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태원 참사 유가족이자 생존자, 그리고 목격자입니다”

2022년 12월 16일 15시 10분

참사는 살아남은 자와 남겨진 자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살아남은 자는 참사의 현장을 목격한 트라우마와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남겨진 자는 떠난 이에 대한 깊은 상실감에 몸부림친다. 박진성(25) 씨는 10·29 이태원 참사 현장에 있었던 생존자이자 누나를 잃은 유가족이다. 고통은 이중으로 들이닥쳤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박지혜(29) 씨의 유가족 박진성 씨가 지난 9일 뉴스타파를 찾아왔다. 
그날은 기분 좋은 날이었다. 경기도 평택에 사는 박진성 씨의 가족은 함께 장을 보고 들어오는 길에 색다른 나들이를 계획했다. '어디 바람이라도 쐬러 갔다 오자'는 박 씨의 말에 가족들은 반갑게 응했다. 엄마와 누나, 그리고 진성씨가 떠올린 곳은 이태원 핼러윈 축제였다. 아직 가족 중에 이태원을 가본 사람은 없었다. 저녁 8시, 세 가족은 들뜬 기분으로 차에 올랐다. 
밤 9시 50분 진성 씨 가족은 주한케냐대사관 부근에 차를 주차했다. 700미터가량을 걸어 번화가인 ‘이태원 세계음식문화거리’ 초입에 들어섰다.
저녁 먹을 곳을 찾기 위해 (휴대폰으로) 지도를 보고 있었는데 그 때만 해도 인파가 그렇게 많지 않았어요.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었고, 그때도 이렇다할 위험은 감지하지 못했어요.

이태원 참사 희생자 故박지혜(29)씨의 동생 박진성(25)씨
▲ 이태원 참사 희생자 故박지혜(29)씨의 동생 박진성(25)씨
세 가족이 거리에 들어섰을 때, 이태원 거리의 상황은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통제가 없는 인파 사이에서 가족은 위협을 느꼈다. 10시 10분경, 그들은 거리를 벗어나기로 했다. 큰 길가에 가까운 해밀톤 호텔 옆 골목으로 방향을 틀었다. 
해밀턴 호텔 건물 뒤쪽을 지날 때 이태원 역 출구가 근처에 있어서 그런지 몰리는 인파에 몸을 가누기가 어렵더라고요. 너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어 셋이서 줄지어서 어깨에 손을 올리고 빨리 나가려고 서둘렀지만 계속 인파에 떠밀렸어요.그 와중에 저희가 (참사가 발생한) 해밀톤 호텔 골목 쪽으로 향했어요. ‘저 쪽이 (나갈) 길이다, 일단은 골목을 벗어나자’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골목에 진입하니까… 너무 위험한 거에요.

이태원 참사 희생자 故박지혜(29)씨의 동생 박진성(25)씨
점점 사람이 많아져서 함께 움직이기 힘든 상황이 됐다. 한시라도 빨리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 가족들은 잠시 떨어지기로 했다. 잠시만 지나면 나아질 줄 알았던 상황은 점점 나빠지기만 했다. 
▲ 지난 10월 29일 밤 10시 박진성씨가 촬영한 이태원 현장. 
제가 어머니를 모시고 있어서 누나 먼저 밖으로 나가라고 했어요. ‘우리는 벽 쪽에 좀 붙어 있다가 사람들 빠져서 안전해 지면 나갈게’라고 누나한테 말했어요.하지만 사람들이 계속 그 골목으로 모이기 시작했고 압박이 점점 더 심해졌어요. ‘빨리 나가라고!’ ‘내려가라고!’ 이렇게 여기 저기서 소리가 들렸던 것 같아요.

이태원 참사 희생자 故박지혜(29)씨의 동생 박진성(25)씨
사방에서 들리던 사람들의 비명과 고함 소리가 하나둘 멎었다. 곁에 있는 몇몇이 의식을 잃은 듯 고개를 떨궜다. 진성 씨는 그때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고 말했다. 돌아보니 어머니도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시간이 조금씩 지나니까 사람들이 소리칠 힘도 없고 숨도 잘 못 쉬니까, 골목이 갑자기 고요해졌어요. 주변 상가에서는 음악 소리가 크게 울려퍼지는데 그 공간은 더 없이 조용했던 거죠. ‘진짜 죽을 수도 있겠다’ 이 생각을 백 번이고 천 번이고 계속 되뇌었던 거 같아요.어머니가 인파에 끼어서 땅에서 3~5센티미터 정도 발이 떠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아무 것도 못하고 계속 어머니를 바라볼 수 밖에 없었어요. ‘나는 죽어도 좋으니 엄마를 살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어머니 다리를 안고 위로 올려서 숨을 쉬게 하고 싶은데, 너무 끼어서 그 조차 안되더라고요. 그렇게 제가 한 손은 어머니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은 옆사람 손목을 잡고 ‘도와주세요’라고 외치면서 버텼던 거 같아요. 그 때 어머니가 호흡곤란이 와서 거의 숨을 못 쉬셨어요. 엄마한테 조금만 참으라고 했지만 ‘우리가 여기서 죽는 걸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태원 참사 희생자 故박지혜(29)씨의 동생 박진성(25)씨
박 씨도 폐를 누르는 강한 압박을 느꼈다. 어머니와 사람들의 의식이 옅어지는 걸 보며 무력감을 느꼈다. 그때 골목 뒤쪽에서 경찰과 구급 대원이 인파를 헤집고 왔다. 진성 씨와 어머니는 그렇게 천만다행 목숨을 건졌다. 이제 이태원을 벗어나 집으로 갈 수 있겠다 싶었다. 누나만 찾으면 됐다.
빠져나와서 바로 누나한테 전화를 걸었는데, 그 때가 10시 41분이었어요. 누나 한테 우리 갇혀 있었다고, 죽을 뻔 했다고 얘기할 생각이었는데 누나가 계속 통화가 안 되는 거에요. 누나가 인파에 휩쓸린 건 아닌가 걱정을 하면서도 저희가 온 몸에 힘이 빠지고 그 때까지도 공포에 질려 있어서 한 20~30분은 계속 그 골목에 있을 수 밖에 없었어요.

