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스타, 기록과 증언> ③ ‘론스타 기록’ 속, 두 개의 재경부 문서

2022년 10월 27일 20시 00분

뉴스타파는 ‘외환은행을 헐값 매각, 불법 매각했다’는 의혹으로 시작해 검찰 수사와 재판, 국제분쟁으로까지 이어졌던 론스타 사건과 관련된 각종 기록과 증언 등을 <론스타 사건, 기록과 증언> 사이트에 공개한다. 지난 20년간 각종 논란과 의혹이 끊이지 않았던 이 사건의 전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 뉴스타파가 공들여 발굴한 자료를 공개하고 공익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후원회원의 회비로 수집한 이 자료가 우리 사회의 공적 자산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편집자 주>
2003년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와 관련해 남은 의혹은 두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당시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할 자격이 없는 비금융주력자, 즉 산업자본이었는가. 둘째, 이런 사실을 금융당국이 알았고 확인했는가, 하는 점이다.
그런데 뉴스타파가 입수한 수만 쪽에 달하는 ‘론스타 사건’ 수사와 재판기록 더미에서 이 중 두 번째 의문을 풀어줄 단서가 발견됐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관련 협상을 주도했던 재정경제부(이하 재경부)가 작성해 금융감독위원회(이하 금감위)에 보낸 문건이다. 문건에는 ‘산업자본이 아닌 경우에만 은행 지분을 10%까지 금감위 승인없이 가질 수 있다’고 적혀 있다. ‘산업자본은 은행을 소유할 수 없다’는 점, ‘론스타가 산업자본인지를 따져 본 뒤 외환은행 매각을 추진해야 한다’는 사실을 재경부가 알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문건은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가 본격적으로 추진되던 2003년 7월 초 작성됐다.
뉴스타파는 ‘론스타 사건’ 수사·재판 기록 속에서 재경부가 작성한 이 문건이 외환은행 매각 결정 이전에 금감위에 전달된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외환은행 매각에 의결 권한이 있던 금감위가 ‘산업자본의 은행 인수 제한’ 문제를 인지했다는 증거다.
2003년 외환은행 매각 당시 우리 금융당국이 ‘론스타의 산업자본’ 여부를 따져봐야 한다거나,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내용이 담긴 기록이 확인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 동안 외환은행 매각에 관여한 금융당국 관계자들은 이 문제에 대해 명확한 답을 내놓지 않았다. 알고도 묵인했는지, 혹은 몰라서 따져보지도 않고 외환은행 매각을 승인했는지 알 수 없었다.
참고로, 당시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과정에서 재경부는 외환은행을 도와 가격문제 등 실무협상을 벌이고 관련 은행법을 해석하는 일을 맡았고, 금감위는 매각과 인수의 적격성 문제를 조사, 심의, 의결하는 일을 맡고 있었다.
▲ 2003년 7월 초 재정경제부가 작성한 제목이 같은 두 문서. 왼쪽이 초안, 오른쪽이 완성본으로 추정된다. 완성본 추정 문서에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 제한’에 대한 설명이 들어 있다. 

‘산업자본의 은행 인수 제한’ 명시된 재경부 문건 발견

뉴스타파가 새롭게 확인한 재경부 문건은 2개다. 제목이 ‘외국계펀드의 은행인수 가능 형태 검토’로 똑같고 내용 또한 대동소이하다. 하나는 초안, 나머지는 완성본으로 추정된다. 초안으로 보이는 문건에 등장하는 오탈자가 완성본에는 수정돼 있는 점, 2장 분량의 초안 추정 문건에 비해 완성본으로 보이는 문건은 총 4장으로 내용이 더 풍부하다는 것이 추정의 근거다. ‘론스타 사건’ 수사기록에 따르면, 두 문건은 모두 2006년경 검찰이 재경부를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발견됐다.
이 문건은 2006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이하 중수부)의 ‘론스타 사건’ 수사는 물론 2010년까지 이어진 관련 재판에서도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자격 문제와 관련해 여러 번 중요하게 다뤄졌다. 아래는 수사 기록과 재판 기록 중 일부.
“재경부에서 7.3자로 [외국계펀드의 은행인수 가능형태 검토]라는 문건을 보내왔습니다.”
이때 검사는 기록에 편철된 7.3 자 [외국계펀드의 은행인수 가능형태 검토].... 를 보여주고 이에 관하여 묻다.
- 이 문건이 진술인이 언급한 자료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김석동 전 금융감독위원회 국장 검찰 진술 조서 (2006.11.21)
7월 3일 재경부에서 증인(금융감독위원회) 측에 도쿄스타 뱅크로 가는 것이 좋겠다는 뜻이 담긴 문서를 보내 줘서 증인이 보고를 받고 금감원 법무실에 의견을 받도록 요청했는데…

