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용산어린이정원'이 우려되는 세 가지 이유

2023년 05월 04일 17시 15분

용산어린이정원.  출처 : 용산어린이정원 홈페이지
용산미군기지 반환 땅 일부가 이른바 '용산어린이정원'이라는 이름으로 오늘(5월 4일) 개방됐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에 따른 부속 계획 성격의 용산공원 개방이 실현된 것이다. 이 부지는 윤석열 대통령 취임 1년(5월 10일)을 앞두고 상시 개방됐다. 정부는 이곳에 '어린이정원'이라는 이름을 달았다.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2020년부터 주한미군기지 반환 부지의 토양 오염 실태를 추적해 왔다. 우리 정부가 처음 반환받은 용산기지 일부의 토양 오염 실태도 2020년 12월 최초 보도했다. 이후 용산기지가 추가 반환될 때마다 각 부지의 오염 실태를 보도했다. 미군 반환 기지의 오염 실태를 계속 보도해 온 취재 기자 입장에서 '어린이정원'이라는 이름은 생뚱맞게 다가온다.
토양 오염과 관련해 적지 않은 기사를 썼고, 정부와 정보공개 소송도 진행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정화 계획 없이 용산기지 일부 개방은 그대로 진행되고 있다. 이번 '용산어린이정원' 개방이 우려되는 이유 몇 가지를 다시 짚어본다.

원래 토양은 어린이에 부적합

새로운 이름표를 달고 나왔지만 이곳은 지난해 6월에도 한 차례 시범 개방됐다. 당시에도 환경 정화 없이 일반 시민에게 개방되는 것이 맞냐는 우려가 나왔다. 이유는 간단하다. 주한미군 반환 기지가 심각하게 오염돼 있기 때문이었다. 
토양 오염은 그 위에서 활동하는 인체에도 영향을 준다. "토양오염으로 인한 국민 건강 및 환경상의 위해를 예방"하기 위해 '토양환경보전법'이 존재하는 이유다. 이 법은 발암 물질, 중금속 물질 등 토양오염 물질을 정하고 어느 정도 이상 검출되면 안 된다는 기준을 마련하고 있다. 
예컨대 1군 발암물질로 꼽히는 '비소'는 '1지역'에 해당하는 기준이 25mg/kg다. 이 이상 검출되면 '기준 초과'다. 여기서 1지역이라는 건 밭과 논, 과수원, 학교용지, 공원, 어린이 놀이시설 등을 의미한다. 
지난해 시범 개방됐고 이제 상시 개방되는 '어린이정원' 지역은 여러 오염물질이 1지역 우려기준을 초과해 검출된 곳이다. 유류 오염 물질인 석유계총탄화수소(TPH), 중금속 물질인 카드뮴, 구리, 납, 아연 등, 발암 물질인 비소 등이 곳곳에서 기준을 넘어 검출됐다. 
이번에 개방된 지역 중 '잔디 마당'으로 명명된 곳을 보자. 여기에선 석유계총탄화수소(TPH)가 최고농도 4,436mg/kg이 검출됐다. '1지역' 우려 기준은 500mg/kg이다. 즉 기준치를 8.8배 초과했다. 1군 발암 물질인 비소는 234.86mg/kg가 검출됐다. 기준은 25mg/kg다. 기준치를 9.39배 초과했다. (뉴스타파는 이러한 조사 내용이 담긴 환경조사보고서와 위해성평가보고서를 원문 그대로 공개하고 있다. 링크.)
용산어린이 정원 지도. 출처 : 용산어린이정원 홈페이지
통상 미군기지가 반환될 때는 환경조사를 하고 미군과 정화 비용을 협상하고, 환경정화를 한다. 그 뒤 우리 정부가 목적에 따라 개방한다. 하지만 용산공원은 정화비용 협상과 환경 정화 절차를 건너뛰고 임시 조치를 통해 시민들에 개방됐다. 
정부는 '안전 조치를 충분히 했다'는 입장이었지만 당시 시민단체가 현장에서 느낀 바는 달랐다. 
위해성 저감 조치를 한다는 게 당시 정부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단체에서 가보니) 그런 조치가 하나도 안 되어있었어요. 땅도 흙도 그대로 다 드러나 있었고, 한 사람 당 2시간만 이용하도록 했었는데 막상 공원에 다녀온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2시간이 지나도 나가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또 공원 안에 많은 인력이 배치됐단 말이죠. 그 인력들은 아침부터 밤까지 공원 안에 있었는데 그들은 그냥 (오염 토양에) 노출이 됐던 거죠." 

