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과 퇴피아 ② 퇴직자만 배불리는 '수의계약'

2019년 10월 10일 14시 46분

공기업과 공기업 퇴직자 간에 벌어지는 ‘일감 몰아주기 관행’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고질적인 병폐 중 하나다. 국정감사 때마다 단골메뉴로 등장하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한국전력공사(한전)와 한전 퇴직자단체인 ‘한국전력전우회(전우회)’의 관계는 대표적인 사례다.

전우회는 ‘제이비씨(JBC, 구 전우실업)’라는 자회사를 설립해 지난 수십년 간 한전 용역을 싹쓸이했고, 이를 통해 수백억 원대 재산을 축적했다. 그럼 이 과정에서 덕을 본 사람은 누구였을까. 뉴스타파는 10월 9일부터 3일에 걸쳐 ‘악어와 악어새’ 관계와도 같은, 한전과 전우회의 수십년 공생관계를 연속 보도한다. -편집자주

연평도 포격이 있던 2010년 11월. 대부분의 사람들이 떠난 연평도에 유일하게 남아있던 민간인들이 있었다. 한전이 소유한 연평도발전소에서 일하는 ‘제이비씨(JBC, 구 전우실업)’ 노동자들이었다. 제이비씨는 한전의 퇴직자 친목단체인 ‘전우회’의 자회사로, 한전에서 섬발전소 운영 등 각종 용역을 받아 운영되는 회사다.

제이비씨 직원들이 포격 당시 연평도를 지켜야 했던 이유는 ‘안보’ 때문이었다. 연평도에 주둔한 군부대가 한전 발전소에서 만들어지는 전기를 쓰기 때문. 발전소가 멈추고 제이비씨 직원들이 섬을 떠나면 군부대 운영이 곧바로 마비되는 상황이었다. 연평도에서 만난 한 제이비씨 직원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포격 당시 부대장님께서 그러셨어요. ‘우리는 전기가 없으면 전쟁을, 전투를 못 한다’고요. ‘제발 전기 좀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게끔 도와주십시오’라고요. 당시에 저희 집 뒤에도 불이 나고 있었는데, 일단 어머니를 대피시킨 후에 저는 곧장 발전소로 들어갔어요.

신태근 / 제이비씨 직원(연평도 근무)

▲ 연평도에 위치한 한전발전소. 한전과 제이비씨 깃발이 태극기와 함께 꽂혀 있다.

연평도 포격 당시, 한전 직원들도 처음엔 복구작업에 참여했다. 하지만 군부대의 대피 방송이 재차 울리자 일을 하다말고 모두 섬을 떠났다. 남겨진 발전소 관계자는 제이비씨 직원들 뿐이었다. 한전 직원들은 섬을 떠나면서, 제이비씨 직원들에게 ‘대피하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제이비씨에 현재 한전 도서전력실에서 오신 분이 본부장으로 계시는데, 그 분한테 우리 직원들이 물어봤어요. ‘우린 어떡하냐’고. 그랬더니 ‘연평도를 떠나라 떠나지 마라 말을 못 한다. 우리는 당신들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 그게 참 안타깝다’ 그러더라고요. 그때 만약 저희도 모두 대피했으면 어땠을까요? 과연 제이비씨가 계속 한전으로부터 수의계약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신태근 /제이비씨 직원(연평도 근무)

한전 용역회사 ‘제이비씨’, 서울 강남 등에 500억 원대 알짜 부동산 소유

한전의 퇴직자 친목단체 ‘전우회’의 자회사인 제이비씨는 수십년 간 한전과의 독점계약으로 막대한 자산을 쌓았다. 2004년 74억이던 자산은 지난해 784억으로 10배 이상 늘었다. 하지만 연평도 포격 때도 자리를 지키며 발전소를 지킨 직원들의 처우는 거의 나아지지 않았다. 최대봉 발전산업노조 도서전력지부장은 제이비씨 소속 섬발전소 직원들의 현실을 이렇게 설명했다.

