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편드는 'K-선샤인액트' 시행규칙 꼼수

2023년 05월 23일 15시 13분

'어떤 의사'가 '어떤 제약사'에서 '무슨 이유'로 '얼마나' 돈을 받는지, 시민들에게 공개하도록 관련 법이 개정돼 시행을 두 달 가량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정부가 제약·의료기기 업계와 의료계의 편익에 맞게 하위법령인 시행규칙 개정을 추진하면서 제도의 의미가 퇴색될 위기에 놓였다.
뉴스타파는 2018년 말부터 제약·의료기기 업계와 의료계의 불법 리베이트 수수 등 부적절한 유착 사례들을 꾸준히 보도했다. 더불어 이 같은 유착을 막으려 시행됐으나 실효성을 잃어버린 제도는 개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바로 2018년 1월부터 시행된 약사법 제47조의 2, 의료기기법 제13조의 2 이야기다. 흔히 ‘K-선샤인액트’라 부르는 법이다.
▲보건복지부는 6년 전인 2017년 6월 보도자료를 내고 'K-선샤인액트' 시행을 예고했다. (출처: 보건복지부 홈페이지)

정보공개·감시 취약했던 ‘K-선샤인액트’ 

다소 생소할 수 있지만 제약·의료기기 제조·유통사들은 법에서 허용하는 테두리 안에서 의료인들에게 각종 금전적 지원을 해줄 수 있다. 의사들이 주최하는 학술대회 비용 지원, 해외 학술대회 참가 의사들의 교통 및 숙식비 지원 등이다. 의사들을 자사 제품설명회에 불러 여비와 식사를 제공하고 기념품을 주더라도 역시 불법은 아니다. 미국과 유럽, 일본 등 해외에서도 규모는 다르지만 이러한 법적 완충지대는 마련해주고 있다.
다만 이 같은 경제적 이익 제공은 “과학적·교육적인 정보를 전달하고 환자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목적이어야 한다. 또 “보건의료전문가가 의약품을 처방할 때(또는 의료기기를 의료 행위에 사용하도록 선정할 때) 보장되는 결정의 독립성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러한 의료산업계의 선언이 무색하게도 현실에서는 불법 리베이트 수수 사건들이 종종 뉴스와 법정에서 다뤄지고 있다.
건강보험재정을 위협하고 의료계의 투명성을 해치는 불법 리베이트를 억제하기 위해  2018년 1월 ‘K-선샤인액트’가 시행됐다. 이 법에 따라 제약·의료기기 사업자들은 영업대상인 보건의료인들에게 각종 물질적 로비를 제공한 내역, 즉 ‘경제적 이익 등 제공 내역에 관한 지출보고서’(이하 지출보고서)를 작성·보관할 의무가 생겼다. 그러나 이 지출보고서를 공개할 의무는 쏙 빠졌다. 제도의 모델이 된 해외 사례와는 달리 반쪽 짜리 제도를 시행한 것이다.

