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참사의 기원… '돈벌이 욕망'과 '뒷북 규제'

2018년 02월 02일 20시 08분

욕심이 너무 많데이. 병실에 들어가보면 할매들, 할배들 환장하게 많데이. 진료 보러 가면 전부 입원부터 시켜뿔고. 것도 모자라서 건물을 또 짓는다 아이가. 장례식장도 두 칸이던 걸 올 여름에 네 칸으로 늘려 뿔고. 전부 불법이다 카드라.

노인은 타다 남은 병원 건물을 향해 손가락질했다. 병원이 커질 때마다 마을은 조금씩 죽어갔다. 공터에 새 건물이 자리를 잡으면 골목은 주차장이 됐다. 동네 사람들은 외지에서 온 병원 이사장을 향해, 할배 할매들의 쌈짓돈으로 돈벌이를 한다며 흉을 잡았다.

그래도 자식, 손자들과 멀리 떨어지기는 싫다는 동네 노인들이 이 병원을 찾았다. 생돈을 내고 들어오는 사람은 드물었다. 아무리 거동이 힘들어도 자식에 손벌리는 것 만큼은 끔찍히 싫어했다.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어 푼돈이라도 쥐고서야 죽기 전까지 머물 곳을 찾아간다며 병원 문을 두드렸다. 화마에 휩싸여 세상을 떠난 아흔 살 동네 노인의 마지막 모습도 그와 같았다.

아흔이 돼서야 기초생활수급자 돼서 두 번째로 돈을 탔어. 이제는 기운이 없어 병원에 가서 입원할 거라고, 그래서 다 준비해 왔다고 하더라고. 할매들은 수급자가 아니면 입원을 잘 안 해. 돈 나간다고. 그렇게 돈 타고 입원해서 사흘만에 바로 돌아가셔 버렸어. 그 놈의 수급자가 뭐라고…

1달 만에 또 최악의 화재참사...이번에도 '인재'

지난달 26일 오전 7시 30분경, 밀양시 가곡동 소재의 세종병원에서 화재가 발생해 40명이 사망하고 151명이 부상했다(2월 2일 오전 기준). 중상자 일부는 여전히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 있다. 29명이 사망한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사건 1달 만에 발생한 최악의 참사였다.

합동감식반이 밝힌 화재 원인은 '전기적 요인에 의한 발화'다. 1층 응급실 내 탕비실 천장에서 발생한 전기배선 상의 문제가 화재로 이어졌다. 불길은 다른 층까지 확산되지 않고 2시간 만에 진화됐다. 하지만 이로 인해 발생한 연기가 각 층으로 타고 올라가면서 인명 피해가 속출했다.

밀양 세종병원 화재사건 조사본부는 전례없이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이번 사건의 배경에 병원 측의 책임이 없는지 조사 중이다. 병원이 최소한의 안전 관리마저 소홀했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면서 이번 참사 역시 인재의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수익극대화 위한 증개축, 피해 규모 키웠을 가능성 커

총 5개 층으로 이뤄진 병원 건물에서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곳은 2층 병실이다. 13명의 입원환자들이 이곳에서 연기에 질식사했다. 조사본부에 따르면, 응급실에서 발생한 연기가 상부로 이동한 경로는 엘리베이터와 계단, 배관 그리고 병원 본관과 요양병원을 잇는 연결통로 등 4개다.

이 가운데 연결통로는 2층 병실에 연기를 유입시키는 '굴뚝'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발화지점인 응급실 바로 옆에 위치한 데다 천장이 2층 병실 창문으로 이어져 있어 연기가 이 경로를 따라 움직였을 개연성이 높다. 녹아내린 연결통로 천장 위로 불길이 치솟았다는 화재 현장 목격자의 진술과도 일치하는 대목이다.

문제는 이 연결통로가 애당초 있어서는 안 될 시설물이었다는 것이다. 밀양시는 이 연결통로가 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은 불법증축물이며, 이미 2011년 적발된 이력이 있다고 밝혔다. 시 당국은 연결통로를 포함한 총 12곳에 대해 행정명령을 내렸지만, 병원 측은 줄곧 이를 거부해 왔다. 이 과정에서 병원이 납부한 강제이행금만 해도 3천만 원이 넘는다.

