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회] 변상욱 칼럼 - 인간의 존엄은 꺼지지 않는다

2012년 04월 08일 05시 58분

MBC 경영진이 노조위원장과 사무처장을 추가로 해고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김재철 사장 재임 2년 2개월 동안 이리 되면 6명이 해고되고 중징계 받은 사람이 80명이 넘습니다. 노조원들은 해고의 근거가 뭐냐, 기준이 뭐냐 따져 묻습니다.

아마도 따져 묻고 있는 것은 MBC 노조원들 뿐만은 아닐 것입니다. MBC 경영진도 묻고 있을 겁니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럴 거냐, 얼마나 더 짓밟아야 항복하겠느냐. 아마 이렇게 묻고 있을 겁니다.

이런 물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MBC 경영진만은 아니겠죠. 파업 100일을 넘긴 국민일보 경영진도 그럴 것이고, KBS, YTN, 연합뉴스의 경영진도 그럴 것입니다. 그리고 해고 노동자 투쟁 1600일을 맞고 있는 재능교육 경영진도 아마 그런 물음을 갖고 있을 것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쌍용차에서도,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에서도, 그리고 국민을 사찰하고 국민을 위협하는 권력기관, 여기에서도 국민의 저항의 목소리를 침묵시키고 저항의 불길을 밟아 끄고 싶은 사람들은 다들 속으로 묻고 있을 겁니다. 어떻게 해야 저 목소리를 침묵시키고 저 저항의 불꽃을 밟아 끌 수 있을까.

그러나 어려울 것입니다. 바로 앞에서 보면 한줌의 불꽃이지만 둘러보면 사방에서 타오르는 불꽃인데 그것을 어떻게 발로 밟아서 끌 수 있단 말입니까.

오늘은 멀리 거슬러 올라가서 석사 세존에 얽힌 얘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어떤 왕국에서 석가 세존을 모시고 커다란 연등법회를 열었습니다. 온 나라가 저마다 등불 하나씩 밝히고 잔치를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석가 세존이 계신 곳에서 멀지 않은 마을에 한 가난한 여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하루 품을 팔아도 한 끼를 먹기 힘든 정말 가난한 여인이었습니다. 남들은 모두 연등법회에 참석해 자기의 불을 밝히는데 가난해서 등불을 밝힐 수 없었던 이 여인은 몇날 며칠 품을 팔고 먹을 것을 못 먹어가면서 아끼고 아껴서 동전 몇 닢을 마련해 기름을 샀습니다. 그걸로 한쪽 구석에 조그마한 등잔불을 밝혔습니다.

연회가 끝나고 석가 세존이 편히 잠드시도록 모든 불을 끄기로 했습니다. 왕이 밝힌 거, 고관대작들이 밝힌 거, 부자들이 밝힌 거, 모든 불이 꺼졌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애를 써도 구석에 있는 조그마한 등잔불 하나가 꺼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후 불어도 안 되고 덮어도 안 되고 도대체 꺼지질 않아서 난리법석이 벌어졌습니다.

이때 석가 세존이 제자를 부릅니다. 아난다야, 진정 네가 저 불을 끄려고 하는 것이냐. 끌 수 없을 것이다. 저 불은 한 사람의 모든 것이 담겨 있고, 일생의 염원이 담겨 있는 것인데 어찌 그것을 네가 힘으로 끈단 말이냐. 정녕 너는 저 불을 끄지 못하리라. 이렇게 가르칩니다.

아마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을 귀찮게 하는 저 불꽃은 그저 거기에 처세와 욕망이 담긴 그런 불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정의와 평화를 갈망하는 인간의 염원이 담겨 있습니다. 권력자들을 귀찮게 하는 저 목소리 역시 그저 떼쓰는 목소리가 아니라 정의와 평화를 갈망하는 인간 존엄이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꺼지지도 지워지지도 않는 것입니다.

아마 힘으로 한 사람을 침묵시키고 오늘 내쫓을 수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사람은 반드시 돌아올 것입니다. 그가 돌아올 때 그는 한 사람이 아니라 수만, 수십만, 수백만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밟아 끌 때 비록 한줌의 불꽃이지만 돌아올 때는 커다란 들불을 되어 있을 것입니다.

옛말에 ‘지지지지(知止止止)’라고 했습니다. 멈춰야 할 때를 바로 알고 멈춰야 할 때 멈추라는 뜻입니다. ‘지지지지(知止止止)’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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