김은희 온전한생태평화공원 조성을 위한 용산시민회의 대표 인터뷰 中 (2022.12.30.)
이번 개방을 앞두고 국토부는 위해성 저감 조치를 추가적으로 했다고 설명했다. 개방하는 곳에 15cm 이상 흙을 덮고 잔디를 심거나 식생 매트를 설치해 시민들이 오염된 토양과 직접 노출되지 않게 했다는 것이다. 
정부는 토양오염 그 자체보다 '위해성'이 더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위해성은 토양오염 물질이 인체에 노출됐을 때 얼마나 위해한가를 평가하는 기준이다. 실제 미국에서는 토양오염 자체에 대한 기준보다 위해성 기준을 더 많이 사용한다. 이 개념은 토양오염 물질이 기준을 초과한다고 해서 무조건 정화하는 것이 아니라 '인체 접촉(노출) 가능성'을 줄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위해성’ 개념에 대해서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과 미국은 기본적으로 토양 환경이 다르다. 미국은 한국과 비교하면 국토 크기 자체가 워낙 넓고 실제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땅도 많기 때문에 모든 토양을 다 정화하는 건 비효율적이다. 이 때문에 노출 가능성을 줄여 위해도를 관리한다는 개념이 더 적합하다. 
한국에서도 이 위해성 저감 방식이 도입된 곳이 있었다. 장항제련소다. 이곳은 국내 위해성 평가 제도가 도입된 2005년 이후 실제 위해성 저감 조치가 도입된 최초 사례다. 이 부지는 중금속 오염 등 토양오염이 심각했다. 
그런데 일대에 60년 이상된 소나무가 13만 그루 있었고 토양 정화를 하기 위해서는 이곳을 다 갈아엎어야 했다. 때문에 이른바 대안 공법인 위해성 저감 조치를 시행했던 것이다. 게다가 위해성 저감 조치를 시행하면서 여러 차례 위해성 평가 내용을 일반에 공고했다. 

불투명한 행정

하지만 정부는 개방한 용산기지에 대해 "위해성 저감 조치를 했다", "안전하다"는 말만 할 뿐 그 근거 자료는 공개하고 있지 않다. 이 점이 뉴스타파가 국토부에 행정소송을 제기한 이유다. 
용산기지 개방을 위한 정부의 첫 토양 안전성 조사 용역은 지난 2021년 5월 시작됐다. 뉴스타파는 그 해 12월 이 용역 보고서를 공개해달라고 정보공개를 청구했지만 국토부는 거부했다.
이후 뉴스타파는 국토부를 상대로 정보비공개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고 1심에서 승소했다. 1심 재판부는 "이 부지는 공원 등으로 활용할 목적으로 대국민 개방을 앞두고 있는데, 그 토양오염도 및 정부가 적절한 위해 저감 조치를 수행했는지는 국민들이 명확히 알아야 할 필요성이 상당히 크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국토부는 항소했고 현재 2심 소송이 진행 중이다. (관련 보도)
사실 미군기지는 환경정화를 한 이후에도 문제가 발생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한국농어촌공사가 오염을 정화한 춘천의 미군기지 캠프 페이지에서 땅 속에 매립됐던 폐기름통이 무더기로 발견됐던 것이다. 이 때문에 '환경정화 전 개방'을 시민들이 우려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번 개방을 앞두고 정부는 "모니터링 결과, 실외는 측정물질 모두 환경기준치보다 낮거나 주변 지역과 비슷한 수준으로 안전했고, 실내도 사무실 공기관리지침 등 관련 환경기준에 모두 부합한 것으로 확인됐다"라고 밝혔다. 

정화 비용 협상에는 불리할 수밖에

또 한 가지, 앞으로 우리 정부는 미국을 상대로 환경오염 정화 비용 문제를 두고 협상해야 한다. 정부는 용산기지를 전부 돌려받은 이후, 정화 비용을 미국과 협상하고 정화 절차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아직 용산기지는 전체가 다 반환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 상시 개방은 추후 진행될 정화 비용 협상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우려가 크다. 벌써 일부를 개방했고 우리 정부 스스로 위해성이 높지 않다고 주장하면서 어떤 근거로 미국에게 정화 비용을 요구할 수 있을까? 
미국이 만일 '한국이 이미 큰 환경 문제가 없어 공원을 개방한 것 아니냐'고 나온다면 그땐 우리가 어떤 주장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