수입과 직결되는 병상 수를 늘리기 위해 내부 구조도 수시로 변경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밀양시 보건당국에 따르면, 세종병원은 2008년 이후 총 31차례 인허가 변경을 하며 의료인 수와 병상 수를 고무줄 식으로 조정해왔다. 2008년 3월 16개 병실에 98개 병상이었던 것이 현재는 18개 병실에 111개 병상(6층 요양병원 병실, 병상 합산)으로 늘었다. 이 과정에서 3층에는 통로조차 제대로 확보되지 않는 20인실 과밀병동까지 들어섰다.

한정된 공간에서 병상 수를 늘리다보니 필요한 시설은 증축이나 구조변경을 통해 확보할 수 밖에 없었다. 발화 지점으로 확인된 탕비실 역시 최초 도면에는 없었던 불법 구조변경 시설이다. 응급실 한편에 가벽을 설치해 임의의 공간을 만든 것이다. 경찰은 이같은 불법 구조변경이 화재의 원인이 됐을 가능성을 놓고 조사 중이다.

규제 피해 구색만 갖춘 안전설비들, 결국 참사로 직결

조사본부는 사망자들 가운데 목 안에서 그을음이 발견되지 않은 4명에 대한 사인을 별도로 조사 중이다. 이들은  인공 산소호흡기에 의존하고 있었던 만큼 화재로 발생한 정전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화재 발생 직후 산소 공급이 끊어져 이미 숨을 거뒀을 수 있다는 것이다.

2012년 각 의료기관에 배포된 보건복지부 '의료기관 정전대비 표준매뉴얼'에 따르면,  의료시설은 정전에 대비해 설비 용량에 따른 비상발전기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세종병원 역시 수동식 비상발전기를 갖추고는 있었다. 하지만 화재 당시 이 장비를 작동시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설령 누군가 이를 가동시켰거나 애초에 자동식 비상발전기를 갖추고 있었다고 해도 실효성이 있었을지는 미지수다. 조사본부에 따르면, 세종병원 비상발전기의 전력량은 22kW로 병원 전체의 설비를 운용하기 위해 필요한 전력량 107kW에 크게 못 미쳤던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전기안전공사에 따르면 75kW 이하의 비상발전기는 점검대상에서 제외된다. 결국 병원 측은 비용은 최소화하고 감독은 받지 않은 수 있는 선에서 비상발전 설비의 구색만 갖추고 있었던 셈이다.

역시 비용 투입을 필요로 하는 전문 의료인 숫자도 턱없이 부족했다. 의료법상 세종병원의 환자 규모를 기준으로 할 때 적정 의료진 수는 의사 6명에 간호사 35명이었지만, 실제로는 의사 2명, 간호사 7명에 불과했다. 밀양시는 이 병원이 의료법상 야간 당직 의료인수 기준을 60차례나 위반해 고발 조치한 사실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병원 측은 이에 따른 벌금 100만 원을 내고 부족한 의료진 수를 확충하지 않은 채 버텨왔다.  

스프링클러 규제 사각지대 중소병원...언제까지 땜질만?

세종병원에서 화재 조기진압의 필수 시설인 스프링클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재난에 취약한 고령층 입원환자가 대부분인 의료시설이었지만 현행 법규상 스프링클러 등 소방안전시설 설치는 의무사항이 아니다.

정부는 화재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꾸준히 손보고 있다. 하지만 번번이 스프링클러 설치 시설의 범위를 조금씩 늘리는 땜질식 처방에 그치고 있다. 2014년 장성요양병원 방화 사건 이후 요양병원을 포함한 의료시설이 소방시설기준 적용 대상에 포함됐지만 오는 6월까지 시행이 유예된 상황이다.

※ 관련기사 : 대형화재 생겨야 땜질식 개정...참사 못 막는 '뒷북 법안들'

연면적을 기준으로한 현행 규정으로 인해 세종병원 같은 중소규모의 의료시설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화재가 발생한 세종병원의 연면적은 1489㎡로, 스프링클러 의무 설치 기준 연면적인 5000㎡에 미치지 않는다. 미국 등 선진국은 단 1명의 입원환자만 있어도 스프링클러를 반드시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관련기사 : 선진국 의료기관들은 스프링클러 설치 통해 피해규모 줄여

취재 : 오대양, 김지윤, 연다혜

촬영 : 신영철, 오준식

편집 : 박서영

CG : 정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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