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가 상한제 폐지하면 아파트 가격 오른다?

2015년 04월 06일 18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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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일부터 민간택지에 대한 분양가 상한제가 폐지됨에 따라 관련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부동산 관련 기사들이 거의 그렇듯이 이번에도 “아파트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대부분입니다.

이 기사들은 아파트 분양가 상승을 전제로 내집 마련 전략에 대해서도 충고하는데요, 앞으로 아파트 가격이 오를 것이니 지금 분양중인 아파트나 미분양인 아파트를 사는 게 현명하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이 결론에 이르는 논리구조를 따라가 볼까요? 참 단순합니다.

분양가 상한제가 폐지됐다 → 건설사들이 아파트 가격을 올릴 것이다 → 아파트 가격이 오를 것이다 → 지금 집을 사라

분양가 상한제 폐지로 건설사들이 마음대로 분양가를 올려 부를 수 있는 시대가 됐으니 아파트 가격이 오를 것이고, 그러니 이제라도 집을 사야 한다는 논리구조지요. 소비자들에게 공포감을 조성해 빨리 집을 사게 만드는 일종의 ‘공갈 협박 마케팅’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요, 그러나 과연 시장이 그렇게 단순하게 움직일까요?

이와 관련해 뉴스타파 <正말?> 취재진은 서울시내 3개 자치구(서초구, 강동구, 성북구)의 분양가 심의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허용회 감정평가사의 의견을 들어봤습니다.

허 평가사는 국내 대형 시중은행에서 거시경제 담당 연구원으로 일했고, 이후 감정평가법인의 대표이사를 지내면서 서울 강남지역의 재건축 관련 실무도 맡았던 전문가입니다. 현재도 재건축관련 감정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드물게 현장과 이론에 모두 능통한 30년 경력의 전문가이죠. 이 분의 이야기를 잠깐 들어보실까요?

▲ 허용회 감정평가사(서울 서초구, 강동구, 성북구 분양가 심의위원회 위원)

“허허허…" 분양가 상한제가 폐지되면 아파트 가격이 폭등하는게 아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사람 좋은 웃음으로 화답한 허 평가사는 분양가 상한제를 폐지한다고 해도 아파트 가격이 쉬 오를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습니다.

이 분이 말하는 구조적인 이유를 정리해 보면 이렇습니다.

1. 신규 유효 수요층이 별로 없다. 현재의 분양가도 서울 서초구 핵심지역의 경우 3.3제곱미터당 4천만원 안팎인데 그럼 과거 25평형 기준 10억원이다. 그걸 살 수요층은 많지 않다. 2. 과거와 달리 인구구조가 변했다. 과거 주택의 주요 수요층이었던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들이 지금은 은퇴시기와 맞물려 오히려 주택의 주요 공급층이 되고 있다. 즉, 앞으로 집을 팔아야 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진다. 3. 아무리 가격을 높이더라도 소득이 따라가지 못하면 수요가 뒤쫓아오지 못한다. 전반적으로 소득이 정체된 상황에서는 아파트 분양가가 높아지기 힘들다. 4.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꼭 집을 살 필요가 있냐라고 하는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또 허 평가사는 취재진에게 오랫동안 분양가 심의위원과 재건축 추진관련 감정평가 업무를 담당하면서 느낀 2가지의 중요한 경험을 이야기했는데요. 이 두 가지 모두 현재의 시장 상황을 가늠할 수 있는 귀한 인터뷰였습니다.

첫째, 허 평가사는 분양가 상한제 아래에서도 건설사들이 한도 내에서 얼마든지 분양가를 높일 수 있었지만 실제는 분양가를 높이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습니다. 친환경, 에너지 절감 등의 분양가 가산 항목을 충족하면 분양가 상한제 아래에서도 그만큼 분양가를 높일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허용돼 있었지만, 건설사들이 미분양 등을 우려해 섣불리 분양가를 높이지 못했다는 것이지요. 허 평가사는 자신이 분양가 심의위원으로 있었던 서울 성북구에서 그런 사례가 여러 번 있었다며, 결국 아파트 분양가격은 분양가 상한제같은 하나의 요인보다는 입지나 원가, 기타 시장 상황 등 여러 요인에 복합적인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분양가 상한제가 폐지된다고 해서 바로 아파트 분양가가 급등한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말이죠.