이태원 참사 희생자 故박지혜(29)씨의 동생 박진성(25)씨
밤 11시가 조금 넘은 시각, 진성 씨와 어머니는 이태원 큰 길로 누나를 찾아 나섰다. 이들이 마주한 광경은 아수라장이었다. 시내버스와 일반 승용차, 구급차, 그리고 인파가 한데 엉켜서 전혀 통제가 되지 않는 도로 주변에 사람들이 쓰러져 있었다. 아수라장 사이로 두 모자가 누나를 찾아 동분서주 뛰었다.
의식이 없이 쓰러져 계신 분들이 이렇게 인도에 누워 있는데, 그 속에 혹시라도 누나가 있을까봐. 차마 볼 수가 없는데도 그 의식이 없는 분들의 얼굴을 한 분 한 분 보면서 누나가 있는지 확인을 했어요.

이태원 참사 희생자 故박지혜(29)씨의 동생 박진성(25)씨
진성 씨는 길 위에 누워 있는 희생자 50여 명의 얼굴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누나는 없었다. 희생자들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원효로에 위치한 체육관과 인근 순천향대 병원 장례식장을 찾았지만 역시 누나는 없었다. 밤새 받지 않는 전화를 걸면서 ‘핸드폰을 잃어버렸겠지, 다쳐서 병원으로 이송이 된 거겠지’라고 스스로를 달랬다.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맞은 아침, 한남동 주민센터에 들러 실종자 신고를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는 진성 씨에게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간단히 씻고 다시 누나를 찾으러 용산으로 향했다. 차 안에서 전화를 받았다. 경찰이 알려준 곳은 서울 동대문구 삼육대 병원이었다. 진성 씨와 어머니는 병원 영안실에서 차갑게 식은 누나를 만났다. 얼굴에 온통 멍 자국이었다. '엄마를 모시고 뒤따라 가겠다'라며 누나를 인파 속으로 먼저 보내고, 12시간여 만이었다.  
한동안은 제가 밤에 밖에 못 나왔어요. 두렵기도 하고, 작은 소리만 나도 깜짝 깜짝 놀라기도 하구요. 운전하다 보면 가끔 차 바닥에 옷 가지 같은 게 떨어져 있을 때가 있잖아요, 그런 것만 봐도 진정이 안되더라구요. 2주 정도 쉬고 다시 출근해서 일주일 정도 일을 했는데요, 한 시간에도 몇 번씩 마음이 울컥 울컥 하더라구요. 일을 그만 뒀어요.정신 없이 장례식을 마치고 그 후로 무인도에 갇힌 것처럼 세상과 단절된 느낌이었어요.

이태원 참사 희생자 故박지혜(29)씨의 동생 박진성(25)씨
그 날 이후, 진성씨는 격한 감정에 시달렸다. 낯선 상황에서 오는 두려움, 그리고 그보다 큰 분노가 일었다. 
정부에서는 제대로 책임지려는 사람도 없는 것 같고, 외신 기자 인터뷰에서 농담하는 총리, 경찰을 미리 배치했어도 결과는 바뀌지 않았을 거라는 행안부 장관을 보면서 더 마음이 아팠어요.

이태원 참사 희생자 故박지혜(29)씨의 동생 박진성(25)씨
진성 씨는 정부가 떳떳하다면 마약 단속에 치중한 나머지 안전을 소홀히 했다는 의혹, 대통령 집무실과 사저 이전으로 인한 경찰력 공백이 원인이 됐다는 의혹 등 각종 의혹에 대해 스스로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것이 유가족뿐만 아니라 희생자들의 억울함을 푸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나마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하 민변)을 통해 만난 다른 가족들로부터 위안을 얻었다고 진성 씨는 말했다. 유가족들과 함께 참사 진상 규명과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위해 끝까지 나서겠다고 했다. 피해자가 재발 방지 대책까지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억울하지 않냐고 묻자, 진성 씨는 이렇게 답했다. 
억울한 마음도 많이 드는데요, 그런데 저는 살아 있어서 말을 할 수가 있잖아요. 이미 돌아가신 분들은 하늘에서 얼마나 답답하고 하고 싶은 말이 많겠어요. 그분들의 억울함을 풀어드리고 추모하는 게 남은 유가족들의 사명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따금 어머니랑 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저랑 어머니도 원래는 죽을 운명이었는데 누나가 우리를 지켜줬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희는 누나 몫까지 열심히 살아갈 겁니다. 빨리 이 문제가 해결되어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 때까지 국민 여러분들이 많은 관심을 가져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故박지혜(29)씨의 동생 박진성(25)씨
▲ 이태원 참사 희생자 故박지혜씨의 가족
※이태원 참사 유가족 협의회가 다른 희생자 가족들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메일 : itaewon1029official@gmail.com
인스타그램 : @10.29_itaewon_official
제작진
촬영김기철 정형민
편집박서영
디자인이도현
타이틀정동우
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