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1.5°C : 폭염, 삶과 죽음의 체감온도

2020년 08월 24일 09시 40분

⬤ 2000년대 재난 사망자, 폭염 602명 태풍 427명 집중호우 325명
⬤ 온열질환 병원 밖 사망자, 야외아닌 ‘주택 내’ 최다
⬤ 의료급여 대상자 열사병 확률 2~3배 높아
⬤ 2년전 폭염 사망자 집계도 제대로 못한 정부
⬤ 가해자와 피해자가 다른 기후재난

각국 정부가 파견한 전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자들이 지난 2018년 10월 인천 송도에 모였다. 이들이 만장일치로 도출한 결론은 지구의 평균 기온이 산업화 이전인 1850년대의 13.6℃보다 1.5℃ 이상 상승하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는 것.

이미 1℃ 가까이 올랐다. 상승 속도는 빨라지고 있고, 한국은 더 빨리 뜨거워지고 있다. 우리는 최근 3년 동안 관측 사상 최악의 폭염과 가장 많은 태풍, 가장 더운 겨울 그리고 가장 긴 장마를 경험했다. 관측사상 최초라는 기후 이변을 매년 경신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해 2030년까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을 절반 이상 줄이고, 2050년에는 ‘0’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지난 2017년 기준 전 세계 7위, 국민 1인당 배출량은 4위다. 국제사회에서 ‘기후악당’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IMF 외환위기 당시 사실상 국가 부도 상태에서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전년대비 14% 줄어드는 데 그쳤다. 1.5℃의 마지노선을 지키려면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서 막대한 노력이 필요하다.

뉴스타파는 이에 동참하기 위해 기후위기 연속보도, ‘프로젝트 1.5℃’를 시작한다.

“제2, 제3의 2018년 폭염은 언제든 다시 온다”

2018년 여름, 강원도 홍천군은 갑작스런 유명세를 탔다. 8월 1일 기상청 춘천기상대 관할 홍천기상관측소에서 낮 최고 기온이 41℃ 기록했기 때문이다. 이는 100여년의 한국 기상 관측 사상 공식 관측된 최고 기온이었다.

기후변화는 홍천의 일상을 바꿔놓고 있다. 감자 등을 주로 재배했을 뿐, 낮은 기온 때문에 과일 농사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던 홍천군은 이제 사과 주산지로 바뀌고 있다.

“전에는 홍천이 이렇게까지 덥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제 기억으로는. 제가 결혼했을 때만 해도 홍천에는 과일나무가 된다고 생각도 못 했었어요. 근데 지금은 홍천 사과가 브랜드화 되고 있거든요.”
- 용미자 강원도 홍천군 주민

▲ 강원도 홍천군

2018년 사상 최악의 폭염은 우연한 기상이변이었을까. 전문가들은 제2, 제3의 폭염이 언제든지 반복될 수 있다고 말한다.

“점차 극한 기온 발생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분간 지구 온난화는 멈추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추세라면 언제든 제2의 2018년, 제3의 2018년은 충분히 나타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 최정희 기상청 기후변화감시분석 주무관

“극한 기상이 많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국민들은 모든 것이 기후 위기에 따른 것이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피해자가) 나라고는 생각을 안 하거든요. 다음번 폭염 피해지는 전국 어디든지 될 수 있습니다.”
- 김동진 강원기상청 춘천기상대장

폭염, 소리없는 살인자

그동안 잘 드러나지 않았을 뿐 폭염은 이미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가장 위험한 자연재난으로 자리매김했다. 희생자 규모에서 태풍이나 홍수를 크게 앞선다.

뉴스타파가 행정안전부의 재해연보와 통계청의 사망원인 통계를 분석한 결과, 2000년부터 2018년까지 19년간 태풍으로 472명, 집중호우로 325명이 사망했다. 그러나 같은 기간 폭염은 무려 602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폭염 인명피해, 즉 여름철 온열질환 사망자의 증가는 최근 들어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통계청이 집계를 시작한 1997년 당시 온열질환으로 숨진 사람은 13명이었다. 이후 2004년 36명으로 늘어난 온열질환 사망자는 2012년 57명, 2016년 63명으로 증가하다가 2018년에는 무려 142명에 이르렀다.

 태풍과 홍수의 경우 발생 국가적 방재 대응 능력이 향상되면서 피해가 줄어든 반면, 재난으로 인식하지 못한 폭염 피해는 꾸준히 늘어났다.

“태풍이나 집중호우가 오면 건물이 무너지고, 시설물이 날아가는 것이 우리 눈에 보입니다. 그러나 폭염은 소리 없는 살인자입니다. 허약한 노년층이나 이미 건강이 나쁜 기저질환자들은 더위로 인한 위험이 더 크기 때문에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대비해 피해를 줄여야 합니다.”
- 김승배 한국기상산업협회 본부장

그 여름, 집 안에서 숨진 사람들

폭염 피해는 저소득층에게 집중됐고, 상당수는 집 안에서 사망했다. 열악한 주거 환경과 빈곤이 폭염의 희생양을 양산했다. 이는 폭염이 자연 재난인 동시에 사회적 재난임을 의미한다.

