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피아부터 국왕까지...조세도피처의 고객들

2021년 10월 04일 12시 15분

수백만 건의 유출 문건과 사상 최대 규모의 국제 협업 취재로 전·현직 각국 수장 35명, 91개국의 정계인사 및 공직자 330여 명, 범죄인들이 숨겨온 금융 비밀 정보가 세상에 드러났다.
이번에 공개된 비밀 문건에는 요르단 국왕, 우크라이나, 케냐 및 에콰도르 대통령, 체코 총리,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의 역외 거래 정보가 담겨 있다. 그뿐만 아니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측근을 비롯해 러시아, 인도, 미국, 멕시코 등의 억만장자 130여 명의 금융 거래 내역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불법 역외 시스템의 종식을 이끌어 내야 했던 권력자들이 오히려 문제의 시스템을 악용하고 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각국 정부가 범죄자의 주머니를 불려주고 국가 재정을 악화시키는 불법 자금의 국제적 흐름을 차단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는 동안 권력자들은 유령회사와 해외 신탁에 자산을 은닉해 온 것이다.
새롭게 세상에 드러난 은닉 자산 중에는 그동안 체코 총리가 역외 법인을 통해 매입한 2200만 달러 상당의 프랑스 대저택이 포함되어 있다. 억만장자이기도 한 그는 그동안 정·재계 인사들의 부패를 비판해 온 인물이다.
미 중부지역의 한 비밀 신탁에는 1300만 달러가 보관되어 있다. 이 자금의 주인은 노동자 착취와 환경 문제로 비난 받아온 화장품 기업을 소유한 과테말라 최고 재벌가다.
많은 국민이 실업과 부패에 항의하며 거리로 나왔던 ‘아랍의 봄’ 시위 이후 수년간 요르단의 국왕은 역외 법인 3곳을 통해서 말리부 해변에 있는 맨션 3채를 3800만 달러에 매입했다.  
이러한 내용이 담긴 유출 문건이 바로 ‘판도라페이퍼스’(Pandora Papers)다.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nternational Consortium of Investigative Journalists, ICIJ)는 총 1190만개의 기밀 파일을 확보했다. 그리고 전세계 150개 언론사 기자 600여명과 취재팀을 꾸리고 지난 2년간 모든 문건을 샅샅이 확인하고 정보 출처를 추적하면서 여러 나라의 법원 기록과 공공 기록물을 들여다봤다. 
유출된 판도라 페이퍼스 문건의 출처는 이른바 역외 서비스 회사 14곳이다. 금융 활동의 비밀이 보장되길 원하는 고객을 위해 명목회사(shell companies) 및 자금 은닉용 역외 법인 설립을 돕는 회사들이다. 이번 문건에는 ‘파나마페이퍼스’, ‘파라다이스페이퍼스’ 등 과거의 역외 조세도피처 관련 유출 문건들보다 3배 가량 많은 전·현직 국가 지도자 및 공직자의 역외 거래 정보가 담겨 있다.
권위주의와 불평등이 만연한 21세기, 판도라페이퍼스 탐사취재는 돈과 권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리고 미국과 부유한 나라들이 추구해온 금융 비밀주의 시스템이 법치를 어떻게 왜곡하고 무너뜨려왔는지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ICIJ와 파트너 매체들의 취재 자료는 금융 비밀주의가 전 세계 정치에 얼마나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지 집중 조명한다. 그리고 각국 정부와 국제 기구들이 왜 역외금융 악용을 종식시키는 일에 아무런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20년 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 역외 자산 규모는 11조 3,000억 달러가 넘는다. 얼마나 많은 역외 자산이 조세회피와 범죄에 연루된 규모는 어느 정도인지, 또 적법한 출처를 갖고 당국에 보고된 역외 자산의 규모는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기란 불가능하다. 역외 시스템의 복잡성과 비밀주의 때문이다.

조세도피처의 고객들, 전 세계 곳곳에서

판도라페이퍼스 탐사취재는 역외 법인, 익명 은행 계좌, 전용기, 요트, 맨션, 피카소와 뱅크시 같은 거장의 예술 작품의 숨겨진 주인들을 밝혀냈다. 또한 재정난을 겪는 정부나 법 집행기관이 일반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정보를 드러내고 있다.
유출 문건상 역외 자산과 연결된 것으로 드러난 인물에는 인도의 크리켓 스타 선수인 사친 텐둘카르, 팝스타 샤키라, 슈퍼모델 클라우디아 시퍼, 이탈리아 마피아 라파엘레 아마토 등이 있다. 
라파엘레 아마토는 최소 12건의 살인에 연루된 인물이다. 문건에는 아마토가 이탈리아를 탈출하기 직전 스페인에서 토지를 매입하기 위해 이용한 유령회사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담겨 있다. 이탈리아 범죄 영화 ‘고모라’의 소재로 다뤄졌던 아마토는 징역 20년을 선고받아 현재 복역중이다.
