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잠수사 올들어 3명 사망...한수원, 기본도 안 지켰다

2014년 10월 17일 23시 26분

 

월성 핵발전소가 지난 15년 동안 취수구 펌프를 가동 중인 상태에서 위험한 잠수 작업을 벌여왔고, 지난 9월 발생한 잠수사 사망 사고도 이 때문에 일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이같은 사실은 한수원 측이 뉴스타파에 보내 온 공식 답변에서 드러났다.

“핵발전소 내 잠수 작업을 할 경우, 그동안 펌프를 가동했는지 여부”를 묻는 뉴스타파의 질문에 대해 한국수력원자력 월성본부는 지난 16일 서면 답변에서 “월성 3,4호기는 상업운전 이후 15년 이상 항상 펌프가 운전되고 있는 상태에서 물막이를 설치했다”고 밝혔다.

뻘 제거 작업 등 잠수작업을 진행하면서도 주변 취수구 펌프를 계속 가동했다는 것이다. 잠수 노동자들이 오랜 기간 위험천만한 작업환경에 노출돼 왔지만, 한수원 측은 아무런 대책도 마련하지 않았다. 잠수 업계에서 수중 작업 시 주변 취수 펌프의 가동 정지는 기본적인 안전 수칙 중 하나다.

월성 3,4호기 15년 간 취수펌프 가동한 채 잠수작업 시켜

지난 9월 27일 월성 3호기에서 뻘 제거 작업 도중 숨진 잠수사 권 모 씨도 취수구 펌프가 가동 중인 상태에서 잠수 작업을 했다. 권 씨는 잠수 5분 만에 3번 펌프에 몸이 빨려 들어가 숨졌다.

취재진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장하나 의원(새정치민주연합)으로부터 입수한 대구지방고용노동청 포항지청의 중대재해 보고서를 보면, 당시 권 씨가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서 작업을 했는지 잘 알 수 있다.

월성 3호기 사고 중대재해 보고서
▲ 월성 3호기 사고 중대재해 보고서(제공:장하나 의원실)

당시 권 씨의 수중 작업 현장과 가동 중이던 3번 취수구 펌프 사이의 거리는 불과 1.5미터에서 2미터였다. 또 3번 펌프의 흡입관은 직경 122센티미터로 성인 남자도 빨려들어 갈 크기였다. 게다가 흡입구 주변 유속은 초당 1.2미터로 비교적 빠른 상태였다. 대단히 위험한 작업 환경이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 보고서는 잠수 작업 시에는 “인근 펌프에 빨려 들어가는 등 노동자가 위험해질 우려가 있을 경우, 펌프의 운전을 정지하여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수원 측은 “중수로형 원전은 정비 기간에도 펌프를 반드시 가동해야 한다”며 “1, 2번 펌프는 운전 불능 상태였고, 4번 펌프는 운전대기 상태여서 3번 펌프를 가동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3번 펌프의 가동은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수원 측의 설명과 달리, 사고가 난 지 5분 만에 한수원 측은 3번 펌프 가동을 중단하고 4번 펌프를 가동한 후, 다시 1번 펌프를 가동시켜 시신을 수습했다. 운전 불능 상태라던 1번 펌프를 가동시킨 것이다. 한수원 측 주장대로 작업 위치와 비교적 멀리 떨어져 있던 1번과 4번 펌프를 가동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 애초에 잠수 작업을 시키지 말았어야 했다는 지적이다.

더구나 숨진 권 씨 가 속한 잠수업체 직원은 당시 잠수사의 작업 현장와 가까운 3번 펌프 가동을 중단해달라고 요구했으나 한수원과 정비업체인 한전KPS가 거부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수원과 한전KPS의 관계자는 경찰 조사에서 가동 중단 요청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수원과 한전KPS는 자체 안전 매뉴얼도 지키지 않았다. 뉴스타파가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백재현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을 통해 입수한 한전 KPS의 ‘잠수작업 비상상황 대응 시나리오’ 내 잠수작업 절차서에는 “정비원은 작업 전 계통이 차단될 필요가 있을 경우 반드시 해당 펌프의 정지 및 전원 스위치 차단 상태를 확인 한다”고 돼 있다. 또한 잠수작업은 3인 1조, 즉 잠수원 2명, 보조잠수원 1명이 수행하도록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사고 당시 잠수원은 권 씨 혼자였다. 이 매뉴얼은 지난 5월 만들어졌으나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펌프가 가동되더라도 직경 1미터가 넘는 펌프 흡입관 주변에 안전망이라도 설치가 돼 있었다면 참사는 막을 수 있었다. 사건을 조사한 고용노동부도 재해보고서에서 노동자가 위험해질 우려가 있을 경우 펌프 운전을 정지하고, 펌프의 흡입관 주변에 안전망을 설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고 발생 3주째, 유가족 발인 못해

유가족은 사고 발생 3주가 넘도록 시신을 제대로 수습하지도 못해 발인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한수원은 정비 업체인 한전KPS, 한전KPS는 다시 잠수업체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뉴스타파가 조석 한수원 사장에게 잠수사의 펌프 가동 중단 요청을 왜 거부했느냐고 묻자 “ 아니라고 알고 있다. 그 문제는 KPS 사장님이 답변할 것”이라고 책임을 떠넘겼다.

▲ 유가족 국회 앞 기자회견
▲ 유가족 국회 앞 기자회견

유가족은 지난 16일 상경해 한수원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17일 오전에는 한수원 국감이 열리는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숨진 권 씨의 아내는 기자회견에서 “국민을 위한 기업이 선량한 국민을 살인해 놓고 서로 책임 회피에 급급 유가족을 두 번 죽이는 철면피한 행동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핵발전소에서 잠수 작업을 하다 사망한 노동자가 올해 들어서만 3명째다. 지난 1월에도 영광 핵발전소 5호기 방수로에서 수중 작업을 하던 한전KPS 직원과 하청업체 소속 직원 등 2명이 숨진 바 있다. 잠수 작업을 할 때는 잠수사와 지상의 통신수가 신호를 주고 받아야 하는데 노동부 조사 결과, 당시에도 통화 설비가 없는 상태에서 수중 작업이 이뤄진 것으로 드러나는 등 안전 수칙이 지켜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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