 뉴스타파가 1997~2018년 통계청 사망원인 통계를 분석한 결과, 매년 7~8월 사망한 국민들 가운데 사망원인이 온열질환(질병코드 T670~679)으로 분류된 인원은 모두 627명이었다.

통계청은 전국의 사망신고서를 취합해 사망 장소를 일정 기준으로 분류하는데 627명 가운데 61%인 385명이 병원 밖에서 숨진 것으로 나타났다.

폭염 사망자 10명 중 6명은 병원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한 것이다. 병원 밖 사망자 385명 중 가장 많은 111명(28%)이 숨진 장소는 다름 아닌 ‘주택 내’였다. 폭염 앞에서 그들의 집이 더 이상 안식처가 될 수 없었다.

‘주택 내’ 사망자 다음으로 농장(99명) 기타(50명), 산업장(47명) 등이 뒤를 이었다.


불평등한 폭염 피해는 다른 수치로도 확인할 수 있다. 뉴스타파가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지난 10년 간의 열사병 환자 자료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의료급여 대상자가 일반 의료보험 대상자보다 열사병에 걸린 확률이 적게는 2배, 많게는 3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집 안에 환기가 충분히 안되고 에어컨이 없는 이유도 있겠지만, 열기에 인지기능이 떨어져 지고, 외부 활동이 어려운 경우도 많습니다. 의료급여 대상자가 되는 원인 중에 또 하나가 장애라든지 이런 부분이니까요. 여러 취약한 부분들이 종합된 상태로 외부 온도에 따른 영향을 받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 황승식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쪽방촌 주민들이 마주하는 생사의 체감온도

서울 돈의동 쪽방촌은 열악한 주거 환경과 빈곤이 교차하는 곳 중 하나다. 이곳 주민들은 여름마다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이고 있다. 주변 고층 건물들에 둘러싸인 ‘도심 속 분지’에 자리 잡은 특성으로 쪽방촌의 골목길에는 바람 한 점 드나들지 않는다. 한 밤에도 식지 않는 열기 속에 주민들은 도시의 여름을 감당해야 한다.

“돈의동 쪽방촌의 경우 사방이 고층 건물과 밀집한 주택에 막힌 공간이어서 온도를 낮추고 환기를 할 수 있는 바람길이 없습니다. 대부분 방안에 선풍기 한 대 정도를 돌리고 있지만 역시 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환경입니다.”
- 이은석 건축도시공간연구소 녹색건축센터장

▲ 서울 종로구 돈의동

열사병에 걸렸다가 다행히 죽을 고비를 넘겼던 유구성씨는 여름이 오는 게 두렵다고 말한다.

“아, 막 미치겠더라구요. 겨우 기어가 나가서 집 밖에 누워있으니까, 여기 주민들이 보고는 119를 불러서 병원으로 갔어요. 그냥 방 안에서 쓰러지기라도 하면, 누가 죽어도 몰라요. 누가 와서 문을 열어봐야 알지, 문 안 열면 모르죠.
병원에 입원 한 동안, 완전히 뼈다귀만 남았었어요. 한 달 동안 있는데. 의료진이 하는 이야기를 슬쩍 들었을 때는 ‘이제 나도 다 살았나 보다’ 싶었어요. 그 뒤로, 지금도 여름이면 무서워요. 너무 덥다 싶으면 그늘부터 찾게 돼요.”
- 유구성 서울 돈의동 주민

▲ 서울 돈의동 주민 유구성씨.

 열사병이란 질병관리본부가 분류한 6가지 온열질환 중 하나다. 우리 몸이 체온 조절 기능을 상실해 체내에 쌓인 열을 제대로 발산되지 않았을 때 나타난다. 이 때문에 열사병 환자 가운데는 땀이 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유구성씨와는 달리, 쪽방촌의 여름을 결국 버텨내지 못한 주민도 있다.

“A씨가 집안 화장실에서 나오다가 쓰러져 있는 것을 주민이 발견해 신고했는데 이미 심장이 멈춰서 돌아가신 상태였고요. 굉장히 좋은 분이었는데, 지금도 안타깝죠. 많은 주민들이 특히 여름에 굉장히 열악한 주거환경에 처한 상황입니다.”
- 최봉명 서울 돈의동주민협동회 간사

쪽방촌 주민들이 즐겨찾는 피난처는 지하철이다.

“사랑방을 왔다 갔다 해도 너무 더울 때는 지하철 타고 하루를 지내다 저녁에 와요. 집에 있질 못하니까요. 여기 사람들 더러 그렇게 하고 있어요.”
- 김선희 서울 돈의동 주민

“지하철 2호선 타면 쉬지 않고 그냥 계속 뱅뱅 도니까. 그거 타고 돌아다니다 보면 한 6시, 저녁 6시, 8시 돼요. 그러면 내려서 밥 먹고, 또 타고는 막차 될 때까지 타고 다녀요.”
- 유구성 서울 돈의동 주민


2018년 폭염 사망자 142명 VS 48명

2018년 사상 최악의 폭염을 경험하고 나서야 정부는 폭염을 재난기본법상의 자연재난으로 포함시켰다. 그러고 2년이 지났지만 정확한 폭염 피해자 집계도 하지 못하고 있다.