아마토의 법률대리인은 역외 자산에 대한 ICIJ의 해명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사친 텐둘카르의 법률대리인은 그의 투자는 합법적이며 세무당국에 신고도 했다고 말했다. 샤키라의 법률 대리인은 샤키라는 자신의 역외 법인들을 신고했으며 이들 법인은 감세 혜택이 없다고 밝혔다. 시퍼의 대리인단은 그녀가 거주지인 영국에서 세금을 정확히 납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해외 자산 보유 혹은 명목회사(shell companies)를 활용한 해외 사업이 불법은 아니다. 해외 사업을 운영하는 기업인들은 역외 법인이 재무관리를 위해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는 소득이 발생한 고세율 적용 국가에서 세율이 낮은 곳에 있는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회사로 자신의 소득을 빼돌리는 행위가 되기도 한다. 특히 정치인의 조세도피처 이용은 논란이 될 수 있다. 정치적으로 대중의 반감을 사거나 부패 행위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외 조세도피 시스템의 손발은 미국과 유럽에 본사를 둔 다국적 은행과 법률 회사, 회계법인 등 엘리트 기관이다.
판도라페이퍼스의 한 문건에 따르면 세계 각지의 은행들이 고객들의 역외 법인 설립을 도왔다. 그렇게 설립된 역외 법인이 3,926곳에 이른다. 그 과정에서 전 주미 파나마 대사가 이끄는 파나마 로펌 ‘Alcogal’(Alemán, Cordero, Galindo & Lee)이 조력자 역할을 했다. Alcogal은 미국의 거대 투자은행인 모건스탠리 측 고객들을 위해 대표적인 조세도피처인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British Virgin Islands, BVI)에 최소 312개의 법인을 설립한 것으로 밝혀졌다. 
모건스탠리의 대변인은 “우리는 역외 법인을 만들지 않는다. … (역외 법인 설립) 과정은 당사와는 별개의 일이며 고객들의 의사에 따르는 것뿐이다”고 말했다.
판도라페이퍼스 탐사취재는 미국 최대 로펌인 베이커맥킨지가 어떻게 오늘날의 역외 조세도피 시스템을 만드는 데 일조해왔고 이러한 그림자 경제의 주류로 자리잡았는지 잘 보여준다. 
베이커맥킨지와 글로벌 지사들은 로비 및 법률 입안 노하우를 이용해 전 세계 금융 관련 법률을 만들어왔다. 또한 사기와 부패, 독재체제와 관련된 인물과 기업을 위한 활동을 통해 이익을 챙겨온 사실이 ICIJ의 취재 결과 드러났다.  
베이커맥킨지 고객 중에는 우크라이나의 재벌 이호르 콜로모이스키도 포함되어 있다. 콜로모이스키는 미국 전역에서 공장과 상업용 부동산을 매입하고 여러 유령회사를 통해 55억 달러의 자금을 세탁한 혐의를 받고 있다.
베이커맥킨지의 또 다른 고객으로는 45억 달러 규모의 말레이시아 국부 펀드(1MDB) 횡령 혐의로 여러 국가에서 기소되어 현재 수배 중인 조 로우도 있다. ICIJ 취재 결과, 조 로우와 그의 측근들은 베이커맥킨지와 그 계열사의 도움으로 말레이시아와 홍콩에 거미줄처럼 얽힌 여러 법인을 설립한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 수사 당국은 로우가 일부 법인을 이용해서 1MDB 자금을 횡령해 빼돌린 것으로 보고 있다. 
베이커맥킨지 측 대변인은 베이커맥킨지는 고객에게 최고의 법률·세무 자문을 제공하고 있으며 “고객이 법률 및 모범적인 관행을 준수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고객 기밀 유지와 법적 특권을 이유로 역외 금융에서 베이커맥킨지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등 많은 질문에 직접적인 답변은 하지 않았다. 다만, 모든 잠재 고객에 대한 배경 조사를 철저히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암호명: 그분

판도라페이퍼스 문건의 규모는 2016년 전 세계를 뒤흔들었던 ICIJ의 파나마페이퍼스 취재 프로젝트 문건 그 이상이다. 파나마페이퍼스 보도 이후 십여 개 국에서 수사와 관련법 제정이 이어졌고 아이슬란드와 파키스탄 총리는 조세도피에 연루된 사실로 사퇴하기도 했다. 
2016년 파나마페이퍼스 보도는 역외 서비스를 제공하는 파나마 법률 회사 ‘모색 폰세카’ 한 곳에서 나온 자료를 취재했다. 그때와 비교하면 이번 판도라페이퍼스는 역외 산업의 핵심인 변호사와 중개인, 해결사를 아우르는 훨씬 광범위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또한 파나마페이퍼스보다 역외 법인의 소유권과 관련해 2배나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즉, 이번에 새롭게 유출된 판도라페이퍼스 문건 덕분에 2만9000곳이 넘는 역외 법인의 실소유자가 밝혀졌다. 이들은 러시아, 영국, 아르헨티나, 중국 및 브라질을 비롯한 전 세계 200여개 국가 국적을 가진 것으로 확인된다. 
판도파페이퍼스 공동 취재에는 전 세계 150개 언론매체가 참여했다. 미국의 워싱턴포스트, 영국 BBC와 가디언, 라디오 프랑스, 인디언 익스프레스, 짐바브웨의 스탠다드, 모로코의 르 데스크, 에콰도르의 디아리오 엘 유니베르소 등이 힘을 모았다.
