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회] 천성산 도룡뇽의 고백

2012년 04월 27일 07시 10분

@ KTX 2단계 개통식, 2010.10.28 부산역

“KTX 2단계 공사가 개통식을 갖고 다음 달 1일부터 운행을 시작합니다.”

[김황식 총리 KTX 2단계 개통식, 2010.10.28 부산역]
“천성산 터널 문제 등 우여곡절도 많았습니다. 정부는 녹색 성장의 기반을 한층 강화 하겠습니다.”

<기자>

13킬로미터가 넘는 긴 터널 속으로 KTX가 빨려 들어갑니다. 지율 스님의 단식과 도롱뇽 소송 등으로 우여곡절을 겪은 원효터널. 일명 천성산 터널이 개통되고 두 번째 봄을 맞았습니다. 짙어지는 초록, 군데군데 피어난 봄꽃은 산을 후벼 판 터널의 상처와 무관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천성산 터널로 인해 심각한 영향을 받을 거라는 우려가 제기됐던 늪의 모습은 과거와 확연히 달랐습니다. 물이 많으면 살 수 없는 오리나무 군락이 늪을 침범해 있었고, 육지 식물인 억세도 영역을 늪 중앙부로 넓혀가는 중이었습니다. 늪이 마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늪 중앙부를 흐르고 있는 물골에서 도롱뇽 알 몇 개를 어렵게 찾았지만 물이 얕아 일부는 폐사하고 있습니다. 도롱뇽 사체도 발견됐습니다. 천성산은 도롱뇽 천지라고 떠들었던 일부 언론의 보도와 상당히 다른 풍경이었습니다.

2003년부터 3년 넘게 진행된 천성산 터널 논란은 도롱뇽 등의 보호종이 서식하고 습지 보호지역으로 지정된 늪지대가 공사구역에 있는데도 환경영향평가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작됐습니다.

그러나 공사가 끝난 뒤 일부 언론은 도롱뇽이 있냐, 없냐의 단순논리로 당시의 문제제기에 반격을 가하고 있습니다. 그 세력의 전위에 중앙일보가 나섰습니다. 중앙일보는 지난해 봄 천성산은 도롱뇽 알 천지라고 대대적으로 보도했습니다. 늪에서 찍었다는 도롱뇽 알 사진을 대문짝만한 크기로 1면에 실었습니다. 4면과 5면은 도롱뇽 알이 발견된 늪의 사진까지 실어 사실보도임을 강조했습니다.

뉴스타파 취재진은 천성산에 올라 사진 속 늪을 찾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천성산의 고산 슾지는 흙이 스폰지처럼 물을 머금고 있어 질척질척한 형태이고 일부 얕은 물고랑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다만 늪에서 수십 미터 떨어진 곳에서 깊이가 성인 키 정도 되는 웅덩이를 발견했습니다. 중앙일보에 나온 바로 그곳입니다.
웅덩이 가장자리에서 도롱뇽 알주머니 세 개가 발견됐고 인위적으로 꽂힌 듯 한 억세 줄기에도 몇 개의 알주머니가 매달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터널공사로부터 보호해야 한다고 했던 자연습지가 아니었습니다. 오래전 산길을 내면서 시멘트 공사에 필요한 물을 확보하려고 포크레인으로 파놓은 인공 웅덩이였습니다.

[원진 스님 천성산 대성암, 대성큰늪 인근]
“도로 포장을 하면 물이 필요하니까 일하는 인부들이 그 웅덩이를 판 걸로 생각이 됩니다.”
(스님은 대성암에 얼마나 계셨죠?)
“약 30년 됐습니다.”

중앙일보가 늪이라고 보도한 인공 웅덩이는 포장된 산길 바로 옆에 있습니다. 수심을 재지 않고 육안으로만 봐도 이곳은 산지 습지의 일반적인 모습과 확연히 다릅니다. 중앙일보가 착각했다고 보기도 어려운 대목입니다.

[김봉옥 한국습지환경보전엽합 사무총장, 중앙일보 취재 동행]
(포크레인으로 판 인공 물 웅덩이 알고 계셨는지?)
“그 당시 나는 알고 있었죠, 그건. 그래가지고 (중앙일보) 박 기자님하고 저하고 막 싸움 많이 했어요.”
(싸우셨다고요? 왜요?)
“그런 식으로 얘기를 안 했는데 기사가 이상하게 나왔어요. 아무 이상 없다는 식으로...”

중앙일보 취재에 동행한 당시 양산시청 습지 담당 공무원은 중앙일보가 자신의 인터뷰 내용도 왜곡했다고 말합니다.

[김조은 중앙일보 취재 동행 / 시 양산시 습지 담당]
“제가 하지 않은 이야기를 적어 놓으신 게 있어서 제가 항의도 하고 했거든요.”
(수량이 그대로라고 했던 그 내용 때문에?)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수량이나 지하수 수위나 이런 걸 조사하는 사람도 아니고..”
(중앙일보 기자가 뭐라고 그때 그러던가요?)
“자기가 유추해서 적었다, 이렇게 얘기하던데요.”

중앙일보는 지난해 여름에도 천성산을 대대적으로 보도합니다. 지난해 중앙일보 6월 21일 1면과 16면에 실린 도롱뇽 사진입니다. 기사 제목은 ‘늪 바닥엔 도롱뇽 천지’라고 돼 있습니다. 그러나 사진 설명 속 작은 글씨를 보면 촬영 장소가 계곡입니다. 이래놓고 천성산을 생태낙원이라고 규정합니다. 습지자체의 변화는 팽개쳐두고 도롱뇽 몇 마리를 가지고 천성산 문제를 호도하는 단순하고 선정적인 접근입니다.

