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독성물질 함유 제품, 버젓이 시중 유통

2013년 10월 08일 07시 14분

폐에 심각한 손상을 초래해 임산부와 영유아의 잇따른 죽음을 몰고 온 원인으로 지목됐던 가습기 살균제의 주 성분인 PGH와 PHMG.

이 물질이 들어간 생활용품이 시중에서 여전히 판매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2012년 2월 정부는 역학조사와 동물독성실험을 통해 PGH와 PHMG를 폐 조직이 딱딱하게 굳는 폐 섬유화를 유발하는 물질로 최종 결론 냈다. 정부가 문제의 성분이 함유된 가습기 살균제를 강제 수거하고 다른 생활화학가정제품에 대해서도 안전관리를 강화하겠다고 나서면서 공포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일단락되는 듯 했다.

하지만 두 성분이 포함된 살균 스프레이, 곰팡이 제거제, 탈취제, 물티슈 등은 여전히 시중에서 팔리고 있다는 사실이 뉴스타파 취재 결과 확인됐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 당시 보건당국은 PGH와 PHMG 같은 성분이 흡입을 통해 사람에게 노출이 될 경우에만 폐 손상의 위험을 갖고 피부접촉이나 섭취 등으로 인한 손상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조경현 영남대 단백질센서연구소장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PGH와 PHMG 성분이 물티슈 등을 통해 얼굴과 손에 접촉되는 경우에도 피부에 흡수가 되면 세포막 파괴 등 인체에 유해한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흡입이 아닌 흡수 등 다른 경로로도 인체에 해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물질은 환경부에 의해 유독물로 지정이 된 상태.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기술표준원은 생활화학용품 안전기준에 PGH와 PHMG를 제한물질로 고시해놨음이 확인됐다.

하지만 이런 유해성분이 들어간 제품은 정부의 관리감독 사각지대에 방치된 채로 버젓이 판매되고 있다. 정부의 졸속 행정 때문에 국민의 건강과 생명이 여전히 위험에 처해있다.

<앵커 멘트>

지난 2011년 가습기 살균제 사건 기억하십니까?  폐 손상을 유발시키는 유독물질 때문에 임산부와 영유아 수십명이 잇따라 목숨을 잃으면서 우리 사회를 공포 속에 몰아넣었었는데요.

보건당국은 폐손상의 원인이 PGH와 PHMG라는 화학물질이었다고 발표하고 생활화학용품 전반에 대한 안전관리를 확고히 하겠다고 다짐했었습니다.

그런데 뉴스타파가 취재한 결과 이 문제의 독성물질이 포함돼 있는 살균스프레이와 물티슈가 시중에 버젓이 판매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이유정 기자가 보도합니다.

<이유정 기자>

지난 2011년, 산모와 영유아 등 수십명이 원인 모를 폐질환으로 잇따라 사망하면서 불거진 가습기 살균제 사건. 역학조사를 벌인 정부는 가습기 살균제의 주 성분인 PGH와 PHMG를 죽음의 원인으로 지목했습니다. 이 물질을 흡입한 실험 쥐에서 폐가 딱딱하게 굳는 섬유화 소견을 확인한 것입니다.

정부가 문제의 가습기 살균제를 강제 수거하고 다른 생활가정화학용품에 대해서도 안전관리를 강화하겠다고 나서면서 사건은 일단락 되는 듯 했습니다.

2년이 지난 지금, 경기도의 한 백화점을 찾아가봤습니다.

생활용품을 파는 매장코너에 살균 스프레이 제품이 진열돼있습니다. 제품의 성분표시를 보니 PGH 성분이 들어가 있습니다. 보건당국이 죽음의 원인물질로 지목한 그 성분입니다. 현재는 환경부에 의해 유독물로 지정이 된 상태입니다.

그런데 제품에는 인체에 무해한 안전 살균제라는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논란 이후 가습기 살균제는 시장에서 모습을 감췄지만 폐 손상을 일으킨 성분이 들어간 다른 살균 제품은 여전히 판매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서울의 또 다른 백화점입니다. 이곳에서 판매되는 아기용 물티슈에는 PGC 성분이 함유돼 있다고 나옵니다. 생소하게 들리는 성분 PGC. 제품에는 연약하고 민감한 아기 피부에 도움을 주는 원료라고만 설명돼 있습니다.

하지만  표기만 다르게 해놨을 뿐 PGC는 가습기 살균제 성분인 PGH와 같은 물질입니다.

2012년, 공정거래위원회는 가습기 살균제가 안전하다고 허위 표시한 업체들을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이 가운데 한 업체는  PGH를 주 성분으로 쓰면서 PGC로 이름을 바꿔서 표시했다가 적발됐습니다. PGH 성분이 들어간 아기용 물티슈 역시 PGC로  이름만 바꿔 판매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업체는 물티슈에 PGC 성분이 들어있음을 전면 부인했습니다. 성분을 표시해놓은 포장지를 처음에 대량생산했기 때문에 그것을 소비하기 위해 사용했을 뿐 실제로 제품에 PGC 성분은 들어가지 않았다고 해명했습니다.

[이 모 씨 ㅇㅇ업체 대표]

"아토오가닉에서 받았던 PGC라는 거를 저희가 킹티슈 생산했을 때 한 3,4년 전에 처음 한번 딱 넣고 그 이후로는 사실 넣지 않았어요. 한번만 딱 넣은거죠. 저희가 킹티슈 생산할 때 한 3, 4천개 정도 생산을 하는데요. 그거 한번 넣고 끝난 겁니다 그게. 한 3, 4년 전에. 포장지만 계속 남아있었던 거죠."