국제적인 공동취재팀을 구성해야 했다. 유출 문건의 출처인 역외 서비스 회사 14곳의 본사가 카리브해에서 페르시아만, 남중국해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 회사 가운데 세 곳은 파나마 전직 장관 겸 대통령 고문과 벨리즈의 전 법무장관 등 전직 정부 관료들이 운영하고 있다.  
문제의 역외 서비스 회사들은 수백 또는 수천 달러만으로 실소유주를 숨길 수 있는 역외 법인 설립을 돕는다. 또는 어떤 고객의 자금이 그 사람 것이 아닌 듯이 법적 문제를 처리하고, 실제로는 해당 고객이 돈을 관리할 수 있도록 신탁(trust)을 만들어준다. 교묘하게 서류를 꾸며 신탁의 실소유주가 채권자, 법 집행기관, 세무당국, 전 배우자로부터 자산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이런 역외 서비스 회사들은 홀로 활동하지 않는다. 전 세계 다른 역외 서비스 회사들과 협력해서 복잡하게 연결된 법인 및 신탁 구조를 만들어 낸다. 이 구조가 복잡할수록 더 많은 수수료를 챙길 수 있고, 고객 입장에서는 더욱 철저한 기밀 유지와 보호가 보장된다. 
판도라페이퍼스 유출 문건에 따르면 스위스의 한 영국 회계사가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BVI)의 변호사들과 협력하여 요르단 국왕 압둘라 2세가 미국과 영국에서 1억600만 달러 규모의 호화 주택 14채를 구입하는 것을 도왔다. 그들은 1995년부터 2017년까지 요르단 국왕이 유령회사 36곳을 설립하는 데 도움을 준 것으로 확인됐다.
2017년, 요르단 국왕은 BVI 법인을 통해서 캘리포니아 해변이 내려다보이는 2,300만 달러짜리 부동산을 매입했다. 또 추가 수수료를 내고 BVI에 또 다른 법인을 설립했다. 이 법인의 소유자는 요르단 국왕이 캘리포니아 부동산 매입에 이용한 BVI 법인의 ‘차명 이사’(nominee director)인 스위스 자산 관리자들로 등록돼 있다.
역외 시스템에서 차명 이사란 회사의 실소유가 드러나지 않도록 명의를 대리해주고 수수료를 받는 사람 또는 회사를 의미한다. 요르단 국왕 압둘라 2세를 대리하는 로펌인 Alcogal이 자사 고객에게 보낸 신청서 양식에는 차명 이사 서비스가 “실소유주의 신원이 공개적으로 드러나는 것을 방지해 프라이버시를 보장”한다고 적혀 있다.
유출된 이메일을 보면 압둘라 2세의 역외 서비스 대리인들은 그를 위해 암호명을 사용한다. 바로 ‘그분(you know who).’ 
압둘라 2세 국왕의 영국 법률대리인단은 요르단법에 따라 국왕은 세금 납부 의무가 없으며 보안 및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역외 법인에 재산을 보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압둘라 2세 국왕은 공적 자금을 유용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압둘라 2세의 대리인단은 ICIJ가 확인한 문제의 법인과 자산 대부분은 압둘라 2세와 아무 관련이 없거나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자세한 내용은 밝히길 거부했다. 
전문가들은 중동에서 가장 가난하고 해외 원조 의존도가 높은 국가의 통치자로서 압둘라 2세 국왕은 당연히 자신의 부를 과시하는 행동을 자제해야 한다고 말한다.
중동 정치 전문가 아넬 셀린은 “요르단 국왕이 자신의 부를 더 공개적으로 과시하면 국민의 반감을 불러 일으킬 뿐만 아니라 그 부의 원천이 된 원조를 제공한 서방 원조국가들의 화를 돋을 것”이라고 ICIJ에 말했다.
요르단과 비슷한 처지인 이웃나라, 레바논에서도 최고 정·재계 인사들이 조세도피처를 이용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 중에는 나지브 미카티 레바논 총리와 하산 디아브 전 총리, 국가 반부패 책임자였던 무하마드 바시리, 자금 세탁 혐의로 프랑스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 리아드 살라메 중앙은행 총재가 포함되어 있다.  
요르단 국무장관이었던 마르완 케레딘 알 마와리드 은행 회장도 판도라페이퍼스 문건에 등장한다. 2019년, 케레딘은 전직 국회의원들이 심각한 경제 위기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며 비난한 바 있다. 당시 레바논 인구의 절반이 빈곤에 빠져 있었다.
당시 케레딘은 “탈세가 벌어지고 있다.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판도라 페이퍼스 자료에 따르면 케레딘은 바로 그해 200만 달러 상당의 요트를 소유한 BVI 법인의 실소유주로 관련 문서에 서명했다. 
케레딘이 회장인 알 마와리드 은행은 당시 경제 공황를 막기 위해 고객들이 미국 달러화를 인출하지 못하도록 제한한 은행 중 하나였다.  
레바논 시민 하파 아부 함단(57)은 여전히 레바논 엘리트 집단에 분노하고 있다. 그녀는 ICIJ의 파트너 매체인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걷잡을 수 없는 인플레이션으로 평생 저축한 돈이 6만 달러에서 5000 달러로 폭락했다고 토로했다.
