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블랙 프라이데이'와 해외직구...이케아 공포

2014년 11월 28일 17시 00분

롯데백화점에서 쇼핑을 하고 신용카드를 쓰면 롯데쇼핑 영수증을 받게 되죠. 그럼 우리가 롯데쇼핑의 물건을 산걸까요? 아닙니다. 롯데쇼핑은 소비자로부터 상품대금을 받은 뒤 수수료와 매장관리비(아파트관리비 같은 거죠) 등을 빼고 나머지 돈을 입점업체(주로 패션의류 제조회사)에 주게 됩니다. 안 팔린 재고상품은 입점업체의 책임입니다. 결국 대형유통업체는 백화점이나 아웃렛 등 쇼핑공간만 지어놓고 상품 판매와 인테리어공사, 판매원 급여 등은 입점업체가 맡는 장소제공업을 하고 있는 거죠. 이처럼 외상으로 물건을 매입하고 재고는 반품을 하는 판매 방식을 ‘특정매입’이라고 하더군요.
유통이라는 것이 상품을 거래하는 건데, 한국 대형 유통업체들은 수수료를 주 수입원으로 하기 때문에 사실상 ‘부동산 임대업’을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 수수료가 매출의 20~40% 정도로 높다보니 입점업체들은 불만이 높습니다. 하지만 잘 아시다시피 롯데와 신세계, 현대백화점 등 빅3 유통대기업들이 유통시장을 독과점하고 있고 그 안에 들어가지 않으면 어디 가서 명함을 내밀기 힘든 게 현실 아닌가요? 그러다 보니 울며 격자 먹기 식으로 백화점 안에 못 들어가서 안달입니다. 그렇다고 세상에 밑지고 장사하는 법은 없겠죠? 입점업체는 상품원가에 인테리어비용, 급여, 재고 부담, 백화점 측에 내는 높은 수수료 등을 모두 상품가격에 반영시킵니다. 결국 소비자가 부담하는 거죠. 비싸니까 장사가 잘 안 되겠죠? 그러니까 할인을 해줘야 그나마 팔립니다. 하지만 할인이 일상화 되다 보면 할인 판매를 예상해 미리 소비자가격을 높여 놓는 이른바 ‘업택’이라고 하는 소비자를 현혹하는 상술이 생겨납니다.
유통업체가 큰 폭의 할인을 제공해 쇼핑 전장을 방불케 만드는 미국의 ‘블랙 프라이데이’. 이 블랙 프라이데이는 추수감사절이 끝나고 성탄절 상품이 대거 들어오는 시기에, 유통업체들이 매장 안에 팔지 못한 재고상품을 빠르게 소진하기 위해 시작된 행사라고 합니다. 새 상품을 진열하기 위해 남은 재고상품을 할인해서 판매한다는 ‘clearance sale(창고 정리 판매)’이란 단어가 나온 것도 그런 뜻이죠. 유통업체가 재고를 계속 가지고 있기 보다는 원가에라도 빨리 처분해 버리는 게 나을 때 이런 할인행사가 나오고 알뜰한 소비자는 평상시 비싼 상품을 싸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거죠. 이처럼 미국의 백화점이나 대형유통업체들은 상품을 직접 사서 팔고, 재고도 스스로 떠안아야 하는 ‘직매입’ 시스템이 보편적입니다. 우리나라의 ‘특정매입’과 큰 차이죠. 물건을 직접 사지 않고 재고 부담도 없는 한국 대형 유통업체는 이런 행사를 할 수도, 할 필요도 없습니다.
백화점, 아웃렛, 대형마트 등을 유통업에서는 ‘대형 소매업체’로 분류합니다. 대형소매업체의 등장은 도매업자보다 더 큰 구매력을 가진 소매업자가 제조회사로부터 직접, 낮은 가격에 상품을 사서 판매하는 것으로 유통업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상품 가격이 낮아지니까 소비자가 유리해지고 납품단가 인하 압력을 받는 제조회사는 불리한 구조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대형소매업체는 물건을 직접 사지 않고 제조회사를 입점 시킨 뒤 높은 수수료를 받는 구조다보니 상품 가격이 낮아지지 않습니다. 물론 이들이 처음 대형마트를 선보일 때는 수수료를 낮춰 소비자가격을 낮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시장을 다 장악하고 나니 슬그머니 수수료를 올리게 되고 그럼 제조회사는 제품가격을 올리고 좀 더 시간이 지나고 나면 소비자는 어느덧 ‘호갱님’이 돼있는 식이죠.
하여간 이렇게 가만히 앉아서 ‘호갱님’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 소비자들이 몇 년 전부터 해외직접구매 즉 해외직구에 몰렸습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서는 빅3 대기업도 바짝 긴장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 유통시장을 다 장악해 놨는데 이제 그 유통이 국경을 초월하고 있기 때문이죠. 특히 해외직구족이라는 사람들이 과거 백화점의 주요 고객이었다는 점도 유통 대기업들을 긴장하게 만드는 이유일 겁니다. 해외직구를 하려면 영어도 할 줄 알아야 하고 물건을 잘 못 샀을 때 반품이나 교환이 까다롭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불편한 방법입니다. 그러나 한국산 TV와 자동차가 해외에서 더 싸게 팔리고, 글로벌 브랜드의 상품 가격이 유독 한국에서 비싸다 보니 해외직구 열풍을 막기 힘든 이유입니다.
비정상적인 시장에서는 결국 대기업들도 경쟁력을 잃기 마련입니다. 상품을 잘 볼 줄 아는 눈과 잘 파는 방법을 알아야 유능한 상인(유통업자)이 될 수 있겠죠? 그러나 유통업을 오랫동안 임대업처럼 운영하다보니 대기업 스스로 상품을 사고파는 ‘노하우’가 약해진 겁니다. 확실한 상품 경쟁력으로 국내 시장을 넓혀 가는 ‘코스트코’의 약진과 중국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유통 대기업의 초라한 성적표를 바라보면서 ‘독과점’이 왜 시장경제를 망치는 주범인지 더 명확해 지고 있습니다. 또 유통시장이 망가지면 결국 제조회사와 상인, 소비자가 다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현실이 지금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습니다.
최근 가구 공룡으로 불리는 이케아(IKEA)의 한국 상륙이 큰 사회적 논란으로 비화되고 있는 느낌입니다. ‘이케아의 상륙이 많은 중소 가구업체를 도산시킬 것이다’, ‘이케아의 한국 가격이 외국보다 비싸다’ 등등... 국내 언론의 이런 가시 돋친 비판을 바라보는 일은 참 흥미롭습니다. 이케아보다 훨씬 더 큰 공룡으로 군림하며 국내 제조와 유통,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는 유통 재벌들에게도 같은 잣대를 들이대면 어떤 기사가 나올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