섬에는 학교나 병원이 변변치 않아 직원들이 이중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사택을 마련해 달라, 주거비를 지원해 달라’고 요구해 왔는데 바뀌는 게 없었어요. 방 하나에 직원 6명이 사는 섬도 있습니다. 제가 제이비씨 사장에게 ‘사람이 개, 돼지도 아니고 어떻게 이런 곳에서 사느냐, 사택이라도 지어줘라”고 항의한 뒤에야 컨테이너 주택이 마련되기도 했습니다. 대체 제이비씨가 그 동안 수의계약으로 쌓은 이득금을 어디에 쓴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최대봉/발전산업노조 도서전력지부장(울릉도 근무)

그렇다면 제이비씨는 지난 수십년간 한전으로부터 얻은 막대한 수익을 어디에 사용했을까.

취재진이 금융감독원 공시자료를 확인한 결과, 제이비씨는 이윤의 상당액을 토지와 건물을 매입하는데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자산 784억 중 560억원 가량이 부동산이었다. 강남 역삼동과 대치동에 각각 100억과 200억 원대 건물, 경기도 안양과 용인에 각각 80억, 130억 원대 건물을 보유하고 있었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에는 6억 원 상당의 오피스텔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 제이비씨는 현재 784억 원의 자산 중 500억 원 가량을 부동산에 투자하고 있다. 서울 강남의 역삼동과 대치동, 경기도 용인과 안양 등에 최대 200억 원대에 달하는 건물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럼 섬발전소 운영이 주사업인 제이비씨는 왜 이렇게 많은 부동산을 매입, 소유하고 있는 것일까. 취재진은 해당 부동산들을 직접 찾아가 확인했다. 그 결과, 제이비씨와 전우회가 함께 사옥으로 사용하고 있는 강남구 역삼동 빌딩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임대사업용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 제이비씨가 보유하고 있는 서울 송파구 잠실동에 있는 오피스텔. 사측은 “섬발전소 직원들을 위한 공간"이라고 했지만, 확인결과 한전 퇴직자들을 위한 복지공간이었다.

송파구 잠실동에 있는 오피스텔의 경우 제이비씨가 아닌 한전 퇴직자들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한전 출신인 한 제이비씨 전직 임원은 오피스텔 용도를 이렇게 설명했다.

거기는 아는 사람만 들어갑니다. 우리(제이비씨 전현직 임원)는 다 비밀번호를 알고 있어요. 우리는 거기 들어가서 모임도 갖고, 저녁도 먹고, 다마(당구)도 칩니다. 일종의 퇴직자들을 위한 후생 복지 시설이죠.

제이비씨 전직 임원 이 모 씨(한전 출신)

부동산 임대업의 수혜자는 ‘전우회’...이윤의 절반이 배당금으로

수백억 원대 부동산 임대업으로 가장 혜택을 보는 쪽도 제이비씨 직원들이 아닌 전우회 회원들이었다. 부동산 임대업 이후 전우회에 지급된 배당금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 공시자료에 따르면, 2004년 6억 원에 불과하던 제이비씨의 전우회 배당금은 부동산 매입이 본격화된 2014년 이후 17억 원까지 늘었다. 당기순이익 중 현금으로 지급된 배당금 비율을 의미하는 배당성향도 같은 기간 20%대에서 50% 수준으로 늘었다. 2004년부터 2018년까지 전우회에 지급된 총배당금은 전우회 출자금(32억 원)의 4배가 넘는 135억여 원에 달했다.

▲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제이비씨가 한전 전우회에 지급한 배당금 규모. 2004년 6억 원에 불과하던 배당금이 2018년에는 17억 원으로 늘었다.

전우회는 매년 받은 배당금을 1만여 명에 달하는 회원들의 각종 친목활동에 사용하고 있다. 전우회원들의 모임 공간 마련, 경조사비 지급, 콘도 회원권 구입 등 각종 복지에 배당금이 쓰이고 있는 것이다.

▲ 제이비씨가 매입한 강남구 대치동 빌딩 지하에 위치한 전우회 사랑방 모습. 전우회 관계자는 “제이비씨의 배당금이 전우회 사랑방같은 공간 제공, 회원들 친목활동에 쓰인다”고 말했다.

투자회사는 이익사업을 하고, 우리는 배당금을 가지고 회원들 친목 도모하는 거지. 전우회원들 모임 공간을 제공해주고, 우리는 거기서 바둑도 두고, 서예도 하고… 퇴직자들이 할 일이 그런 거잖아요.