그녀는 “평생의 노력이 물거품이 됐다”며 “지난 30년 동안 쉬지 않고 일했는데, 여전히 하루 하루 생계를 유지하느라 전쟁을 치르고 있다. 정치인과 은행가들은 국민이 저축한 돈은 쓰지 못하게 막아 놓고서 자신들의 돈은 모두 해외로 빼돌리고 투자했다”고 말했다.
케레딘 회장과 디아브 전 레바논 총리는 ICIJ의 해명 요청에 답하지 않았다. 살라메 레바논 중앙은행 총재는 답변서에서 자신의 자산은 당국에 신고된 것이고 레바논 법에 따른 모든 신고 의무를 준수했다고 밝혔다. 미카티 총리의 아들은 조세 회피의 욕망 때문이 아니라 “회사 설립 과정이 간단”하기 때문에 레바논인들에게 역외 법인 이용은 흔한 일이라고 말했다.

부패한 자들의 연합

크리켓 슈퍼스타에서 반부패 정치인으로 변신한 임란 칸 파키스탄 총리는 2016년 4월 ICIJ가 파나마페이퍼스 보도를 내놓자 매우 들떴다. 당시 그는 파나마페이퍼스 유출 문건을 두고 “신이 보내주신 것”이라고 했다.
파나마페이퍼스는 나와즈 샤리프 당시 총리의 자녀들이 최소 3개의 역외 법인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당시 제2 야당의 총재였던 칸 총리는 정적이었던 샤리프를 파키스탄을 망치는 “부패 연합 세력”이라며 맹비난했다.
칸은 2016년 영국 가디언지와의 인터뷰에서 “개발도상국에서 보건, 교육, 정의, 고용과 같은 기본적 기회를 박탈당한 사람들에게 돈을 약탈하는 방식이 너무 역겹다”고 표현했다. 또 “이런 자금은 역외 계좌, 더 나아가 서방 국가와 은행으로 옮겨진다.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진다. 가난한 국가는 더욱 가난해지며 부유한 나라는 더 부유해진다. 역외 계좌는 그런 사기꾼을 보호한다”고 비판했다.
결국 파나마페이퍼스 보도의 여파로 파키스탄 대법원은 샤리프 총리를 파면했고, 칸이 차기 총선에서 그 자리를 차지했다. 
ICIJ의 판도라페이퍼스 취재는 파키스탄 주요 정치인의 역외 법인 이용 실태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이번에는 칸 총리 측근들의 해외 자산이 드러났다. 칸 총리의 핵심 정치자금 후원자와 재무장관의 가족 등이다. 또한 유출 문건에서 샤우드리 무니스 엘라히 수자원부 장관이 싱가포르의 역외 서비스 회사, 아시아시티 트러스트와 접촉한 사실도 드러났다. 아시아시티의 내부 기록에 따르면 엘라히 장관은 아시아시티가 신탁 개설에 대한 자세한 사항을 파키스탄 세무당국에 보고할 수도 있다고 전하자, 신탁에 돈을 맡기는 계획을 포기했다. 엘라히 장관은 ICIJ의 해명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어떤 정치인들은 논란의 역외 시스템을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면서도 그들의 측근들은 해외로 자금을 빼돌린 경우가 확인됐다. 때로는 목소리를 높였던 정치인 본인이 역외 시스템을 이용한 사례도 있다.
우후루 케냐타 케냐 대통령은 2018년 BBC와의 인터뷰에서 “모든 공직자의 자산은 국민이 그 적법성을 물을 수 있도록 대중에게 공개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판도라페이퍼스 문건에는 케냐타 대통령과 그의 어머니가 파나마에 있는 비밀 재단의 수혜자로 나온다. 형제들을 비롯한 다른 가족들은 3000만 달러 이상의 자산을 보유한 역외 법인 5곳을 소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케냐타 대통령과 그의 가족들은 ICIJ의 해명 요청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체코 최고 거부 중 한 명인 안드레이 바비시 총리는 탈세와 부패 척결을 공약하면서 권력을 꿰찼다. 2011년, 바비시는 유권자들에게 “기업가들이 사업을 하면서 기꺼이 세금을 내는” 나라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유출 문건에 따르면 2009년 바비시 총리는 여러 유령회사로 2,200만 달러를 빼돌려 프랑스의 대저택을 매입했다. ICIJ의 체코 현지 협업매체인 Investigace.cz가 입수한 문서에 따르면 공직자 재산 신고내역에 문제의 유령회사와 대저택 소유 사실은 공개하지 않았다. 바비시 총리는 이에 대해 아무런 해명을 내놓지 않았다.

사기의 천국

지난 2월, 영국 토니 블레어 국제변화연구소는 논평을 내고 정책 입안자들에게 토지세와 주택세 인상을 촉구했다. 연구소 창립자인 블레어 전 총리는 1994년 영국 노동당 당수가 되기 위한 선거 운동 당시, 부와 든든한 인맥을 갖춘 힘있는 자들이 어떻게 세금을 내는지 설명한 적이 있다.