앞서 설명한 대로 뉴스타파가 통계청의 마이크로데이터 통합 서비스를 통해 확보한 사망원인 통계를 분석한 결과, 2018년 7월과 8월 온열질환으로 숨진 사람은 모두 142명이다. 6월이나 9월에도 온열질환으로 숨진 사람이 있지만 여름철 폭염과 관계가 멀 수도 있기 때문에 7월과 8월로 한정한 수치다. 통계청은 지난해 9월 2018년도 사망원인 통계를 공개했다.

그러나 재난 대응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가 올해 5월 작성한 ‘2020 폭염 종합 대책’에는 2018년 폭염으로 인한 온열질환 사망자를 48명으로 집계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문서에 인용된 ‘사망자 48명’ 이라는 수치는 질병관리본부의 응급실 온열질환 감시체계를 통해 파악된 것이다.

질병관리본부는 매년 ‘온열질환 감시체계 연보’를 발행하는데 이 수치는 응급실을 통해 들어온 온열질환자의 추세를 파악하기 위한 집계일 뿐이다. 질병관리본부는 연보에서 전체 환자를 조사한 것이 아니며, 사망자 역시 추정치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행정안전부가 부정확한 수치를 오용하고 있는 것이다.

행정안전부의 엉터리 집계는 자신들이 만든 문서에서도 나타난다.

지난 2018년 연말, 정부는 폭염인명피해 지원금 지급 방침을 밝혔다. 발표 시점 이전인 2018년 여름에 피해를 입은 이들도 소급 적용이 됐는데 사망자 1인당 1,000만원의 지원금을 지급토록 했다. 그런데 뉴스타파가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확보한 행정안전부의 2018년 폭염 피해 지원 현황에 따르면, 모두 62명의 사망자 유가족 등에게 각 1,000만원씩을 지급한 것으로 돼 있다. 자신들이 집계한 48명보다 더 많은 사망자에게 인명피해 지원금을 지급한 것.


뉴스타파가 사망자 48명을 고수하는 이유를 묻자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전년도 수치와 비교를 위해서 (질병관리본부 수치를) 사용 했는데, 바로 잡기 위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답했다.

정부는 2018년 131억원, 2019년 72억원, 2020년 90억원 등 매년 적지 않은 예산을 폭염 대책 사업에 투입하고 있다. 하지만 목적에 맞게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 냉정한 평가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부분의 지자체가 살수차를 운영하는데 많은 예산을 씁니다. 살수차를 이용해서 도로에 물을 뿌리면 온도가 당연히 낮아지겠죠. 그런데 도로의 온도를 1°C 낮추는 게 정부 폭염대책의 목표가 될 수 있을까요? 언제까지 폭염 사망자를 어느 수준 이하로 줄이겠다는 구체적인 목표가 없다보니 각 부처나 지방자치단체가 그동안 해오던 방식을 답습하는 데 그치고 있습니다.”
- 황승식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기후재난, 가해자와 피해자가 다르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가 지난 2018년 채택한 ‘지구 온난화 1.5°C 특별보고서’에 따르면 산업화 이전 시기(1850~1900년대) 13.6℃도 였던 지구의 평균기온은 2006~2015년 기준 0.87℃가 상승했다. 온도 상승 속도는 최근들어 더욱 빨라지고 있다. 한국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기상청은 우리나라의 평균기온은 1912~1920년대에 비해 2011~2019년대 무려 1.8℃ 상승한 것으로 분석했다.

특히 특단의 온실가스 저감 조치가 없다면 21세기 후반 우리나라는 4.5℃ 가량의 기온이 상승할 것으로 예상했다. 1.8℃ 상승한 지금 전에 없던 폭염과 홍수 등으로 겪은 고통을 떠올리면 앞으로 닥칠 기후 재난은 상상조차 어렵다.

그리고 그 피해는 온실가스 배출과 거리가 먼 에너지 빈곤층에게 전가될 가능성이 높다.

▲ 서울 용산구 동자동

“서울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처럼 주거취약계층 대부분은 방 하나에 작은 선풍기 하나를 두고 한여름을 나는데, 사실 불가능한 거죠. 정말 가난한 사람들은 (에너지의 풍요를) 하나도 누리지 못하는데 그 피해는 고스란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돌아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 황성철 홈리스행동 활동가

“저희만 하더라도 폭염이 와도 별 피해를 안 봐요. 학교나 집, 직장 어디나 에어컨이 나옵니다. 결국 기후 재난 상황에서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다르다는 겁니다. 에너지를 많이 쓰는 집단들은 재난으로부터 안전한 사람들이죠. 결국 에너지를 못 쓰는 취약 계층들이 더 피해를 보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 이동근 한국기후변화학회장.

제작진
취재조원일 신동윤
촬영신영철 김기철 정형민 오준식
데이터분석최윤원
편집정지성
CG정동우
디자인이도현
웹출판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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