김석동 전 금융감독위원회 국장 증인 신문 (2008.6.30)
이 문건은 금감위가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자격을 사실상 의결하는 문서를 만들 때도 중요한 기초자료로 사용됐다.
재경부에서 [외국계펀드의 은행인수 가능형태 검토] 라는 보고서를 보내와 대주주 자격에 대한 금감위 입장을 정리하기 위해 유OO 과장의 지시로 2003.7.7자 위원장 보고서를 작성하였습니다.

송OO 전 금융감독위원회 사무관 검찰 진술 조서 (2006.6.30)
그런데 제목은 물론 내용이 거의 똑같아 보이는 2개의 재경부 문건을 자세히 살펴보니, 한 가지 중요한 차이가 있었다. ‘비금융주력자, 즉 산업자본인 외국계펀드는 금융기관을 소유할 수 없다’는 은행법(2조, 15조, 16조)에 대한 설명이 초안으로 보이는 문건에는 빠져 있는 것이다. 초안 추정 문건에는 “동일인(외국인 포함)은 은행 지분의 10%까지는 금감위의 승인없이 자유로이 보유 가능”하다고 적혀 있는데, 완성본 추정 문건에는 “산업자본이 아닌 경우 은행소유한도인 10%까지는 금감위의 자격심사, 승인없이 자유로이 보유 가능”하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완성본 문서에 갑자기 등장한 ‘산업자본이 아닌 경우’ 란 문구, 이건 대체 뭘 얘기하는 것일까.
2003년 외환은행 매각 당시 우리 은행법은 내외국인을 막론하고 비금융주력자, 즉 산업자본은 금융기관의 대주주가 될 수 없다고 정하고 있었다. 금융당국, 정확히 금감위가 금융주력자(금융자본)로 평가해야 은행의 대주주가 될 수 있는 길로 들어설 수 있었다. 비금융주력자(산업자본)로 평가되면 소유할 수 있는 은행 지분은 4%(의결권 없는 주식 포함하면 10%)로 제한됐다.
금융자본이라고 해도 제약은 있었다. 최대 10%까지만 은행 지분을 소유할 수 있었다. 다만 예외조항이 존재했다. 해당 은행이 부실은행인 경우다. 이렇게 되면 예외조항을 적용받아 최대 50% 이상의 지분을 갖는 대주주가 될 수 있었다. 지난 20년간 론스타 사건을 추적해 온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당시 은행법을 이렇게 설명했다.
은행을 인수하려는 자가 만약에 비금융주력자, 즉 산업자본이면 어떠한 경우에도 은행의 의결권 있는 주식을 4%를 초과해서 보유할 수 없었다. 여기에는 아무런 예외조항도 없다. 금융자본이라고 해도 법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서 적절한 적격성을 갖추어야 했다. 론스타와 같은 외국인 투자자라면 은행업, 증권업, 보험업, 또는 그런 업을 하는 회사를 자회사로 거느린 금융지주회사여야 했다. 그런데 론스타는 그 중 어떤 것에도 해당하지 않았다. 다만 외환은행이 부실은행으로 평가되면 예외조항을 인정받아 대주주 지위를 가질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론스타는 외환은행 지분 51%를 가지게 됐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결국 재경부 문서에 등장하는 짧은 문구, ‘산업자본이 아닌 경우…’란 내용은 당시 은행법이 정하고 있는 ‘비금융주력자(산업자본)의 은행 인수 제한’을 정확히 지적한 것이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에 있어 가장 중요하고 또 가장 먼저 해결되어야 할 숙제를, 재정경제부가 외환은행 매각을 최종적으로 심의, 의결할 권한이 있는 금융위에 알려준 것으로 볼 수 있다.
▲ 뉴스타파는 수만 쪽에 달하는 ‘론스타 사건’ 수사, 재판 기록을 입수해 분석했다.