그는 영국 웨스트 미들랜즈 주에서 진행한 연설에서 “적절한 회계사를 고용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조세 시스템은 사기와 특혜… 이익을 취할 천국과도 같은 것”이라며 “누군가는 자신의 몫보다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하는 동안 우리의 조세 제도가 납세 의무 회피자와 악용자들의 놀이터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판도라페이퍼스 자료에 따르면 2017년 블레어 전 총리 부부는 880만 달러 규모의 빅토리아 시대 건물의 소유자가 되었다. 해당 건물을 소유한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BVI) 소재 법인을 인수하는 방법을 썼다. 
기록에 따르면 2007년 총리직에서 물러난 뒤 중동 지역 외교관을 지낸 블레어 전 총리와 부인은 바레인 산업통상관광부 장관 자이드 빈 라시드 알 자야니 가족의 BVI 법인을 인수했다. 이 법인이 바로 문제의 빌딩을 소유하고 있던 곳이다. 부인 셰리 블레어는 법인 인수를 통해 소유하게 된 건물에서 자신의 로펌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다.  
결국 블레어 부부는 부동산 대신 부동산을 소유한 법인의 주식을 매입하는 방법으로 40만 달러가 넘는 재산세를 면제받았다. 블레어 부부와 알 자야니 가족은 처음에는 서로가 거래 당사자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셰리 블레어는 남편이 해당 거래에 관여하지 않았으며 거래 목적은 “해당 법인과 건물을 영국의 조세 및 규제 체제 안으로 돌려놓기 위해서”라고 해명했다. 
또한 “BVI 법인의 소유주가 되고 싶지 않았다”며 “매도인 측은 그들의 의도대로 법인을 매각하길 원했다”고 밝혔다. 현재 이 법인은 청산된 상태다. 
알 자야니 측은 법률 대리인을 통해 “우리 회사들은 과거는 물론이고 지금도 모든 영국 법을 준수하고 있다”고 밝혔다.  
시민단체 ‘영국 조세정의’ 로버트 파머 대표는 가디언지와의 인터뷰에서 “부자들은 이용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용할 수 없는 법률상 허점이 있다”며 “정치가들은 모든 사람들이 공정한 몫을 내도록 조세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6월, 파울로 게데스 브라질 경제부 장관은 역외 법인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에 대해 30%의 세금을 부과하는 세제 개혁 방안을 제안했다. 전문가들은 브라질의 최고 부유층이 보유한 해외 비과세 자금이 거의 200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게데스 장관은 “부자라는 것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세금을 내지 않는 것은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금융권 및 재계 지도자들이 세금 인상 법안에 반대하자 전직 은행가 출신의 백만장자인 게데스 장관은 역외 수익에 대한 과세안을 폐기하는 데 동의했다. 법안에 대한 협상은 아직 진행 중이다. 
판도라페이퍼스 자료에 따르면 게데스 장관은 2014년 BVI에 회사를 설립했다. 게데스 장관의 대변인은 게데스 장관이 브라질 당국에 해당 법인을 신고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역외 소득 과세안 폐기에 관한 질문에는 답변하지 않았다. 

판도라의 상자

2018년 12월, 바하마는 법인과 특정 신탁의 실소유주 신고를 의무화하는 법률을 제정했다. 바하마는 미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로부터 탈세범와 범죄인의 역외 금융거래 이용을 차단하라는 압박을 받아왔다. 
몇몇 바하마 정치인들은 이러한 조치를 반대했다. 실소유주 신고 제도가 시행되면 중남미 고객들이 바하마가 있는 카리브해 지역에서 사업하기를 꺼리게 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현지의 한 변호사는 “미국의 델라웨어, 알래스카, 사우스다코타 주가 … 승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수 개월이 지난 2019년 초, 카를로스 모랄레스 도미니카 공화국 전 부통령 일가는 가족 자산의 안식처였던 바하마를 버렸다. 그리고 2500km 떨어진 미 사우스다코타를 대안으로 선택했다. 한 기밀문서에서 이같은 사실이 확인됐다.
모랄레스 전 부통령 가족은 사우스다코타에 신탁을 개설하고 그들이 소유한 도미니카 제당회사 지분 등 여러 자산을 옮겨 담았다. 모랄레스 일가는 자산을 바하마에서 사우스다코타로 옮긴 경위를 묻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판도라페이퍼스에는 카리브해와 유럽권 조세도피처에 머물던 수천만 달러의 자금이 신흥 조세도피처, 미국의 한적한 사우스다코타로 이동한 내용이 상세하게 담겨 있다. 
지난 10년 간 사우스다코타와 네바다를 비롯한 미국의 12여개 주는 금융 비밀유지 서비스의 선두주자로 탈바꿈했다. 그 사이 주요 열강국가의 규제 정책은 바하마, 케이맨 제도 같은 전통적인 조세도피처에 집중되었다.  
미국은 세계 역외 금융산업의 핵심 주역이다. 또, 국제 은행 시스템에서 지나치게 큰 역할을 하고 있기에 역외 금융제도의 남용을 종식시킬 최적의 위치에 있는 국가이기도 하다. 
미국 달러화는 사실상 전 세계적인 화폐로 통용되고 있어 대부분의 국제 거래는 뉴욕에 소재한 은행들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지난 20년 간 미국 금융 당국은 스위스를 비롯한 여러 국가의 은행으로부터 해외 은행 계좌를 소유한 자국민의 정보를 넘겨받기 위한 조치를 지속적으로 취해왔다. 하지만 미국은 자국 내에 위치한 은행 계좌와 기업, 신탁을 통한 자금 이동 정보를 공유하는 것 보다는 다른 나라에서 자국민의 역외 금융 정보를 얻어내는데 더 관심이 있다. 