해외 제도, 산업계-의료인 경제적 지원 ‘공개’가 핵심

예를 들어 미국은 한국의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격인 연방정부 산하 메디케어 앤드 메디케이드 센터(CMS·Center for Medicare & Medicaid)가 직접 데이터베이스 웹사이트(Open Payments)를 운영하며 제약·의료기기·구매대행 회사와 의사·교육병원과의 금전적 거래 관계를 공개한다. 이 같은 정보공개의 목적을 “대중에게 더 투명한 의료 시스템을 제공하기 위해서”라고 밝히고 있다. 누구나 DB를 검색하면 의료인과 업체들 사이에 주고 받은 돈의 액수와 명목을 확인할 수 있다. 의료인의 실명과 소속 기관도 모두 공개된다.
▲미국 정부 산하 CMS는 제약·의료기기업계와 의료인들 사이에 오간 경제적 이익 내역을 온라인 데이터베이스로 공개하고 있다. (출처: 오픈페이먼트데이터 사이트, openpaymentsdata.cms.gov)
일본의 경우 민간 차원에서 경제적 이익 제공 내역을 공개하고 있다. 제약·의료기기 업계를 대표하는 협회 스스로 투명성 가이드라인을 도입했다. 회원사들은 자사 웹사이트에 의료인 지원 내역을 연도별로 공개하고 있다. 연구·개발비용, 학술연구 조성비용, 원고 집필료, 강연비 내역 등이 공개 대상이다. 이러한 정보를 공개하는 이유에 대해 일본 제약공업협회는 회원사들이 “의료기관이나 의사에게 위탁업무의 대가로 제공하는 제비용이 의료기관이나 의사의 판단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밝힌다. 또 의료계와 산학 연계 활동은 필수적이지만 “이러한 연계 활동이 활발해질수록 의료기관 및 의료 관계자가 특정 기업과 제품에 깊숙이 관여하는 경우가 생기고, 의료기관 및 의료 관계자의 판단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낳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일본제약공업협회 홈페이지에 회원사들의 2021년도 지출보고서 공개 목록이 정리돼 있다. (출처: http://www.jpma.or.jp/tomeisei)
뉴스타파는 그동안 K-선샤인액트의 모델이 된 해외 제도들을 여러 보도에서 소개하면서 한국 역시 지출보고서를 공개하도록 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2020년 10월에는 법 시행 이래 대외적으로 공개된 적이 없던 지출보고서 일부를 최초로 입수·분석하기도 했다. 그 결과, 제약사와 의료기기 회사들이 제품설명회 등 합법적 지원을 빙자해 의료인들을 상대로 고가의 식사 접대 등 사실상의 부당 영업 활동을 해왔으며, 지출보고서 역시 졸속으로 작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뉴스타파 보도 이후 ‘K-선샤인액트’ 개정

뉴스타파 보도 이후, 진전이 있었다. 보도 직후인 2020년 12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고영인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지출보고서 공개 의무’ 조항을 신설하도록 약사법, 의료기기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6개월 뒤인 2021년 6월, 개정안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같은 해 7월 20일 공포됐다. 다만, 이렇게 개정된 K-선샤인액트는 2년간 시행 유예되어 오는 7월 21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지출보고서 공개 시스템의 실제 형태는 물론, 그 성패를 좌우할 지출보고서 공개 범위와 방식은 하위법령인 ‘약사법 시행규칙’과 ‘의료기기 유통 및 판매질서 유지에 관한 규칙’에서 정하도록 했다. 그러나 법 시행 유예 기간 2년 중 1년 7개월이 지나도록 그 실체는 알 수가 없었다. 주무당국인 보건복지부는 시행 시한이 3개월도 남지 않은 지난 4월 28일에야 보건복지부령인 두 규칙의 개정령안을 입법예고했다.
입법예고한 시행규칙 개정안의 규제영향분석서를 보면 개정된 약사법, 의료기기법 시행에 따라 현재 7만2000곳에 이르는 제약·의료기기 분야 사업자가 지출보고서를 의무적으로 공개하게 됐다. 공개 의무 대상은 제약 분야에서 ▲의약품 제조사 302개소 ▲수입사 181개소 ▲도매상 3332개소다. 의료기기 분야에서는 ▲의료기기 제조사 4246개소 ▲수입사 3031개소 ▲판매사 6만1040개소로 파악된다.
복지부는 일단 미국식 공개 시스템을 택했다. 미 CMS처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지출보고서 관리시스템’을 운영하기로 했다. 여기에 의료인들에게 경제적 이익을 제공한 의약품·의료기기 사업자들이 지출보고서 내역을 입력하고, 5년간 공개한다. 첫 공개 시점은 2024년 1월 1일로 정했다. 법령상 회계연도 종료 이후 3개월(1~12월 회계연도일 경우 이듬해 3월 31일까지) 안에 지출보고서를 작성하도록 돼 있기 때문에 실제 공개 시점은 2024년 중순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까지 보면 2018년 공개 의무 조항이 빠진 채 시행된 K-선샤인액트가 겨우 제도 도입의 취지를 살린 것처럼 보인다.