‘산업자본은 은행 인수 제한’ 의견 금감위로 넘어간 뒤 사라져

그런데 재경부가 작성한 문서가 금감위로 전달된 뒤 이해하기 힘든 일이 벌어진다. 재경부가 분명 해결과제라고 적시한 ‘산업자본의 은행 인수 제한’ 문제가 금감위의 논의 대상에서 사라진 것이다. 재경부에서 문서을 전달하고 불과 며칠 뒤 금감위가 위원장 보고용으로 만든 2003년 7월 7일자 문서(외환은행 주식매각 관련 자격요건 검토)를 포함해 이후 만들어진 금감위 관련 문서 어디에서도 재경부가 지적한 ‘산업자본의 은행 인수 제한’ 관련 내용은 찾아볼 수 없었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를 결정한 2003년 9월 26일 금감위 승인 서류 역시 마찬가지였다. 외환은행 매각 진행 과정과 가격, 은행법에 대한 검토, 론스타의 외환은행 경영 계획까지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와 관련된 모든 내용이 들어 있지만, 유독 ‘론스타가 산업자본인지’ 여부, 따라서 ‘외환은행을 인수할 자격이 있는지’를 금감위가 어떻게 검토하고 결정했다는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금감위가 의도적으로 혹은 실수로 재경부의 지적을 묵살한 것은 아닌지 의심되는 이유다.
그런데 취재진은 2006년 검찰 수사 기록을 일일이 확인하는 과정에서 이 의문을 풀어줄 단서를 일부나마 찾을 수 있었다. 문제가 된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 제한’ 관련 내용이 정확히 언급돼 있진 않지만, 금감위 관계자 누군가가 재경부에서 넘겨받은 문서에 손을 댔다는 내용의 진술 기록이다. 문건에 손을 댄 사람은 김석동 당시 금감위 감독정책 1국장이었다. 2003년 외환은행 매각 당시 금감위 사무관이었던 송OO 씨는 론스타 사건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이렇게 답했다.
- 김석동 국장의 수정 지시로, 예외 승인방안에 대하여 상세하게 문건을 작성하게 되었지요?
“최종적으로 (김석동) 국장이 수정하였습니다.”
- 초안과 수정안의 차이를 보면, (금감위) 위원장에게 보고한 최종 문건에는 예외 인정 관련 내용이 상세하게 언급되었는데, 이러한 내용도 김석동 국장의 지시에 따라 상세하게 언급한 것이지요?
 “최종 수정을 (김석동) 국장이 하였습니다.”

송OO 당시 금융감독위원회 사무관 공판 진술 조서 (2008.6.16) 

‘금감위 책임’으로 향하는 세종 보고서와 재경부 문건

지난 10월 19일 뉴스타파는 2003년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할 당시, 론스타가 산업자본인지 아닌지의 문제가 제일 중요한 문제였고, 핵심 당사자인 외환은행 역시 이 문제를 잘 알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문건 2개를 공개한 바 있다. 바로 2003년 6월 30일과 7월 24일 외환은행의 법률 대리를 맡은 법무법인 세종이 만든 보고서와 이메일이다. 두 문건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공통적으로 실려 있었다.
“외환은행 인수 대상자인 사모펀드 론스타가 비금융주력자, 즉 산업자본일 경우 외환은행 인수에 문제가 있을 수 있으니 이 문제를 재정경제부 등과 협의해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 법무법인 세종 보고서 (2003년 7월 7일)
이번에 뉴스타파가 새롭게 발굴한 재경부 문서는 이 두 문서의 중간에 만들어져 금감위에 전달된 것이다. 결국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할 자격이 있는 금융자본인지를 판단해야 한다는 사실을 외환은행과 재정경제부는 물론, 금감위 역시 알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또 2003년 7월 이후 만들어진 금감위 문건들에서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 제한’ 문제가 사라진 것이나, 김석동 국장의 재경부 문서 수정이 우연히 혹은 실수로 벌어졌다고 보기 힘든 이유다.
뉴스타파는 2003년 당시 재경부가 지적한 ‘산업자본의 은행 인수 제한’ 문제에 대한 지적을 보고서에서 삭제한 사실이 있는지, 있다면 왜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인지를 묻기 위해 김석동 전 국장에게 연락했지만 아무런 답도 들을 수 없었다.
제작진
취재한상진 최윤원 송원근 김지연
영상정형민 김기철
편집박서영
CG정동우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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