미국은 케이맨 제도, 룩셈부르크 등 100여 개 국가 및 권역이 지지한 2014년 조세 관련 금융계좌정보의 자동교환 합의를 거부했다. 이 합의에는 미국 금융기관이 보관 중인 외국인 자산 정보의 공유를 의무화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해마다 사우스다코타 주의원들은 신탁 산업 업계 관계자들이 작성한 법안을 지지하며, 미국의 다른 주와 외국에서 들어오는 신탁 고객들을 상대로 더 강력한 보호 장치와 혜택을 제공해왔다. 사우스다코타 주에 주소를 둔 신탁회사에 돈을 맡기는 고객 자산 규모는 지난 10년 동안 4배 이상 증가해 3600억 달러에 달한다. 
수잔 위스머 전 사우스다코타 하원의원은 ICIJ와의 인터뷰에서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 주가 판도라의 상자로 비유된다는 게 참으로 애석하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학자 아담 호프리-위노그라도우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2020년까지 세계에서 가장 신탁 규제가 약한 20개 지역 중 17곳가 미국 주였다. 호프리-위노그라도우 교수는 대부분의 사례를 볼 때, 미국 법체계가 한부모 가정에서 비양육 부모로부터 받는 양육비를 포함해 채권자가 마땅히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돈에도 손을 대기가 어렵게 만들어 놓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ICIJ와 워싱턴포스트는 판도라페이퍼스 문건을 통해 개인적인 비위 또는 소속 기업의 위법행위로 고발된 외국인과 연관된 미국 소재 신탁회사를 20여 개 확인했다. 
과테말라 재계의 최고 실세 페데리코 콩 비엘만도 이 중 한 명이다. 2016년 콩 비엘만은 1350만 달러를 사우스다코타 주 동남부 도시 수폴스에 위치한 신탁회사로 옮겼다. 이 자금 일부는 바닥을 닦는 왁스, 각종 청소용 세제를 제조하는 그의 가족 기업에서 왔다. 
지난 수십년 간 과테말라 언론은 콩 비엘만가와 정계의 유착 관계를 다뤄왔다. 1970년대에는 이 가문이 과테말라 전 독재자 카를로스 마누엘 아라나의 핵심 협력자로 밝혀졌다. 
지난 2016년, 이 가문이 운영하는 과테말라시 소재 한 고급 호텔은 지미 모랄레스 당시 대통령에게 100일 무료 숙박권을 선물로 제공했다. 당시 현지 언론은 정치적 특혜에 대한 대가성 뇌물일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2014년 미국 노동부는 콩 비엘만 일가의 팜오일 기업 나이사가 저임금으로 노동자를 고용하고 이들을 독성 화학 물질에 노출시켰다며 과테말라 정부를 상대로 소를 제기했다. 이 회사 기록에 따르면 콩 비엘만은 이 기업의 재무 담당자였다. 이듬해에는 나이사가 파시온 강에 오염 물질을 방류했다는 사실을 과테말라에 기술 지원 사업을 하던 미국 환경 당국이 인지했다. 그러나 기소는 되지 않았다. 
나이사는 ICIJ에 관련 법을 준수했으며 강을 오염시키지 않았다고 밝혀왔다. 또한 노동자 저임금 문제는 중재를 통해 해결되었다고 밝혔다. 콩 비엘만은 사우스다코타 신탁회사 관련 질문에는 답변을 거부했다.  
미국 사우스다코타 주에 신탁을 개설한 또 다른 라틴아메리카 저명인사로는 은행 간부, 주지사를 거쳐 지난 4월에 에콰도르 대통령으로 당선된 귈레르모 라소도 있다. 
판도라페이퍼스 문건에 따르면, 라소 대통령은 에콰도르 의회가 공직자의 해외 자산 보유를 금지하는 법을 통과시킨지 3개월 후인 지난 2017년 12월 사우스다코타 주에 신탁을 개설했다. 그가 과거 비밀리에 파나마에 만들어 둔 재단 두 곳에 등재했던 역외 법인 두 개를 이곳 신탁 밑으로 옮긴 사실이 이번 문건으로 드러났다.
라소 대통령은 과거 자신이 이용한 해외 법인은 합법적이고 적법했으며 에콰도르 법을 준수했다고 말했다. 
미 연방 법인투명성법(U.S Corporate Transparency Act)이 올해 발효됐음에도 사우스다코타 주를 비롯한 미국 전역에 개설된 신탁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법인투명성법은 특정 종류의 기업이 실소유자 신분을 감추는 것을 어렵게 하도록 설계돼 있다.
그러나 이 법은 미국 시민이 아닌 외국인에게 인기 있는 신탁에는 적용되지 않을 전망된다. 금융범죄 전문가들은 이 법으로 인해 신탁과 유령회사를 설립하는 변호사가 고객들의 자금 출처를 검토할 의무가 없어진다는 점도 매우 두드러진다고 설명했다. 