하지만 포장지를 아끼기 위해서라는  업체의 주장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소비자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권민정 / 주부]

"끔찍하죠. 아이한테 만약에 그게 물티슈 같은 경우에는 얘네들이 똥 이런 거 치울 때, 바르는 거 뿐만 아니라 음식 먹고 나서도 엄마들이 손, 입 이런데 닦이니까… 그런게 혹시나 입으로 들어가서 인체에 해가 되거나 이러면 끔찍하죠 아무래도."

온라인 판매 상품도 마찬가집니다. PHMG가 들어간 곰팡이 제거제, 탈취제가  버젓이 팔리고 있습니다. 이 물질도 환경부에 의해 유독물로 지정돼 있지만 어디에도  위해성을 알리는 문구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 때 보건당국은 PGH와 PHMG 같은 유해성분을 흡입했을 때 폐손상의 원인이 된다고 결론냈지만  피부접촉이나 섭취했을 때는 인체에 피해를 미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의 의견은 다릅니다. PGH와 PHMG가 폐 질환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심혈관 급성 독성과 피부세포 노화를 촉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두 성분을 권장사용양대로 처리한 물에 실험용 물고기를 넣고 관찰했더니 죽거나 급격한 노화가 이루어진 것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흡입이 아닌 흡수 등 다른 경로로도 인체에 해로운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연구결과입니다.

[조경현 교수 / 영남대 단백질센터연구소 소장]

"폐 섬유화를 일으킨 성분들이 역시 피부 세포 안으로 들어가서 피부 세포의 섬유화를 일으킬 수 있죠. 그러면 또 콜라겐의 뭉침 현상 이런 것들이 일어날 수 있고요. 그래서 여러 가지로 피부의 조기노화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어린이들 피부에는 더 빨리 전달이 되고 더 많은 염증과 혹은 부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 이후 정부는 후속 대책으로 생활화학용품 안전관리 종합계획을 마련하고 사고 재발을 방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환경부는 생활화학가정제품에  PGH와 PHMG 같은 유해성분 농도가 25% 이상이 되면 관리  대상 유독물에 해당된다는 입장입니다.

[환경부 관계자]

"유독물에 해당된다고 하면 관리가 되고요. 조금 들어가 있거나 유독물에 안 들어있다고 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라 기표원(기술표준원)이나 이쪽에서 할 수 있는 범위고요."

유독물질 자체는 환경부에서 관리하지만 유독물질이 들어간 제품에 대해서는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기술표준원에서 안전관리를 하게 돼 있다는 설명입니다.

그런데 기표원은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터지고 나서 후속조치로 지난 2012년 4월 세정제와 방향제 등 8개 제품항목에 대해서는 PGH와 PHMGH 같은 유해물질을 쓰지 못하도록 이미 고시해놨습니다.

[기표원 관계자]

"법에 나와있는 8개 품목 외에는 지금 추가로 기자님께서 말씀하시는 그런 살균 제품이라던가 이런 제품은 지금 관리를 하고 있지 않다 이렇게 말씀을 드릴 수 있어요."

하지만 취재진이 확인한 제품 가운데 물티슈와 곰팡이제거제는 분명히 PGH와 PHMG가 들어가서는 안되는 세정제로 고시되어 있습니다. 살균 스프레이의 경우에도 사람 몸에 사용하는 살균제가 아니기 때문에 기표원이 관리해야될 대상입니다.

[식약청 관계자]

"살균 스프레이가 반드시 의약외품만 있는 건 아니고요. 가정에서 공간이라든가 가구 같은데 묻어있는 균을 없애기 위해 뿌린다든가 그런 것들은 공산품 쪽에서 품질 판매 하고 있는 제품이고요. 제품의 뒷면에 보면 품질경영 및 공산품 안전관리 관한 법 이렇게 써있는 것들은 그건 공산품이에요. 기표원에서 관리하는 품목이고요."

[기표원 관계자]

살균 스프레이는 지금 저희가 관리하고 있는 품목이 아니에요. 살균 스프레이라는게 어떤 품목을 얘기하시는 거에요?

(기자) 다용도 스프레이라고 해서요. 살균제겠죠 아무래도.

살균제는 저희가 관리하고 있는 품목이 아니에요.

(기자) 물티슈에도 지금 PGH 성분이 들어가 있는게 지금 팔리고 있더라고요.

팔리고 있다고요?

(기자) 네.

저희는 그거는 전혀 안 팔리고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정부기관의 안일한 대처 속에 유독물질이 포함된 제품들이 아무런 제재없이 팔려나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가습기 살균제가 불러온 참사로 지금까지 무려 127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살아남은 피해자들과 가족들은 여전히 심각한 고통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소홀한 관리가 또 다른 피해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의 목소리가 큽니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발생한 이후에 이렇게 유사한 문제를 발생할 수 있는 제품이나 스프레이 제품이나 성분이나 이런 거에 대해서 조치를 취하고 회수하게 하고 그것이 개선됐다는 그런 사례를 전 지금까지 전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겨우 조금 보완시킨 화학물질관리법조차도 지금 산업계에서 저렇게 흔들어대고 있기 때문에 가습기 살균제 사고 이전 또는 그거보다 훨씬 못한 상태로 갈 우려가 큽니다. 죽은 사람만 억울하게 된 그런 상황이 된 거죠."

정부의 졸속 행정 때문에  국민의 건강과 생명이 여전히 위험에 처해있습니다.

뉴스타파 이유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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