시행규칙 개정안에 독소조항 신설…“비공개·비식별 조치 가능”

그러나 복지부가 뒤늦게 입법예고한 시행규칙 개정안은 제도의 목적을 훼손할 만큼 치명적인 허점이 있다.
먼저, 복지부는 ‘투명한 정보 공개’ 자체를 방해하는 독소조항을 신설했다. 바로 약사법 시행규칙 개정안 제4조의 4 제2항과 의료기기 유통 및 판매질서 유지에 관한 규칙 개정안 제4조의 2 제2항이다. 이 조항은 지출보고서의 특정 정보에 대해서 ‘보건복지부 장관이 공개하지 아니하거나, 특정할 수 없도록 비식별 조치’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해당하는 정보는 아래와 같다.
1. 법인·단체 또는 개인의 경영상·영업상 비밀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법인 등의 정당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2. 그 밖에 보건복지부 장관이 인정하는 정보

-약사법 시행규칙 일부개정령안 제44조의 4 등
이 조항은 의료산업계와 의료인들의 편익을 위해 악용될 가능성이 크다. 바로 지출보고서 공개 시스템에서 의료인의 이름, 소속기관 등 신상 정보를 가리는 것이다. 실제로 의료산업계는 영업대상이자 물질적 혜택의 최종 수혜자인 의료인의 신상이 드러나는 것을 가장 부담스러워 하고 있다. 이러한 업계의 바람과 달리 시민들이 ‘어떤 의사’가 ‘어떤 업체’와 금전적 관계를 맺고 있는지 확인하고, 그 관계가 적절한지 스스로 판단하게 하는 것이 지출보고서 공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의사’에 대한 정보 자체를 감춘다면 지출보고서 공개 제도는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이번 시행규칙 개정안은 보건복지부 장관 1인에게 자의적이고 포괄적으로 정보를 감출 권한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도 상위법의 취지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
이러한 우려는 기우가 아니다. 이미 복지부가 업계와 의료계를 의식해 지출보고서상 정보를 숨김 없이 공개하기에는 부담스러워 한다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복지부는 오는 7월 개정 K-선샤인액트 시행을 앞두고 첫 지출보고서 실태조사를 실시한다. 단 “지출보고서에 포함된 개인정보·영업정보의 보호 등을 감안하여 진행”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2018년 법 시행 이래 처음으로 감독 권한을 행사하면서도 업계의 편의를 봐주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숨김 없는 지출보고서 공개는 환자들의 선택권과 자율성을 확대한다. 미 CMS가 운영하는 지출보고서 데이터베이스는 앞서 설명했듯이 의료인의 신상정보를 포함한 모든 정보를 제공하고 그 판단은 시민들에게 맡긴다. 정보의 공개 가치, 필요성에 대한 해석과 판단을 감독당국 수장 1인에게 맡겨놓지 않는다. CMS는 이렇게 말한다. “공개되는 정보를 어떻게 해석할지는 개인에게 달려 있으며, 환자와 보호자는 의문이 생길 경우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 해당 의료인과 직접 논의해야 한다.”

시행규칙 개정안, 강연비·자문료는 공개 대상 아니다?