예후다 셰퍼 전 이스라엘 금융정보국장은 “미국이 세계에서 매우 큰 허점이라는 것은 확실하다”며 “미국은 자국을 제외한 전세계를 비난하고 있는데, 미국이 자기 뒷마당에서 하고 있는 일은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매우 특별한 지출

지난 2014년, 터키 억만장자 어만 일리자크 소유의 대기업 뢰네산스 홀딩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을 위해 방이 1,150개나 되는 대통령궁을 완공했다. 이와 관련해 과도한 공사비 논란과 법원의 공사 중단 명령 등에 대한 언론 보도가 쏟아지는 와중에도 공사를 마친 것이다.
같은 해, 일리자크 가문과 관련된 또 다른 사건이 일어났다. 대중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일이다. 판도라페이퍼스 문건에 따르면, 일리자크의 74세 노모가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 역외 법인 2개를 소유하고 있었다. 회사의 진짜 주인을 감추기 위해 이 법인들의 서류는 차명 이사와 차명 주주를 내세웠다.
두 법인 중 코바르트레이딩은 일리자크가의 건설사 자산을 보유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판도라페이퍼스 자료에서 발견된 재무제표에 따르면, 코바르트레이딩은 설립 1년 만에 1억550만 달러의 배당 소득을 올렸고 이 자금은 스위스 계좌에 보관됐다. 
같은 해, 이 회사는 특별 지출에 해당하는 기부 명목으로 1억550만 달러 전액을 지불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기부처는 기재하지 않았다. 
일리자크는 취재진의 질의에 답변하지 않았다. 
판도라페이퍼스 자료에는 일리자크 외에도 많은 억만장자들이 등장한다. 모두 45개국 출신으로, 러시아 출신이 52명으로 가장 많았고 브라질 출신이 15명으로 2위, 영국 출신 13명, 이스라엘 10명이 그 뒤를 이었다. 
로버트 스미스와 로버트 브로크만 등 미국 억만장자들도 판도라페이퍼스 문건에서 발견됐다. 이들의 신탁회사는 미국 범죄 수사의 표적이었다. 스미스와 브로크만은 글렌 고드프리 전 벨리즈 법무장관이 운영하는 역외 서비스 회사 씨아이엘트러스트의 고객이었다. 
스미스는 미국 조세당국의 세무조사를 받은 뒤 지난 15년 동안 누적된 탈세액 1억3900만 달러를 내는 데 합의했다. 스미스의 멘토이자 경제적 뒷배인 브로크만은 대배심 제도에 의해 기소됐다. 대배심은 형사재판에서 일반인인 배심원들이 기소 여부나 유무죄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는 미국 특유의 사법제도다. 미국 검찰은 브로크만 사건에 대해 미국 역사상  최대의 조세 사기 사건이라고 말했다.
스미스는 이와 관련한 언급을 거부하며 무죄를 주장했다.
씨아이엘트러스트나 고드프리 두 곳 모두 기소되지 않았다. 고드프리 측에 취재를 요청했으나 응하지 않았다. 
판도라페이퍼스 자료에는 러시아 부호들이 유독 즐겨 찾는 키프로스 소재 로펌이 등장한다. 이 로펌의 설립자는 바로 키프로스 대통령인 니코스 아나스타샤데스이고 그의 두 딸이 파트너 변호사다.
이 로펌이 러시아 억만장자 리오니드 레베데프 전 상원의원이 4개 회사를 은닉할 수 있도록, 로펌의 직원을 레베데프 회사의 주인으로 등록시킨 사실을 2015년 알고칼 준법감시 담당자가 찾아낸 바 있다.
석유 재벌이자 영화 제작자이기도 한 레베데프는 러시아 당국이 그가 회삿돈 2억2000만 달러를 횡령했다고 고발하자 2016년 러시아를 떠났다. 그는 취재에 응하지 않았고, 레베데프 사건이 러시아에서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는 불투명하다. 
판도라페이퍼스에 드러난 또 한 명의 러시아인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측근 콘스탄틴 에른스트다. 그는 푸틴 대통령의 ‘이미지 메이커’로서 푸틴 대통령이 “철의 의지를 가진 러시아의 구원자”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판도라페이퍼스는 에른스트가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의 개막식과 폐막식의 제작자로 활약한 뒤 큰 돈을 벌 기회가 그에게 찾아온 사실을 폭로한다. 모스크바 내 수십 개 극장 등을 민영화하는 국가 사업에 파트너가 된 것이다. 에른스트는 역외 회사의 베일 뒤에 숨을 수 있었다.
유출된 문서에 따르면 에른스트가 가진 지분의 가치는 2019년 당시 1억4천만 달러에 달했다.
에른스트는 민영화 사업과 관련해 비밀을 만든 적이 없을 뿐더러, 그것이 2014년 올림픽에 대한 보상도 아니라고 ICIJ에 답했다.  
또 “나는 과거에도 현재도 앞으로도 불법을 저지른 적이 없고 그럴 계획이 없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메이 부에나벤투라는 인권 및 빈곤 퇴치 운동가다. 필리핀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과 그 일가와 측근들이 스위스 계좌와 그 밖에 추적이 어려운 곳에 숨겨 둔 수십억 달러의 은닉 자금 환수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그는 필리핀의 많은 국민이 “부자들은 부를 축적할 방법과 수단이 있고 보통 사람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돈을 숨겨놨다는 걸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마르코스 스캔들은 전 세계에 교훈을 남김으로써 불법 은닉 자금 추적과 이 자금을 은닉한 자를 처벌 노력이 강화되는 계기로 작용했다. 
