통령 측이 마지막 수단으로 대리인단을 사퇴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대통령 측, “재판 불공정… 중대결심”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의 임기가 1월 31일까지인 상황에서, 25일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9차 변론은 9명 재판부로 진행된 마지막 변론이었다. 이 날 박 소장은 “심판 절차가 지연될 경우 심판정족수를 가까스로 충족하는 7명으로 심리하는 상태가 발생한다”며 “헌법재판소 구성에 큰 문제가 발생하기 전인 3월 13일 (이정미 재판관 임기만료일) 전까지는 최종 결정이 선고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재판부의 방침에 대해 대통령 측은 재판의 공정성이 의심된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대통령 측은 권성동 소추위원이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3월 9일까지 결정이 날 것”이라고 언급한 부분을 문제 삼았다. 인터뷰 내용이 재판부의 방침과 같다며, 국회와 헌법재판소가 물밑 접촉을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대통령 측은 그러면서 “법사위원장 자리가 헌법재판소를 관할하는 관계임을 감안하면 공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어 중대한 결심을 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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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밑 접촉 의혹 제기에 대해 박한철 소장은 “용납할 수 없는 얘기"라며 강력하게 경고했다. 박 소장은 그동안 재판 진행 과정에서 “대통령 측이 무리하게 증인 신청하는 부분도 다 들어줘가며 배려”해 줬는데 “재판 절차가 공정성에서 벗어난 것처럼 가정한 발언은 법정에 대해 심히 유감스러운 발언"이라며 불만을 표시했다. 이후 대통령 측이 사과하며 일단락되는 듯했지만 대통령 측은 재판이 끝난 뒤 가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여전히 재판 절차의 공정성에 대한 문제제기를 이어갔다.

특히 “중대한 결심"이 무엇이냐를 두고 대통령 측은 대리인단 사퇴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았다. 중대 결심이 대리인단 사퇴를 의미하는지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대통령 측은 “변호사로서 할 수 있는 중대결심이 뻔한 거 아니냐”고 말했다. 권성동 소추위원과 박한철 소장의 발언이 유사한 것 외에 헌재와 국회가 내통한 증거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며 얼버무렸다.

앞으로 대통령 측은 재판의 내용 보다는 절차상 하자를 이유로 탄핵 심판의 공정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전략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대통령 측은 탄핵심판이 시작된 후 한 달이 지난 시점인 지난 23일 8차 변론에서 39명의 증인을 무더기로 신청했지만 이날 재판부는 이 가운데 10명만 증인으로 채택했다. 대통령 측은 그러나 “나머지 29명에 대해서도 다시 증인 신청을 할 것”이며, 이 가운데 “최소 10명 정도는 증인으로 채택돼야 재판의 공정성이 보장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미 재판부가 채택하지 않은 사람들을 증인으로 다시 신청하는 것에는 증인 채택이 거부될 경우 공정성 시비를 제기하며 대리인단 사퇴 명분을 쌓으려는 시도가 담긴 것으로 보여진다. 한 법원 고위 관계자는 “대리인단 사퇴를 통해 탄핵심판 최종 선고를 최대한 늦출 뿐만 아니라, 절차적으로 흠집을 냄으로써 재판부를 위축시키려는 시도”로 해석했다.

유진룡, "블랙리스트 중단 건의에 박근혜 침묵"

이날 재판에 출석한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2014년 7월 장관 퇴임 직전 박근혜 대통령을 직접 만나 “‘문화계 블랙리스트’라는 차별과 배제의 행위를 멈춰야 한다고 건의했지만, 대통령이 묵묵부답으로 침묵했다”고 증언했다.

유 전 장관은 “2014년 6월 A4용지 1~2장에 90명 정도가 포함된 블랙리스트가 청와대 정무수석실에서 처음 작성돼 문화체육관광부로 전달됐다”며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취임한 뒤로 청와대에서 이런 요구가 끊임없이 내려왔다”고 말했다. 특히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박근혜 대통령의 태도가 돌아섰고 결국 문서화된 블랙리스트가 문체부로 내려왔다고 증언했다.

가장 역점을 두고 말씀드린 것은 문화예술계의 소위 블랙리스트라는 차별과 배제행위를 멈추셔야 한다고 고언을 드렸습니다. (중략) 특히 세월호 사건으로 국가갈등과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 반대를 끌어 안고 그 사람들 힘을 포용하면서 점점 사회 갈등을 치유하고 해결해야지, 그 사람들을 하나하나 내치기 시작하면 나중에는 한 줌도 안 되는 대통령 편만이 남을 겁니다. 그런 경우에 국가를 어떻게 통치하실 겁니까. 정말 위험한 겁니다. 지금이라도 반대했던 분들을 안아주십시오. 그렇게 부탁을 드렸고 대통령께서는 묵묵부답으로 답변을 안 하셨습니다.

청와대 인사권 남용 공개

블랙리스트에 반대했던 문체부 1급 공무원 3명이 청와대의 지시로 사표를 낸 자세한 경위도 공개됐다. 당초 1급 공무원 6명을 모두 퇴직시키라는 청와대의 지시가 있었고, 김희범 당시 문체부 1차관이 6명의 일괄 사표를 요구하자 그 가운데 3명이 “선수끼리 왜 이러냐. 우리 3명만 내겠다고 해서 멋쩍은 상황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노태강 전 체육국장과 진재수 전 체육정책과장이 사표를 낸 배경도 증언으로 나왔다. 당시 유진룡 전 장관은 두 사람의 사직을 만류했지만 “문체부 공무원들이 수시로 두 사람을 찾아가 ‘우리가 견딜 수 없으니 사표를 내고 나가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결국 노 전 국장과 진 전 과장이 후배들이 피해를 보는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사표를 냈다는 것이 유 전 장관의 설명이다.

유 전 장관은 코미디언 자니 윤 씨가 한국관광공사 감사에 임명되는 것을 반대하는 과정에서 장관직에서 물러나게 됐다고 말했다. 유 전 장관이 자니 윤 씨를 만나 감사 임명을 못 하겠다고 하자,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시키는대로 하지 왜 쓸데없는 짓을 하냐”고 질책했다는 것이다. 유 전 장관은 이 질책을 받은 후 유민봉 전 국정기획수석에게 사직 의사를 밝히자 “다음 개각에서 빼겠으니 그리 알고 있으라”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전했다.


취재 최문호 김강민 임보영 촬영 신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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