K-선샤인액트 시행규칙 개정안은 또 한 가지 결정적인 하자가 있다. 당연히 공개해야 할 특정 지출내역들을 아예 보고 대상에서 누락한 것이다. 해외 사례를 먼저 살펴보자.
일본의 후소약품공업은 2021년 강연 7건의 대가로 일본대학 의학부 주임교수 아베 마사키에게 90만7460엔(약 849만원)을 지급했다. 미국의 정형외과 전문의 로버트 알펀은 2021년 3월 29일 의료기기 제조사 애보트로부터 자문 대가(consulting fee)로 26만 794달러(약 3억 4800만원)를 받았다. 이는 모두 각국의 지출보고서 데이터베이스에서 간단히 확인한 사실이다. 강연비 내역을 보면 특정 제약·의료기기 업체가 주목하고, 밀접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는 특정 진료·연구분야의 오피니언 리더가 누구인지 쉽게 알 수 있다.
▲미국 웨일 코넬 의대, 하버드대 의대 교수를 지낸 로리 글림처(Laurie H Glimcher)는 2017~2020년 연속 브리스톨-마이어스스퀴브에서 강연비 및 자문료를 가장 많이 받은 의사로 확인된다. 글림처는 1997~2017년 이 회사의 이사를 맡기도 했다. (출처: 미 CMS 오픈페이먼트데이터 사이트, openpaymentsdata.cms.gov)
한국의 의사들도 제약·의료기기 사업자들로부터 강연비와 자문료를 받는다. 이는 현재 법령이 아닌 제약·의료기기 업계가 자체적으로 맺은 공정경쟁규약에 근거해 허용되고 있다. 공정경쟁규약은 공정거래법에 근거해 공정거래위원회의 심의를 받아 제·개정되기 때문에 업계 안에서는 법령에 준하는 규제력을 가진다. 의료산업계는 이 규약 안에서 의료인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금품류의 범위를 제한하고 있다. 강연비와 자문료도 규약에 따라 제공 가능한 금품들이다. 규약에 따르면 의료인에게 강연을 부탁한 경우 1회당 1시간 기준 50만원까지 줄 수 있다. 1일 100만원, 연간 최대 500만원 한도 안에서 지급할 수 있다. 자문료는 1회당 50만원, 연간 최대 300만원까지 줄 수 있다. 적지 않은 액수가 오고 가는 것이다.
▲보건복지부가 배포한 지출보고서 작성 가이드라인 2판은 강연비에 대해 지출보고서 작성 대상이 아니라고 해설한다.
문제는 그동안 K-선샤인액트 시행규칙에서는 이러한 ‘강연비와 자문료’가 지출보고서 작성 대상에서 빠져 있었다는 점이다. 강연비와 자문료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지출보고서 서식도 제공하지 않는다. 제약사·의료기기사 실무자들도 의사들에게 준 강연비와 자문료에 대해 정말로 지출보고서를 작성할 필요가 없는지 헷갈려 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는 업계에 배포한 ‘지출보고서 작성 가이드라인’에서 강연비 지급 내역은 지출보고서 작성 대상이 아니라고 안내해왔다. 이렇듯 주무부처인 복지부는 업체와 의료인들이 강연비와 자문비를 주고 받는 실상 자체는 파악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있는 현실을 없는 것처럼 다룬 것이다. 복지부는 시행규칙을 개정해 오류를 수정하기는커녕 스스로 규제의 사각지대를 방치했다.
복지부는 최근 입법예고한 시행규칙 개정안에서도 이 문제점을 전혀 수정하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사각지대를 악용하기도 한다. 2020년 한 글로벌 의료기기 업체가 제주 리조트에 전국의 의사들을 불러 모아 1박 2일 제품설명회를 개최한 적이 있다. 뉴스타파는 이 현장을 잠복 취재했다. (참고기사: [의·약·돈 로비 추적] 의사들이 제주 리조트에 모인 이유) 당시 보도 안에서는 다루지 않았으나 이곳에서도 유명 의사들이 강연을 맡은 뒤 정해진 시간도 제대로 채우지 않은 채 수십 만원씩 강연비를 받아 갔다. 국내에서 열린 제품설명회에서 진행한 강연의 대가는 현행법상 지출보고서 작성·보관 대상이 아니므로 공적 감시를 피할 수 있다.
강연비, 자문료 외에도 보고 대상에서 빠진 경제적 이익 제공 항목이 더 있다. 의료인을 상대로 한 ‘시장조사 대가’로 제공하는 금품(공정경쟁규약상 10만원 이내 식음료·답례품·비용) 내역도 현행 K-선샤인액트 시행규칙의 지출보고서 작성 대상에서는 빠져 있다. 의료기관에 전달하는 ‘기부금’과 학술대회 및 의료기관 발행매체를 상대로 한 ‘전시·광고비’도 보고할 필요가 없다. 이 역시 이번 시행규칙 개정안에서 수정되지 않았다.
이처럼 강연비와 자문료, 시장조사 대가 등이 지출보고서 작성·공개 대상에서 빠진다면 의료산업계와 의료인들 사이에 오가는 경제적 이익의 전체 규모조차 정확히 파악할 수 없게 된다.
▲출처: 의약품·의료기기 거래에 관한 공정경쟁규약, 약사법 시행규칙, 의료기기 유통 및 판매질서 유지에 관한 규칙
복지부는 입법예고한 약사법 시행규칙, 의료기기 유통 및 판매질서 유지에 관한 규칙 개정안에 대해 다음달 7일까지 입법 의견을 받는다. 국민참여입법센터 홈페이지에서 누구나 의견을 제출할 수 있다. 뉴스타파는 개정 K-선샤인액트 시행 이후에도 지출보고서 공개 시스템이 시민들에게 투명한 정보를 제공하도록 제대로 작동하는지 계속 취재하며 점검할 계획이다.
제작진
디자인이도현
출판심인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