제이비씨 관계자(전우회 이사)

지역 전우회의 한 간부는 “한전 퇴직자들의 복지를 위해서라도 수의계약은 계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전이 퇴직자들한테 주는 별다른 혜택이 없어요. 전우회에서 그나마 수익사업을 하니까 회원들한테 복지혜택 조금 주고 있는 거지. 과거 한전으로부터 받던 용역사업들 다 한전 자회사로 넘어가서 이제 도서전력사업 하나 받고 있는데, 외부인들이 따갑게 볼 수 있겠지만 내부적으로 전우회 입장은 일정 부분은 수익사업을 허용해주는 게 타당하지 않은가...

김00 /한국전력전우회 지역 사무국장

전우회 인건비도 제이비씨가 지급...제이비씨 측, “부동산 관리 대가” 해명

전우회가 제이비씨에서 가져가는 것은 배당금만이 아니었다. 전우회 직원들의 인건비도 제이비씨가 지급하고 있다는 사실이 취재과정에서 확인됐다.

오래 전부터 전우회 임직원 급여를 제이비씨에서 지급했어요. 2014년 세무조사 때 이게 문제가 돼서 3억원이 넘는 추징금을 내기도 했습니다. 그 이후에는 아예 전우회 사람들을 제이비씨 직원으로 등록시켰죠. 제이비씨에 ‘자산관리본부’라는 부서가 있는데, 거기 직원들이 전우회 사무총장, 총무국장 등 전우회 임원들이에요. 그들을 직원으로 등록해 놓고 회사 돈으로 월급 받게 하고 전우회 돈은 안 쓰는 거죠.

전 제이비씨 임원

하지만 제이비씨는 의혹을 부인했다. “전우회와 제이비씨는 별개의 조직이어서 급여를 대납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뉴스타파가 취재한 결과, 제이비씨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었다.


취재진은 제이비씨 본사 조직도를 입수해 확인해 봤다. 사무총장과 총무국장 등 전우회 간부와 직원 모두가 제이비씨 직원으로 기재돼 있었다. 취재진은 이들에게 전화를 걸어 ‘정확한 소속이 어디인지’, ‘급여는 어디서 받는지’ 물었다. 전우회에서 일하는 한 직원은 “전우회에서 일하고 있지만, 급여는 제이비씨에서 받고 있다”고 털어놨다. 제이비씨 본사 조직도에 자산관리본부장으로 기재돼 있는 김성진 전우회 사무총장은 “통화하고 싶지 않다”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취재가 계속되자, 제이비씨에서 오래 근무한 전우회 회원은 “전우회 직원들이 제이비씨 부동산들을 관리하고 있다. 그 대가로 급여를 받는 것이다. 대체 뭐가 문제냐”고 주장하기도 했다.

▲ 한전 전우회 회보에 실린 기사내용. 전우회가 서울 강남 역삼동에 빌딩을 사들인 것을 축하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 건물의 소유권자는 전우회가 아닌 제이비씨다.

취재내용을 종합하면, 결국 제이비씨의 수백억 원대 부동산 임대업은 제이비씨 직원을 위한 투자가 아닌 전우회의 안정적인 수입 확보를 위한 사업이었다. 섬발전소 노동자들은 “국민이 내는 준조세로 운영되는 섬발전소 사업이 전우회만 배불리는 돈줄이 되고 있다"며 “이제라도 한전 퇴직자들에게 몰아주는 수의계약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비판했다.

회사에서 순수익이 남았을 때, 전우회 운영기금 1년에 수십억 원을 가져간다고 하면 그거 주고 남는 든은 누구에게 줘야겠습니까. 당연히 직원들 복지를 위해 써야죠. 그런데 직원들에게는 한 푼도 안 주면서 빌딩을 4채, 5채 사놓고는 ‘야 우리 자산 많다'라고 자랑하고 있는 겁니다. 한 마디로 직원들 피를 빨아가지고 자기들 뒷배를 든든하게 만들고 있디고 생각합니다.

최대봉 /발전산업노조 도서전력지부장

한전은 세금인 전력기금을 받아서 일한다고 하지만 결국은 전우회 좋은 일만 시키고 있습니다. 한전입장에서는 도서전력사업은 보험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제이비씨 직원들을 볼모로 보험을 들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죠.

신태근 / 제이비씨 직원(연평도 근무)

제작진
취재홍여진 신동윤
촬영신영철 이상찬
편집윤석민
CG정동우
디자인이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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