둘째, 서울 강남지역의 재건축 아파트 조합도 언론을 상대로 분양가 상한제가 폐지되면 당장 일반 분양분 아파트 가격을 높일 수 있을 것처럼 말하지만 속으로는 건설사와 끊임없이 ‘적정 가격’에 관해 상의하며 시장 상황을 예의주시한다고 합니다. 지난해 3.3제곱미터당 4600만 원의 최고가로 일반 분양했던 서초구 반포동 단지의 인근 지역에서도 지금 4천만 원은커녕 3500만 원에서 3600만 원 선에서 내부 검토를 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입지에 따라서는 그마저도 분양이 성공적으로 될 수 있을지 재건축 조합장이 걱정하더라는 것이지요.

허 평가사의 말은 결국 아파트 가격이 분양가 상한제 폐지라는 하나의 변수에 의해 움직인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것이고, 설사 그 변수가 먹힌다고 하더라도 강남의 극히 일부 지역에만 해당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아파트 가격을 결정하는 요소는 수없이 많습니다. 먼저 공급자 측면에서 원가를 계산해보자면 땅값이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그 다음은 건설비가 영향을 줍니다. 그런데 캐나다 전체를 사고도 남는다는 서울과 수도권 지역의 땅값은 그 동안 너무 많이 올라서 이제 거의 한계상황에 이르렀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입니다. 정부 중앙부처의 세종시 이전이나 공공기관의 지방혁신도시 이전도 서울과 수도권지역 땅값 안정화에 지속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됩니다.

건설 원자재값도 마찬가지입니다. 원유값은 급락해 있고, 중국의 경제성장률도 예전같지 않아 원자재값은 최근 1~2년간 전반적인 하락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수요자 측면에서 봐도 상황은 좋지 않습니다. 허 평가사가 지적한 것처럼 주요 아파트 구매층이었던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를 하면서 이들이 보유한 아파트들이 매물로 나오고 있고, 이들의 자녀들은 대부분 수억 원에 이르는 서울지역 아파트를 구매할 여력이 아직 없습니다. 수요자 입장에서 유리한 측면이라면 정부의 저금리 기조 정도인데요, 이 역시 미국의 금리인상이 연내 가시권에 있는 상황이라 섣불리 가계가 새로 큰 돈을 빌리기도 만만치는 않은 상황입니다.

이처럼 현재 아파트 가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시장의 변수들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이를 그림으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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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꼼히 따져보면 결국 여전히 분양가가 급등할 요인보다는 현 상태가 유지되거나 아래 쪽으로 압박하는 요인들이 더 많고, 그런 요인들의 영향이 아직 더 강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건설사들이 미분양이 날 것을 각오하고 고분양가에 아파트를 내놓을 수 있을까요?

물론 일부 지역에서는 잠시 그럴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정부가 건설경기를 띄우려고 이렇게 동분서주하고 있으니 이 틈에 한 몫 잡아보자고 나선 건설업체들이 많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안정된 수요가 받쳐주지 못하면 시장은 지탱하기 어렵습니다. 설사 그렇게 잠시 소비자를 현혹시킬 수 있을지는 몰라도, 건설사는 배부르고 집없는 서민은 주거불안에 시달리는 사회가 계속 유지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한국의 언론들은 그런 사회가 살기 좋은 사회라고 여겨서 그렇지 않아도 거품논란에 빠져있는 아파트 값이 분양가 상한제 폐지로 인해 또 오를 수 있을 것이라고 저렇게 장밋빛 전망을 늘어놓은 것일까요?

아무리 뛰어난 경제학자라도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습니다. 한국 언론의 말처럼 분양가 상한제 폐지로 아파트 분양가가 올라갈지, 아니면 허 평가사의 말대로 분양가 상한제 폐지에도 불구하고 아파트 가격은 올라가기 힘들지는 누구도 알 수 없겠지요. 그러나 확실한 것은 재화의 가격은 시장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고 시장의 가격은 단 하나의 요소에 의해 좌지우지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확실한 것은 지금보다 아파트 가격이 더 올라간다면, 그만큼 집 없는 서민들의 고통도 커지게 된다는 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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