[김경철 습지와 새들의 친구 습지보전국장]
“(중앙일보가) 왜 도롱뇽 소송을 했냐, 자체를 모른다는 거죠. 습지를 지키기 위한, 생명들을 지키기 위한 소송이었는데 그 대표로 우리는 도롱뇽을 내세워 소송을 한 거죠.”

“도롱뇽이 있다 없다 문제가 아니고 이 습지의 현황이 과연 도롱뇽이 살 수 있는 여건이 되느냐 앞으로 지속적으로... 하루 앙침에 물이 싹 다 빠지진 않는다는 거죠.”

최근 월간조선도 도롱뇽을 찾기 위한 현지 취재를 벌였습니다. 그러나 월간조선은 터널에서 직선거리로 2킬로미터나 떨어져 있고 해발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2005년 환경조사 대상에서 배제됐던 화엄늪을 찾아갔습니다. 거기서 도롱뇽 알주머니들을 찾아내고는 천성산 터널공사에 대한 문제제기가 잘못이었다고 공격했습니다.

[이성규 낙동강유역환경청 자연환경과 팀장]
“도롱뇽은 큰 문제가 아닙니다. 그건 물이 있으면 항상 산란을 하고 그러는데...”
(도롱뇽이 있다고 이 늪은 안전하다, 육화 안 되고 있다, 할 수 있나요?)
“그거 가지고는 육화 이야기를 할 수 없는 거죠.”

월간조선 취재에도 동행한 이 공무원은 천성산 일대 습지에서 땅이 굳어지는 육화 현상이 진행되고 있음을 시인했습니다.

[이성규 낙동강유역환경청 자연환경과 팀장]
“서서히 가장자리부터 안쪽으로 조금씩 (나무들이) 들어오는 상황은 상황입니다. 서서히 육지화 되다 보니까 오리나무나 소나무나 관목들이 침입해 들어오는 거죠. 크게, 큰 그거(차원)에서 한 번 논의가 있어야 될 거 같긴 합니다.”

산지 습지는 생물종이 다양하고 생태계의 변화, 즉 천일 과정을 확인할 수 있어 자연사 박물관으로 불립니다. 천성산과 정족산의 산지 습지들은 늪을 덮고 있는 진퍼리새의 밑으로 이탄층이 발달해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탄층은 완전히 썩지 않는 식물 유해들이 진흙과 섞여 이루어진 퇴적층입니다.

길이 13킬로미터의 KTX 터널이 관통하는 천성산과 정족산 일대는 수천 년에 걸쳐 형성된 수십 개의 크고 작은 산지 습지들이 분포해 있는 한국 최대 산지습지 밀집 지역입니다. 환경부는 이들 중 일부를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했고 무제치늪의 경우 국제 습지보전 협약인 람사협약에 보호습지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늪에서 오리나무 군락이 발견됩니다. 학교 운동장 두 개 정도의 넓이인 주제치 1늪의 경우 오리나무만 100그루 가까이 되고 억세와 심지어 소나무까지 늪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무제치늪 관리인]
(5년 전부터 계셨어요?)
“아 그렇지요.”
(그때도 오리나무 많았어요?)
“그때보다 지금이 더 많지요. 5년 전에는 몇 그루가 안 됐는데 지금은 자잘한 게 자꾸 해마다 번식이 잘 돼요.”
천성산 터널에서 가장 가까운 대성늪의 상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오리나무 군락과 억세들이 늪 중앙부까지 침범해 있었고. 아직 밑둥을 채우지 못한 채 누워있는 진퍼리새가 습지가 마르고 있음을 호소하는 듯합니다.

원래 이 습지의 주인인 진퍼리새를 들추면 질척한 이탄층이 드러나지만 오리나무나 억세 밑의 흙은 물기가 거의 다 빠져나간 푸석푸석한 상태였습니다.

[김경철 습지와 새들의 친구 습지보전국장]
“자, 여기 보시면 다르죠? 저기하고는... 지금 이거는 물을 짜도 안 나와요.”

터널 공사 이후 지하수가 줄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 2006년 식수로 쓰던 지하수가 중단되던 사태를 겪었던 천성산 인근 아파트 주민들은 당시 시공사로부터 합의금을 받고 지하수 확보를 위한 공사를 했습니다.

그러나 6년이 지난 지금 과거처럼 수량이 충분치 않다고 주장합니다.

[정기홍 입주자대표회의 회장]
“한 20~30% 줄었다고 판단되고. (2006년) 공사하는 업체에서 보상금 받아 공사도 하고 심도를 깊게 파서 6개 공구를 활용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모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있어요. 물이 적어 과부하 걸려서 고장이 나는 그런 경우죠.”

산지 습지의 육화 현상이나 지하수 감소 등의 원인이 터널공사라고는 단정할 순 없습니다. 그러나 이미 확인된 몇몇 중요한 변화는 천성산이 결코 생태 낙원이라고 안심할 상황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그럼에도 보수 언론은 도롱뇽 천지라는 식의 과장된 보도를 대대적으로 해오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를 근거로 삼은 기사와 칼럼, 사설을 수시로 쏟아냅니다. 천성산 환경운동을 선동과 억지, 반대를 위한 반대, 근본주의 등으로 몰아붙이고 심지어 조롱까지 합니다. 거기에 숨겨져 있는 특별한 정치적 의도를 직시해야 할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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