지난 20년 동안 정치 지도자들은 조세도피처 “근절”을 다짐해 왔다. 유령회사와 이를 통한 자금세탁을 “안보와 민주주의,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행위”로 정의했으며, 이를 근절해 나가기 위한 새로운 법률을 제정하고 국가 간 협정을 체결했다. 
그러나 역외 금융 시스템은 변화에 적응하며 살아남았고, 초국가적 금융 범죄와 탈세는 전혀 줄어들지 않고 있다. 
특정 역외 서비스 업체나 조세도피처가 문서 유출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거나 조세 당국의 압박을 받으면, 업계 내 다른 업체는 이를 기회로 더 안전한 세금 회피처를 찾는 고객들을 유치한다. 
2016년 파나마페이퍼스가 공개된 후, 당시 수백 곳의 역외 서비스 회사들이 당시 유출 문서의 출처였던 로펌 모색폰세카와 협업 관계를 정리한 것으로 파악됐다. 그 자리를 다른 역외 서비스 업체들이 채웠다.
영국 보수당 제이콥 레스 모그 하원 대표의 배우자 헬레나 드체어가 실 수혜자로 있는 역외 신탁이 소유한 법인도 이렇게 법인 관리 서비스 업체를 교체했다. 판도라페이퍼스 자료에 따르면 드체어가 실소유한 지주 회사와 신탁은 350만 달러 상당의 미술 작품을 소유하고 있었다. 
사망한 인도의 암흑가 거물인 이크발 메몬의 유족이 소유하는 한 BVI 유령 회사도 모색폰세카와의 관계를 정리한 바 있다. 메몬은 언론 보도를 통해 테러리스트와 연계된 마약 거래상으로 확인되기도 한 인물이다. 메몬의 유족들은 마약과 관련해 자금세탁 혐의를 받고 있으며 2019년부터 인도 수사 당국에 의해 수배 중이다. 
필리핀에서는 과거 독재자 마르코스의 역외 은닉 자금 추적에 대한 관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은밀한 자금 이동은 문제가 되고 있다. 최근 몇 년 간 필리핀은 미 국무부가 지정한 “주요 자금 세탁국”에 포함되었다.  
판도라페이퍼스 자료에서 발견된 필리핀 정·재계 인사 중에는 2010년부터 5년 간 마르코스의 비자금 추적을 위해 설립된 대통령 직속 바른정부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한 우안 안드레스 도나토 바티스타가 있다. 유출 문건에 따르면, 바티스타는 위원장으로 임명된 지 한 달 후에 BVI에 유령회사를 설립한 후 싱가포르에 법인 계좌를 보유하고 있었다. 
바티스타는 필리핀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하마평에 오르기도 했지만, 국내외 미신고 계좌에 수백억 달러를 숨겨두고 있다고 그의 배우자가 폭로한 후 결국 2017년 의회에서 탄핵되었다.  
바티스타 전 위원장은 ICIJ와의 인터뷰에서 은행 전문가의 조언에 따라 BVI 법인을 설립했다고 해명했다. 법인 계좌는 위원장 직에 오르기 전에 이미 개설된 상태였고, 관련 계좌로는 큰 자금이 입금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또, 필리핀 당국에 이 법인 설립 사실을 신고했다고 밝혔다. 불법 행위 의혹에 대해서는 부인하면서 공식적으로 그 어떤 혐의도 인정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필리핀을 비롯한 여러 국가들은 이 같이 은밀한 자금 흐름을 억제하는데 실패했지만, 부에나벤투라와 동료 개혁 지지자들은 희망을 가질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파나마페이퍼스 발표 후 많은 시민의 시위가 이어지면서 아이슬란드와 파키스탄의 국가 지도자들은 자리에서 물러났다. 필리핀은 다른 수십 개 국가와 함께 기업의 실소유주 공개를 의무화하기 시작했다. 
필리핀 당국은 마르코스와 그의 측근들이 빼돌린 40억 달러를 회수하여 이 자금으로 소작농가에게 배분할 토지를 매입하고 마르코스 정권에 의해 살해되거나 실종된 피해자 가족을 위한 보상금을 지급했다. 
하지만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대형 은행과 법률 회사, 권력 집단이 투명성 규정 강화와 역외 시스템 악용에 대한 강력한 법 집행을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리핀을 비롯한 세계 곳곳의 반부패 활동가들은 법적 위협, 체포, 폭력을 견뎌내고 있다. 지난달 경찰은 마르코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지 49주년을 맞아 두테르테 정권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인 시민들에게 물 대포를 발사했다. 
부에나벤투라는 자신과 다른 풀뿌리 활동가들은 철저히 감춰진 불법 자산을 폭로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겠다는 다짐을 밝혔다. 그는 “우리의 슬로건은 바로 ‘진실은 반드시 드러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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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ICIJ 국제협업 취재팀
번역 감수뉴스타파 글로벌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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